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이 회귀함 86화
“들켰다! 쳐라!”
일이 틀어졌다는 것을 깨달은 검은 사월의 암살자들이 일제히 발타자르를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지그문트 역시 발타자르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사방위, 사각지대를 모두 장악한 그들의 일격은 맞받아치는 것 외에는 피할 길이 없었다.
1초를 다투는 긴박한 순간이었지만 발타자르는 시종일관 여유가 넘쳐흘렀다.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 그대로 날아오는 일격들을 감지한 발타자르의 심장에서 크라운 하트가 격하게 요동치며 공명했다.
일순간 방대한 양의 마나가 순식간에 발타자르의 전신으로 순환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강렬한 기파를 사방으로 흩뿌렸다.
붉은 섬광과 함께 마나의 폭풍이 휘몰아치며 달려드는 암살자들과 지그문트를 일거에 날려 버렸다.
콰아앙─
마나의 폭풍에 휘말린 지그문트와 암살자들이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사방으로 날아가며 벽에 부딪혀 쓰러졌다.
발타자르가 움직임을 보인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눈 한 번 깜짝할 새에 지그문트의 코앞까지 도달한 발타자르가 그의 목을 움켜쥐고는 들어 올렸다.
“컥컥-”
숨이 막혀오는 가운데 지그문트는 제 목을 움켜쥔 발타자르의 팔을 양손으로 쥐곤 어떻게든 벗어나고자 발버둥 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묻는 것에 거짓 없이 대답한다면 고통 없이 죽여주마.”
일순간 낮은 음성으로 말하는 발타자르의 모습이 검은 망토를 걸친 죽음의 사신과 겹쳐 보였다.
“퉷-”
지그문트가 그런 발타자르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내가…… 컥, 말할 것…… 꺼어억.”
발타자르가 지그문트의 목을 움켜쥔 손에 힘을 주자 단박에 그의 목이 부러지더니 즉사했다.
툭-
초점을 잃은 채 축 늘어진 지그문트를 아무렇게나 내던진 발타자르가 검을 뽑아 들었다. 순식간에 검신에서 붉은 오러블레이드가 넘실거리며 솟구쳤다.
푸욱-
차갑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숨을 거둔 지그문트를 응시하던 발타자르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었다. 그러자 지그문트의 몸이 간헐적으로 발작하듯 사지를 꿈틀거렸다.
“마나란 것이 참 신비한 힘이라네. 사용자에게 초월적인 힘을 부여해 주기도 하지만 이렇게…….”
발타자르가 검에 마나를 흘려보냈다.
그러자.
“끄아아악!”
숨을 멈췄던 지그문트가 비명과 함께 두 눈을 부릅뜨며 비명을 내질렀다.
“몸을 망가뜨리기도 하지.”
꿰뚫린 심장을 통해 발타자르의 마나가 지그문트의 체내로 스며들자 그의 마나와 발타자르의 마나가 서로 충돌하더니 이내 그 충돌의 여파로 몸의 내부가 서서히 망가지기 시작했다.
각종 장기를 비롯하여 근육, 신경, 골격 등이 모두 무너져 내렸다.
뇌가 타들어 가는 듯한 격통이 밀려오기 시작하자 지그문트는 이대로 정신을 놓아버리고만 싶었다.
하지만 그의 재생력은 그가 정신을 놓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끊임없이 재생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고통으로 죽음을 맞이하기를 반복했다.
실제로는 그리 긴 시간이 흐르지 않았지만, 지그문트에게는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 흘러갔다.
“죽어라!”
개중에 정신을 차린 암살자들 몇몇이 포기하지 않고 발타자르를 향해 달려들었으나 그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하고 허무하게 쓰러져갔다.
그렇게 가게 안에 살아 숨 쉬는 이가 발타자르와 지그문트밖에 남지 않게 되었을 때 발타자르가 지그문트의 심장에 박아넣었던 검을 뽑아 들었다.
“허어억─”
지옥과도 같은 고통의 시간이 끝이 나자 지그문트는 한참 만에 숨을 쉬는 이처럼 격하게 숨을 들이마시며 정신을 차렸다.
더 이상 발타자르에게 저항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저 또다시 찾아올 고통의 두려움에 몸을 떨 뿐이었다.
