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이 회귀함-107화 (107/183)

공작이 회귀함 107화

전선에 모습을 드러낸 황금 독수리 기사단을 발견한 발타자르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전장에 난입하며 그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붉은 오러 블레이드가 퇴각하는 황금 독수리 기사단을 덮치기 직전.

녹색섬광이 번쩍이더니 발타자르의 일격과 충돌했다.

콰아아앙─

빛무리와 함께 거친 돌풍을 동반한 충격파가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으아아악!”

인근에서 전투를 벌이던 병사들이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비명과 함께 휩쓸려 날아갔다.

탁-

지면에 착지한 발타자르가 말머리를 돌린 황금 독수리 기사단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그러자 기사단의 선두에 있던 이가 투구를 벗어 던졌다.

“기다리고 있었소. 발타자르 공작.”

물결치듯 흘러내리는 검은 머리칼과 수염.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미염공 싱커 에스파로사.

그가 분명했다.

“유인책이었나?”

“그렇소.”

발타자르의 물음에 싱커 에스파로사가 순순히 수긍하더니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그러자 지면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땅속에서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강철로 이루어진 골렘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강철의 학살자.

기간테스Gigantes.

한기를 제작하는 데만 드워프 장인들과 천문학적인 재화가 소모되는 이종족 연합에서도 극비로 취급되는 전략 병기였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서부군 진영에서 환한 빛무리가 뿜어져 나오더니 서부군의 몸을 휘감더니 그들의 상처를 순식간에 치유하기 시작했다.

이에 발타자르가 두 눈에 마력을 집중시켜 서부군의 진영을 바라보자 그곳에 도마뱀을 닮은 이종족들이 무리 지어 합창하는 모습이 보였다.

“로드리고의 성가대.”

태어날 때부터 압도적인 마나 친화력을 타고나는 드래고니안 중에서도 회복 마법을 비롯하여 각종 보조 마법을 전문적으로 익힌 이들을 모아놓은 집단이었다.

그들의 보조를 받는다면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고위 기사가 마스터에 대적할 수 있을 정도였다.

기간테스에 이어 로드리고의 성가대까지 등장하자 발타자르는 서부군이 이번 전투에 사활을 걸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서부군뿐만이 아니었다.

‘이종족 연합도 어지간히 다급한가 보군.’

빌 헬름 공작가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세계수의 이변을 해결하려 했던 이종족들이 세계수의 이변이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만한 전력을 지원했다는 것은 그들도 이번 전쟁에 사활을 걸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분명 빌 헬름 공작가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세계수의 이변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었다.

“발타자르 공작. 이곳이 그대의 무덤이 될 것이오.”

싱커 에스파로사가 서슬 퍼런 목소리로 발타자르의 죽음을 선언했다.

“자신만만하군.”

“그럴 만한 전력이지 않소.”

“그렇긴 하지.”

발타자르가 순순히 수긍했다.

확실히 이 정도 전력이면 승패를 가늠할 수 없었다.

기간테스는 핵을 파괴하지 않으면 무한히 재생하는 골렘의 특성에 오리하르콘이라는 강력한 마나 저항력을 가진 광석으로 제작되었기에 상대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또한, 로드리고의 성가대의 지원을 받는 서부군까지 상대해야 했으니 설령 이번 전투에서 승리한다 해도 적잖은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었다.

“하나. 그것도 자네가 내 발목을 붙잡을 수 있을 때나 통용되는 이야기이지.”

발타자르가 기습적인 일격을 가했다.

땅을 박차고 순식간에 싱커 에스파로사의 코앞에 도달한 발타자르가 검을 휘둘렀다.

콰아앙─!

싱커 에스파로사가 마주 창을 휘두르며 발타자르의 일격을 막아내려 했지만, 도저히 막을 수가 없었다.

힘의 격차가 너무 컸다.

창과 검이 맞부딪치는 순간 느껴지는 힘의 차이에 싱커 에스파로사는 정면에서 막는다면 그대로 창과 함께 베여 나갈 것이라 직감하고는 황급히 말을 박차고 뒤로 물러났다.

덕분에 그가 타고 있던 말을 비롯하여 주변에 있던 황금 독수리 기사단이 발타자르의 일격에 그대로 노출되어 버리고 말았다.

