공작이 회귀함 132화
살레오스.
상위 서열의 마왕으로, 회귀 전의 발타자르였다면 전성기 시절이 아니고서야 상대하는 것에 난항을 겪었을 것이 분명한 강력한 마왕이었다.
특히나 저 기이할 정도로 비대한 두 팔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힘은 정면에서 맞상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느껴질 정도였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회귀 전의 발타자르를 기준으로 한 이야기일 뿐이었다.
무력만큼은 마계 최강자 바알과 비견되는 바르바토스 조차 쉬이 승부를 장담할 수 없다고 평한 것이 바로 발타자르였다.
회귀 전 전성기의 힘을 아득히 초월한 현재의 발타자르에게, 아무런 기교 없이 오직 힘만으로 승부를 보는 살레오스는 어떤 면에서는 하위 서열의 마왕보다도 상대하기가 수월했다.
“한 줌의 고깃덩이로 만들어주마!”
살레오스가 주먹을 내질렀다.
대기를 찢어발기는 그 강맹한 일격을 부드럽게 흘려낸 발타자르의 검이 내질러진 그의 주먹을 휘감았다.
푸쉬시시-
검은 피가 분수에서 치솟는 물처럼 뿜어져 나왔다.
팔을 휘감으며 목을 노리고 휘둘러지는 검으로 인해 살레오스는 주먹을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큿-”
단 한 번의 공방으로 넝마 조각이 되어버린 자신의 오른팔을 내려다보며 살레오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 소문이 영 헛것은 아니로구나!”
그의 몸에서 검은 마기가 뿜어져 나왔다.
사방으로 퍼져 나간 마기가 인근의 생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적아의 구분 없이 생기를 빼앗긴 생명체들이 회색빛 잿가루로 변했다.
“좋다! 내 전력을 다해 네놈을 때려 죽여주마!”
주변의 생기를 흡수한 살레오스의 피부 위로 검은빛을 번들거리는 강철 같은 갑각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어찌 마왕이란 족속들은 하나같이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군.”
그것을 지켜보던 발타자르가 한심하단 투로 중얼거렸다.
그가 여태까지 겪어온 마왕들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적에게 호된 역습을 받고 난 후에야 전력을 다했다.
서열이 높을수록 그런 경향이 두드러졌는데 이는 자신들이 그 어떠한 존재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이 뼛속까지 뿌리박혀 있기에 그런 것이었다.
발타자르가 보기에는 실로 오만하고 어처구니없는 행동일 뿐이었다.
자신의 힘에 자신감을 가지는 것은 좋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자만하고 방심하기까지 하는 것은 적에게 죽여달라 애원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바로…….
지금처럼.
붉은 섬광이 번쩍였다.
그 기습적인 일격을 살레오스는 인지하지 못했다.
단숨에 그의 미간에 구멍이 뚫렸다.
푸쉬시식-
뿜어져 나오는 검은 피.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했다.
살레오스의 거체가 힘없이 뒤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쿵-
이윽고 그의 몸이 완전히 나자빠지자 발타자르가 그의 몸 위에 올라섰다.
“이 비겁한…….”
“비겁? 적을 눈앞에 두고 방심한 네놈이 멍청한 것이지.”
발타자르의 검이 살레오스의 심장에 내리꽂혔다.
살레오스의 몸이 발작적으로 꿈틀거렸다.
그의 두 눈에서 서서히 생기가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만약 네 녀석이 내 수하였다면 진작에 목을 날려 버렸을 것이다. 아! 그래서 아몬이 네놈을 선봉으로 보낸 것이로군. 알량한 힘만 믿고 천지 분간 못 하는 멍청한 수하 놈을 처리하려고 말이야.”
발타자르의 이죽거림에 살레오스가 흐릿해져 가는 정신을 붙잡으며 주먹을 내뻗으려 했지만, 몸이 생각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이 무슨 어처구니없는…….’
방심의 대가가 이렇게나 뼈아프게 다가올 줄은 몰랐다.
다른 마왕들이 이 모습을 보았다면 손가락질하며 비웃었으리라.
