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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126화 (126/183)

공작이 회귀함 126화

“전원 만장일치로 토벌군 편성에 대한 의제를 가결하도록 하겠습니다.”

의장직을 맡은 슈텔리앙 후작의 선언에 제국의회에 참석한 귀족들은 저마다 복잡한 심경이 담긴 눈빛으로 후작을 바라보았다.

진작 했어야 할 일이었지만 막상 마왕들과의 전쟁이 시작된다고 생각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 일이 자신들에게 호재가 될지 악재가 될지 단언할 수 없기에 더욱 그랬다.

이번 토벌전은 북부의 영웅 알레한드로 발타자르 공작을 총사령관으로 두어 북부와 중부에서 도합 50만의 군세를 동원하는 데다, 이례적으로 4대 마탑의 마법사들과 3인의 아크 메이지까지 투입될 것이 확정된, 사실상 총력전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상대해야 하는 마왕들의 숫자가 적지 않기에 이 토벌전이 실패로 돌아갈 가능성도 분명 존재했다.

만에 하나 대패하는 불상사가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그 뒤는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그렇게 귀족들이 미처 내비치지 못한 불안감을 등에 업고 마왕 토벌전이 결의되었다.

* * *

제국의회의 공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발타자르 공작령 레오나스에 북부의 전력이 총집결하기 시작했다.

제국 최고의 아크 메이지 오스왈드 간다르바를 시작으로 마스터 에리스 할데, 야만왕 우트가르트 로키 등 그 면면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았다.

또한, 30만의 병력에 로열 랭크 급의 강자만 십수 명, 고위 기사급의 전력은 수백 명이었다. 집결된 전력으로만 따진다면 두 지방을 동시에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집결된 병력으로 레오나스가 인산인해를 이루는 동안 레오나스의 중심인 내성에서는 발타자르 휘하의 유력 인사들이 모여 총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지금 군을 셋으로 나누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발타자르 군의 군사 직을 맡은 글루스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중부에서 준동한 마왕들이 한 곳으로 집결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따라서 이쪽 역시 모든 힘을 집결하여 총력전을 벌여야 함이 당연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군을 둘도 아니고 무려 셋으로 나누겠다고 하니 그 의도가 궁금해졌다.

“어째서입니까?”

글루스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답했다.

“이번 토벌전은 중앙의 모든 전력을 집결시킨 총력전임에도 이곳저곳에서 불안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네. 무리도 아니지. 토벌해야 할 마왕들의 숫자가 한둘이 아니니까. 그렇기 때문에 초전은 무척이나 중요하네. 압도적인 전력으로 중부에서 준동하는 마왕들을 깨부순다면 토벌군에 대한 믿음을 올라갈 것이고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할 수 있을 테니 말일세.”

말하며 발타자르가 테이블 위에 펼쳐진 제국 전도의 서부에 위치한 검은 말들을 움직였다. 반은 남쪽으로 반은 북쪽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큰 변수인 서부의 마왕들이 개입하는 것을 방지해야만 하지. 마침 메디치 공작가가 서부로 진군하고 있으니 우리도 그에 발맞추어 서부에 군을 투입 시킨다면 자연스레 이목이 그쪽으로 몰리지 않겠는가.”

발타자르가 이동시킨 검은 말들을 지켜보던 글루스의 눈에 남부의 푸른 말과 노란 말이 각기 동부와 서부 인근에 놓여 있는 것이 들어왔다.

“셋 중 둘이 서부와 중부에 투입된다면 남은 하나는 남부겠군요.”

“바로 맞혔네. 지금 메디치 공작가는 서부를 칼 프란츠 대공가는 동부를 노리며 군을 움직이고 있네. 마왕 토벌전이 중요하다고 해도 이것 역시 방관할 수 없는 문제이지. 그러니 남부 방면에서 날뛰는 마왕들을 처리할 겸 군을 이동시켜 남부 세력을 압박할 필요성이 있네.”

마왕들과의 전쟁만이 아닌 향후 제국 권력 구도의 변화를 대비하기 위한 군사적 이동이었고 이는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의도대로만 흘러간다면 남부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견제하는 것과 동시에 마왕들의 토벌이 무리 없이 진행될 테니까.

하지만 이것에는 한 가지 전제 조건이 달렸다.

