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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123화 (123/183)

공작이 회귀함 123화

대대적인 숙청이 벌어진 후 경무청이 신설되었다.

수뇌부부터 시작하여 말단직에 이르기까지 경무청에 배속된 인원의 과반수가 발타자르군 출신으로 채워졌다.

다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경무청장과 부청장의 자리는 공석이었는데 이에 대해 발타자르가 아무런 언질을 주지 않으니, 일각에서는 발타자르군 내부에서 경무청장의 자리를 원하는 이가 많아 발타자르가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는 소문이 떠돌기도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신설된 경무청이 최우선 과제로 실시한 일은 용사들의 집단인 클랜의 포섭이었다.

그들을 찾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실전을 통해 빠르게 강해지는 특성과 작게는 십 수명에서 많게는 수백에 달하는 인원을 보유한 클랜들이 몸담을 곳은 딱 한곳 뿐이었다.

용병 길드.

의뢰를 받아 전쟁에 참여하거나 도적 퇴치 등을 업으로 삼는 이들의 집단.

영지나 국가에 소속되지 않고 민간 신분으로 무구를 소지 할 수 있으며 통제나 간섭은 없다시피 한다.

오로지 능력주의로 돌아가는 용병 길드만큼 그들의 입맛에 들어맞는 곳은 없었다.

물론 눈치 빠른 몇몇 귀족들이 큰 이권을 보장하며 독자적인 행동을 하는 용사들이나 규모가 작은 클랜을 휘하에 두기도 하였지만 그런 경우는 아주 극소수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용사들은 실전을 통해 빠른 성장을 거듭했다. 따라서 귀족들의 아래로 들어간다는 것은 성장이 정체된다는 것을 뜻했고 이는 용사들 사이에서 도태되는 지름길이었다.

하여 집단으로 움직이든 개인으로 움직이든 대부분 용병 길드에 몸담아 빠르게 힘을 회복하는 것을 택했다.

그런 만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용병 길드에서 단시간에 급성장을 거듭한 이들을 추려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찾아낸 클랜들과 접촉하여 영입하기 시작하니 그 수가 물경 수천에 이르렀다.

* * *

“이것 참. 이쯤 되니 용사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네요.”

이번에 영입한 용사들의 명부를 살펴보던 가웨인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가웨인의 이런 반응은 이해할 만했다.

용사가 무엇이던가?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며 신의 계시를 받아 마왕을 멸절하기 위해 탄생하는 그야말로 인류의 희망이다.

한데 명부에 적힌 용사들의 수는 물경 수천.

가웨인의 말대로 용사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제일 강한 자가 고위 기사급이라…… 이 정도 수준이면 마왕은커녕 그 아래 마물이나 상대하는 것이 고작이겠네요.”

가웨인의 목소리에는 실망감이 가득했다.

용사의 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은 것은 둘째치고서라도 너무 약했다.

이번에 조사한 바로는 고위 기사급은 한 손에 꼽을 정도이고 대부분이 견습 기사에서 하급 기사 수준이었다.

물론 그 수가 수천에 달하니 결코 약한 전력은 아니었지만, 마왕을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전력인 것 또한 사실이었다.

이 정도 수준이라면 용사들이 하나로 뭉친다고 해도 하위 서열의 마왕을 상대하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 심정을 이해한다는 듯이 발타자르가 가웨인의 어깨를 두어 번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지금 당장이야 그렇겠지. 아직 그들이 성장할 무대가 마련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마왕들과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면 지금보다 한 단계 이상 발전할 걸세.”

발타자르의 말에 가웨인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도원경은 운이 좋은 경우이군요.”

도원경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여 최근 로열 랭크의 경지에 올랐다.

갤러해드와 트리스탄에게 죽기 직전까지 혹독하게 훈련을 받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무척이나 가파른 성장세였다.

덕분에 최근 발타자르군 내에서 마스터에 오를 것이 유력한 인물로 점쳐지기도 할 정도였다.

