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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85화 (85/183)

공작이 회귀함 85화

불멸자 지그문트.

연합군의 선봉에서 마신의 강림을 저지하기 위해 가장 분투한 용사들인 세븐스타 중 하나였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연합군을 배신하고 마신의 강림에 결정적 역할을 한 변절자 무리의 리더였다.

일신의 무력 자체는 최강을 논하기에 무리가 있지만, 그가 무서운 점은 그 압도적인 재생력이었다.

불사에 가까운 재생력은 머리 혹은 심장 같은 급소와 관계없이 신체 부위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순식간에 재생하고야 말았다.

‘그래 봐야 고기 방패일 뿐이지만.’

확실히 지그문트는 상대하기 까다로운 이였지만 그렇다고 그의 재생력이 완전에 가까운 능력은 아니었다.

신체 하나 남기지 않고 단숨에 소거해 버린다면 그 압도적인 재생력도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일례로 회귀 전에도 그런 방식으로 그를 제거했기도 했고 말이다.

‘끌어들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모르는 녀석이니 무리해서 끌어들일 필요는 없겠지.’

발타자르는 지그문트에 대한 처우를 결정했다.

그가 변절한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그가 변절한다는 것은 사실이니 제거할 수 있을 때 제거해 두는 것이 상책이었다.

변절한 그는 마신의 강림을 저지하려는 연합군의 앞을 막아서는 강력한 난적 중 하나였으니까.

“조치는 취해 두었는가?”

발타자르의 물음에 신시아가 답했다.

“네. 우선 감시자를 붙여 두었어요. 일정 간격으로 계속 보고받고 있는데 가장 최근 보고로는 검은 사월의 암살자들이 일부 그와 합류해서 지금 남문으로 향하고 있다더라고요. 그래서 우선 급한 대로 아저씨 이름으로 남문을 비롯해서 각 성문을 통제하고 수배령까지 내려두었어요. 따로 비밀 통로를 준비해 두지 않았다면 당분간은 쉽게 제도를 벗어나지 못할 거예요.”

신시아의 말에 발타자르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러운 지그문트의 등장에 당황스러웠을 텐데도 신속히 조치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했다.

특히 발타자르의 이름으로 성문의 통제와 수배령을 내린 점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보통은 제 주군의 이름을 팔 생각은 하지 못하는데 신시아의 경우 자신이 쓸 수 있는 패는 모두 이용했다는 점은 그녀의 사고방식이 무척이나 유연하다는 것을 뜻했다.

유연한 사고방식은 무리를 이끄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였다. 특히나 정보 단체를 이끄는 이에게는 더더욱.

“잘했네.”

발타자르가 신시아의 조치를 칭찬하며 지시를 내렸다.

“불의 마탑으로 사람을 보내 레티시아를 호출하게. 그리고 자네는 그자가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게.”

“네.”

신시아가 답하자 발타자르가 품에 안고 있던 아이린을 내려놓았다. 그러곤 그녀의 머리 위에 앉아 있는 비비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린과 함께 저택으로 가 있게.”

“저도 알과 같이 가면 안 되나요? 린을 데려다주는 건 엘룬 자매로도 충분하잖아요.”

비비안이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엘룬 자매를 가리키며 말하자 발타자르가 답했다.

“혹시 모를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니 린의 호위에 만전을 기하고 싶다네. 그러자면 가장 믿을 수 있는 이가 린의 옆에 있어주면 좋겠는데 여기서 자네가 가장 믿음직한 이가 자네이기에 하는 부탁일세.”

발타자르의 말에 비비안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답했다.

“알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어쩔 수 없죠.”

말은 그렇게 해도 발타자르의 믿음직하다는 말이 마음에 들었던지 비비안의 얼굴에는 뿌듯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이린의 호위 문제를 해결한 발타자르가 불안해하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는 아이린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 못다 한 나들이는 내일 다시 하자꾸나.”

아이린이 그런 발타자르의 바지춤을 잡으며 답했다.

“조심하셔야 해요.”

“걱정 말렴.”