“뭐. 덕분에 초전은 이쪽이 의도한 대로 압도적인 승리로 장식할 수 있을 테니 고마울 따름이지만.”
발타자르가 검을 쥔 손목을 뒤틀었다.
검이 반 바퀴 회전하며 꿰뚫은 심장에 큰 구멍을 만들었다.
“이건 선물일세. 편히 가게나.”
검이 휘둘러지며 살레오스의 머리통을 반으로 갈라 버렸다.
상위 서열의 마왕이 맞이한 최후라고 보기에는 무척이나 허무한 결말이었다.
* * *
살레오스의 죽음 이후 전장은 빠른 속도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남은 마왕들은 가웨인과 아크 메이지들의 맹공에 얼마 버티지 못하고 사망했으며, 통제를 벗어난 마물들은 적아를 구분하지 않고 미친 듯이 날뛰었다.
마족들은 토벌대와 한순간에 적으로 돌변한 마물들을 상대로 치열한 접전을 벌였지만, 그들이 전멸하는 것에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포로는 없었다.
발타자르가 사전에 내린 지시대로 항복 여부와 관계없이, 마왕군은 단 한 명의 생존자도 남기지 않고 목이 달아났다.
그렇게 처음 계획대로 초전은 토벌대의 압승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 * *
전투가 끝이 나고 둔다림 백작의 초대를 뒤로 미룬 채 성벽 위에서 전장 정리를 지켜보던 발타자르에게 간다르바가 다가왔다.
“주군.”
“음? 간다르바. 무슨 일인가?”
“신시아 양으로부터 연락이 왔소만. 어떻게 하시겠소?”
“신시아가?”
“그렇소. 급한 일이라고만 하더이다만.”
말하며 간다르바가 품에서 통신구를 꺼내 들었다.
통신구가 깜빡깜빡 빛을 발하고 있었다.
“바로 연결해 주게.”
발타자르의 말에 간다르바가 통신구를 개통했다.
푸른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이내 신시아의 얼굴이 비쳤다.
[각하. 승전 축하드려요.]
신시아가 축하 인사를 건넸다.
“고맙네. 그보다 무슨 일인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려는 발타자르의 모습에 신시아가 피식- 웃으며 ‘여전하시네요’ 하고 중얼거리더니 얼굴에서 표정을 지워냈다.
[다름이 아니라 서부에 파견한 첩보원들이 수상한 정황을 포착해서 연락드렸어요.]
“좀 더 자세히.”
발타자르의 말에 신시아가 잠시 통신구에서 사라지더니 이내 갑옷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무척이나 조잡한 외형이었다.
[서부 마왕군. 정확히는 오크들에 한정해서 대대적인 무장이 실시되고 있다고 해요. 이것에 동원된 무구 몇 개를 빼돌려서 살펴보니까 외형은 이래도 무구의 질은 제국 정규군의 것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더라고요.]
순간 마왕들이 대장장이들을 부려 무구 제작을 실시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지만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서부전 이후 서부의 대장장이들은 모두 북부와 중앙에 징집되었다. 따라서 서부에 남은 대장장이 중 병장기를 만들어낼 정도로 고급 기술을 가진 이는 전무했다.
설령 남아 있다고 해도 그것은 아주 극소수일 것이었다.
그 소수의 인원으로는 수십만에 달하는 오크들의 무장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또한, 그들이 다른 대장장이들에게 기술을 전수해 준다고 가정해도 하루아침에 정규군에게 지급되는 무구와 동일한 수준의 무구를 제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는 것은 서부 마왕군에게 대량의 무구를 공급해 주는 이가 있다는 뜻이었다.
순간 발타자르의 머릿속에 바르바토스에게서 전해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불사왕 아가레스와 손을 잡은 상단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리고 발타자르가 생각하기로 가장 유력한 후보는…….
“칼 프란츠인가?”
발타자르의 물음에 신시아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에요.]
그 단호한 대답에 발타자르는 신시아가 서부 마왕군에게 무구를 공급해주는 배후를 찾아냈음을 깨달았다.
“누구인가.”
발타자르가 묻자 신시아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보르네오 메디치.]
그녀의 입에서 예상 밖의 인물이 튀어나왔다.
