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이 회귀함 117화
본래 발타자르는 드라큐러스 백작령에 관한 일은 수하들에게 일임하려고 했었다.
마스터와 아크메이지까지 투입 시킨 임무였으니 벨레드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에야 이 전력만으로도 충분히 상황 정리가 가능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를 찾아온 한 용사로 인해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공작 각하를 뵙습니다. 클랜 ‘고구려’를 이끌고 있는 김유선이라 합니다.”
발타자르는 눈앞에서 인사를 건네고 있는 사내, 김유선을 바라보았다.
기억에 있는 사내였다.
용사들의 집단인 클랜.
그중에서도 용사들 세계의 말로 ‘컨셉’이라는 것에 충실한 중기병 ‘개마무사’로 유명한 클랜이었다.
개마무사를 앞세워 마왕 군의 전열을 일거에 무너뜨리는 압도적인 돌파력은 강력한 무력부대가 즐비한 연합군 내에서도 단연 손꼽힐 정도였다.
슬슬 용사들이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고구려 클랜의 움직임은 발타자르의 생각보다도 한 발 더 빨랐다.
“그래. 날 찾아온 연유가 무엇인가?”
발타자르의 물음에 김유선이 입을 열었다.
“예. 제가 공작 각하를 찾아뵌 이유는 평소 흠모하던…….”
김유선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딱딱했다.
그리고 어색했다.
마치 누군가 준비해 준 글을 읽는 것처럼 말이다.
“본론만 간략히.”
이에 발타자르가 손을 들어 김유선의 말을 끊어내며 말하자 김유선이 당황한 모습으로 발타자르의 눈치를 살폈다.
갤러해드와 비견될 정도로 큰 몸집에 턱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의 사내가 저런 모습을 보이니 제법 우스꽝스러웠지만, 발타자르는 내색하지 않고 그를 빤히 응시할 뿐이었다.
“아. 그게, 그…….”
떠듬떠듬 말을 망설이던 김유선은 이내 제 뒤통수를 거칠게 긁어대더니 곧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또 잔소리 듣겠는데.’
속으로 중얼거리던 김유선이 눈을 질끈 감더니 ‘에라 모르겠다!’라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공작 각하의 산하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왜 내게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인가?”
거절하거나 승낙 혹은 무엇을 줄 수 있는지 물어볼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요청에 대한 진의를 물어보자 김유선은 답을 망설였다.
“네? 그것이…….”
사실 고구려 클랜에서는 발타자르에게 찾아올 생각이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그동안 발타자르의 행보를 살펴볼 때 그는 용사들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것으로 추정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발타자르는 용사를 휘하에 두는 것보다는 보이는 족족 제거해 버렸으니까.
물론 도원경이라는 예외가 존재하지만 그는 말 그대로 예외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고구려 클랜에서 이렇게 발타자르를 찾아와 후원자가 되어줄 것을 요청하는 이유는 발타자르의 주도 아래 조만간 경무청이 설립되어 제국의 영토에서 활동하는 용사들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질 것이란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이것을 두고 클랜 내부에서도 말이 많았다.
비록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용사들은 이 땅의 주민들을 도와주기 위해 온 것이지 그들의 입맛대로 부려 먹히기 위해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이것에 반발한다고 해도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이것은 거대한 흐름이었다.
제아무리 용사들이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상대는 대륙의 패자인 프락시온 제국이었다. 제국의 뜻에 반발했다간 제국을 적으로 돌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기에 고구려 클랜의 수뇌부들은 어차피 벌어질 일이니 한발 먼저 움직여 대비하기로 결정했고 그 결과가 발타자르를 산하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어차피 통제받을 것이라면 경무청보다는 발타자르에게 통제받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김유선은 무어라 답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냥 사실대로 말할까?
아니면 임기응변으로 말을 지어내 볼까?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래. 내가 언제부터 잔머리를 굴렸다고.’
한참을 고민하던 김유선은 그냥 사실 그대로를 말하기로 결정했다.
