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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93화 (93/183)

공작이 회귀함 93화

발타자르의 주도하에 열린 서부 전쟁은 북부와 중앙이 손을 잡고 수백의 마법사, 수천의 기사, 그리고 수십만의 병사가 동원된 대규모 전쟁이었다.

병력을 총 3군으로 나누어 지정된 시일에 북부와 중앙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서부를 향해 진격을 시작하니, 미처 방비하지 못한 서부의 영주들은 추풍낙엽처럼 패전을 반복하며 속수무책으로 연합군의 진군을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개전 3일 만에 서부의 삼분지 일이 연합군의 수중에 함락되었다.

이에 서부의 영주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빌 헬름 공작가로 지원을 요청하는 전령을 보냈지만, 세계수의 이변을 해결하기 위해 주력을 대다수 파견한 빌 헬름 공작가로서는 그들에게 지원을 보낼 여력이 없었다.

이대로 상황이 지속된다면 서부의 패배는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처럼 보였다.

하지만 마법사들의 압도적인 화력 앞에 서부의 영지들이 변변한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패퇴하기를 반복하자 승리에 취한 자비에고 주교는 2군을 이끌고 사전에 합의한 포위망을 무너뜨리며 돌발적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이번 전쟁의 최종 목표는 빌 헬름 공작가였고 그 빌헬름 공작가가 다스리는 윈저 성을 함락한다면 이번 전쟁의 1등 공신이 되는 것은 떼 놓은 당상이기 때문이었다.

공적에 눈이 먼 2군의 돌발 행동이 시작되자 3군에 소속된 황제파의 파벌들이 자비에고 주교와 그의 파벌들이 자신들보다 큰 공적을 세울 것을 염려하여 슈텔리앙 후작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결국, 3군 역시 2군과 마찬가지로 그나마 유지되고 있던 포위망을 무너뜨리곤 돌발 행동에 나섰다.

이러한 2군과 3군의 돌발 행동에 순탄하게 진행되던 서부 공략이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 * *

“장군. 이대로 계속 수수방관만 하실 생각이십니까?”

호위들과 함께 진영을 시찰 중이던 발타자르에게 가웨인이 말을 걸어왔다.

“저들을 저리 내버려 두면 전황이 어찌 급변할지도 모릅니다. 그동안의 승리에 도취되어 저리 빌 헬름 공작가를 무시하다가는 사달이 나도 조만간 큰 사달이 날 겁니다.”

가웨인의 지적은 합당한 것이었다.

지금까지야 기습적인 진군과 빌 헬름 공작가의 주력이 이종족들의 땅으로 향했다는 점이 맞물려 별다른 저항 없이 압도적인 연승가도를 달리고 있었지만, 이 상황이 언제까지고 지속되리란 보장이 없었다.

오랜 세월 서부의 패자로 군림해온 빌 헬름 공작가가 이대로 손 놓고 무너져 내릴 리는 없을 테니까 말이다.

또한, 동부와 남부의 영주들이 연합군의 서부 침공을 규탄하며 무력시위를 벌이는 중이었다.

물론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 동부와 남부 인근에 아크메이지들을 급파하여 그들이 쉬이 경거망동하지 못하도록 조치해 두었고, 몬스터들과 마왕의 존재로 본격적인 군사행동은 하지 못할 테지만, 일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했다.

몬스터들과 마왕의 사태가 정리되는 대로 그들은 본격적인 군사행동을 실시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서부와 전쟁을 벌이는 중에 남부와 동부도 함께 상대하는 최악의 상황이 올지도 몰랐다.

한 수 한 수를 신중을 기해서 움직여야 할 상황에 저리 즉흥적으로 움직이다 만에 하나 패전을 하는 상황이라도 오게 된다면…….

“내버려 두게.”

“장군!”

가웨인이 말을 멈추어 세우며 말했다.

“사실 전 아직도 장군께서 이번 전쟁을 일으키신 의도를 모르겠습니다. 현재 상황이 저희에게 유리하게 돌아간다고는 하지만 사전에 준비된 것도 아니고 이렇게 갑작스레 전쟁을 일으키신 데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해야 할 상황에서 2군과 3군에서 돌발 행동을 보임에도 아무런 제지조차 하지 않으시지 않습니까.”

그동안 참아왔던 것이 터졌는지 가웨인의 말에는 막힘이 없었다.

