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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103화 (103/183)

공작이 회귀함 103화

돔보 마을 어귀에서 발타자르와 트리스탄은 글루스가 마을 사람들과 작별 인사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대장. 하나 물어봐도 돼요?”

“물어보게.”

“저 사람. 대장이 자기 뜻과 반대되는 길로 간다면 그 앞길을 막아서겠다고 대놓고 말했는데도 왜 영입하신 거예요? 아무리 쓸모가 많다고 해도 대장은 불안의 씨앗은 싹부터 걸러내는 성격이시잖아요.”

말하곤 트리스탄이 슬쩍 발타자르의 눈치를 보더니 변명하듯 말을 덧붙였다.

“개인적인 감정으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단순히 호기심으로 말씀드리는 거예요. 으음…… 물론 약간. 아주 약간 감정이 실리긴 했지만요.”

트리스탄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웃으며 답했다.

“말했지 않나. 대국을 볼 수 있는 책사는 드물고 현재 우리 군에는 그러한 책사의 존재가 절실하다고.”

“하지만 책사가 없어도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요. 차라리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믿을 만한 사람을…….”

발타자르가 그녀의 말을 끊으며 나직이 그녀를 불렀다.

“트리스탄.”

“죄송해요.”

트리스탄이 고개 숙여 사과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발타자르가 무심한 목소리로 이 화제와 아무런 연관도 없는 이들의 이름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캐러독, 아그리파, 모드레드. 이들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게.”

“……네?”

캐러독은 발타자르가 기병대장이던 시절부터 함께해오던 발타자르의 최측근이고 아그리파는 온두라스 백작령에서 영입한 기사였다.

그리고 모드레드는 혁명단 토벌 당시 혁혁한 전공을 세워 이름을 떨치더니 최근에는 여러 가지 임무들을 완벽히 수행해 내며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발타자르 군의 병사들 사이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인물이었다.

이들의 공통점이나 연결 고리를 찾기 위해 고민해 보았지만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트리스탄이 이들을 거론한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지만, 발타자르는 그녀의 의문에 대한 답을 주지 않았다. 그저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토닥일 뿐이었다.

“자네 걱정이 무엇인지는 잘 알겠지만, 너무 걱정하지 말게. 지금까지 그래왔듯 잘 풀릴 테니까.”

트리스탄은 웃으며 말하는 발타자르의 모습이 무척이나 차갑다고 느껴졌지만, 이것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 * *

발타자르가 오펜바흐 성으로 돌아온 것은 새벽이 되어서였다.

집무실에 들어서자 가웨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반겨주었다.

“고생하셨습니다. 어떻게. 마음에 드셨습니까?”

“생각과는 조금 달랐지만 나쁘진 않았네. 내일 자비에고 주교의 처형식이 끝나는 대로 북부로 보내게.”

말하며 코트를 벗어 의자 위에 걸쳐두는 발타자르에게 가웨인이 물었다.

“곁에 두지 않고 북부로 보내겠단 말입니까?”

“그렇네. 아무래도 당장 손이 부족한 것은 그쪽이니까.”

발타자르의 말에 가웨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발타자르 군의 입장에서 보자면 글루스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인물이었다.

물론 발타자르의 결정이니만큼 거센 반발은 없겠지만 이름 높은 명사도 아닌 이가 난데없이 자신들의 상관이 된다면 필연적으로 잡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능력을 검증한 후에 보내도 되지 않습니까. 상황도 딱 적절하고요.”

현재 전황은 능력 있는 이가 제 능력을 발휘하기에 아주 좋은 무대였다.

그런 만큼 글루스를 중히 쓰기 위해서는 가웨인의 말대로 이곳에서 그 능력을 증명한 후 요직에 앉히는 것이 여러모로 모양새가 좋았다.

“걱정 말게. 알아서 잘 해결할 테니. 그리고 설령 문제가 생긴다면 그의 능력이 거기까지인 것이겠지.”

직접 찾아가 영입을 할 정도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던 발타자르가 그와는 상반되게 상당히 냉소적인 어투로 글루스의 거취 문제에 대해 짧게 일축하고는 업무 책상으로 가 자리에 앉았다.

“더 물어볼 것이 있는가?”

발타자르의 물음에 가웨인이 깜빡했다는 듯이 말했다.

“아 참. 별의 구도자에서 서신이 왔습니다.”

“별의 구도자에서?”

신시아가 이끄는 정보 단체.

별의 구도자에서 서신이 왔다는 말에 발타자르가 손을 내밀었다. 이에 가웨인이 품에서 서신을 꺼내어 건네주며 말했다.

“최근 검은 태양 상단에서 대대적으로 식량을 매입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첩보에 따르면 몬스터들 과의 전투가 길어진 것 때문으로 추측된다고 하더군요.”

“검은 태양 상단이라…….”