“그렇긴 하지. 우리 군에 소속되어 숱한 전장을 경험했으니 말일세. 만약 도원경이 저들과 같은 처지였다면…… 글쎄. 저들 중에서 특출나기는 했겠지만, 현재 수준은 고작해야 고위 기사 수준이었겠지.”

발타자르의 말에 가웨인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생각보다 경지가 낮아 실망하고 있었는데 충분한 실전을 경험하게 해 준다면 도원경과 같이 가파른 성장세를 보일 것이라 생각하니 단순히 강력한 전력을 손에 넣었다고 기뻐할 수만도 없는 일이었다.

“사방에서 탐내겠군요.”

필시 그들을 노리는 귀족들이 줄을 설 것은 안 봐도 뻔한 일이었다.

서로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용사를 손에 넣기 위해 안달이 나겠지.

얼마나 많은 용사를 보유하느냐에 따라 향후 권력 구도가 개편될 테니 말이다.

“그래서 경무청을 설립한 것이 아니겠는가.”

발타자르의 말에 가웨인이 작게 탄성을 토해내었다.

“아! 그렇군요. 그래서…….”

최근에 설립되었다고는 해도 마왕이 날뛰고 있는 상황에서 경무청이 괜히 용사들의 포섭을 우선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용사들이 눈에 띌 만한 일을 일으킨 것도 아니거니와 마왕들의 등장으로 그들에게 이목이 집중되어 아직은 용사들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시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국가 차원에서 대대적으로 움직여 용사들을 포섭하고 맹약으로 그들에게 목줄을 걸어버린다면 뒤늦게 용사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들을 포섭하려 한들 합류하는 용사는 아주 극소수일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중앙과 지방의 힘의 격차는 크게 벌어질 테고 강압적으로나마 절대적인 통치가 가능해질 것이 분명했다.

“혹시 칼 프란츠 대공께서도 이 사실을 알고 부청장의 자리를 원하신 것이 아닐까요?”

감탄하던 가웨인이 문득 떠오른 생각을 묻자 발타자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칼 프란츠 대공의 전언대로 그가 단순히 제국을 위해 경무청의 요직을 원하는 것은 아닐 것이었다.

그가 다른 마음을 품을 계기가 없었다고 한들 회귀 전 발타자르가 보아왔던 칼 프란츠 대공은 충신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치세의 능신, 난세의 간웅이라 했던가.’

어찌 되었든 야망이 큰 인물임은 확실했다.

그런 이에게 향후 권력의 핵심이 될 경무청의 요직을 내어 준다는 것은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고, 때문에 현재까지도 그것에 대해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자. 약속이 있어서 이만 일어나야 할 듯하니 일 얘기는 이쯤 하기로 하세.”

발타자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자 가웨인이 그 약속이라는 것이 누구와 한 것인지를 짐작하고는 물었다.

“그러고 보니 경무청장이 오기로 한 날이 오늘이었군요. 어떤 사람입니까?”

경무청장으로 뽑을 이에 대해 아무런 언질도 주지 않은 덕에 적잖이 궁금해하는 눈치였다.

“함께 가겠나?”

옷매무새를 다듬던 발타자르가 대답 대신 동행할 것을 권하자 가웨인이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 어서 가시죠.”

* * *

“오라버니. 어디 가세요?”

에르제와 함께 제 방으로 향하던 아이린이 때마침 가웨인과 함께 저택을 나서던 발타자르를 발견하곤 쪼르르 달려와 물었다.

발타자르가 그런 아이린을 번쩍 안아 들었다.

“또 수업을 빼먹고 정원에서 흙장난을 했구나.”

발타자르가 타박하며 아이린의 뺨에 묻은 흙먼지를 엄지로 슥- 닦아내었다. 그러자 아이린이 배시시 웃으며 그의 목을 와락 끌어안으며 애교를 부렸다.

“그게…… 놀다 보니 너무 재밌어서 그만……. 그래도 지금 수업받으러 가는 길이었어요! 그렇죠, 황녀님?”

아이린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에르제가 화들짝 놀라며 답했다.

“네? 아, 네. 아이린 영애 말대로 지금 막 수업을 받기 위해 가던 중이었어요.”

