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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128화 (128/183)

공작이 회귀함 128화

예정된 시일에 맞추어 토벌군이 집결하기 시작했다.

제도 인근의 4개 관문 요새 중 서쪽의 관문 요새 킬패스에 집결한 병력은 도합 40만.

처음 예정했던 것보다 10만이 적은 숫자였다.

중앙에서 5만의 병력을 추가 지원해 주었음에도 예상치보다 적은 병력이 집결한 이유는 발타자르 측에서 서부의 이목을 끌기 위해 이번 토벌전에 참전하기로 한 병력을 반으로 나누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에 대해 몇몇 귀족들이 반발했지만 슈텔리앙 후작과 아르세우스 황태자가 충분히 일리 있는 작전이라 평가하며 발타자르의 손을 들어주고 가웨인이 마스터에 올랐다는 사실까지 알려지자 더 이상 반발하는 이는 없었다.

그렇게 토벌군이 모이고 진격일만을 기다리던 어느 날.

킬패스 관문 요새에 전령이 찾아왔다.

전령의 모습은 처참했다.

등 뒤에는 여러 발의 화살이 꽂혀 있었으며, 갑옷은 반파되었고 이마에서 흐르는 피가 얼굴을 붉게 적시고 있었다.

“보고…… 드립니다. 현재 마왕군이 일제히 진격을 시작, 인근 3개 영지가 함락되었고 현재 둔다림 백작령을 침공 중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전령은 제 소임을 다했다고 여겼는지 그대로 기절하며 말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치료소로 데려가게.”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한 발타자르가 전령을 데려가 치료할 것을 지시하자 가웨인이 다가와 물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둔다림 백작령이 함락된다면 다음은 킬패스 관문 요새였다.

그리고 만약 킬패스가 함락된다면 제도까지 진군하는 것에 아무런 장애물도 없었고 이는 초전을 제도 인근에서 치러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처음 계획보다 병력의 수는 적었지만, 토벌군에는 마스터 둘과 아크 메이지 셋이 포함되어 있었다.

거기에 다수의 마법사까지 동원되었으니, 중부 지방에서 날뛰는 마왕들이 얼마나 많은 대군을 이끌든지에 상관없이 초전은 토벌군의 압승으로 결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반드시 그럴 것이고 그래야만 했다.

“둔다림 백작령으로 진격한다.”

발타자르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진격을 결정했다.

이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지휘관은 아무도 없었다.

* * *

잘 정비된 대로를 따라 둔다림 백작령을 향해 진격하던 토벌군은 길의 반대편에서 피난길에 오른 백성들을 발견했다.

간신히 몸만 빠져나온 듯 넋이 나간 얼굴로 터벅터벅 걸어오는 그들의 얼굴에는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토벌군과 가까워지자 길의 양옆으로 비켜났는데 피난 행렬의 가장 끝에서 제 누이의 손을 꼭 쥐고 있던 소년이 돌연 뛰쳐나와 토벌군의 앞을 막아섰다.

얼굴에 때가 꼬질꼬질하고 옷이 허름한 것이 하층민의 자제가 분명한데 겁도 없이 군의 행렬을 막고 서 있으니 화가 나기보다는 호기심이 일었다.

“요 녀석! 썩 비키지 못하겠느냐!”

“꼬마야. 거기 있다간 크게 혼이 날 것이다. 그러니 어서 비키려무나.”

병사들이 소년에게 저마다 한마디씩을 하며 길을 비킬 것을 종용했지만 소년은 요지부동이었다. 이에 병사 중 하나가 소년에게 다가가 소년을 강제로 끌어내자 소년이 발버둥 치며 소리쳤다.

“잠시만요! 귀족 나리께 꼭 드릴 말씀이 있어요!”

“어허! 요놈이 겁도 없이!”

“제발요! 잠시만 아주 잠시면 돼요!”

소년이 병사와 실랑이를 벌이자 그것을 지켜보던 발타자르가 말을 몰아 소년에게로 다가갔다.

“그만 놓아주게.”

“예! 프락시온 제국에 영광을!”

발타자르가 다가오는 것을 발견한 순간부터 바짝 경직되어 있던 병사가 발타자르의 말에 큰 목소리로 답하고는 경례와 함께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래.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겁도 없이 군의 행렬을 막아선 것이냐?”