* * *
보르네오 메디치.
개국공신 가문 메디치 공작 가의 차남으로 서출인 장남 조반니 메디치와는 달리 본처 소생의 적통이었다.
보르네오는 자신이 적통임을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하는 한편 서출임에도 장남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조반니를 멸시하고 미워했다.
그것이 어느 정도냐 하면 ‘조반니는 메디치 가문의 사람이 아니다’라고 공공연하게 떠벌리고 다닐 정도였다.
이렇듯 보르네오가 날 선 반응을 보이니 당연히 조반니 역시 보르네오를 탐탁잖게 여기며 적대하였는데, 보르네오는 속이 좁고 좀스러운 구석이 있어 그러한 조반니의 반응에 더욱더 앙심을 품었다.
표면상으로나 형제일 뿐이지 사실상 원수지간이나 마찬가지였다.
“제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조반니를 치워 버릴 생각이로군.”
마왕과 손을 잡고 그들을 지원하는 이가 예상 밖의 인물이기는 했지만, 발타자르는 단박에 보르네오가 마왕과 손을 잡은 이유를 짐작해 내었다.
날로 세력이 강성해지는 조반니 메디치는 현재 가문의 원로들을 설득하여 서부 탈환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보르네오는 이것을 마냥 두고 볼 수가 없었고 이 점을 노리고 마왕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으리라.
[제가 생각하기에도 그래요. 나름대로 비밀리에 물자를 지원한 것 같았지만 아무래도 시기가 시기이다 보니 대규모 상행은 눈에 띌 수밖에 없잖아요? 거기다 서부 인근의 영지에 주기적으로 상행을 다니는 상단은 황금상단뿐이었으니 꼬리를 잡아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더라고요. 장남은 마왕과 일전을 주장하는데 차남은 그 마왕과 손을 잡는다니. 딱 봐도 견적이 나오지 않나요?]
대륙 5대 상단 중 하나인 황금상단의 상단주가 보르네오의 외조부였다.
따라서 대규모 군수 물자를 지원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리라.
“이것 참 일이 재밌게 돌아가는군.”
기나긴 제국의 역사 속에 하나둘씩 사라져간 끝에 이제는 유일하게 남은 개국공신 가문의 직계가 제국의 안위를 위협하는 마왕과 손을 잡는 것으로 모자라 군수물자를 지원하기까지 한다니.
중앙에서 마왕의 토벌을 천명한 현 상황에서 마왕과 손을 잡았다는 것은 역모를 꾸미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행위였다.
‘제 손으로 빌미를 내주다니. 고맙다고 해야 하나?’
황권을 위협하는 세 선제후 중 프리드리히 공작가의 몰락이 확정된 이때.
남은 두 세력 중 한 곳의 직계가 반역죄에 따르는 중죄를 저질렀으니 천운이 제국 황실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 분명했다.
“고생했네. 계속 감시하고 혹시나 보르네오 측에서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즉시 바로 보고하게.”
[네. 그럴게요.]
메디치 공작가를 한순간에 몰락의 길로 걷게 만들 수 있는 강력한 명분을 손에 쥐게 되었지만, 이것을 당장 사용할 생각은 없었다.
이번 토벌전이 끝날 때까지는 메디치 공작가는 건재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보르네오가 아닌 조반니의 손을 들어줄 필요가 있었다.
목적이야 어찌 되었든 간에 그는 현재 서부 탈환에 무척이나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니 말이다.
“아 참. 그리고 사람을 보내 슈텔리앙 후작에게 말을 전해주게나.”
[뭐라고 전할까요?]
신시아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답했다.
“서부 탈환전에 참전한 조반니 메디치를 제2 토벌대의 사령관으로 임명하도록 조치해 달라 부탁했다고 전해주게.”
제국의 안위를 위해 고생하는 충신을 위해 그 정도 체면치레 정도는 해 주어야지 않겠는가?
물론 토벌전이 성공리에 마무리되고 서부를 탈환한다면 그들에게 주어질 것은 비옥한 서부의 땅이 아닌 시리도록 차가운 단죄斷罪의 칼날뿐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