발타자르는 그런 지그문트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이내 의자를 가져와 그의 앞에 내려놓고는 의자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 내가 묻는 것에 거짓 없이 대답한다면 고통 없이 죽여주겠네. 어떤가. 이 정도면 실로 자비로운 제안 아닌가?”
발타자르가 묻자 지그문트가 땅을 기어 발타자르의 발목을 움켜쥐며 애원했다.
“사, 살려…….”
발타자르는 가볍게 발을 내차는 것으로 지그문트의 손을 떼어 내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지 말게. 애원하지 말게. 그러면 내가 미안하지 않은가.”
지그문트는 웃으며 말하는 발타자르의 모습이 무척이나 소름 끼친다고 생각했다.
“자네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딱 두 가지일세. 하나, 내가 묻는 것에 대답하고 깔끔하게 목이 베여 편안히 숨을 거둔다. 둘, 끝까지 내게 저항하다 고통 속에서 내가 원하는 답을 내놓는다.”
살 수 있는 선택지는 없었다.
고통을 받다 죽느냐.
아니면 그냥 죽느냐.
죽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지그문트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떨어지지 않는 입을 간신히 움직여 물었다.
“무엇이…… 궁금한 겁니까.”
이에 발타자르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이제야 대화할 자세가 되었나 보군.”
쿵-
발타자르가 손에 쥔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지그문트가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리며 떨었다.
발타자르는 그런 지그문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들어 올린 검을 바닥에 내리찍었다.
“첫 번째 질문일세. 왜 검은 사월의 암살자들을 구해주었는가?”
발타자르의 물음에 지그문트가 대답을 망설였다.
“머리 굴리지 말게.”
이에 차가운 음성으로 발타자르가 경고하자 지그문트가 황급히 대답했다.
“조직에서 검은 사월의 비고에 숨겨진 물건을 원했기 때문입니다.”
지그문트가 조직을 거론하자 발타자르가 미간을 찌푸렸다.
지그문트는 변절자였다.
그런 이가 속할 조직은 변절자들의 무리 말고는 없었다.
이 말인즉.
변절자 무리가 발타자르의 생각보다 앞선 시기부터 체계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었다.
“물건? 어떤 물건인가?”
“성군의 구입니다.”
지그문트의 대답에 발타자르는 변절자들이 목적한 바를 깨달았다.
성군의 구는 단 한 번에 한하여 천사를 소환할 수 있는 신물이었다. 변절자 무리가 이것을 확보하려 드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성군의 구를 은닉하여 신계의 개입을 최소화하려는 의도로군.”
발타자르의 중얼거림에 지그문트가 화들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 것 없네.”
발타자르가 지그문트의 의문을 짧게 일축하곤 두 번째 질문을 이어갔다.
“두 번째 질문일세. 자네가 말한 조직의 구성에 대해 말해보게.”
발타자르의 물음에 지그문트는 잠시 고민했다.
말하는 것으로 보아 발타자르는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곧이곧대로 모든 것을 얘기해 줄 생각은 없었다.
“조직은 총 다섯 명의 간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서로 수평 관계로 각자가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하여 조직원의 수가 어느 정도인지는 저도 잘 모릅니다. 단지 원하는 바가 일치하기에 모인 것일 뿐 행동을 함께하지는 않습니다. 조직의 목적은 하나. 저희를 이 세계로 끌어들인 천신에게 복수하는 것입니다.”
지그문트의 말이 끝나자 발타자르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분명 묻는 것에 거짓 없이 답하라고 말했을 터인데 이리 거짓말을 태연하게 하니 내 마음이 다 아프군.”
그러곤 이내 바닥에 박아둔 검을 뽑아 들더니 지그문트의 손등을 내리찍었다.
푸욱-
“끄아아악-!”
재차 밀려오는 고통에 지그문트가 비명을 내질렀다.
발타자르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응시하며 말했다.
“다시 말해보게.”
“끄어억…… 가, 간부는…… 총 열두 명…… 크흡.”
지그문트가 말을 끝맺지 못하고 숨이 넘어갈 듯 꺽꺽대자 발타자르가 지그문트의 손등에 박힌 검을 뽑아 들었다. 덕분에 숨통이 트인 지그문트가 몸을 옅게 떨며 말을 이어갔다.