발타자르가 소년을 내려다보며 묻자 소년이 대뜸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나으리! 제발 저희 백작님을 구해주세요! 저희 가족이 당장 먹을 곡식이 없어 굶주릴 때 세금을 면해주시고, 살아갈 수 있도록 식량까지 내어주신 분이세요. 마왕군이 쳐들어왔을 때 성에서 군사들을 끌고 나오셔서 저희들이 도망칠 수 있도록 희생하신 분이세요. 그런 분이 저희 같은 아랫놈들 때문에 죽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간청하는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발타자르에게 가웨인이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둔다림 백작이 인근에선 보기 드물게 선정을 베푼다더니……. 이렇게나 어린 소년이 그가 살기를 바라는 것을 보면 소문이 사실이었나 봅니다.”

가웨인의 말에 발타자르가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열었다.

“고개를 들라.”

발타자르의 말에 소년이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보어. 보어라고 해요.”

“그래. 보어. 만약 내가 네 청을 들어준다면 넌 내게 무엇을 주겠느냐?”

발타자르의 짓궂은 물음에 보어가 당황했다.

“네? 그, 그게…….”

그러나 당황은 잠시였다.

“제가 커서 훌륭한 기사가 될게요! 그래서 나리를 지켜드릴게요!”

보어의 말에 발타자르가 피식- 웃었다.

“되었다. 이미 내 주변에는 훌륭한 기사들이 많으니 그럴 필요 없다.”

“그럼 제가 뭘 드리면 될까요?”

축 처진 보어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말했다.

“내가 아닌 이 제국을 지키려무나.”

발타자르의 말에 보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런 보어를 내버려 둔 채 발타자르가 가웨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웨인.”

“예, 장군.”

“기병 3만을 주겠네. 또한, 깃발을 모두 내어줄 테니 먼저 가서 마왕군이 둔다림 백작성을 함락하지 못하도록 견제하고 있게. 둔다림 백작성 인근에는 큰 숲이 있으니 그곳을 이용하면 충분히 가능할 걸세.”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기병 3만으로는 수십만의 마왕군을 견제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발타자르가 이런 지시를 내린 것은 그것이 가능하다 여겼기 때문이었고 가웨인은 발타자르가 내어준다는 깃발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인근 숲에 깃발들을 설치하여 아군이 도착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면 되겠습니까?”

자신의 의도를 정확히 알아차린 가웨인의 말에 발타자르가 웃어 보였다.

“거기에 더해 말꼬리에 잔가지들을 묶어 흙먼지를 크게 일으킨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알겠습니다. 최대한 시간을 끌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말과 동시에 가웨인이 기병 3만을 이끌고 진영을 이탈해 앞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발타자르가 보어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약속 꼭 지키거라.”

발타자르의 말에 보어가 힘차게 대답했다.

“네!”

* * *

크워어어어-

척후조의 임무를 맡아 수하들과 함께 아군의 진군 경로를 탐색하던 트리스탄은 문득 들려오는 괴성에 다이어 울프를 멈추어 세웠다.

크르르릉-

그녀가 들은 것이 헛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두 귀를 쫑긋 세운 다이어 울프가 서쪽을 바라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트리스탄이 다이어 울프의 등에서 내려와 땅에 귀를 대고 눈을 감았다.

조금씩 땅이 흔들리는 것을 느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나무가 무성히 자라난 숲 너머를 응시했다.

새들이 날아오르고 괴성은 더욱 커져만 갔다.

“뭔가 오는가 본데? 그것도 한둘이 아니야.”

“대장.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일단 물러나시죠.”

트리스탄의 오른팔 울프가가 말하자 왼팔 레이븐이 동조하며 나섰다.

“그래요, 대장. 일단 고지로 이동해서 뭐가 오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이 좋겠어요.”

두 사람의 제안에 트리스탄이 다이어 울프의 등에 올랐다.

그녀가 아무리 전투를 좋아한다고 해도 무모한 싸움을 할 정도는 아니었다.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다면 모를까 대군으로 추정되는 이상 섣부르게 일전을 치를 수는 없었다.

“일단 물러나자.”

결정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트리스탄과 그녀의 수하들이 일제히 고지를 향해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들이 물러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한 녹색의 물결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어림잡아 수만은 되어 보이는 대군이 한시도 쉬지 않고 전력을 다해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었다.

그 방향을 살펴보니 토벌군의 진격로와 동일했다.