꽈가가강─!

발타자르의 일격에 적중당한 황금 독수리 기사단이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쓸려나갔다.

“으득…… 기간테스들이여!”

이에 싱커 에스파로사가 이를 갈며 기간테스들을 불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기간테스들이 발타자르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하지만 발타자르는 피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비비안.”

발타자르가 비비안을 부르자 허공에서 기포가 뽀글뽀글 생성되더니 곧 비비안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감히……!”

비비안은 소환되자마자 날아드는 기간테스의 주먹을 목격하곤 미간을 찌푸렸다.

동시에 그녀가 양팔을 앞으로 내뻗자 물의 창이 생성되며 기간테스의 주먹과 맞부딪쳤다.

콰아아앙─

결과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일거에 기간테스들의 팔이 한쪽씩 날아갔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비비안은 그녀답지 않게 무척이나 화가 난 듯 두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 소리쳤다.

“물이여!”

비비안의 외침에 기간테스들의 팔을 박살 낸 물의 창들이 기간테스들을 집어삼켰다.

우득- 우지끈-

거대한 물방울 속에 갇힌 모양새가 된 기간테스들의 몸이 점점 우그러지기 시작했다. 팔, 다리, 몸통 가릴 것 없이 눌리고, 찌그러지던 기간테스들은 끝내 동그란 쇳덩이로 변해버렸다.

“흥.”

비비안이 코웃음을 치며 싸늘한 눈동자로 손을 휘저었다.

퍼엉─

그러자 쇳덩이로 변한 기간테스들이 조각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다.

* * *

‘저건 뭐지? 정령? 이 정도 기운이라면 정령왕급인데…….’

싱커 에스파로사는 기간테스 다섯을 순식간에 무용지물로 만들어버린 비비안을 바라보며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아직 수십 기에 달하는 기간테스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더 불러온다 한들 방금 전에 그랬듯이 저항 한번 하지 못하고 파괴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그것들은 연합군을 상대하는 곳에 투입되어야 했다.

‘이길 수 있을까?’

단 한 번 공방을 주고받았지만, 그것만으로도 발타자르가 얼마나 강력한지를 깨달은 싱커 에스파로사는 이 싸움에 승산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발타자르만 해도 승리를 점치기가 어려운데 정체를 알 수 없는 정령까지 합세한다면 필패였다.

하지만 도망칠 수는 없었다.

그가 발타자르의 발목을 잡지 못한다면 이종족 연합에게서 지원받은 기간테스들과 로드리고의 성가대가 무용지물이 되어버릴 것이고 이번 전투에 모든 전력을 쏟아부은 서부군은 대패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단순히 시간 끄는 용도로 소모 시키기엔 수지타산이 맞지 않지만 어쩔 수 없지.’

싱커 에스파로사는 전장 곳곳에 투입되어있는 기간테스들을 모조리 불러 모으기로 결심했다.

기간테스가 없다면 마법사들이 대거 포진되어 있는 연합군을 상대하기가 지난 하겠지만 그래도 로드리고의 성가대가 있으니 쉽게 밀리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동안 기간테스들과 함께 발타자르를 쓰러뜨릴 수만 있다면 이번 전투는 서부군의 승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무얼 믿고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결단을 내린 싱커 에스파로사가 기간테스들을 불러모으려는 순간.

어느샌가 발타자르가 그의 코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대체 언제!’

싱커 에스파로사가 두 눈을 부릅뜨고 지금 이 상황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발타자르를 바라보았다. 순간 발타자르의 입가가 길게 호선을 그렸다.

“굳이 찾아낼 수고를 덜었으니 고맙군.”

발타자르의 말이 끝나는 순간.

오러 블레이드에 휘감긴 발타자르의 검이 싱커 에스파로사의 심장을 꿰뚫었다.

푸욱-

발타자르가 다가오는 것도.

그가 검을 찌르는 동작도.

그 무엇도 감지하지 못했다.

‘이 무슨…….’

아무리 마스터 간에 격차가 있다고 해도 이렇게 제대로 된 저항 한번 해 보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당할 수는 없었다.

이런 상황이 성립되는 것은 서로 간의 경지가 한 단계 이상이 차이가 날 때만 가능한 것인데 그렇다면 발타자르는 마스터가 아니라…….