검은 태양 상단은 제국 5대 상단 중 하나로 칼 프란츠 대공의 수족 중 하나였다. 그런 이들이 움직였다는 것은 곧 칼 프란츠 대공이 움직였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 당장이야 큰 문제는 없겠지만 부르는 대로 값을 치르고 매입해 대다 보니 식량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중이라고 합니다. 이 상황이 지속 되면 조만간 중앙군의 보급 쪽에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해서 제도 쪽에서도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라더군요.”

“그렇겠지. 우선순위를 보자면 남부 전선 쪽이 더 시급한 데다 명분 역시 있으니 검은 태양 상단의 사재기를 제지할 방법이 없을 테니까.”

칼프란츠 대공의 의도는 알만했다.

직접 도움을 주기는 힘드니 이렇게 보급선에 압박을 주어 남부와 동부의 일이 마무리될 때까지 시간을 끌려는 속셈이겠지.

“우리 쪽에 비축된 식량이 있으니 거기에 대해선 신경 쓰지 말라 전하게.”

세계수의 이변으로 인해 시작될 대기근에 대비하기 위해 그동안 북부에 축적해 놓은 식량의 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안 그래도 대기근이 시작되기도 전에 전쟁을 일으킨 것 때문에 비축된 식량의 처리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는데 잘 되었구나 싶었다.

“혹시 칼 프란츠 대공 측에 별다른 움직임은 없다던가?”

“예, 이번 식량 매입건을 제외하면 여전히 몬스터들에 전력을 집중하고 있다고 합니다.”

“흠…….”

발타자르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칼 프란츠 대공이라면 보급에 압박을 주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조치들도 취해 두었을 것이 분명한데, 지금 당장은 딱히 짐작 가는 것이 없었다.

“동부 쪽은 어떻다던가?”

“프리드리히 공작이 전력을 쏟아붓는데도 바르바토스를 잡지 못해 일진일퇴를 거듭하고 있는데 그쪽은 정말 지옥이라더군요.”

“그런가.”

당분간은 동부와 남부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한 가문의 이름이 발타자르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잠깐. 메디치 공작가는? 그들의 최근 동향에 대해 보고받은 것이 있는가?”

“메디치 공작가 말씀이십니까? 글쎄요. 그쪽은 제도에서의 일 이후로는 계속 잠잠한 터라. 물론 지속적으로 감시하고는 있습니다만 별다른 얘기가 없는 것으로 보아 여전히 침묵 중인 것 같습니다.”

무언가 이상했다.

이 시기쯤이면 메디치 공작가는 후계 다툼으로 한창 정신이 없어야 했다. 특히나 지금 제국의 정세는 사방에서 전쟁이 터져 정신이 없기에 내전을 벌이기에 시기가 적절했다.

메디치 공작가의 차기 가주로 점쳐지는 조반니 메디치는 그 출중한 능력만큼이나 무척 탐욕스러운 인물이었다.

그런 만큼 이 시기를 마냥 놓치지 않을 텐데 그럼에도 조용하다는 것은 겉으로 드러내지 못할 문제가 생겼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무언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인가…….”

문득 칼 프란츠 대공이 메디치 공작가에 손을 쓴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조반니 메디치와 칼 프란츠 대공은 함께 아카데미를 수학한 사이로 당시 무척이나 절친했다고 알려져 있었다.

따라서 조반니 메디치와 칼 프란츠 대공이 손을 잡았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어야만 했었다.

하지만 회귀 전의 조반니 메디치는 칼 프란츠 대공과 대척점에 선 인물이었기에 그런 가능성을 진작에 접어두고 있었는데 생각해 보면 그들이 대척한 것은 조반니 메디치가 공작 위에 오른 이후였다.

그 말인즉 지금은 두 사람의 친밀한 관계가 유지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었다.

‘회귀 전의 기억에 너무 의존한 탓이군.’

발타자르가 저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이것은 온전히 자신의 실책이었다.

칼 프란츠 대공의 조력이 있다면 메디치 공작가의 적통이자 차남인 보르네오 메디치를 소리소문없이 축출하고 조반니 메디치가 공작위에 올리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지만 영 신빙성이 없는 생각도 아니었다.

한발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라도 조치를 해두어야만 했다. 마음 같아서는 직접 진두지휘하고 싶었지만, 지금은 서부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하여 이 일은 다른 이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이번 일에 적합한 인재를 영입하였으니 천만다행이었다.

“신시아에게 메디치 공작가의 동향을 주시하라 전하게. 그리고 글루스에게는 북부로 가는 즉시 서부 전선에 문제가 없도록 조치를 취하라고 전하게.”

이 정도만 지시해도 글루스라면 알아서 잘 대비할 것이었다. 글루스를 영입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고 생각하며 발타자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다음 날.

날이 밝아 왔다.

슈텔리앙 후작이 이끄는 3군이 일제히 전선에 투입되고 후작 본인은 소수의 호위만 대동한 채 오펜바흐 성에 입성했다.

