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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101화 (101/183)

공작이 회귀함 101화

“그 뒤로는 뭐 곳곳에 도망친 흔적이 남아 있어서 찾는 게 그리 어렵진 않았어요. 흔적을 뒤따라가다 보니 산속 깊은 곳에 있는 동굴에 몸을 숨기고 있던 마을 사람들을 찾았고 거기서 대장이 찾는 천둥새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죠.”

천둥새를 찾게 된 과정을 마치 모험담처럼 풀어놓으며 이야기하던 트리스탄이 돌연 불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그 사람. 엄청 뻔뻔하더라고요.”

“뻔뻔하다니?”

“글쎄 어찌나 저희 애들을 부려 먹던지. 처음에는 저희를 자비에고 주교의 병사들로 착각해서 돌멩이를 막 던져대고 난리도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대장이 자길 찾는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태도를 돌변해서는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하면서 막 부려먹는데 저희 상전인 줄 알았다니까요?”

생각할수록 화가 치미는지 트리스탄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솔직히 기절시켜서 강제로 끌고 갈까도 몇 번 생각해 보기는 했는데 대장이 정중히 모셔오라고 말씀하셨으니 어쩔 수 있나요. 그냥 해달라는 거 다 해줬죠. 그런데 일이 다 끝나고 같이 가자고 말하니깐 하는 말이 마을을 복구해야 해서 바쁘다고. 정 만나야겠으면 직접 찾아오라는 거 있죠? 사람이 어쩜 그렇게 뻔뻔한지.”

“자넨 그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나 보군.”

“솔직히 말씀드리면, 네. 그 사람, 마음에 들지 않아요.”

트리스탄의 대답에 발타자르가 쓰게 웃었다.

어지간히도 트리스탄에게 밉보인 듯했다.

“하지만.”

“음?”

“대장이 왜 그 사람을 찾으셨지는 알겠더라고요.”

“내가 왜 그를 찾는지 알겠다고?”

“네.”

지금까지 그녀가 이야기한 내용만 보면 그 어디에도 트리스탄이 발타자르가 천둥새, 아니, 글루스를 영입하려는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그녀가 그 이유를 알겠다고 말하니 문득 호기심이 생겼다.

“자네 생각을 들어볼 수 있겠는가?”

발타자르의 물음에 트리스탄이 망설임 없이 곧장 답했다.

“조금 전에 제가 동굴에 숨어 있는 돔보 마을 사람들을 만났을 때 돌팔매질을 당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랬지.”

“이건 부끄러워서 말씀 못 드렸는데요. 사실 단순히 돌팔매질만 당한 게 아니었어요.”

그렇게 트리스탄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 * *

돔보 마을 사람들이 남긴 흔적을 따라 산속 깊숙이 들어온 트리스탄은 얼마 지나지 않아 큰 동굴을 발견했다.

동굴 앞에는 사내들이 경계를 서는 듯 나무로 된 목창을 손에 쥐고 있었고 그들의 머리 위로는 안에서 불을 지피는 듯 하얀 연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트리스탄은 도망친 돔보 마을 사람들이 지금 보이는 동굴에 숨어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경계를 서는 사내들이 저리 무방비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보아 다행히 자비에고 주교의 병사들이 이 산속까지는 수색하지 않았나 본데요?”

트리스탄의 오른팔인 울프가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는 사내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로선 다행이지. 손님께서 무사하단 뜻이니까. 자, 가자. 빨리 볼일 끝내고 복귀해야지.”

그렇게 말하며 트리스탄이 말을 몰아 앞서나갔다.

그러자 울프가가 재빠르게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

“척후조를 먼저 보내시는 것이 어떨까요? 큰일은 없겠지만 혹시 모르잖아요.”

울프가의 제안에 트리스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됐어. 너도 봤다시피 침입자에 대해 별다른 대비책도 없는 것 같은데 뭘. 그리고 만에 하나 뭔가를 준비했다고 해도 평생 농사나 짓던 사람들이 전부일 텐데 얼마나 무시무시한 걸 준비했으려고. 별것 없을 거야.”

대수롭지 않단 투의 말에 울프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트리스탄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그녀가 끌고 온 이들은 모두 북부의 동토에서 살던 시절부터 그녀와 함께하던 역전의 용사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일평생 무기 한 번 잡아보지 못한 농민들에게 당하는 상황은 전혀 상상되지 않았다.

