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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116화 (116/183)

공작이 회귀함 116화

“고작 이딴 것으로 날 물리칠 수 있다고 자만하는 것은 아니겠지?”

드라큐러스 백작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자신의 심장을 꿰뚫은 지팡이를 뽑아내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뭣?”

아무리 힘을 써도 지팡이는 뽑히지 않았다.

도리어.

피부가 뚫린 부위를 시작으로 서서히 잿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느껴지는 박탈감.

“이게 무슨…….”

갑작스레 다리에 힘이 풀린 드라큐러스 백작이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기습에 당해 심장을 꿰뚫린 것은 그렇다고 쳐도 지팡이가 뽑히지 않는 것이나 갑작스레 자신의 힘이 사라져가는 상황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체 이것이 무엇이냐!”

드라큐러스 백작이 소리쳤다.

하지만 목소리에 힘이 없었다.

그의 몸을 좀먹는 알 수 없는 기운이 어느새 그의 목까지 치달은 탓이었다.

“아! 제법 괜찮은 물건이죠?”

드라큐러스 백작을 관찰하듯 물끄러미 바라보던 에리스가 그의 의문을 풀어주었다.

“신물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나름 유서 깊은 성유물이랍니다. 아시죠? 성유물이 마족의 천적인 것은.”

성유물聖遺物.

강력한 신성력을 품은 물건을 지칭하는 말로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마기를 물리치고 상처를 치유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마왕급의 존재에게는 작은 상처 하나 내기도 힘들지만, 그 아랫급의 마족에게는 천적과도 같은 힘을 자랑했다.

그런 물건에 심장이 꿰뚫렸으니 드라큐러스 백작이 살아날 길은 없었다.

“다음 생에는 부디 선한 이로 태어나기를.”

에리스가 두 손을 맞잡으며 기도했다.

그에게 완전히 농락당한 드라큐러스 백작이 분노로 일렁이는 눈동자로 에리스를 노려보며 말했다.

“나 하나 쓰러뜨렸다고 기뻐하지 마라! 네놈들은 결코 살아서 이 성을 빠져나가지 못할 테니!”

그의 외침과 동시에 사방에서 뱀피르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족히 수백은 되어 보이는 뱀피르들이 순식간에 에리스와 그의 일행들을 포위했다.

뱀피르 뿐만이 아니었다.

장식처럼 보였던 석고상들이 균열을 일으키더니 그 안에서 가고일들이 거센 포효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었다.

크와아아악─

준비시켜 둔 부하들이 모두 모습을 드러내자 드라큐러스 백작이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어 소리쳤다.

“죽여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가고일들과 뱀피르들이 일제히 에리스 일행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으으…… 지루해.”

드라큐러스 백작 성 인근에서 매복 중이던 트리스탄이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몸을 이리저리 꿈틀거렸다.

“갤러해드 아저씨. 지금까지 아무런 신호도 없는 걸 보면 아무 문제 없는 거겠죠?”

제발 무슨 문제가 있어 달라는 듯한 표정으로 그런 말을 하니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렇다고 입을 꾹 닫고 있으면 옆에서 귀찮게 칭얼댈 것이 뻔했기에 갤러해드는 일단 답해주기로 했다.

“글쎄. 그건 모르는 일이지. 주군께서 단순히 의심된다고 우리를 보내신 것은 아닐 테니까.”

갤러해드의 말에 트리스탄이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왜 그렇게 보는 거지?”

“그냥. 아저씨도 가만히 보면 아그라베인이랑 비슷할 때가 있어서요.”

트리스탄의 말에 갤러해드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트리스탄을 바라보았다.

그 표정이 마치 ‘그 광신도랑 내가?’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렇다고 무어라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트리스탄의 칭얼거림을 받아줘야 할 테니 말이다.

갤러해드가 팔짱을 끼고 입을 꾹 다물자 트리스탄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드라큐러스 백작 성을 응시했다.

“지루하다. 지루해.”

트리스탄이 재차 투덜거리며 주변 순찰이라도 돌아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조용히.”

갤러해드의 기색이 돌변했다.

이에 심상찮음을 느낀 트리스탄 역시 입을 다물고는 수하들에게 손짓하며 움직일 준비를 하도록 지시했다.

한동안 말없이 백작 성을 응시하던 갤러해드의 눈빛이 돌변했다.

“주군께 연락하도록. 드라큐러스 백작의 목을 가지고 돌아가겠노라고.”

