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이 회귀함 118화
콰아앙─
벨레드와 발타자르가 격돌하자 거센 충격파가 주변 일대를 뒤흔들었다.
이에 브락서스가 재빠른 움직임으로 보호 마법을 펼치며 에리스와 그 일행들을 보호했다.
“이것 참. 대단하구먼.”
브락서스는 혀를 내둘렀다.
갑작스레 펼친 보호 마법이지만 명색이 마도의 정점이라 칭해지는 아크 메이지가 펼친 마법이었다. 그런데도 격돌의 여파를 막는 것만으로 보호 마법에 균열이 일어났다.
“마왕도 마왕이지만 공작 역시 괴물이로고.”
브락서스가 듣기로 발타자르는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의 눈으로 목격한 발타자르의 무위는 그보다 더 오래전에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이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아니.
마왕에게서 느껴지는 힘의 파동으로 감히 짐작하건대 그들을 아득히 상회 할지도 몰랐다.
콰아아앙─
재차 격돌하며 일격에 벨레드를 날려 버린 발타자르가 브락서스의 곁으로 착지했다.
힐끗- 아래를 훑어보자 죽은 듯 쓰러져 있는 에리스와 그 일행들이 눈에 들어왔다.
다행히도 다들 숨은 붙어 있었다.
“브락서스. 저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주게.”
“제 도움은 필요치 않으십니까?”
브락서스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그를 바라보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혼자로도 충분하네.”
그러곤 땅을 박차고 벨레드를 향해 달려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브락서스가 혀를 찼다.
마왕을 홀로 상대하겠다니.
실로 오만한 말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격돌을 지켜본 결과 그것이 정확한 판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눈 한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번의 공방이 오가는 저 둘의 싸움에 자신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
괜히 도와주겠다고 나서다가 방해가 되는 것보다는 발타자르가 이 싸움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그의 수하들을 피신시키는 것이 그를 돕는 일이었다.
“명색이 아크 메이지이건만 이건 숫제 짐짝 취급이로고.”
재차 발타자르와 벨레드의 싸움을 지켜보던 브락서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하얀 빛무리가 그를 비롯하여 에리스와 그 일행들을 감싸더니 이내 자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 * *
두두두─
수천 필의 말과 웨어울프가 땅을 뒤흔들며 트라큐러스 백작 성을 향해 질주했다. 그 뒤를 따라 수만에 달하는 대군이 성을 사방에서 압박하며 돌격했다.
“트리스탄!”
선두에서 군타낙스 기사단을 이끌며 달려나가던 갤러해드가 트리스탄을 불렀다.
“말 안 해도 알아요!”
이에 트리스탄이 제 휘하의 기수들을 이끌고 진영에서 이탈하며 군의 선두로 치고 나갔다. 단박에 성벽을 타고 오를 생각이었다.
그녀와 그녀의 기수들이 타고 있는 웨어울프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트리스탄과 그녀의 기수들이 선두로 치고 나오기 시작한 순간.
성벽 아래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땅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그 속에서 스켈레톤 무리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수가 물경 수천.
아니, 계속해서 솟아나는 놈들까지 포함한다면 족히 수만에 달하는 대군이었다.
난데없이 전방에 스켈레톤 군단이 모습을 드러내었지만, 트리스탄은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박차를 가하며 속도를 올렸다.
이윽고 스켈레톤 군단의 선두와 트리스탄의 기마대가 격돌했다.
꽈아앙─
격돌 한 번에 스켈레톤 군단의 전열이 와해되었다.
허름한 나무 방패와 녹슨 칼로 무장한 스켈레톤 따위는 감히 상대조차 되지 못했다.
성벽 위에선 어느샌가 모습을 드러낸 뱀피르들이 트리스탄의 기마대를 향해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스켈레톤이 맞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하긴, 맞는다고 한들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스켈레톤은 소모품일 뿐이니까.
피잉- 피잉-
질주하는 웨어울프의 등 위에서 트리스탄이 재빠르게 화살을 쏘아대었다.
폭우처럼 쏟아지는 화살 세례에도 그녀는 미동조차 하지 않고 기계적으로 사격을 반복하였다.
화살 한 발에 한 놈씩.
차근차근 뱀피르들을 쓰러뜨리다 보니 어느새 성벽 바로 앞까지 도달했다.
“낙오하는 놈은 내 손에 죽는다!”