그렇게 트리스탄과 그녀의 수하들이 긴장을 풀고선 동굴을 향해 이동하는데 갑작스레 이변이 발생했다.

휘리릭─

“으아아악!”

옆에서 걷던 병사 하나가 갑자기 나무 위에 매달렸다.

함정이었다.

챙- 챙-

트리스탄의 수하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고 경계태세에 돌입했다.

그것을 신호로 사방에서 각종 함정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거대한 통나무부터 시작하여 나무로 된 덫과 그물망 등이 덮쳐왔다.

“하!”

트리스탄이 기가 차다는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리 방심을 했다고는 하지만 이런 조잡한 함정 따위에게 당한 수하들을 보니 화가 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다행히 사망자는 없지만, 부상자가 여럿 발생했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트리스탄이 홱- 소리가 나도록 고개를 돌리며 동굴이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대장! 피해요!”

돌연 울프가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트리스탄이 고개를 돌려 울프가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바라보자 그곳에는 나무에 매달린 통나무 하나가 빠른 속도로 그녀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와. 진짜.”

그녀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동굴 앞에서 무방비한 태도를 보인 경계병들의 모습은 적들의 방심을 끌어내기 위해 의도된 모습이 분명했다.

트리스탄이 허리춤의 손도끼를 뽑아 들었다.

동시에 손도끼에 오러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날아오는 통나무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가볍게 손도끼를 휘둘렀다.

콰앙-

손도끼와 통나무가 맞부딪치자 큰 폭음과 함께 통나무가 터져 나가듯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나갔다. 트리스탄이 서늘한 눈동자로 울프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부상자는?”

그녀가 화가 났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울프가가 빠르게 답했다.

“다섯 정도가 중상이고 나머지는 자잘한 경상이라 싸우는 데 아무런 문제 없어요.”

울프가의 말에 트리스탄의 미간이 와락 찌푸려졌다.

“……다섯이나?”

“갑작스러운 일이기도 했고 적이 없다고 판단해서 방심한 것도 있어서……”

병사들도 아니고 한낱 농민들에게 당했다고 생각하니 트리스탄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반은 부상자들과 함께 잔류하고 나머지는 따라와.”

트리스탄이 차갑게 얼어붙은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무척이나 드물게 그녀가 화난 기색을 내비치자 울프가가 그녀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다 죽이실 생각은 아니시죠?”

울프가의 물음에 트리스탄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럴 리가. 대장이 정중히 모셔오라고 했는데 죽일 수야 없지.”

“그렇다면 다행이구요.”

트리스탄의 대답에 울프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불의의 사고로 다리 하나 부러진 것 정도는 눈감아 주시겠지.”

이어진 트리스탄의 말에 울프가가 경각하며 트리스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말을 끝마친 이후 말을 몰아 빠르게 동굴로 향하고 있었다.

“대, 대장!”

울프가가 다급히 말 위에 오르며 수하들을 이끌고 트리스탄의 뒤를 따라갔다.

“진짜 그랬다간 큰일 나요! 아! 대장!”

* * *

함정을 어찌나 많이 설치했는지 동굴로 향하는 내내 여러 함정들이 트리스탄을 덮쳐왔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는 오러를 머금은 손도끼로 함정들을 분쇄해 나가며 빠른 속도로 동굴에 접근해갔다.

그렇게 막힘없이 나아간 끝에 트리스탄은 숲을 벗어나 동굴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건 또 뭐야?”

멀리서 볼 때는 눈치채지 못했는데 이렇게 가까이 접근해서야 보이는 목책에 트리스탄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산채 저리가라인데?”

북부에서 몇 번인가 산적들을 토벌하기 위해 산채들을 공략한 적은 있지만, 이 정도로 철저하게 준비된 산채는 본 적이 없던 그녀였다.

“대장!”

트리스탄이 목책을 응시하는 그때 뒤늦게 도착한 울프가가 다급히 그녀를 부르며 다가왔다.

“어휴. 벌써 일을 벌이신 줄 알고 조마조마했잖아요. 큰 대장이 정중히 모셔오라고 했는데 다리를 분지른다니. 얼마나 혼나시려고 그런 말을 하신 거예요.”

“시끄러. 저거나 봐.”

트리스탄이 울프가의 잔소리를 일축하곤 동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뭔데 그렇게…… 억!”