발타자르가 아이린의 머리칼을 거칠게 한번 헝클어뜨린 후 신시아의 안내를 받으며 지그문트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 * *

대신들의 역모 사건 이후 황궁에서는 연일 하루가 멀다 하고 열띤 회의가 반복되었다. 그러나 그 회의는 제국 운영에 대한 것이 아닌 대신들의 역모로 인해 공석이 된 관직들을 놓고 벌이는 이권 다툼이었다.

새로이 중앙의 권력자로 떠오른 슈텔리앙 후작과 그 일파들과 기존의 권력자인 자비에고 주교를 위시한 네 명의 대신은 서로 언성을 높여가며 조금이라도 더 자신의 사람들을 요직에 앉히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 난리를 겪었으면서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니…….’

제국의 황태자이며, 차기 황제로 점쳐지는 인물.

아르세우스는 불만이 가득 담긴 얼굴로 언쟁을 벌이는 중신들을 바라보았다.

‘버러지 같은 것들.’

대신들의 역모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새를 못 참고 이권 다툼을 벌이는 중신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이가 갈렸다.

특히나 믿었던 슈텔리앙 후작마저 저들의 아귀다툼에 끼어들어 언성을 높이고 있으니 아르세우스의 실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물론 황제파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이고 그것이 아르세우스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것은 잘 알지만 그래도 저런 모습을 보니 슈텔리앙 후작도 대신들과 다를 바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럴 때 발타자르 공작이 있었더라면…….’

아르세우스의 숱한 부름에도 혹여나 자신의 세력이 커져 황실을 위협할까 염려된다며 저택에서 칩거하고 있는 발타자르가 떠올랐다.

만약 그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저들이 저리 날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못했겠지.’

누가 뭐라 해도 현재 제도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발타자르 공작이니만큼 그의 앞에서 쉬이 경거망동하지는 못했을 것이었다.

‘발타자르 공작이 있었다면 이런 이권 다툼이 아닌 제국의 앞날을 위한 제대로 된 국정을 논의할 수 있을 텐데…….’

저들의 목소리가 높아져만 갈수록 아르세우스는 발타자르의 존재가 무척이나 간절해졌다. 그리고 그 간절함은 발타자르에 대한 믿음과 맞물려 곧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발타자르 공작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의 세력을 키워줘야겠어.’

다른 이였다면 조금이라도 제 세력을 불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을 테지만, 발타자르 공작은 황실을 걱정하여 제 세력이 여기서 더 커지는 것을 염려하고 자중하는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제도에 입성한 발타자르의 군대라면 능히 제도를 장악할 수 있음에도 자신의 호위를 위한 최소한의 병력을 제외한 군을 모두 북부로 돌려보내기까지 한 이였다.

그런 이를 믿지 않는다면 대체 어떤 이를 믿을 수 있겠는가!

그라면 권력의 욕망에 빠지지 않고 올곧게 이 제국을 지탱해 주는 기둥이 되어주리라.

물론 발타자르 공작은 이 결정을 달갑잖아 하겠지만 지금은 달리 그 수밖에는 없다고 아르세우스는 생각했다.

적어도 아르세우스가 황위에 오르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발타자르가 국정을 이끄는 것이 이 제국을, 그리고 프락시온 황실을 위하는 것이리라.

탕탕-

결심이 선 아르세우스가 테이블을 거칠게 두드렸다.

그 갑작스러운 행동에 언성을 높여가며 언쟁을 벌이던 신료들의 이목이 아르세우스에게로 집중이 되었다.

“한 가지. 제안할 것이 있네만.”

* * *

신시아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남문 인근에 위치한 허름한 술집이었다.

낡은 간판은 떨어질 듯 말 듯 덜렁거리며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대낮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술집이 너무 허름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오가는 사람 없이 무척이나 한산해 보였다.

“저곳이에요.”

신시아가 술집을 가리키며 말하자 발타자르가 잠시 술집을 응시하더니 말했다.

“자넨 이곳에서 도망치는 이가 없도록 감시하게.”

“혼자 가시려고요?”

걱정된다는 투로 그녀가 묻자 발타자르가 작게 미소 짓더니 허리춤에 찬 검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제도에서 감히 내 몸에 상처 하나 낼 수 있는 이는 없으니 걱정 말게.”

그리 말하곤 느긋한 걸음걸이로 술집 안으로 들어갔다.

* * *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한산한 풍경이 발타자르의 두 눈 가득 들어왔다.

