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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99화 (99/183)

공작이 회귀함 99화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듯한 사나운 눈빛에 자비에고 주교가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네 녀석이 여긴 어떻게……?”

발타자르의 등장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중얼거리자 발타자르가 팔짱을 끼며 답했다.

“마기가 사방으로 진동하는데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겠나?”

갑작스러운 발타자르의 등장에 잠시 위축되었던 자비에고 주교였으나 이내 전신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운에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흥! 아무래도 좋다. 어차피 네놈을 찾아가려던 참이었는데 제 발로 찾아왔으니 수고를 덜었구나!”

말하며 자비에고 주교가 쇠창살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그의 손이 칼날과도 같은 모습으로 변하더니 순식간에 쇠창살을 베어내었다.

쩌엉─

복도에 쇠붙이가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비에고 주교와 발타자르 사이를 막는 장애물이 사라지자 자비에고 주교가 거침없는 몸놀림으로 발타자르를 향해 달려들었다.

“단숨에 베어주마!”

자비에고 주교가 칼날로 변한 팔을 휘둘러오자 발타자르가 검집에서 검을 반쯤 뽑아내며 자비에고 주교의 일격을 막아내었다.

카앙-

쇠붙이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그 갑작스러운 소란에 간수들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각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저, 저게 무슨…….”

달려온 간수들은 마기에 물들어 온몸에 검은 반점이 가득한 자비에고 주교의 흉한 꼴을 보곤 적잖이 당황한 듯했다.

그러다 곧 정신을 차리곤 각자의 무기를 쥐어 들며 발타자르를 도우려 했다.

“각하. 위험합니다!”

“저희가 시간을 벌 테니 몸을 피하십시오!”

마음은 갸륵하지만, 저들로는 자비에고 주교의 일격도 막아내기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흉흉한 기세를 내뿜는 자비에고 주교가 그리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물러가게.”

발타자르가 다가오는 간수들을 제지했지만, 그들은 이 상황이 무척이나 위험하다고 판단했는지 다가오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분명 물러가라 했을 텐데?”

이에 발타자르가 재차 경고에 가까운 제지를 하자 간수들이 발타자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긴급한 상황임이 분명해 보이는데도 조금의 표정 변화 없이 평온한 얼굴에 간수들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가서 기사님들을 불러오겠습니다.”

여기서 자신들이 끼어드는 것보다는 서둘러 지원군을 불러오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간수들이 황급히 지하 감옥을 벗어나기 위해 달려나갔다.

그러나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자비에고 주교가 아니었다.

“그냥 보내줄 것 같으냐!”

자비에고 주교가 팔을 휘두르자 팔이 채찍처럼 길게 늘어나며 지하 감옥을 벗어나기 위해 달리고 있는 두 간수들의 등을 향해 날아들었다.

챙-

그것을 발타자르가 가볍게 쳐내더니 씨익-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한눈을 팔아서야 되겠는가?”

발타자르의 도발에 자비에고 주교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좋다. 죽는 것이 그리 소원이라면 우선 네놈을 먼저 도륙 내주마!”

비록 발타자르가 마스터, 그것도 마스터 중에서 손에 꼽히는 강자라고는 하지만 심장에서 쉼 없이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힘에 취한 자비에고 주교는 이 정도 힘이라면 발타자르를 충분히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들었다.

“죽어라!”

자비에고 주교의 몸에서 수백 개에 달하는 검은 촉수가 쏘아져 나왔다.

동시에 반쯤 뽑혀 있던 발타자르의 검이 완전히 검집을 벗어나더니 유려한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일격.

단 일격에 수백 개에 달하던 촉수가 베여 고깃덩이가 되어 바닥으로 추락했으며 자비에고 주교의 두 팔 역시 촉수들과 같은 신세가 되었다.

“커헉…… 이 무슨…….”

검이 어떻게 휘둘러졌는지조차 감지하지 못했다.

그저 검이 휘둘러졌고.

이 꼴이 되었다.

“한심하군.”

비록 안드라스에게 혼을 팔아 강력한 힘을 손에 쥐었다고 해도 자비에고 주교는 일평생 제도에서 정치나 하던 인물이었다.

싸움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 이제 와 강력한 힘을 손에 쥐게 되었다 한들 그것을 제대로 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물며 발타자르가 작정하고 휘두른 검이었으니…….

