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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131화 (131/183)

공작이 회귀함 131화

가웨인의 활약으로 적의 증원군이 도착했다고 착각한 마왕군이 병사들을 물리는 것으로 전장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쿵-

살레오스가 옆구리에 끼고 놀던 서큐버스를 거침없이 내던졌다.

서큐버스 땅바닥과 충돌하며 목이 꺾여 즉사했다.

그러나 막사 내에 자리한 그 누구도 서큐버스에게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그러니까. 적의 지원은 없었다?”

살레오스의 서늘한 눈동자에 이제 막 숲 속을 정찰하고 온 서열 66위의 키메리에스가 몸을 흠칫 떨었다.

그는 가웨인이 이끄는 기병대에게 패배함으로써 점령 직전까지 갔던 마왕군을 퇴각하게 만든 패장이었다.

“그, 그렇습니다.”

“그래?”

길게 늘어난 살레오스의 손이 순식간에 키메리에스의 목을 붙잡았다.

“컥-”

키메리에스가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살레오스에게로 끌려갔다.

그가 다급한 표정으로 다른 마왕들에게 도움의 눈길을 보냈지만, 그들은 혹여나 살레오스의 분노가 자신에게 미칠까 두려워하여 고개를 숙이곤 키메리에스의 시선을 피했다.

“출정 전, 아몬 님께서 직접 내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계절이 바뀌기 전에 제국의 심장에서 놈들의 피로 축배를 들자고. 그곳에서 곧 도래하실 마의 종주를 맞이하자고.”

키메리에스의 목을 쥔 살레오스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창백해져 가는 얼굴.

그러나 감히 저항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압도적인 힘의 폭거 앞에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살려달라 애원하는 것뿐이었다.

“살레오스 님. 제발…….”

눈물, 콧물을 쏟아내는 키메리에스의 모습은 애처롭기 그지없었으나 살레오스는 그에겐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숨죽이고 있는 마왕들을 노려보았다.

“오세.”

“예, 살레오스 님.”

검은 표범이 앞으로 나서며 고개를 숙였다.

서열 57위.

살레오스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서열의 마왕이었다.

“플라우로스와 함께 감히 이 몸을 기만하려 했던 제국 놈의 목을 가져와라.”

“알겠습니다.”

오세가 답하곤 플라우로스와 함께 막사를 빠져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살레오스가 손에 힘을 풀었다.

덕분에 숨통이 트인 키메리에스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가, 감사…….”

살레오스의 용서를 받은 것이라 생각한 키메리에스가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던 순간.

두둑-

무언가 부러지는 섬찟한 소리와 함께 키메리에스의 머리가 허공 위로 치솟았다. 동시에 그의 몸이 힘없이 쓰러졌다.

“고작 인간 따위에게 패배한 놈을 살려둘 이유는 없지.”

살레오스의 손에서 뚝뚝 떨어지는 핏물을 바라보며 마왕들은 숨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그들의 공포를 음미하며 살레오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오늘 해가 지기 전에 둔다림 백작성에서 축배를 들 것이다. 그러나 잔에 담길 피가 제국 놈들의 피일지, 아니면 네놈들의 피가 될 것인지는 네 녀석들이 하기에 달렸다. 알겠느냐!”

살레오스의 노호성에 고개 숙이고 있던 마왕들이 재빠르게 땅바닥에 몸을 엎드리며 한목소리로 소리쳤다.

[인간들의 피로 성대한 연회를 열겠나이다!]

* * *

가웨인이 벌어준 시간 덕분에 둔다림 백작성이 함락되기 전에 전장에 도착한 본대는 숲 속에 진지를 구축하고 마왕군이 재침공을 시작할 때만을 기다렸다.

마왕군이 진군을 시작하면 마법사들의 대대적인 폭격과 함께 놈들의 측면을 노리려는 계획이었다.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한 번의 정찰이 있었지만, 아크 메이지들과 다수의 마법사가 동원된 위장 마법에 속아 넘어가 진군을 재개하였다.

그와 동시에 다수의 병력을 숲을 향해 진격시켰지만, 그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크와아아악-

하늘에서 와이번들이 숲을 향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흉측한 외형의 마수들이 서로를 밀쳐가며 앞다투어 질주하고 있었다.