영악하게 황녀까지 끌어들이는 모습에 발타자르가 고개를 작게 내저었다.

“못 말리겠군.”

발타자르가 아이린의 반들반들한 이마에 딱밤을 때렸다.

따악- 하고 경쾌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단번에 아이린의 얼굴이 울상이 되며 조막만 한 손으로 제 이마를 감쌌다.

“아파요…….”

눈물까지 글썽이며 애절한 눈빛으로 발타자르를 바라보았지만, 발타자르는 표정을 풀지 않았다.

그러자 아이린이 당황한 얼굴로 가웨인을 향해 도와달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그는 슬쩍 아이린의 시선을 피하며 모른 체했다.

이에 아이린이 일순간 충격을 받은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발타자르가 작게 헛기침을 했다.

“흠흠.”

순간 화들짝 놀란 아이린이 힐끗- 발타자르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제 잘못을 시인했다.

“잘못했어요. 다음부터는 수업 시간에 늦지 않을게요.”

“또?”

발타자르의 물음에 아이린이 미간을 살포시 찌푸리며 자신이 또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생각나는 것이 없어 마냥 눈동자만 떼구르르 굴리는데 문득 자신을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는 에르제를 발견했다.

순간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제 잘못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지도 않을게요.”

정답이었는지 그제야 발타자르가 표정을 풀며 아이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거라.”

“네!”

다시 생기를 되찾은 아이린이 힘차게 대답하자 발타자르가 그녀를 내려놓고는 이번에는 에르제를 불렀다.

“황녀, 이리 오게.”

그의 부름에 에르제가 몸을 움찔거리더니 이내 무언가 결심한 얼굴로 다가왔다.

“궁에 입궁하려 하는데 함께 가겠나?”

발타자르의 물음에 순간 에르제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혼내지 않으세요?”

그녀의 물음에 발타자르의 얼굴에도 마찬가지로 당혹감이 떠올랐다.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인가 싶어 에르제 황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가웨인에게 빨갛게 달아오른 이마를 내보이며 엄살을 피우는 아이린을 부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전부터 묘하게 부럽다는 눈빛을 보내오는 것이 이상하다 싶었더니.’

에르제가 왜 이런 말을 한 것인지 깨달았다.

황궁에서 생활할 적에는 형제들에게 애정은커녕 괴롭힘만 받았던 그녀였다.

그런 만큼 자신과 아이린의 모습이 부럽게만 보였으리라.

“쯧.”

발타자르가 한번 혀를 차고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딱밤을 때려주었다.

그러자 맞아 놓고서도 뭐가 좋은지 에르제가 배시시 웃었다.

“수업을 빠지거나 시간에 늦는 일이 없도록 하게.”

발타자르의 가벼운 꾸짖음에도 에르제는 미소를 잃지 않은 채 힘차게 대답했다.

“그럴게요!”

그러고는 쪼르르 아이린에게 달려가니 아이린이 ‘아프시죠?’하고 물었다. 그러자 에르제가 ‘네! 아파요!’하고 활기찬 목소리로 답하는 것이 아닌가.

그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헛웃음만 새어 나왔다.

“그래서. 함께 궁에 가겠는가?”

발타자르가 재차 묻자 에르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갈게요. 가서 언니들에게 공작님과 이만큼 친해졌다고 자랑할 거예요. 분명 다들 배 아파하실 게 분명해요.”

그러자 아이린이 이때다 싶었는지 냉큼 끼어들며 말했다.

“오라버니, 저도요! 황녀님만 혼자 보내는 건 불안하니까 저도 갈래요! 황녀님. 제가 지켜드릴게요!”

“아이린 영애…….”

“황녀님!”

“아이린 영애!”

서로 손을 맞잡으며 의기투합하여 의지를 불태우는 두 소녀를 보고 있자니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얌전한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 보니 사고뭉치들이 따로 없었다.

발타자르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끄응- 하고 신음을 토해내자 이 광경을 지켜보던 가웨인이 낄낄거리며 배를 잡고 폭소했다.

* * *

그 시각.

황궁에 프리드리히 공작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며 큰 혼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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