“보아하니 마왕에게 혼을 팔아넘긴 것 같은데 그런 것치곤 별것 없군그래.”

발타자르가 경멸이 담긴 눈동자로 자비에고 주교를 응시하며 말했다.

“크으윽…… 죽어어어!”

그것이 치욕스러웠는지 자비에고 주교가 악을 쓰며 발타자르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의 몸이 일순간 부풀어 오르더니 가시들이 돋아났다. 마치 철퇴와도 같은 모습.

모든 힘을 끌어올려 감행한 일격이었지만 발타자르에겐 상대가 되지 못했다.

콰아앙─

발타자르의 일검에 적중당한 자비에고 주교는 그대로 뒤로 날아가 석벽에 부딪혔다.

여기서 죽일 생각이 없기에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지 않았기에 망정이지 죽일 작정으로 휘둘렀다면 그 자리에서 즉사를 면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쿨럭…….”

제 모습으로 돌아온 자비에고 주교가 피를 한 움큼 토해내었다.

그런 그를 향해 발타자르가 천천히 다가갔다.

주춤주춤-

발타자르가 다가가자 자비에고 주교가 겁에 질린 눈동자로 뒷걸음질 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등에 벽이 닿자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날 죽일 셈이냐?”

발타자르가 피식 웃었다.

기세등등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 저런 나약한 모습을 보이니 우습기가 그지없었다.

“그리 두려워 말게. 지금은 죽을 때가 아니니까.”

자비에고 주교는 제국민이 모두가 보는 가운데 공개적으로 죽어야만 했다. 더군다나 마왕에게 혼을 판 대가로 이리 모습이 변한 지금. 더더욱 그래야만 했다.

* * *

‘대체 뭐 하는 인간이지?’

안드라스는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했다.

일평생 싸움이라곤 해본 적이 없다고 해도 마기에 잠식당한 인간은 마물과도 같았다. 말인즉 이성보다 본능으로 움직이게 된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싸움은커녕 제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든 갓난아기라고 할지라도 마기에 잠식될 경우 어지간한 성인 남성과 맞상대가 가능할 정도로 강해지게 된다.

하물며 자비에고 주교는 노인이라고 해도 성인.

거기에 그저 그런 마족도 아니고 무려 마왕에게 힘을 부여받은 상황이었다.

아무리 상대가 마스터급의 강자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설마 인간 따위가 최상위 서열의 마왕과 비슷한 힘을 가진 것은 아닐 테고…….’

안드라스는 이내 그 생각을 부정했다.

최상위 서열의 마왕들은 그야말로 마의 정점이었다.

지금은 멸종하고 사라진 드래곤들 조차도 감히 대적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존재들.

그것이 최상위 서열의 마왕들이었다.

그런데 인간이 그 최상위 서열의 마왕과 동등한 힘을 지니고 있다?

자신이 떠올린 가정이지만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린 스스로가 한심해질 정도였다.

‘일단 물러나는 것이 좋겠군.’

쓸 만한 패로 쓸 만한 인간을 물색하기 위해 투자한 시간이 아깝기는 하지만 이래서야 패로서의 효용 가치가 전무해져 버린 상황이었다.

그 말고도 패로 쓸 만한 인간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 이만 물러나기로 결정한 안드라스가 자비에고 주교에게 이목이 쏠린 틈에 지하 감옥을 벗어나려던 순간이었다.

“어딜 그리 급히 가는가?”

어느샌가 발타자르가 안드라스를 향해 검을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안드라스는 걱정하지 않았다.

만에 하나 이대로 도망치지 못하고 발타자르에게 당한다고 해도 어차피 영체로 온 것이니 약간의 피해는 있을지언정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싸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당신과 대화를 나누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으나 오늘은 인사차 들른 것이니 다음에 정식으로 인사드리지요.]

그리 말하곤 안드라스의 얼굴을 비추던 검은 구체가 연기처럼 흩어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지하 감옥을 빠져나갔다.

베어버리려면 못 벨 것도 없으나 그렇게 하면 안드라스의 본체를 찾아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발타자르는 팔짱을 끼고선 안드라스가 도망치는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안드라스가 완전히 지하 감옥을 빠져나가기가 무섭게 레티시아를 불렀다.