무심결에 동굴을 바라본 울프가는 목책을 발견하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목책도 목책이지만 그 위에 서 있는 병사들의 무장 수준은 꾀나 준수한 편이었다.

“뭐야. 마을 사람들만 숨어 있는 것 아니었어요?”

“나도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네.”

“저 정도 수준이면 뚫는데 꾀나 애를 먹겠는데요?”

“그렇지?”

“네. 지리도 저쪽에 유리하고 무장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니 지금 끌고 온 애들로는 정면에서 뚫기는 힘들겠어요. 하려고 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만 큰 대장의 말씀도 있으니 아무래도 살수를 쓰기는 어려우니까요.”

트리스탄은 잠시 생각하며 머리를 차갑게 식혔다.

아무리 인근에 적이 없다고는 해도 한순간의 방심으로 수하들을 여럿 다치게 한 스스로의 멍청함에 화가 나서 무작정 달려오기는 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저들에겐 아무런 잘못도 없었다.

저들로서는 자비에고 주교의 병사들의 추적해 오는 것을 방비하기 위해 설치한 함정이었을 것이고 그것에 당한 것은 오롯이 트리스탄의 책임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엄연히 트리스탄이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는 글루스 이덴시아라는 사내를 발타자르에게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저들과 무력 충돌은 할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되었다. 이건 오롯이 대화로 풀어야만 하는 문제였다.

“일단 저들과 대화를 해봐야 할 것 같으니까 나머진 여기서 대기하고 울프가 너는 따라와.”

말하곤 트리스탄이 울프가와 함께 동굴로 향했다.

* * *

“정지! 소속과 신분을 밝히십시오!”

트리스탄이 다가가자 목책 위에서 경계를 서고 있던 병사가 기다렸다는 듯이 화살을 겨누며 소리쳤다. 이에 트리스탄은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적대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몸으로 표현하며 말했다.

“발타자르 군 소속 제1기병 대장 트리스탄.”

발타자르 군이라는 그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목책 너머로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그러더니 잠시 후 목책의 문이 열리며 그 안에서 한 사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유약해 보이는 인상의 사내는 아무런 호위 병력도 없이 홀로 목책을 벗어나 트리스탄에게로 다가왔다.

“발타자르 공작 각하의 군에 소속된 분들이십니까?”

재차 확인하듯 사내가 묻자 트리스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러는 그쪽은?”

“전 글루스 이덴시아라고 합니다.”

글루스가 자신을 소개하자 트리스탄이 눈을 빛냈다.

발타자르가 찾던 사내였다.

트리스탄이 자세를 고쳐 잡으며 말 위에서 내려왔다.

그러곤 정중한 태도로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글루스 님. 발타자르 공작 각하의 명을 받아 모시러 왔습니다.”

“발타자르 공작 각하께서 말씀이십니까?”

“네. 최대한 정중히 모셔오라는 명이 있으셨습니다.”

“이유를 들을 수 있겠습니까?”

“거기까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단지 글루스님을 모셔오라는 명을 받았을 뿐입니다만.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트리스탄의 물음에도 글루스는 답이 없었다.

그저 묘한 시선으로 트리스탄과 울프가, 그리고 동굴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는 그녀의 수하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사실 따라가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만…….”

그렇게 한동안 말이 없던 글루스가 돌연 말을 꺼내더니 말끝을 흐렸다. 말로는 문제가 없다고 했지만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어투였다.

“편히 말씀하셔도 됩니다. 글루스님은 발타자르 공작 각하의 손님. 따라서 초대에 응하시는 데 문제가 있다면 저희가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염치불구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우선 그전에 한 가지 여쭤보겠습니다. 발타자르 공작 각하의 군대가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자비에고 주교가 승인한 약탈의 정리가 끝났다고 봐도 되겠습니까?”

글루스의 물음에 트리스탄이 깜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냥 단순한 추론이었습니다만. 표정을 보니 제 추론이 맞은 것 같군요. 좋습니다. 그렇다면 마음 편히 부탁드릴 수 있겠군요.”

글루스가 대답을 은근슬쩍 피하며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이사를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글루스의 말에 트리스탄이 벙찐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사…… 요?”

