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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113화 (113/183)

공작이 회귀함 113화

제국의회가 끝이 나고 발타자르는 자택으로 돌아가기 위해 마차에 올라탔다. 그런데 마차 안에 선객이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아저씨.”

흑발이 무척이나 인상적인 여인이 발타자르를 향해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신시아.”

실로 오래간만의 재회였다. 한데 그녀의 행색이 조금 특이했다.

평소의 암행 복장이 아닌 메이드 옷을 입고 있는 그녀의 모습은 조금 낯설었다.

“직업을 바꾸었나 보군.”

“아아…… 이거요?”

신시아가 제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 보이더니 씨익- 짓궂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울려요? 요즘 누가 일거리를 산더미처럼 안겨줘서 때려치우고 이직할까 생각 중이거든요. 어때요? 고용하실 생각이 있으세요? 이만한 미인에 능력까지 출중한 메이드를 고용할 기회는 좀처럼 없다고요?”

이에 발타자르가 피식 웃으며 다리를 꼬곤 좌석에 등을 기대었다.

“농담하는 걸 보니 그렇게까지 일이 많아 보이진 않는데. 그래. 사전에 아무런 언질도 없이, 여긴 무슨 일로 왔는가?”

발타자르의 물음에 신시아가 불만스러운 얼굴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재미없는 건 여전하시네요. 자요.”

신시아가 품에서 서찰을 꺼내어 내밀었다.

발타자르가 그것을 받아 들며 펼쳐 보이자 신시아가 말을 덧붙였다.

“지시하신 대로 최근 제도 인근에 발생한 실종 사건들을 조사해 봤어요. 솔직히 흔하게 있는 일이라 조사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는데 딱히 눈에 띌 만한 점은 없었어요. 특히 아저씨가 강조한 대규모 실종 사건이라든가 신체에 피가 모두 사라진 시체라든가 하는 일은 전혀 없었고요.”

그녀의 말대로 서찰에는 수십 건의 실종 사건이 상세하게 나열되어 있었지만, 이렇다 할 특별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대부분 깊은 산속에 들어갔다가 행방불명 되었다던지 혹은 가족들과 싸우고 가출한 뒤로 소식이 두절 되었다던지 등의 시시콜콜한 일들뿐이었다.

“이상하군…….”

툭툭- 발타자르가 마차의 창틀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이 시기쯤이면 벨레드가 조금씩 제 세력을 불려 나가고 있어야 했다. 더군다나 신의 예언까지 있었으니 벨레드가 제도 인근에서 활동하는 것은 확실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실종 사건이 평소보다 더 잦게 일어나고 특이한 점도 더러 발견되어야 했는데 이상하리만치 너무 조용했다.

누군가 정보들을 의도적으로 은폐하지 않고서야…….

“잠깐.”

“네?”

발타자르는 누군가가 정보를 은폐하고 있다는 전제를 두고 생각을 해보았다.

만약 그렇다면 정보를 은폐하고 있는 이는 벨레드와 손을 잡았거나 그의 수하가 되었을 확률이 높았다.

“아마 후자일 확률이 높겠지.”

발타자르가 연신 이해할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자 신시아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신시아.”

“네?”

“조사 범위를 중부 전역으로 확대하게. 그리고 제도 인근에 영지를 둔 귀족들의 최근 동향에 대해 상세히 조사하여 보고하게. 최대한 빨리.”

발타자르가 진중한 목소리로 지시하자 신시아가 안색을 고치고는 답했다.

“3일 내로 조사해서 보고드릴게요.”

신시아의 대답에 발타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참. 그리고 서부의 일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발타자르의 물음에 신시아가 막힘없이 대답했다.

“선동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요. 빌 헬름 공작의 자식들이 워낙 개차반들이라 따로 정보를 날조할 것도 없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퍼뜨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더라고요. 거기에 선동꾼들을 동원하니 굳건하던 민심도 조금씩 흔들리는 추세예요.”

살인, 강간, 노예 매매 등 빌 헬름 공작가의 자제들이 저지른 추악한 만행들은 조사하면 조사할수록 끝없이 발견되고 있었다.

대부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증거나 증인들이 사라진 상태였지만 그런 사건들을 제외하더라도 이용할 만한 사건들은 충분히 차고 넘쳤다.

덕분에 선동꾼을 동원하여 민심을 흔드니 빌 헬름 공작에 대한 철옹성 같은 민심에도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는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아! 물론 증거나 증인들은 조작한 것으로 대체했지만요. 뒤처리가 너무 깔끔해서 찾는 것보다 만들어내는 것이 더 빨라서요.”