“쿨럭…… 설…… 마…….”

싱커 에스파로사가 붉은 피를 토해내었다.

“잘 가게.”

발타자르가 손목을 비틀었다.

그러자 꿰뚫린 심장에 큰 구멍이 생겨났다.

싱커 에스파로사가 즉사하자 발타자르가 그의 심장에서 검을 뽑아내더니 가벼운 손놀림으로 검을 휘둘러 그의 목을 베어내었다.

툭-

싱커 에스파로사의 수급이 땅에 떨어져 아무렇게나 나뒹굴었다.

이어서.

그의 몸이 힘없이 무너져 내리더니 엎어지듯 쓰러졌다.

절단된 그의 목에서 검 붉은 피가 쏟아져 나오며 땅을 붉게 적셨다.

* * *

기간테스와 로드리고의 성가대가 전장에 모습을 드러낸 직후 마법사들이 제힘을 온전히 발휘하기가 힘들어지자 전장의 양상은 한 치 앞도 모르는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서부군의 기사들은 연합군의 마법사들을 치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들고 연합군의 기사들은 마법사들을 지키기 위해 기간테스를 상대하는 것도 멈추고 서부군의 기사단을 저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덕분에 죽어나는 것은 연합군의 병사들이었다.

저 거대한 철의 거인은 일반 병장기로는 몸에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기간테스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병사 수십이 목숨을 잃었다.

거기에 더해 로드리고의 성가대의 지원을 받은 서부군의 병사들은 두려움을 모르는 용맹한 전사들로 탈바꿈하여 연합군의 병사들을 몰아치기 시작했다.

물론 연합군 역시 마냥 당하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기병전에서 승리한 연합군의 기마대가 서부군의 후미를 타격하며 큰 피해를 주었고 마법사들 역시 기간테스의 상대법을 파악하고는 집중 포격을 통해 차근차근 기간테스의 수를 줄여 나갔다.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접전이 이어졌다.

양측 병사들은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싸웠다.

* * *

“저건 또 뭐야?”

요양을 끝내고 전선에 모습을 드러낸 레티시아가 기간테스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기간테스의 몸 곳곳에 새겨진 마법들은 레티시아가 한 번도 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탑주님. 이제 몸은 괜찮으십니까?”

그녀를 발견한 마법사 하나가 재빠르게 그녀에게 다가오며 묻자 레티시아가 대충 고개를 끄덕이곤 기간테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어디서 나타난 거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서부군에서 준비한 것 같은데 제 짐작이지만 이종족들에게서 지원을 받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

마법사 특유의 탐구욕이 솟구친 그녀가 가장 가까이 있던 기간테스에게로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탑주님! 어디 가십니까!”

이에 마법사가 황급히 묻자 레티시아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빨리 이 전투가 끝나야 저걸 연구해 볼 수 있지 않겠어?”

그리 말하곤 레티시아가 허공 위로 두둥실 떠올랐다.

“자. 어떻게 요리해 줄까?”

그녀의 양손에 화염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연구할 것은 하나만 있으면 될 테니 나머지는 다 부숴 버리면 되겠지?”

싱긋 웃으며 그녀가 마법을 발현하려던 순간.

“싱커 에스파로사가 죽었다! 서부의 아들들이여! 항복하라!”

전장에 발타자르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뭐야. 벌써 끝이야?”

레티시아가 허탈하다는 표정으로 발타자르를 내려보더니 이내 쯧 하고 작게 혀를 차곤 함께 아군 진영으로 돌아갔다.

* * *

“미염공께서…… 당하셨다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믿었던 싱커 에스파로사의 죽음에 서부군은 싸우던 것도 잊은 채 그의 수급을 들어 올리고 있는 발타자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졌다…….”

누군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챙그랑- 챙-

전장 곳곳에서 서부군의 병사들이 제 무기를 내던지는 광경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싱커 에스파로사의 죽음이 알려지자 서부군은 전의를 상실하고 항복하기 시작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전투가 끝이 났다.

한편 동맹인 서부군이 항복하자 이종족들은 기간테스와 함께 도망치기 시작했고 연합군의 추격대가 그 뒤를 쫓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