“독자적으로 움직이기는 하지만 분기에 한 번. 총회의가 열리면 간부들이 모여 조직의 행보를 결정하고 그에 따라 움직입니다. 또한, 표면적으로는 수평적인 관계이지만 서열이 나뉘어 있고 하위 서열은 상위 서열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이게 끝입니다! 정말입니다!”
혹시나 발타자르가 다시 검을 휘두를까 싶어 지그문트가 애원하는 투로 황급히 소리쳤다.
“조직에서 자네의 서열은 어찌 되는가?”
“3위입니다.”
지그문트의 대답에 발타자르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발타자르의 기억 하기로 지그문트는 변절자 무리의 리더였다. 한데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지그문트와 그가 이끌던 변절자 무리는 조직의 일부분에 불과한 것 같았다.
그가 말한 것에 거짓이 없다는 전제를 둔다면 발타자르가 알고 있는 것보다 변절자 무리의 규모가 크다는 뜻이었다.
“자. 질문을 바꿔보지. 그 조직원들을 구분하는 방법이 있는가?”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달리 조직을 상징하는 특징 같은 것도 없고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목적이 일치하여 모인 관계인지라…….”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군.”
발타자르가 재차 검을 휘두를 기색을 내비치자 지그문트가 질겁하며 황급히 소리쳤다.
“하, 한 가지!”
이에 발타자르가 잠시 멈칫거리자 혹시나 발타자르가 검을 휘두를까 싶었던 지그문트가 재빨리 말했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말해보게.”
“이, 일반 조직원들은 정말 구분할 방법이 없지만, 간부들은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발타자르의 물음에 지그문트가 품에서 펜던트 하나를 꺼내어 내밀었다.
“간부들이 서로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제작된 물건입니다. 간부들의 힘이 스며들어 있어 만약 간부를 만나게 되면 이 펜던트가 공명을 할 겁니다.”
발타자르가 눈을 빛내며 지그문트가 내민 펜던트를 받아 들었다. 그러고 보니 펜던트에서 희미하지만 은은한 빛이 나고 있었다.
향후 발타자르의 행보에 큰 도움이 될 물건이었다.
* * *
이후로도 발타자르는 몇 가지 질문을 더 했고 지그문트는 성실하게 질문에 답했다.
“수고했네.”
중요한 정보는 모두 알아내었으니 더 이상 지그문트를 살려둘 이유가 없었다.
“자네가 내 질문에 성실히 답해주었으니 나도 선물을 하나 해줄까 하는데…….”
지그문트는 혹시나 발타자르가 자신을 살려주려는 것은 아닌지 하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발타자르의 말에 그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도 마지막 가는 길인데 칙칙한 사내보다는 아름다운 여인의 배웅을 받으며 가는 것이 좋지 않겠나?”
말하곤 발타자르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자 근처에서 마나의 파동이 일어나더니 이내 허공에서 붉은 머리칼이 인상적인 미인.
불의 마탑주.
레티시아 스칼렛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급하게 찾는다기에 에르제와의 티타임도 미뤄두고 왔는데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죠?”
레티시아가 피범벅이 된 지그문트를 바라보더니 불퉁한 표정으로 물었다.
“흔적도 남김없이 태워주게.”
그 말에 지그문트가 황급히 소리쳤다.
“자, 잠깐! 말이 다르지 않습니까!”
지그문트가 순순히 대답한 것은 발타자르가 준 고통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만, 목을 베어 자신의 숨을 끊어 놓겠다는 발타자르의 말에서 그가 자신의 재생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서 살 수 있을 것이란 한 가닥 희망을 보았기에 순순히 발타자르가 원하는 대로 답을 했던 것이었는데…….
보아하니 저 여인은 마법사 같았다.
그 말인즉 시체 조각 하나 남기지 않고 일거에 자신을 소거시켜 버릴 능력이 충분하단 소리였고, 그것은 자신의 완전한 죽음을 의미했다.
“분명 목을 베어 숨을 끊어준다고 말했잖습니까?”
다급해진 지그문트가 억울하다는 듯이 소리치자 발타자르가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헛수작이 통할 것이라 생각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