“네, 이사요. 약탈을 자행하는 자비에고 주교의 병사들을 피해서 이곳에 숨어든 지도 제법 시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처음 왔을 때와 달리 제법 짐들이 쌓여서 말입니다. 물론 저희만으로도 가능한 일입니다만, 인근에 산적들도 있고 아무래도 안전에 문제가 있어서 말입니다. 거기다 공작 각하의 초대가 있으셨으니 거기에 응하려면 조금이라도 빨리 움직여야 할 텐데 그러자면 트리스탄 님과 병사분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만.”

발타자르의 초대에 응하는 대신 이사를 도와달란 소리였다. 말은 도움 요청이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이건 도움을 강요하는 꼴이었다.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했지만, 강제로 끌고 가지도 못하는 상황이니 들어주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아 참! 그리고 제가 혹시 몰라 여러 함정을 파 두었는데 그중 하나가 지금쯤 기다리고 숲속에서 기다리고 계실 수하분들께 다가가는 중일 겁니다.”

“……뭐?”

시종일관 예의 바른 모습으로 존대를 고집하던 트리스탄이 처음으로 반말을 내뱉었다.

“말씀드렸다시피 자비에고 주교의 병사들을 피해서 이곳에 숨어든지라 숲속에 설치한 함정 말고도 여러 대비책을 강구해 두었습니다. 그중 하나가 산적들을 이용하는 것이었고요. 아! 하지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바로 사람을 보낼 테니 산적들은 금방 물러갈 겁니다.”

사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일이었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 일로 트리스탄에게 빚을 씌우려는 의도에서였다.

글루스의 말에 트리스탄은 잠시 제 머리칼을 뒤로 쓸어넘기더니 무표정한 얼굴로 글루스를 응시하며 물었다.

“숲속에 수하들을 남겨 두고 온 것은 어찌 알았어? 아무리 빨리 움직여도 사람이 말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을 텐데 말이야.”

“뭐…… 나름의 수단이 있었다는 것만 알려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전투에서 정보는 생명이니까요.”

능글맞은 웃음을 지어 보이는 글루스의 모습에 트리스탄은 문득 그의 얼굴에 주먹을 한 방 꽂아 넣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꼈다.

말하는 것이나 지금까지의 조치들로 볼 때 확실히 발타자르가 탐낼 만한 인재이기는 했다.

‘하지만 성격이 너무 능글맞아.’

속으로 투덜거리며 트리스탄이 말했다.

“됐어. 내버려 둬도 돼.”

트리스탄의 말이 의외였는지 글루스가 의아하단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산적들의 수가 얼마나 많던지 별문제는 없을 거야. 왜냐하면…….”

그녀가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글루스를 응시하며 말했다.

“누구 때문에 우리 애들이 지금 한창 열이 올라 있는 상태거든.”

잡아먹을 듯이 바라보는 트리스탄의 눈빛에도 글루스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렇습니까? 뭐. 그러시다면야. 그보다 어떻게. 도와주시겠습니까?”

웃으며 묻는 그의 모습이 너구리처럼 보였다.

* * *

“그래서 이사를 도와주긴 했는데요. 거기 동굴에 숨어든 사람들이 모두 돔보 마을 출신은 아니더라고요? 인근 마을 사람들도 있고 오벤바흐 성에서 도망친 병사들도 있고 하여튼 인근에 도망자들은 몽땅 거기로 모여든 것 같았어요. 덕분에 저희 애들만 고생했죠. 그래놓고 일이 끝나니까 뭐? 하! 참. 어이가 없어서.”

생각할수록 화가 나는지 트리스탄이 애꿎은 제 허벅지만 주먹으로 두드려 대었다. 그 모습에 발타자르가 쓰게 웃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트리스탄에게 능력을 인정받은 것인가?’

그녀에게 능력을 인정받은 이상 인간관계로 갈등을 빚을지언정 그의 능력을 불신하여 갈등이 빚어지는 일은 없을 듯 보였다.

그리고 전자의 경우는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트리스탄의 말을 들어보니 바로 실전에 써먹어도 되겠군.’

단순히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숨어든 것이 아니라 추격에 대비하여 주변에 함정을 설치하고 진지를 구축한 것이나 도망친 이들을 규합한 점.

또한, 산적을 이용하는 계책과 여러 대비책을 준비해 둔 점 등으로 볼 때 확실히 인재는 인재였다.

발타자르가 생각하는 동안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트리스탄이 언덕 아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다 왔네요. 저기예요.”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니 돔보 마을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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