“저게 오크로구나.”

발타자르에게 오크에 대해 미리 언질을 전해 받은 트리스탄은 저들의 정체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오크.

마계의 여러 종족 중 가장 큰 세력을 이루는 종족들로 흉포하고 사납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투쟁의 화신인 그들은 한번 전투가 시작되면 결코 물러서는 법이 없으며, 식량이 부족할 경우 제 동족들의 시체를 잡아먹어서라도 전투를 지속했다.

거기다 빠른 번식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인데 우스갯소리로 오크 한 쌍에게 충분한 먹이만 주어진다면 한 달 안에 수천 마리로 불어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과장된 점이 없잖아 있지만, 오크의 번식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러한 점들 때문에 오크는 마계의 통치자인 마왕들이 전쟁 시 가장 선호하는 종족이었고, 하여 군의 선봉을 꾸릴 때 항상 빠지지 않았다.

만약 오크 무리가 발견된다면 지체하지 말고 복귀하여 보고하라는 발타자르의 지시를 떠올린 트리스탄이 입맛을 다셨다.

“한번 붙어보고 싶은데…….”

호승심이 치밀어 올랐지만, 그것이 무리라는 것은 그 누구보다 그녀가 잘 알고 있었다.

“본대로 복귀한다.”

트리스탄이 지시를 내리는 순간.

대기가 비명을 질렀다.

동시에 강렬한 기운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것을 눈치챈 트리스탄이 재빠르게 활을 들어 올리며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목표를 포착하는 데 1초.

조준에 0.5초.

그녀가 날아오는 창을 향해 화살을 쏘아 보내는 것에 걸린 시간은 1.5초에 불과했다.

피이잉-

오러를 머금은 푸른 화살이 쏘아져 나갔다.

이윽고 화살은 날아오는 창의 창날과 맞부딪쳤다.

콰아아앙-

허공에서 거친 폭음과 함께 큰 폭발이 일어났다.

주변 일대에 충격파가 밀려왔다.

“하…… 곱게 가려고 했더니 이 새끼가……!”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히죽- 웃고 있는 오크를 발견한 트리스탄이 살벌한 눈빛으로 놈을 응시했다.

크와아아아!

놈의 괴성이 숲을 뒤흔들었다.

타오를 듯한 눈빛으로 트리스탄을 빤히 응시하는 것이 그녀를 도발하는 것이 분명했다.

“내가 또 싸움을 피하는 성격은 아닌데 말이야.”

트리스탄이 당장에라도 놈을 향해 달려들 기미를 보였다.

이 미친 대장이 눈이 돌아가기 전에 서둘러 말려야만 한다고 판단한 울프가가 재빠르게 그녀를 저지했다.

“대장. 잊었어요? 총대장께서 전투는 불허한다고 엄포하셨잖아요.”

발타자르가 거론되자 그제야 그녀의 눈동자에서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와…… 미치겠네.”

그녀가 머리를 거칠게 북북 긁어대었다.

성질 같아서는 바로 달려가 녀석의 목을 따버리고 싶은데 발타자르의 지시가 있었으니 그럴 수가 없었다.

“으으…….”

고개를 푹 숙이고 몸을 부르르 떨던 그녀가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곤 활시위를 잡아당기더니 세 발의 화살을 동시에 쏘아 보냈다.

피잉- 피잉- 피잉-

연달아 쏘아진 화살이 오크를 향해 날아갔다.

이에 오크가 날아오는 화살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한 방.

두 방.

차례로 날아오는 화살들을 쳐낸 오크가 마지막 화살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려던 순간이었다. 놈의 주먹과 맞부딪치기 직전 화살이 크게 휘더니 놈의 주먹을 피했다.

퍼억-

오크의 왼쪽 눈이 화살에 꿰뚫렸다.

크와아아악!

놈의 괴성이 울려 퍼졌다.

그것을 확인한 트리스탄이 비릿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새끼. 까불기는.”

검은 피를 흘려내는 오크를 만족스럽게 바라보던 트리스탄은 다이어 울프의 머리를 돌렸다.

“돌아가자!”

트리스탄이 수하들을 이끌고 본대로 복귀하기 위해 떠나갔고, 고통에 몸부림치던 오크가 그 광경을 목도하고는 분노에 가득 찬 오크의 괴성을 내질렀다.

크와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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