“물론 서부를 수중에 넣게 되면 선제후들을 비롯한 권신들이 쉬이 경거망동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을 테고 중앙의 지배권 또한 공고해지겠지요. 하지만 그것은 서부를 점령했을 때의 얘기이지 서부와 동부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이번 전쟁을 마무리 짓지 못하게 되면 자칫 내전으로 치달을지도 모를 상황이 아닙니까.”

가웨인으로서는 이 상황이 답답할 만도 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적절한 시기에 전쟁을 일으킨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넓은 시야로 살펴본다면 이 전쟁이 얼마나 무리하고 위태로운 전쟁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도 발타자르는 이번 일에 대해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어떠한 생각을 하는지 알려주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서부 공략에 적극적으로 임하기는커녕 방관하는 태도만 보이고 있으니 답답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말을 끝마친 가웨인이 불퉁한 표정을 짓고 있자 발타자르가 말을 멈추어 세우고는 가웨인을 빤히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러곤 호위들을 물리고는 가웨인에게 물었다.

“많이 답답했던가?”

호위들이 물러가자 그제야 가웨인이 편안한 말투로 퉁명스레 답했다.

“그럼. 답답하지. 안 답답하겠습니까?”

가웨인의 대답에 발타자르가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 위로 매 한 마리가 날아와 머리 위를 선회하고 있었다.

슬슬 가웨인에게도 일을 설명해 줄 때가 된 듯싶었다.

“지금쯤이면 로키가 빌 헬름 공작령 인근에 도착했을 걸세.”

북부에 있어야 할 바이칸들의 왕 우트가르트 로키가 뜬금없이 빌 헬름 공작령 인근에 도착했을 것이라는 말에 가웨인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바이칸의 왕이 말입니까? 설마……?”

그러다 곧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깨닫곤 멍하니 발타자르를 바라보았다.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이지만 2군과 3군의 돌발 행동에도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던 발타자르의 그간 행적들과 로키의 존재.

이 두 가지가 연결되는 가정은 딱 하나뿐이었다.

“세계수의 이변과 몬스터들의 대 이동. 이 사건들은 단순히 우연의 일치로 동시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네.”

세계수를 좀먹고 있는 벌레들.

대수림의 터줏대감이던 몬스터들 조차 도망칠 수밖에 없게 만든 무언가.

이 모든 것들의 중심에는 마왕이 있었다.

“이제 곧 이 땅에 강림한 마왕들이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할 걸세. 그동안 누차 언급했던 그 마왕들이 말일세. 대륙의 세력 구도는 격변할 것이고 난세가 찾아오겠지.”

말하곤 하늘을 올려다보던 발타자르가 ‘물론 지금도 충분히 난세이기는 하지만.’하고 중얼거리더니 작게 웃었다.

“우리에겐 더 이상 시간이 없네. 이렇게 무리를 해가며 서부를 침공하는 것도 그 때문이지. 현재의 제국 실정으로는 마왕이라는 강력한 적이 등장한다고 해도 쉬이 하나로 뭉치려 하지 않을 걸세. 오히려 마왕과 손을 잡지 않으면 다행일 정도겠지.”

대신들의 역모를 저지함으로써 제국 내전의 불씨는 가까스로 잠재웠지만 언제 다시 타오를지 몰랐다.

야망을 가진 군웅들은 제국 도처에 산재해 있으며 그들에게 제국에 대한 충성심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마왕들은 그들의 야망을 부추기며 손을 내밀 테고 그들은 자신들의 야망을 위해 그 손을 잡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한 상황이 도래하기 전에 제국 황실은 각 지방의 영주들에 대한 강력한 통제권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한 가장 빠른 길은 중앙 황실의 힘을 기르는 것이고 말이다.

그것을 위한 전쟁이었다.

이번 전쟁은.

북부와 중앙에 이어 서부까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면 군웅들은 제국 황실을 뜻을 쉬이 거스를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강제로라도 그들을 이끌어야만 비로소 마신의 강림을 저지할 첫발을 딛게 될 수 있을 테니까.

“어찌. 이만하면 그동안의 답답함이 해결되었는가?”

발타자르가 씨익- 웃으며 묻자 가웨인이 복잡한 심정이 물씬 드러나는 표정으로 답했다.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물어보게.”

“무엇을 위해 이리 노력하시는 겁니까? 물론 마신의 강림을 저지하겠다는 큰 뜻이 있음은 압니다. 하지만 이 대의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전 그것이 궁금합니다. 최근 장군의 행보를 보면 권력자가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황실이나 이 제국에 대한 충성심 때문도 아니라고 생각됩니다만.”