그것은 발타자르가 앞서 언급한 초전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메디치 공작가와 함께 서부 마왕들의 이목을 끌려면 최소 병력 10만은 동원되어야 할 테고 남부 방면 또한 10만 이상은 투입 시켜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30만으로 초전을 진행해야 한다는 뜻인데……. 현재 추정되는 마왕들의 군세는 도합 30만. 단순히 수치상으로만 놓고 보자면 동등한 규모이지만 마왕 군의 주력인 마물 하나가 병사 서넛을 상대하니 전력으로 따지자면 저희 측의 열세입니다. 따라서 이렇게 전력을 셋으로 나눈다면 각하의 생각과는 달리 압도적인 승리는커녕 승리할지조차 미지수입니다.”

발타자르는 아무 말 없이 글루스를 응시했다.

빛나고 있는 눈동자가 그에게 다른 계획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각하의 계획이 이상적이라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말인가?”

“대공 가에서 제안한 약혼을 수락하시지요. 대신 그 대가로 남부 방면의 마왕을 토벌해 줄 것을 요청하시는 겁니다. 제국 최고 권력자와 혈연으로 맺어질 절호의 기회이니 그들에게도 나쁘지 않은 제안일 겁니다. 물론 그렇게 된다고 해도 대공가의 동부 진출은 막을 수 없겠지만, 그쪽에서 본래 계획했던 규모보다는 축소할 수 있을 테고 남부 방면으로 투입 시킬 병력을 초전에 투입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실로 묘안이었다.

칼 프란츠 대공을 견제해야 한다는 인식이 깊게 뿌리박힌 발타자르는 생각하지 못한 방법이었다.

비록 칼 프란츠 대공과 인척이 되는 것은 꺼림칙한 일이었지만 약혼은 언제든지 깰 수 있는 것이었다. 따라서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좋네. 그 건은 자네에게 일임하도록 하겠네.”

말하며 발타자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글루스를 바라보았다. 역시 그를 영입한 것은 최상의 선택이었다.

만약 계획대로 일이 흘러간다면 동부는 바르바토스, 프리드리히, 칼 프란츠 이렇게 세 조각으로 나뉠 가능성이 컸다.

이 경우 바르바토스는 발타자르와 혈맹이나 마찬가지이고, 동부가 조각나게 된 원흉인 칼 프란츠 대공가를 극도로 적대하는 프리드리히 공작가의 경우 복수를 위해서라도 자연스레 중앙을 따를 것이었다.

큰 힘 들이지 않고 동부를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

“한데 바르바토스라는 마왕과 손을 잡았다는 것은 다른 마왕과도 협력관계가 될 수 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서부의 마왕 중에 밀약을 맺을 만한 존재를 찾아보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지금보다 더 좋은 방안이 나올지도 모르지 않겠습니까.”

글루스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고개를 내저으며 자신의 목에 새겨진 문신을 가리켰다.

“불가하네. 바르바토스가 내 요청을 아무 조건 없이 들어주는 이유는 내가 다른 마왕과 손을 잡지 않는다는 맹약이 있기 때문이라네. 한데 내가 이를 어긴다면 바르바토스는 든든한 우군에서 가장 위협적인 적으로 변할 것일세.”

“그렇다면 각하가 아닌 다른 이가 마왕과 협약을 맺는 것은 어떻습니까?”

“글쎄. 자네가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 않으나 그 생각은 접어두게. 어설프게 접근했다간 되려 먹히기에 십상이니.”

발타자르의 경고에도 글루스는 포기할 마음이 없는 듯했다. 발타자르를 설득하기 위해 재차 입을 열려는 순간 로키가 손을 들어 보였다.

“말하게.”

발타자르가 발언권을 허락하자 로키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보아하니 우리 바이칸이 서부 탈환전을 맡을 것 같은데 맞나?”

“그렇습니다. 혹시 원하시는 지원이 있으십니까?”

글루스의 물음에 로키가 에리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여자. 마스터라고 했던가? 저 여자와 마법사 영감을 지원해 주게.”

로키의 요청에 글루스가 고개를 내저으며 거절했다.

“그건 무리입니다. 병력이라면 추가로 지원해 드릴 테니…….”

“이봐. 시선을 끄는 것만이라지만 서부 마왕들의 숫자는 확인된 것만으로 스물이야. 메디치인지 뭔지 하는 곳에서 반을 맡아준다고 해도 우리가 나머지 반 정도는 맡아줘야 이목이 끌릴 텐데 지금 전력으로는 절대 무리야. 아니면 뭐야. 너, 우리 바이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셈이냐?”