“사실 이번에 경무청이 설립된다는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김유선의 말에 발타자르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경무청의 설립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그래도 나름 극비리에 진행되던 일이었다.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은 이들이 나름의 정보망을 구축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저희 측에서는 어차피 통제받을 것이라면 공작 각하에게 통제받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물론 아무런 대가 없이 각하의 산하로 들어가기를 원하는 것은 아닙니다.”
고구려 클랜 측에서는 발타자르의 산하로 들어가기 위해 무엇을 주어야 할지를 두고 고민했다.
그들의 정보에 따르면 발타자르는 권력이나 재물에 큰 욕심이 없는 인물이었다. 거기다 재물이나 인재는 발타자르의 휘하에 차고 넘쳤다.
이미 차고 넘치는 것을 제시해 봐야 발타자르의 흥미를 끌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 수뇌부들은 차라리 정보를 주기로 결정했다.
그의 지난 행보들을 돌이켜보면 마왕을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여기는 듯했으니 마왕에 대한 정보를 준다면 무척 반길 것이란 판단이었다.
“저희가 생각한 그 대가는 저희가 가지고 있는 마왕에 대한 정보입니다.”
김유선의 말에 발타자르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마왕에 대한 정보라. 말해보게. 어떤 정보냐에 따라 자네들 고구려 클랜을 받아들일지를 결정하겠네.”
고구려 클랜 수뇌부들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발타자르가 관심 있는 눈치를 내비쳤다. 이에 김유선이 속으로 반색하며 말했다.
“예. 현재 드라큐러스 백작령으로 군을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최대한 빨리 사람을 보내 군을 물리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저희도 제법 많은 동료를 잃으며 얻은 정보입니다만, 고위 서열의 마왕이 드라큐러스 백작성의 지하에 몸을 숨긴 채 힘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발타자르도 짐작하고 있던 내용이었다.
“알고 있네.”
발타자르의 말에 김유선이 당황했다.
고구려 클랜이 적잖은 피해를 감수하며 얻은 정보였는데 이미 알고 있다고 하니 허탈하기 그지없었다. 이대로라면 일이 틀어질 것이라 걱정한 김유선이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그, 그렇다면 혹시 그 마왕이 최근 주변의 마왕들의 힘을 흡수하여 제힘을 모두 회복했다는 것도 알고 계십니까?”
그 말에 발타자르의 미간이 와락 찌푸려졌다.
마왕들은 고위 서열일수록 지닌바 힘이 강대하기에 그만큼 힘을 회복하는 데 하위 서열의 마왕들보다 긴 시간을 필요로 했다.
따라서 벨레드급의 고위 서열이라면 아직 제힘을 온전히 회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인데 김유선의 말이 사실이라면 지금 드라큐러스 백작령에서 임무를 수행 중일 수하들이 위험했다.
발타자르는 자신이 너무 안일하게 일을 대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넨 그 정보가 사실이기를 기도해야 할 걸세.”
자리에서 일어난 발타자르가 김유선의 앞으로 다가왔다.
“그 정보가 사실이라면 크게 상을 내릴 것이나.”
발타자르가 김유선의 멱살을 잡고 잡아당겼다.
두 사내의 얼굴이 맞닿을 듯 가까워졌다.
타오를 듯 강렬한 눈빛으로 김유선의 눈동자를 응시하던 발타자르가 말했다.
“잘못된 정보라면 각오하는 것이 좋을 걸세.”
발타자르가 김유선의 멱살을 놓아두었다.
그러곤 ‘남은 이야기는 돌아와서 하지.’하고 말을 덧붙인 후 서둘러 집무실을 벗어났다.
풀썩-
발타자르가 집무실을 빠져나가자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김유선이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와…… 마스터라더니 장난이 아닌데.”
마스터가 뿜어내는 기세를 정면에서 받아내야 했던 김유선이 떨리는 눈동자로 열린 집무실 문을 바라보았다.
* * *
“탑주님! 큰일 났어요!”