가웨인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활강하던 매가 빠르게 낙하하더니 이내 거친 날갯짓과 함께 내밀어진 발타자르의 팔 위로 내려앉았다.

“나는…….”

말을 꺼내려던 발타자르가 ‘흠흠.’하고 잠시 목을 가다듬으며 뜸을 들였다. 마음속으로는 수천 번도 더 말할 수 있지만, 이것을 직접 제 입으로 말하려니 조금.

아주 조금. 부끄러워졌다.

발타자르가 매를 쓰다듬으며 딴청을 부리더니 슬쩍 가웨인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곤 멋쩍은 표정으로 그동안 속에 담아두었던 진심을 꺼내놓았다.

“내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네.”

말하는 발타자르의 귓불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 * *

“저게…… 저게 다 무엇이냐!”

빌 헬름 공작령과 영지를 접하는 클루드 백작은 난데없이 등장한 바이칸의 등장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이종족과의 내통죄를 들먹이며 기습적인 선제공격을 가해온 중앙과 북부군으로 정신이 없는 상황에서 바이칸의 등장은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꼴이었다.

뿔이 솟아난 투구와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형형색색의 문신들을 얼굴에 새긴 바이칸들의 모습에 그들의 정체를 파악해낸 기사 하나가 답했다.

“복장으로 보아 야만족인 것 같습니다.”

“야만족? 그들이라면 북부의 비프로스트 요새 너머에 있는 놈들 아닌가! 그런데 저들이 대체 어떻게 여기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냐!”

클루드 백작의 절규와도 같은 외침에 기사가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발타자르 공작이 비프로스트 요새의 문을 열어준 듯싶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기사의 말에 클루드 백작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곤 몰려오는 바이칸들의 군세를 바라보았다.

“이 미친놈이…… 권력에 눈이 멀어 야만족 놈들에게 제국을 팔아넘겼구나!”

* * *

삐이이익-

바이칸들의 선두에서 매 한 마리가 빠르게 날아올랐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왜소한 체구의 사내.

우트가르트 로키는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성벽을 바라보며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발타자르의 말이 사실이었군!”

대륙의 최북단에 위치한 바이칸들의 땅.

얼어붙은 동토와 제국 북부의 사이에는 에버나스 산맥이라는 거대한 산맥이 존재했다.

이 에버나스 산맥은 제국 동부에서부터 시작하여 서부에까지 그 산줄기가 이어질 정도로 무척이나 거대했다.

이 에버나스 산맥을 통해 우트가르트 로키와 그가 이끄는 바이칸들은 서부의 모든 이목이 연합군에게 쏠린 틈을 타 은밀하게 서부에 진입할 수 있었다.

“보라! 힐가르트! 저들의 겁에 질린 꼴을! 한심하지 않느냐!”

성벽 위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클루드 백작령의 병사들을 바라보던 로키가 외쳤다. 실로 오래간만에 맡는 전장의 향기에 심취한 듯 로키의 목소리는 한껏 들떠 있었다.

그것은 힐가르트 역시 마찬가지인 듯 이글거릴 듯이 타오르는 눈동자로 클루드 백작 성을 응시하며 로키의 옆으로 다가왔다.

“왕이시여. 어서 진격령을 내려주십시오.”

로키의 옆으로 다가온 힐가르트가 두 무릎을 꿇으며 말하자 로키가 그런 힐가르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그러곤 훌쩍 다이어 울프의 등으로 뛰어올라 양날 도끼를 하늘을 향해 치켜들며 소리쳤다.

“전쟁이다!”

그의 입에서 전쟁이라는 두 단어가 튀어나오자 투지라는 불꽃이 삽시간에 바이칸의 군세를 집어삼켰다.

“자아─ 전사들이여! 함성을 내질러라! 토르의 시간이 도래했노라!”

바이칸들이 내뿜는 강렬한 투쟁심에 대기가 전율했다.

투지에 불타는 전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로키를 응시하는 가운데 로키가 제 가슴팍을 주먹으로 쿵쿵- 두드리며 소리치자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수만에 달하는 바이칸들이 제 가슴팍을 두드리거나 병장기를 들어 올리며 함성을 내지르자 지축이 뒤흔들렸다.

로키는 온몸을 휘감는 전율에 몸을 가늘게 떨더니 이내 타고 있던 다이어 울프를 몰아 앞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가자! 오딘의 영광을 위하여!”

로키가 달려나가자 다이어 울프를 탄 기수들과 전사들이 저마다 믿는 신의 이름을 외치며 일제히 진격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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