“가라! 건방진 인간 놈의 목을 내게 가져와라!”

마물들의 가장 선두에서 치달리던 거대한 몸집의 표범.

오세가 포효성을 터뜨렸다.

동시에 와이번들과 마수들이 숲에 진입했다.

꽈아앙-

거친 폭음과 함께 숲에 진입하던 마왕군이 쓸려나갔다.

뿌연 흙먼지가 피어오르고.

그 속에서 중무장한 제국군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전군! 진격하라!”

선두는 단연 발타자르와 군타낙스 기사단이었다.

오러의 폭풍을 휘감은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순식간에 마왕군의 선두가 무너져 내렸다.

“대적자 발타자르…….”

오세가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마주하게 되니 호승심이 솟구쳤다.

“어디 소문만큼이나 대단한지 실력을 한번 볼까?”

검은 마기가 그의 몸을 휘감더니 이내 한줄기 선이 되어 발타자르를 향해 쏘아져 나갔다.

순간 주변의 시간이 한없이 느리게 흘러갔다.

군의 선두에서 붉은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는 발타자르.

그는 다가오는 오세를 인지하지 못한 것인지 그를 향해 달려드는 거대한 마물에게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다.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역시 한낱 인간일 뿐인가.’

오세가 자신의 일격에 심장이 꿰뚫릴 발타자르의 모습을 상상하며 앞발을 내질렀다.

예리한 칼날과도 같은 발톱이 발타자르의 심장 앞에 도달했다.

이제 꿰뚫는 것만 남은 순간.

“시작부터 마왕이라.”

발타자르의 입가가 긴 호선을 그렸다.

동시에.

발타자르가 몸을 비틀며 오세의 일격을 피해냈다.

“컥-”

오세가 단말마의 비명을 토했다.

역으로 심장이 꿰뚫렸다.

오세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제 심장을 관통한 검을 바라보았다.

‘내 공격을 인지하지 못한 것이 분명했는데…….’

당황은 잠깐이었다.

심장이 꿰뚫리는 치명상을 입기는 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여력은 충분히 남아 있었다.

오세가 앞발을 휘둘러 발타자르의 안면을 가격하려 했다.

턱-

하지만 허무하리만치 손쉽게 발타자르의 손에 붙잡혀 버렸다.

우드득-

비틀리는 앞발.

동시에 심장을 꿰뚫린 검이 회전했다.

극심한 고통이 밀려왔다.

“크아아악!”

오세는 자신의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앞발이 잘려 나가고, 몸이 반으로 잘려 나갔다.

강력한 재생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것은 회복이 불가능한 치명상이었다.

“발타자르으으!”

오세가 노호성을 터뜨렸다.

마음 같아서는 단박에 녀석의 머리통을 깨부수고 싶지만, 그에게 처참하게 당해버린 몸뚱아리가 도저히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았다.

“오세 님!”

하늘에서 이 광경을 목격한 플라우로스가 오세를 구하기 위해 하강하기 시작했다.

“안 돼! 오지 마!”

오세가 플라우로스를 향해 황급히 소리쳤다.

자신을 구해주려는 행동은 무척 고마웠지만 내려와 봐야 자신과 같은 꼴을 당할 뿐이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살레오스에게 발타자르의 등장을 알리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한발 늦었다.

이미 플라우로스는 발타자르의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

“죽어라아아-!”

마기의 화살들이 발타자르를 향해 쏘아졌다.

이에 발타자르가 검을 휘두르자 거센 폭발이 일어났다.

쿠구구궁-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발타자르가 타고 있던 말이 다리를 휘청거리더니 이내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 잠깐의 틈이 기회라고 여긴 플라우로스가 반 토막 난 오세를 잡아채곤 날아올랐다.

“오세 님! 조금만 버티십시오! 본진으로 돌아가는 즉시…….”

“이 멍청한 놈!”

두 날개를 펄럭이며 하늘로 솟구치는 플라우로스에게 오세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방심하고 있다는 전제를 둔다면 중위 서열의 마왕이라도 단숨에 숨통을 끊어 버릴 일격을 손쉽게 막아내었던 놈이었다.