“레티시아. 따라가서 처리하게. 본체는 따로 있을 테니 참고하게나.”

발타자르의 지시에 대기하고 있던 레티시아가 허공에서 모습을 드러내더니 투덜거렸다.

“너무 부려먹는 것 아니에요?”

레티시아의 투덜거림에 발타자르가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자 그녀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알겠어요. 아쉬운 사람은 저이니 더 열심히 움직여야죠.”

그러곤 모습을 드러냈을 때와 같이 아무런 전조도 없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 * *

그날 밤.

발타자르는 창가에 걸터앉아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와인 잔을 기울이며 바라보는 밤하늘은 제법 운치가 있었다.

“안드라스가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니 때가 코앞으로 다가오긴 했나 보군.”

회귀 전의 안드라스가 등장한 시기는 황제 사망 직후 황위 계승권을 놓고 황족들이 대립하던 시기였다.

당시 안드라스는 황족들과 대신들을 비롯하여 권력자들의 욕망을 부추기며 불화를 조장하고 제국 정계를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다.

안드라스의 수작질로 인해 권력자들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급부상하게 된다. 이후 마왕들이 연달아 등장하면서 권력 구도가 큰 격변을 맞이하게 되고 그것이 제국 내전으로까지 이어졌었다.

뭐, 안드라스의 경우 지금은 레티시아의 손에 의해 한 줌의 잿더미로 변해 버렸지만.

하여튼 안드라스가 등장했다는 것은 곧 다른 마왕들 역시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함을 뜻했다. 비록 회귀 전과는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이것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현재의 권력 구도가 격변한다는 뜻이었고 서둘러 서부를 정리해야만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내일이면 슈텔리앙 후작이 도착할 테고…….’

슈텔리앙 후작에게서 내일 오전 중으로 오펜바흐 남작령에 도착할 것이란 연락을 받은 것이 불과 몇 시간 전이었다.

그 소식을 접하자마자 전선에 비상경계령을 내려 두었으니 내일 자비에고 주교의 처형식이 거행되는 대로 잠시 정체되었던 전쟁이 재개될 것이었다.

‘서부만 정리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준비는 모두 끝나게 된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본격적인 행보를 보일 마왕들을 모조리 무찌르고 대륙의 힘을 하나로 모아 남부 대수림으로 향하여 마신의 강림을 저지한다면 발타자르가 원하는 결말을 맞이할 수 있으리라.

물론 거기까지 도달하는 데는 무수히 많은 과정들을 거쳐야겠지만.

똑똑-

발타자르가 생각에 빠져 있는 그때.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다.

“대장. 찾으시는 분을 찾았어요.”

트리스탄의 목소리였다.

그녀에게 천둥새를 찾으란 지시를 내려 두기는 했지만 그리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는데,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그녀가 천둥새를 찾아낸 것으로 보였다.

“들어오게.”

발타자르가 기대감이 담긴 눈빛으로 문을 응시했다.

이윽고 문이 열리고 트리스탄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들어온 것은 그녀뿐이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천둥새는 보이지 않았다.

“찾았다더니. 왜 혼자 왔는가?”

발타자르가 묻자 트리스탄이 제 볼을 긁적이며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어…… 음. 찾기는 찾았는데요.”

“그런데?”

“그…….”

잠시 대답을 망설이던 트리스탄이 이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바쁘다고. 정 만나야겠으면 직접 찾아오라던데요…….”

말을 하며 트리스탄이 슬쩍 발타자르의 눈치를 보았다.

무척 기분 나빠할 것이란 그녀의 생각과는 다르게 발타자르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강제로라도 끌고 올까요?”

트리스탄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곤 외출을 하려는 듯이 코트를 걸치고 검을 챙겨 들었다.

“설마 직접 가시려고요?”

“만나고자 한다면 직접 찾아오라고 했다지 않았나. 아쉬운 쪽은 나이니 어쩔 수 있나. 말대로 직접 찾아가야지. 안내하게.”

발타자르의 말에 트리스탄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겉보기에는 일반인 같아 보이던데 대장이 직접 찾아갈 정도로 중요한 사람인가요? 대체 그 사람이 뭐길래요?”

그녀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웃으며 말했다.

“왕좌지재王佐之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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