외침과 동시에 트리스탄이 탄 웨어울프가 기민한 움직임으로 성벽을 발판 삼아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눈 한번 깜짝할 새에 성벽 위에 오른 트리스탄은 허리춤의 손도끼를 꺼내 드는 것과 동시에 웨어울프의 등 위에서 뛰어내리며 주변의 뱀피르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꽈아아앙─
그 순간.
성벽 아래에서 거친 폭음이 들려왔다.
막 뱀피르 한 놈의 머리통에 손도끼를 찍어버리던 트리스탄이 성벽 아래를 바라보자 그곳에는 단 한 번의 격돌로 성문을 박살 낸 군타낙스 기사단이 푸른 오러의 폭풍에 휘감긴 채 성내로 진입하고 있었다.
“너무 시시하잖아! 강한 놈! 강한 놈은 없냐!”
뱀피르들의 머리통 깨부수며 트리스탄이 포효했다.
그러나 선뜻 나서는 이는 없었다.
“없어?”
포효하던 트리스탄이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뱀피르들을 응시하며 말했다.
“없으면.”
트리스탄이 팔을 크게 뒤로 젖혔다.
휘리릭-
이내 한계까지 젖혀진 팔을 앞으로 내지름과 동시에 그녀의 손에서 손도끼가 맹렬히 회전하며 날아갔다.
“죽어야지.”
푸른 오러를 머금은 손도끼가 뱀피르들을 휩쓸었다.
순식간에 수십의 목이 달아났다.
트리스탄이 제 뺨에 묻은 검붉은 피를 엄지로 슥- 닦아내곤 씨익 웃었다.
“그래도 손맛은 보여주고 죽어라?”
그녀의 광기 어린 눈동자에 압도당한 뱀피르들이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런 뱀피르들을 향해 트리스탄이 달려들려는 순간.
쿠구구궁─
재차 폭음이 들려왔다.
또 군타낙스 기사단이 무언가를 때려 부쉈구나 하고 생각한 트리스탄이 폭음이 틀려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경악했다.
“뭐야…….”
소리가 들려온 곳.
그곳에는.
내성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 * *
“강하구나.”
확실히 마왕들을 여럿 살해할 만한 강함이었다.
힘을 모두 회복한 자신이 이리 고전할 정도이니 자신보다 아래 서열의 놈들은 상대조차 되지 않았으리라.
“인간을 초월한 그 강함에 경의를 표하는 뜻에서 한 가지 제안을 하마.”
벨레드가 발타자르를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조만간 나와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성대한 연회를 벌일 것인즉, 더 이상 인간들에게 희망은 없을 것이니라. 그러니 나약한 인간의 군주 따위는 내버리고 심연의 종주를 섬기거라. 그대 정도라면 종주께서도 흡족히 그대를 받아들이실 것이니라.”
벨레드의 제안에 발타자르가 대답 대신 검을 휘둘렀다.
빠르게 휘둘러지는 검을 박쥐 무리로 변하는 것으로 피해낸 벨레드가 이내 천장 위에 거꾸로 매달린 채 발타자르를 내려다보았다.
“그대에게도 나쁘지 않은 제안일 것이다. 종주께서는 그대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실 것인즉. 힘을 원한다면 힘을 줄 것이요. 부를 원한다면 끝없이 샘솟는 부를 줄 것이니라.”
벨레드가 재차 권유하자 발타자르가 검을 내렸다.
그 모습에 발타자르가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이라 여긴 벨레드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무엇이든 이루어 준다고 그랬는가?”
“그래. 말해 보거라. 네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을 이루어 주실 테니.”
말하며 벨레드가 땅으로 내려왔다.
그러곤 환영한다는 듯이 발타자르를 향해 두 팔을 벌렸다.
발타자르가 벨레드를 향해 걸어가며 말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순간.
발타자르의 검이 벨레드의 심장을 찔렀다.
“마신의 목이다.”
벨레드가 제 심장을 꿰뚫은 검을 내려다보았다.
푸들푸들 그의 볼이 경련하듯 떨리기 시작했다.
“감히! 인간 따위가!”
벨레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의 몸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더니 집채만 한 덩치의 괴물로 변했다.
박쥐의 얼굴에 인간의 몸을 한 이형의 괴물이었다.
이에 발타자르가 벨레드의 심장에서 검을 뽑아내곤 그와 거리를 벌렸다.
“발타자르여! 실로 오만하구나! 어찌 필멸자 따위가 심연의 종주에게 망발을 일삼는 것이냐!”