그런 녀석이 이런 허술한 공격에 당황하여 자신을 놓칠 리가 없었다.

“어서 날 버리고 본진으로 가라! 가서 살레오스 님께 전해라! 제국의 용이 나타났다고!”

오세의 외침에도 플라우로스는 그를 버리지 않았다.

이에 답답함을 느낀 오세가 몸을 비틀며 그의 손에서 벗어나려던 순간.

“시답잖은 신파극이군.”

발타자르가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비비안의 도움을 받은 그는 허공 위를 마치 평지처럼 걸어 다녔다.

“네놈들이 갈 곳은 죽음뿐이다.”

붉은 마나의 파편을 흩날리며.

발타자르가 두 마왕의 종말을 선고했다.

“죽어라.”

휘둘러지는 검.

붉은 오러 블레이드가 일격에 두 마왕을 베어 넘겼다.

* * *

막사 안.

서큐버스 둘을 옆구리에 끼고 진탕 술을 마시던 살레오스는 돌연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의 강렬한 마나의 파동을 느꼈다.

처음에는 전장에 투입된 마왕들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강렬해지는 기운에 그들로 인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이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서둘러 사태를 파악해야 했다.

“비켜라!”

“꺄악!”

살레오스가 품에 안고 있던 서큐버스들을 내팽개치며 허둥지둥 막사를 뛰쳐 나왔다.

동시에 마왕군의 진영 한복판에 고위 마법들이 연달아 발현되었다.

땅이 갈라지고, 폭풍이 몰아쳤다.

하늘에선 칼날처럼 예리한 소나기가 쏟아지며 마왕군의 몸을 사정없이 꿰뚫었다.

수십만에 달하는 마왕군이 빠른 속도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일순간 살레오스의 뇌리에 ‘패배’라는 단어가 스치고 지나갔다.

“대체 어떤 놈들이…….”

살레오스의 두 눈이 분노에 잠식당했다.

그의 몸이 불룩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대해졌다.

특히 압권은 신체에 두 배는 될법한 두 팔이었다.

팔 하나가 집채만 한 크기를 자랑했다.

그의 이명이 왜 괴완공怪腕公인지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흐읍-”

살레오스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안개 같은 모습의 마기가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하아압!”

기합과 함께 그가 깍지낀 손으로 지면을 내려쳤다.

콰아아앙-

충격파가 사방으로 마기를 밀어내었다.

퍼져 나간 마기가 마나로 이루어진 검은 먹구름과 소용돌이를 날려 버렸다.

고위 마법들을 일격에 소멸시킨 살레오스가 노호성을 터뜨렸다.

“자간! 바퓰라! 정신 차리지 못하겠느냐!”

아군 진영 한복판에 갑작스레 고위 마법들이 발현되어 혼란에 빠져 있던 마왕들이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그들은 살레오스가 직접 전선에 뛰어들까 두려워하며 휘하 마족들과 마물들을 다그쳐 둔다림 백작 성의 공략을 속행했다.

“저런 것들도 마왕이라고…….”

그 모습을 한심하게 지켜보던 살레오스가 둔다림 백작 성의 서쪽을 바라보았다.

숲에서 끝없이 제국군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제국군의 선두에 선 인물.

붉은 오러 블레이드를 휘두르는 기사를 발견했다.

“숲으로 보낸 두 녀석은 당했나 보군.”

하위 서열이라고는 하나 명색이 마왕인 놈들을 이 짧은 시간에 해치운 것을 보면 제국에서도 손에 꼽히는 강자가 분명했다.

그리고 제국의 강자 중에서도 적색의 오러 블레이드는…….

“발타자르. 놈이로군.”

살레오스가 두 주먹을 내리쳤다.

쿵-

땅이 진동하더니 그의 몸이 빠르게 치솟았다.

단숨에 수십 미터를 날아간 살레오스가 질주하는 발타자르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꽈아아앙-

발타자르가 검을 들어 올려 내리치는 살레오스의 주먹을 막아내자 거친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피어오르는 흙먼지.

그 속에서 살레오스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소리쳤다.

“제 발로 무덤으로 찾아왔구나. 발타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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