성의 광장에서는 미리 설치된 단두대를 점검하고 있었으며 그 근처로 마법사들이 처형식 장면을 제국 각지의 마탑으로 송출하기 위한 사전 작업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렇게 조연 배우들이 속속들이 모여들고 모든 준비가 끝나자 발타자르의 주최 아래 자비에고 주교의 처형식이 거행되었다.

“죄인을 압송하라.”

발타자르의 지시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간수들이 마기에 물들어 흉측한 몰골로 변한 자비에고 주교를 이끌고 모습을 드러내었다.

죽은 듯 축 늘어진 자비에고 주교가 바닥에 발을 질질 끌며 끌려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이 기함을 토해내었다.

끌려오는 자비에고 주교의 모습이 더 이상 인간이라 부르기 힘들 정도로 흉측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자비에고 주교가 단두대 위에 오르고 단두대에 단단히 결박되자 발타자르가 좌중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처형식을 시작하겠다.”

처형식의 시작을 알리는 발타자르의 음성에 모두가 숨죽이고 그를 주목했다.

“반갑네. 위대한 제국의 자랑스러운 신민들이여. 본관은 북부를 수호하는 3군의 총사령관, 발타자르 공작일세.”

묵직한 발타자르의 음성이 광장에 울려 퍼지고, 그의 모습이 제국 각 도시에 송출되는 가운데 발타자르는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묵묵히 제 할 말을 이어갔다.

“제도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이런 불미스러운 일로 그대들과 만나게 되어 실로 유감을 표하는 바일세.”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는 여기 자비에고 주교가 중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네.”

웅성거림이 커졌다.

“대체 자비에고 주교께서 무슨 죄를 저지른 것입니까?”

미리 준비시켜 둔 바람잡이가 물었다.

이에 발타자르가 자비에고 주교를 가리키며 말했다.

“모두가 알다시피 이번 서부 전쟁은 빌 헬름 공작이 이종족들과 내통을 하였기에 벌어진 전쟁이네. 오로지 죄는 빌 헬름 공작가에 있기에 순순히 길을 내어주는 영지에게는 그 어떠한 피해도 끼치지 말라는 황태자 전하의 엄명이 있으셨지. 그러나 몇몇 불순한 마음을 가진 영주들은 빌 헬름 공작의 편에서며 그를 징벌하기 위해 서부를 방문한 연합군의 앞을 막아섰다.”

발타자르는 자비에고 주교의 처형식을 통해 다른 권력자들이 이번 전쟁에 개입할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고 어수선한 민심을 바로잡는 한편 서부 전쟁을 정당화시키고 아르세우스 황태자의 인지도를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이는 아주 악질적인 중죄이나 너그러우신 황태자 전하께서는 그런 이들마저 포용하시며 용서하겠다 하셨다. 하여 설령 앞을 막아선 이들이라고 해도 투항한 이들과 해당 영지에는 그 어떠한 죄도 묻지 말고 자신의 영지민이라 여기고 소중히 대하라 엄히 명하셨노라. 한데!”

그러기 위해 마탑을 이용해 제국 전역에 처형식을 실시간으로 상영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발타자르의 계획은 제대로 먹혀들었다.

평소 백성들에게 악평이 자자하던 자비에고 주교였다.

거기다 마왕에게 혼을 팔아 모습마저 흉측하게 변하여 극적인 상황까지 연출되었으니 실패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었다.

“자비에고 주교는 아르세우스 황태자 전하의 이 갸륵한 마음을 무참히 짓밟고 오펜바흐 남작령을 상대로 대대적인 약탈을 자행했다. 자국민을 상대로 벌인 약탈이었고 이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중죄이다.”

발타자르의 말이 이어질 때마다 자비에고 주교의 파벌에 속한 이들이 몸을 흠칫흠칫 떨어대었다. 자비에고 주교의 처형식이 끝나면 다음 차례는 자신들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또한, 지은 죄를 뉘우치고 자숙을 해도 모자랄 상황에서 마족과 손을 잡고 타락하였다. 한 교단을 이끄는 교주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추악한 이 모습을 보라!”

영상구가 자비에고 주교의 흉측한 몰골을 비추기 시작했다.

처형식이 송출되는 도시 곳곳에서 기함을 토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여 자비에고 주교의 모든 권한과 재산을 회수하고 황태자 전하께서 일임하신 권한으로 참형에 처한다!”

발타자르의 선고가 끝나기가 무섭게 단두대에서 기요틴이 떨어져 내렸다.

터엉-

그것으로 끝이었다.

순식간에 자비에고 주교의 목이 단상 아래로 추락하고, 그의 목에서 붉은 피가 쉼 없이 쏟아져 나왔다.

한때, 제도를 뒤흔들 정도로 성세를 누린 권력자치고는 허무한 최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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