트리스탄의 입꼬리가 귀에 걸리기 시작한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들었지? 얘들아! 전쟁이다!”

트리스탄의 환호성과 함께 발타자르군 3만이 일제히 드라큐러스 백작 성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 * *

크와아악!

뱀피르들이 날카로운 이빨을 번뜩이며 달려들었다.

그 기세가 제법 매서웠지만 큰 위협은 되지 못했다.

하급 뱀파이어인 드라큐러스 백작이 만든 놈들이기에 수만 많았지 그 힘은 하잘것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위협적인 것은 가고일 들이었다.

거대한 덩치에서 나오는 강력한 힘과 돌처럼 단단한 피부로 인해 상대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에리스! 언제까지 멍하니 있을 거예요!”

전투를 벌이고 있는 크루세이더들에게 축복과 보호 마법을 걸어주던 손채영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전투가 시작된 이후로 에리스는 바닥을 빤히 응시하기만 할 뿐 전투에 참여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 끝이라는 듯 에리스가 고개를 들더니 손채영에게 사과했다.

“미안해요. 잠시 신경 쓰이는 것이 있어서요.”

“사과할 시간에 어서 이 돌덩어리들 좀 처리해 봐요!”

손채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고일 하나가 에리스를 향해 거대한 앞발을 휘둘러 왔다.

손채영이 그 광경을 목격했지만, 위험하다 경고해 주지는 않았다.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책망하는 눈빛으로 에리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이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제아무리 가고일이 단단하다고 해도 마스터와 정면 대결을 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같았으니 말이다.

쿠웅─

일순간 에리스와 가고일의 앞발이 맞부딪쳤다.

순식간에 가고일의 몸에 균열이 일어나더니 이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아휴. 생각보다 저릿하네요.”

에리스가 손을 툭툭 휘두르며 혀를 내둘렀다.

오러를 휘감았음에도 손이 저릿한 것이 확실히 성녀의 축복을 받은 크루세이더들이 고전할 만했다.

“계속 맨손으로 상대하는 건…….”

에리스가 슬쩍 가고일의 숫자를 세어 보았다.

방금 쓰러뜨린 녀석을 제외한다면 남은 녀석은 이제 아홉 마리.

저 정도 숫자라면 충분히 맨손으로도 쓰러뜨릴 수 있었지만 그래도 편한 길을 놔두고 굳이 돌아갈 필요는 없었다.

“잠시만 버티고 계세요!”

외침과 동시에 에리스가 재빠르게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그런 그녀를 향해 가고일 한 마리가 앞발을 휘둘렀지만, 에리스는 기민한 동작으로 공격을 피해내고는 허공에서 몇 바퀴 몸을 구른 후 지면에 착지했다.

“다시 받아갈게요.”

그녀가 착지한 곳은 드라큐러스 백작의 시신 앞이었다.

에리스는 백작의 심장에 박힌 지팡이를 뽑아내고는 다시 땅을 박차고 가고일들을 향해 쏘아지듯 달려나갔다.

콰앙-

가볍게 휘두른 지팡이에 적중당한 가고일 두 마리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자 단박에 가고일들의 시선이 에리스에게로 집중되었다.

크와아악!

가고일 네 마리가 사방에서 앞발을 휘둘러 왔다. 단박에 에리스의 머리 위가 가고일들의 앞발로 뒤덮였다.

쿠우웅─

이윽고 가고일들의 앞발이 에리스를 가격했다.

그 순간 층층이 겹친 앞발들 사이로 새하얀 빛무리가 뿜어져 나왔다.

동시에 가고일들의 앞발에서 균열이 일어나더니 가고일 네 마리의 몸이 일제히 무너져 내렸다.

“이제 남은 건 셋.”

말이 끝남과 동시에 에리스가 지팡이를 내던졌다.

콰앙- 콰앙-

단 한 번의 막힘도 없이 올곧게 나아간 지팡이는 가고일 두 마리의 머리통을 깨부수더니 이내 벽면에 깊숙이 박혀 들었다.

“이제 하나.”

지팡이를 내던진 탓에 이제는 맨손으로 가고일을 상대하게 되었지만, 상관없었다. 놈이 아무리 발악해 봐야 그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을 테니까.

크와아아악!

마지막 남은 녀석이 괴성과 함께 앞발을 찔러왔지만,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것으로 피해냈다.

동시에 바닥에 처박힌 놈의 팔을 타고 순식간에 머리 앞까지 도달했다.