말하며 신시아가 배시시 웃었다.

악동 같은 미소에 발타자르가 굳어있던 표정을 풀며 작게 미소 지었다.

“조작은 적당히 하게. 굳이 조작하지 않더라도 충분하지 않나.”

“그렇긴 하죠.”

신시아가 순순히 수긍했다.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발타자르가 말했다.

“조만간 서부에 총독부가 설립될 테니 그때까지만 좀 더 고생하게.”

“그쪽에 인수인계하면 된다는 말씀이시죠? 걱정 마세요. 나중에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깔끔하게 처리하고 있으니까요.”

그녀의 자신만만한 모습에 발타자르가 너무 자만하지 말라며 꾸짖으려는 순간 마차가 정지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에 발타자르 가의 저택에 도착한 것이었다.

발타자르가 자신을 꾸짖으려 한다는 것을 눈치챈 신시아가 발타자르가 다시 말을 꺼내기도 전에 한발 먼저 마차의 문을 열고 마차에서 내리더니 발타자르를 향해 허리 숙여 인사했다.

“주인님. 일이 밀려 있어서 먼저 가 보겠습니다. 그럼.”

그러곤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자리에서 꺼지듯 자취를 감추었다.

* * *

발타자르가 저택에 발을 들이는 순간 늘 그렇듯이 아이린이 한달음에 달려와 그를 반겨주었다.

“오라버니!”

단박에 품에 안겨드는 그녀를 익숙한 동작으로 안아 든 발타자르가 가볍게 볼을 꼬집었다.

“숙녀가 이렇게 뛰어다녀서 되겠느냐?”

이에 아이린이 배시시 웃으며 그의 목을 끌어안더니 어리광을 부렸다.

“오라버니한테만 이러니까 괜찮아요.”

이런 말도 할 줄 아는구나 싶어 자연스레 웃음이 지어졌다.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녀석. 못 본 사이에 넉살만 늘었구나.”

발타자르가 아이린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며 말하자 아이린이 발타자르를 올려다보더니 좀 더 크게 웃었다. 그 밝은 미소를 마주하자 가슴이 간질거리는 기분을 느꼈다.

“점심은 먹었느냐?”

“아뇨. 아직 안 먹었어요.”

“그럼 같이 먹자꾸나.”

“네! 좋아요!”

아이린이 힘차게 대답하더니 돌연 무언가가 떠올랐다는 듯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맞다. 오라버니. 손님이 오셨어요.”

“손님?”

“상인입니다. 검은 태양 상단의 랄프라고 자신을 소개하더군요.”

발타자르의 물음에 답한 것은 아이린이 아닌 어느새 다가온 가웨인이었다.

“랄프?”

그 이름을 듣자마자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랄프로렌 메멘토.

검은 태양 상단주 오슬란 메멘토의 장남으로 쟁쟁한 형제들을 모두 제치고 결국 검은 태양 상단주의 자리에 오르는 인물이었다.

그의 아비인 오슬란 메멘토가 그랬듯이 랄프로렌 역시 칼 프란츠 대공의 수족으로 회귀 전 발타자르와 종종 어울려 함께 술을 마시던 사이였다.

“언제 왔는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장군이 계시지 않아 돌려보내려고 했습니다만 칼 프란츠 대공 전하의 전언을 전해야 한다기에 일단 안으로 들였습니다.”

가웨인의 말에 발타자르가 눈을 빛냈다.

‘이제야 손을 뻗어오는군.’

생각보다 한참 늦었다고 생각했다.

칼 프란츠 대공의 성정이라면 손을 써도 한참 전에 썼을 것이 분명한데 지금까지 자신에게 손을 쓰지 않는 의도가 의심스럽던 차였다.

그러던 차에 랄프로렌이 칼 프란츠 대공의 전언을 전하기 위해 방문했다고 하니 이번 기회에 칼 프란츠 대공의 의향을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지금 어디 있는가?”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웨인의 대답에 발타자르가 품에 안아 들고 있던 아이린을 내려놓고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잠시 놀고 있거라. 금방 다녀오마.”

* * *

발타자르가 응접실에 도착하자 차를 마시고 있던 랄프로렌이 허둥지둥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 다가와 깊게 허리 숙여 인사했다.

“발타자르 공작 각하께 인사 올립니다. 소인은 검은 태양 상단에 몸담고 있는 랄프로렌이라고 합니다.”