자신의 실험실에서 마법 실험을 하고 있던 대지의 마탑주 브락서스 아브라함은 자신의 실험실에 난입해 호들갑을 떠는 부탑주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실험실에 있을 때는 집중하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아무도 찾아오지 못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자네가 찾아와 방해를 하는구먼.”
“지금 실험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대체 뭐가 그리 큰일이기에 이리 호들갑을 떠는고?”
“바, 발타자르! 발타자르 공작 각하께서 찾아오셨어요!”
부탑주의 말에 브락서스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발타자르 공작이 찾아왔다고? 대체 왜?
마탑을 자신들의 수족으로 부리기 위해 사사건건 간섭하던 전 대신들과 달리 발타자르는 제도의 실권을 장악하고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어떠한 간섭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름 좋게 보고 있던 이였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런 언질도 없이 갑작스럽게 발타자르가 방문했다고 하니 그 저의가 의심스러웠다.
“무슨 이유로 왔다던고?”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오시자마자 탑주님을 찾으시기에 너무 당황해서 바로 달려온 거라서요.”
“으이구. 쯧쯧. 명색이 부탑주란 녀석이 이리 엉덩이가 가벼워서야.”
브락서스가 혀를 차며 부탑주를 타박했다.
“저 혼내시는 건 나중에 하시고 얼른 가시죠. 괜히 공작 각하의 눈 밖에 났다가는 곤란해진단 말이에요!”
부탑주의 호들갑에 브락서스가 지팡이로 그의 머리를 가볍게 때렸다.
“악! 탑주님!”
“서두르지 말거라. 내 누차 가르치지 않았더냐.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라고. 발타자르 공작이 무슨 의도로 방문한 것인지는 알고 가야지 않겠느냐?”
발타자르가 그냥 대지의 마탑을 찾아오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무언가 목적이 있을 것이고 그 목적이 무엇이냐에 따라 대지의 마탑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니 이런 브락서스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제 와 마탑에 대한 간섭을 시작하려는 건가?’
하긴 그동안 아무런 조치도 없이 내버려 둔 것이 이상하기는 했다. 권력자라는 것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마법사들의 강력한 힘을 원하여 마탑을 손에 쥐고 흔들기를 원했으니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상대는 차기 황제로 확실시되는 황태자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인물인 데다 동시에 제국 최고 권력자였다.
괜히 눈 밖에 났다가는 브락서스는 물론 대지의 마탑 전체가 큰 변고를 치를지도 모를 일이었으나 그렇다고 발타자르에게 고개 숙이고 그의 뜻대로 휘둘릴 수는 없었다.
‘어찌한다…….’
브락서스의 생각은 깊어져만 갔다.
이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부탑주는 ‘이럴 시간이 없는데’하고 중얼거리며 안절부절못하더니 이내 강수를 두기로 결정했다.
“꾸중은 나중에 들을게요!”
덥썩-
브락서스의 팔을 붙잡은 부탑주가 전이 마법을 펼치자 푸른 빛이 두 사람을 감쌌다.
* * *
발타자르는 브락서스의 방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실 레티시아가 있었다면 이렇게 황태자와 귀족의회의 승인을 받고 대지의 마탑으로 찾아오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칠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 그녀는 드라큐러스 백작령으로 향한 상황이었다.
말을 타고 가는 것은 늦고 백작령과 연결된 게이트는 현재 막혀 버린 지금. 번거롭기는 해도 이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파아앗─
잠시 후, 방 한편에서 환한 빛무리와 마나의 파동이 일어나더니 이내 부탑주와 브락서스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공작 각하를 뵙습니다.”
브락서스가 발타자르에게 인사했다.
이에 발타자르가 곧장 자신이 대지의 마탑을 방문한 목적을 밝혔다.
“전이 마법이 필요하네.”
자신의 걱정과는 달리 고작 전이 마법 때문에 자신을 찾아온 것이라는 발타자르의 말에 브락서스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갑작스레 브락서스가 웃기 시작하자 발타자르가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 어디까지 가시려고 예까지 찾아오신 것입니까?”
브락서스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말했다.
“드라큐러스 백작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