“잘 가렴.”

에리스가 발로 놈의 머리를 후려 찼다.

퍼어엉─

순식간에 가고일의 머리통이 박살 나더니 몸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가고일 마저 쓰러지자 뱀피르들이 정리되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 * *

“휴…… 이제 끝난 거겠죠?”

쓰러진 적들을 바라보며 손채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재차 바닥을 응시하던 에리스가 손채영의 말을 부정했다.

“아뇨.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서둘러 도망쳐야 해요.”

에리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강렬한 마기가 요동쳤다.

일순간 에리스를 비롯한 일행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정도 기운을 뿜어내는 상대가 누구인지 쉬이 짐작되었기 때문이었다.

“도망치기에는 이미 늦은 것 같네요.”

에리스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모두 기도합시다.”

그가 두 손을 맞잡으며 기도하기 시작하자 남은 일행들도 그와 마찬가지로 기도를 시작했다.

“세상의 모든 위안은 당신의 발아래 놓여 있습니다.”

점점 마기가 강렬해지고 이에 대응하듯 에리스 일행에게서 신성력이 뿜어져 나왔다.

“당신의 어진 보호 아래 신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마기와 신성력이 힘 대결을 시작하자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지면이 무너져 내렸다.

“슈미트라 신을 찬양하고 기억하는 모든 이는.”

나락의 구덩이처럼 어둠만이 가득한 그곳에서 마기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쳤다.

이에 손채영이 신성력을 아낌없이 끌어올리며 몰아치는 마기의 폭풍으로부터 에리스와 일행들을 보호했다.

“모든 고통과 잘못된 운명으로부터 자유로워지리라.”

이윽고 기도가 끝남과 동시에 휘몰아치던 마기가 폭발하듯 사방으로 퍼져 나가며 주변을 휩쓸었고 이내 검은 망토를 두른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네놈들이구나. 이 몸의 단잠을 깨운 무례한 놈들이.”

서열 13위.

창백한 선혈의 왕자 벨레드가 등장했다.

마왕의 등장에 에리스가 긴장한 듯 떨리는 손으로 지팡이를 들어 벨레드를 향해 겨누었다.

“반갑습니다, 벨레드 님. 슈미트라 님의 신실한 종, 에리스라고 한답니다.”

동시에 에리스의 지팡이에서 순백의 오러 블레이드가 솟구쳤다.

“슈미트라의 이름으로. 지금부터 악의 척결을 시작하겠습니다.”

이에 벨레드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비웃었다.

“한낱 신의 개 따위가 주제를 모르는구나!”

* * *

“컥-”

벨레드에게 목을 붙잡힌 에리스가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문득 그의 눈동자에 죽은 듯 바닥에 쓰러져 있는 손채영과 크루세이더들의 모습이 비쳤다.

“제법 잘 싸웠다만. 그뿐이로구나.”

벨레드의 말대로 에리스와 그 일행들은 고위 서열의 마왕을 상대로 제법 선전했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하위 서열의 마왕이었다면 모를까 고위 서열의 마왕을 상대하기에는 그 힘이 한참 부족했다.

결국, 차례로 하나둘씩 쓰러져 가더니 이제 남은 것은 에리스뿐이었다. 그마저도 생사가 벨레드의 손에 놓인 상황이었으니 사실상 전멸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 몸을 상대로 분투한 그대들의 노고를 치하하여 이 몸의 권속이 될 영광을 누리도록 해주마.”

벨레드가 에리스의 새하얀 목에 송곳니를 박아넣으려 했다.

그 순간.

허공에서 하얀빛이 솟구쳤다.

어둠을 몰아내고 사방을 환하게 밝히던 빛이 둥근 원형의 모양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검이 솟구치며 휘둘러졌다.

콰아아앙─

갑작스러운 일격에 등을 적중당한 벨레드가 손에 쥔 에리스를 놓쳤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한참을 날아가더니 이내 벽면에 부딪혔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터벅- 터벅-

주변을 뒤덮은 뿌연 흙먼지 사이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흙먼지가 걷히고 연보랏빛 머리칼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벨레드는 사내가 누구인지 단박에 알아차렸다.

어찌 모르겠는가.

마왕들에게 있어 가장 위협적인 저 사내를.

“네놈이구나!”

순간.

붉은 오러 블레이드가 벨레드의 목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그것에 맞서 벨레드 역시 마기로 이루어진 검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발타자르으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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