벨레드가 발타자르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콰앙─
발타자르가 이를 가볍게 피해내자 벨레드의 주먹과 바닥이 충돌했다.
그러자 바닥에 큰 균열이 일어나더니 얼마 남지 않은 바닥이 모조리 무너져 내렸다.
발타자르가 추락하는 파편들을 밟아가며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간 끝에 도착한 곳은 피로 가득 찬 공동이었다.
탁-
파편 위에 착지한 발타자르가 위를 올려다보았다.
벨레드가 날갯짓하며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한 줌의 핏물로 만들어주마!”
벨레드가 양옆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그러자 바닥을 흠뻑 적시고 있던 붉은 피가 소용돌이치며 솟구치기 시작했다.
콰과가가각─
피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며 발타자르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기세로 달려들었다.
“비비안.”
이에 발타자르가 비비안을 소환했다.
물방울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그녀가 당황하는 기색 없이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피의 소용돌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발타자르가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회전하는 오러 블레이드.
오러의 폭풍을 일으키며 발타자르의 검이 벨레드의 심장을 향해 쏘아지듯 나아갔다.
“발타자르! 네놈은 결코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할 것이다!”
마기를 휘감은 벨레드의 두 주먹이 발타자르의 검을 향해 내질러졌다.
이윽고 검과 주먹이 충돌하고.
그 여파로 주변 일대가 휩쓸리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건물의 잔해들이 추락하는 가운데 벨레드의 주먹이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악!”
벨레드가 괴성을 내지르며 온 힘을 쏟아부었다.
그러나 끝내 발타자르의 검을 막지는 못했다.
벨레드의 주먹이 오러의 폭풍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찢어발겨지고 그의 심장이 재차 관통당했다.
퍼엉-
심장이 꿰뚫린 벨레드의 등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동시에 벨레드와 발타자르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쿠우웅-
벨레드가 지면과 맞부딪혔다.
동시에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검붉은 피가 발타자르의 얼굴을 적셨다.
발타자르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며 피를 닦아내었다.
“후우…….”
그의 입에서 억눌린 한숨이 새어 나왔다.
벨레드의 심장을 짓밟고 있던 발타자르가 그를 내려다보았다.
힘을 모두 회복한 탓에 상당히 접전이 길어지기는 했지만 그것뿐이었다.
비비안과의 계약 이후로 한층 더 강해진 발타자르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이만 죽어라.”
발타자르가 벨레드의 심장에서 검을 뽑아내려는 순간 벨레드가 하늘을 향해 무언가를 쏘아 보냈다.
빠르게 치솟은 그것은 이내 붉은 해골의 모양으로 변하며 하늘을 뒤덮었다.
무언가 신호를 보낸 것이 분명했다.
“네놈의 수하들을 부른 것이라면 포기하거라. 지금쯤 네놈보다 먼저 심연으로 돌아가 있을 테니.”
발타자르의 말에 벨레드가 웃기 시작했다.
“발타자르. 그대가 이겼다고 생각하는가? 틀렸다. 이제 네놈이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이 밀려올 것이니라.”
그의 웃음소리가 동공을 뒤흔들었다.
“곧 심연의 종주께서 이 땅에 도래하실 것인즉. 마의 군주들이 죽음의 불꽃으로 이 땅을 뒤덮으리라!”
곧 웃음을 그친 벨레드가 실성한 듯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경탄하라! 찬양하라! 두려워…… 컥…….”
그의 심장에 검이 틀어박혔다.
“패배한 개가 말이 많군.”
발타자르가 경멸 어린 눈동자로 벨레드를 내려다보았다.
“감히…….”
이에 벨레드가 무어라 소리치려는 순간.
발타자르가 손목을 뒤틀었다.
검이 회전하며 벨레드의 심장을 헤집었다.
벨레드의 몸이 간헐적으로 발작하듯 꿈틀거렸다.
“네놈이 그토록 경배하는 마신도 곧 뒤따라 보내줄 테니 먼저 가거라.”
검을 뽑아 든 발타자르가 재차 검을 휘둘렀다.
일격에 벨레드의 몸이 반으로 갈라졌다.
* * *
“비켜라! 급보다!”
긴급을 알리는 적색 기를 흩날리며 수많은 전령이 줄지어 제도의 성문을 통과했다.
동부, 서부, 남부, 중부.
북부를 제외한 제국 전역에 혼란이 찾아왔다.
마왕들이 발호하고 수많은 영지가 무너져 내렸다.
이 땅에.
난세가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