카운터에서 빈 잔을 닦고 있는 사내와 드문드문 자리를 잡고 술을 걸치고 있는 몇몇 손님들을 제외한다면 가게는 무척이나 한산했다.

“어서오세요.”

카운터에 있던 사내가 발타자르를 발견하곤 웃으며 인사했다. 발타자르는 그런 사내를 힐끗- 바라보더니 이내 말없이 카운터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뭐로 드릴까요? 술? 아니면 식사?”

사내의 물음에 발타자르는 ‘적당한 와인 한 병 내주게.’라고 말하곤 가게 안을 둘러보았다.

어디선가 그를 응시하는 시선이 느껴졌지만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은 채 가만히 카운터의 테이블만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간간이 들려오던 대화가 점점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묘한 정적이 내려앉은 가운데 발타자르의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또각- 또각-

일정한 간격으로 들려오던 발소리는 곧 등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짐과 동시에 사라졌다.

“이곳은 처음이십니까?”

발소리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이가 발타자르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에 발타자르가 그를 바라보자 쭉 째진 눈에 여우상의 얼굴을 한 사내가 묘한 시선으로 발타자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요놈 봐라?

발타자르가 눈에 이채를 띄었다.

사내는 발타자르가 찾던 불멸자 지그문트였다.

어찌 잊겠는가.

홀로 수만에 달하는 마왕군의 앞을 막아서던 용맹무쌍하던 그를.

결정적인 순간에 연합군을 배신하고 마신의 강림을 주도했던 그를.

제 발로 발타자르의 앞에 나타난 지그문트의 행동에 발타자르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자리를 권했다.

“그렇네만. 말동무라도 해주겠나?”

“그럼. 사양 않고.”

지그문트가 발타자르의 옆에 앉자 발타자르가 그를 뚫어져라 지그시 응시했다. 이에 지그문트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내가 어찌 보았길래 그리 묻는가?”

발타자르의 물음에 지그문트가 잠시 말을 멈추곤 발타자르의 눈동자를 마주 응시했다.

“눈이 마치…….”

그러더니 이내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말했다.

“사냥감을 보는 듯한 눈빛이군요.”

“그런가?”

“뭐. 개인적인 느낌입니다.”

“그렇군.”

그것을 끝으로 두 사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묘한 정적이 오가는 가운데 이 정적을 깬 것은 가게의 주인으로 추정되는 사내였다.

“여기. 주문하신 와인 나왔습니다.”

와인과 술잔 두 개를 가져온 그가 발타자르의 앞에 내려놓자 발타자르가 와인 병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한잔하겠나?”

발타자르의 물음에 지그문트가 웃으며 빈 잔을 들었다.

두 사내가 서로의 잔에 술을 따라주고는 이내 잔을 부딪치며 술을 마셨다.

“술맛이 제법 괜찮지요?”

지그문트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아는 사람들만 아는 곳인데 어찌 알고 오신 겁니까?”

“간만에 여동생과 나들이를 나온 김에 잠시 들렀다네.”

“여동생을 무척이나 아끼시나 보군요. 말씀하실 때 무척이나 즐거워 보이시네요.”

“물론이지. 그런데 동생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중에 웬 녀석들이 광장 한복판에서 칼부림을 벌이지 뭔가. 그 때문에 동생이 오늘 크게 다칠 뻔했다네. 놈들 이름이…….”

가게 주인을 응시하며 말끝을 흐리던 발타자르가 이내 지그문트에게로 시선을 옮기며 말을 끝맺었다.

“그래. 검은 사월이던가?”

빈 잔을 채우기 위해 와인 병에 손을 뻗던 지그문트의 손이 정지하고, 동시에 발타자르가 손가락으로 술잔을 가볍게 튕겼다.

티잉-

그러자 술잔의 일부가 깨지더니 그 파편이 빠른 속도로 허공 위로 치솟았다.

퍼억-

그리고 그렇게 치솟은 파편은 이내 무언가에 파고드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뚝뚝- 붉은 피가 천장에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지그문트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리는 가운데 천장에서 떨어져 내린 핏물이 그의 잔을 천천히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내 기분이 몹시도 좋지 않다네.”

목을 옥죄어 오는 짙은 살기가 주변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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