랄프로렌은 새하얀 터번을 눌러쓴 남부식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회귀한 이후로는 처음 보는 남부식 옷차림에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반갑네.”

랄프로렌의 인사를 받아준 발타자르가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래. 칼 프란츠 대공 전하의 전언을 들고 왔다지?”

“예, 그전에 우선 이걸…….”

랄프로렌이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들더니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

“이게 무엇인가?”

발타자르가 그것을 바라보며 묻자 랄프로렌이 가장 좌측에 놓은 종이 뭉치를 발타자르에게 건네며 답했다.

“하나씩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이것은 남부 전마 3천 필의 양도증입니다. 물론 공작 각하께서도 북부의 훌륭한 전마들을 다량 보유하고 계시겠지만, 이 제국을 무대로 움직이시려면 아무래도 남부의 전마들이 더 효율적이지 않겠습니까?”

랄프로렌의 말대로였다.

북부의 전마가 험준한 산맥에서 나고 자라 지구력이 강하고 힘이 좋다면, 남부의 전마들은 드넓은 초원을 내달리며 자라난 덕분에 일반 품종이 비해 지구력이 뛰어난 편인 데다 기동성에 있어서는 대륙의 어느 말보다도 뛰어난 품종이었다.

어느 품종이 더 낫다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특정 지역을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데는 남부 전마가 조금 더 뛰어났다.

“그리고 이것은 슈리마 왕국에서 생산되는 각궁에 대한…….”

발타자르가 손을 들어 랄프로렌의 말을 제지했다. 더 듣지 않아도 랄프로렌이 늘어놓은 서류들이 무엇인지 짐작되었다. 칼 프란츠 대공이 이것들을 선물하려는 의도가 의심스러웠다.

“본론을 이야기하게.”

“흠흠. 그렇다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발타자르의 직설적인 말에 랄프로렌이 잠시 목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대공 전하께서는 이번에 새로이 신설할 경무청의 부청장 자리를 원하십니다.”

랄프로렌의 말에 발타자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제국의회에서 발타자르가 안건을 발의한 것이 불과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칼 프란츠 대공이 이 사실을 알아차리고 사람을 보냈다는 것은 제도에 그의 눈과 귀가 있음이 분명했다. 그것도 제국의회에 참석할 만한 높은 직책에 있는 이가 말이다.

“대공 전하께서 원하시는 것은 그것뿐인가?”

“그렇습니다.”

랄프로렌의 대답에 발타자르가 테이블을 두드리며 고민하기 시작했다.

‘칼 프란츠 대공의 사람을 부총장의 자리에 앉힌다라…….’

다른 상황은 다 제쳐 두고서라도 그의 사람을 부총장의 자리에 앉혀 둔다면 칼 프란츠 대공의 협력을 얻을 수 있을 테니 경무청이 남부에서 활동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특히나 남부는 상위 서열의 마왕들이 다수 존재하는 곳이니만큼 남부 영주들의 협력은 필수였다.

그런 점을 생각했을 때 칼 프란츠 대공의 청탁을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물론 칼 프란츠 대공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내게 제안할 것은 이게 끝인가?”

발타자르가 늘어놓은 서류들을 가리키며 묻자 랄프로렌이 고개를 내저었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있습니다. 대공 전하께서 따로 전언이 있으셨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공작 각하께서 이루고자 하는 것에 도움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랄프로렌이 테이블 밑에서 상자 하나를 꺼내더니 테이블 위에 올리곤 상자의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역한 냄새와 함께 무언가의 수급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마왕이로군.”

이것으로 확실해졌다.

칼 프란츠 대공은 발타자르가 마신의 강림을 저지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칼 프란츠 대공을 믿어도 될까?’

돌이켜보면 칼 프란츠 대공이 제국의 권좌에 욕심을 낸 것은 황실의 무능에 실망하고 용사들의 배신으로 마신의 강림을 저지하는 일이 물거품이 된 후였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상황만 놓고 보자면 칼 프란츠 대공이 권좌에 욕심을 가지게 될 계기가 없었다.

“지금 당장은 확답을 주기 어렵네. 다만…….”

하지만 아직까지도 제국 몰락의 순간에 칼 프란츠 대공이 보였던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그렇기에 선뜻 그가 선의의 목적으로 이런 제안을 한다고는 믿기 힘들었다.

따라서.

“조만간 대공가를 방문하겠다 전해주게.”

그를 직접 만나볼 필요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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