로키가 살기를 내뿜으며 글루스를 노려보자 그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내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초전에 투입될 전력은 공작 각하를 포함한 마스터 둘과 아크 메이지 넷입니다. 그 전력으로 마왕 일곱을 상대해야 합니다. 여기서 마왕을 상대할 전력을 하나도 아니고 무려 둘이나 뺀다는 것은 무리입니다.”

자신이 내뿜는 기운에 짓눌리면서도 제 할 말은 다 하는 글루스의 모습에 로키가 피식- 웃으며 기운을 거두어들였다.

“그렇다는데. 발타자르. 정말 지원 안 해줄 거냐?”

“지원해 주지.”

발타자르의 허락이 떨어지자 글루스가 깜짝 놀라 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각하!”

“이봐, 군사. 너 발타자르가 얼마나 강한지는 알고 있어?”

“예? 그야…….”

글루스는 선뜻 답하지 못했다.

발타자르가 마스터라는 것은 알지만 그가 싸우는 것을 직접 본 적이 없기에 어느 정도로 강한지는 아직 몰랐다.

그저 막연히 발타자르의 그간 행보를 통해 마스터 둘까지는 동시에 상대할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할 뿐이었다.

“셋이야.”

당황해하는 글루스의 반응을 재밌다는 듯이 지켜보던 로키가 씨익 웃으며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였다.

그것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 눈치챈 글루스가 경악했다.

“각하께서 마스터 셋을 상대할 수 있으시단 말입니까?”

황당하기 그지없는 소리였다.

마스터 셋을 동시에 셋을 상대할 수 있는 마스터라니.

그런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마스터가 무엇이던가.

인간의 몸으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이자 제국의 모든 기사가 동경해 마지않는 지고의 경지가 아니던가.

아무리 발타자르가 강하다고 한들 마스터 셋을 상대할 수 있다는 말은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다.

그런데 더 황당한 것은 이 자리에 참석한 이들 중에 아무도 이것을 부정하는 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각하, 저 말이 사실입니까?”

글루스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묻자 발타자르가 피식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이렇게 하는 것으로 하고 회의는 이만 끝내기로 하세.”

“각하. 각하?”

* * *

발타자르의 부름에 연무장에 도착한 가웨인은 그에게서 검을 한 자루 건네받았다.

“장군? 왜 갑자기 검을…….”

말하며 검을 살펴본 가웨인은 깜짝 놀랐다.

“이, 이건!”

가웨인은 자신의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분명하다고 확신했다.

이 검은 7대 신검 중 하나인 찬란한 태양 가라틴Garatain이 분명했다.

너무 놀랐는지 가웨인이 손을 떨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던 발타자르가 말했다.

“앞으로 일주일일세.”

“예?”

“일주일 동안 자네는 나와 함께 벽을 넘어야 하네.”

발타자르의 말에 가웨인이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던가?

그렇게 마음대로 벽을 넘을 수 있었다면 이 제국에 마스터가 족히 수십은 넘지 않았겠는가.

“벽이란 것이 그리 원하는 대로 넘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가웨인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자 발타자르가 고개를 내저으며 단호히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믿음이 가득했다.

“자네라면 충분히 가능하네.”

“하지만 장군.”

“언젠가 넘어야 할 벽이었네. 그걸 조금 앞당길 뿐일세. 그리고 걱정하지 말게.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봐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니까.”

발타자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근처에 숨어 있던 로키와 에리스, 그리고 손채영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흐흐…… 재밌는 계획이야. 실전에 가까운 대련을 반복하여 강제로 마스터의 경지까지 끌어올린다니.”

“다치는 것은 걱정하지 마세요. 다치신다면 저기 채영 양이 치료해 주실 거예요.”

로키와 에리스가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가웨인이 도망칠 퇴로를 막아섰다.

손채영이 그 모습을 떨떠름하게 바라보더니 어색한 미소와 함께 두 주먹을 쥐어 보였다.

“파, 파이팅?”

가웨인은 발타자르의 결심이 얼마나 확고한 것인지 깨달았다.

무려 마스터 셋이 동원되는 일이었다.

이건 거부한다고 거부할 수 있는 제안이 아니었다.

“하아…… 죽어라 노력해야겠군요.”

가웨인이 체념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까?”

가웨인의 물음에 발타자르의 검에서 붉은 오러 블레이드가 치솟았다.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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