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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81화 (81/183)

공작이 회귀함 81화

와아아아─

병사들의 함성이 전장을 뒤흔드는 가운데 중앙군과 발타자르군 양측의 궁수들이 쏘아 보낸 화살들이 하늘을 뒤덮었다.

발타자르군은 사다리를 타고 오르며 성벽을 넘기 위해 분투하고 중앙군은 발타자르군의 성벽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애썼다.

치열한 공방이 오고 가는 가운데 전황을 지켜보던 가웨인이 이제 막 전장에서 돌아오는 발타자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항이 제법 거세군요.”

그의 말대로 중앙군의 저항은 거셌다.

맹렬한 기세로 몰아치는 발타자르군에 맞서 한 치의 물러섬 없이 치열한 접전을 펼치며 선전하는 중앙군으로 인해 성벽을 넘는 일은 무척이나 지난해 보였다.

외성과 동일하게 각종 마법에 의해 보호받는 성벽은 둘째 치더라도 발타자르군이 제도로 향하며 상대했던 중앙의 영지군들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사기가 높고 훈련이 잘되어 있었다.

아무리 강병이고, 뛰어난 기사들이 즐비한 발타자르군이라고 해도 성벽 위에서 공세를 퍼붓는 중앙군을 상대로는 정석대로 공성전을 시도하는 것 외에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어 보였다.

“확실히 견고하군.”

두어 차례 성문을 향해 검을 휘둘러본 발타자르가 손을 가볍게 털어내며 중얼거렸다.

제법 강맹한 힘을 실어 가한 검격에도 황궁의 성문은 흠집 하나 나지 않은 멀쩡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찌하시겠습니까?”

가웨인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성벽을 지긋이 바라보더니 답했다.

“여기서 시간을 낭비할 이유가 없으니 빠르게 끝내야지.”

확실히 황궁의 성벽은 견고했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었다. 황궁의 성벽은 애초에 외성이 뚫리지 않는다는 전제를 두고 지어진 터라 성벽의 높이가 낮았다.

일반 병사들이나 경지가 낮은 기사들이라면 모를까 로열랭크급의 강자들이나 다이어 울프 정도면 충분히 뛰어오를 수 있을 정도의 높이였다. 물론 발타자르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트리스탄!”

발타자르가 궁병들 사이에서 화살을 쏘아 보내던 트리스탄을 불렀다. 그의 부름에 이제 막 기사 하나의 미간에 화살을 명중시켰던 트리스탄이 재빠르게 다가왔다.

“부르셨어요?”

전장에만 서면 기분이 좋아 보이는 듯 트리스탄이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다이어 울프들을 준비시키게.”

발타자르가 지시하자 트리스탄은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깨닫곤 주먹으로 제 가슴팍을 두드리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저 정도 높이라면 충분히 넘을 수 있을 거예요.”

그녀는 곧장 후방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이어 울프들을 향해 달려갔다. 트리스탄이 다이어 울프들을 준비하기 위해 떠나가자 발타자르가 가웨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도 함께 가겠나?”

발타자르의 물음에 가웨인이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이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보아하니 갤러해드 경이나 캐러독 경 같이 총지휘를 할 만한 기사들은 죄다 따라갈 듯한데. 그래도 총지휘를 할 사람 하나 정도는 남아 있어야지요.”

가웨인의 대답에 발타자르가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고생이 많군.”

“아시면 되었습니다.”

가웨인의 너스레에 발타자르가 한번 웃어 보이고는 곧장 성벽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러자 그 뒤를 따라 트리스탄이 이끄는 다이어 울프를 탄 기수들을 비롯해 발타자르 군 내에서 내로라하는 로열랭크급의 강자들이 일제히 성벽 위로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 * *

치열한 접전이 이어지던 전장도 발타자르를 비롯하여 발타자르 군의 주력들이 성벽 위로 난입하는 순간 끝이 났다.

일반적인 칼날로는 가죽에 생채기조차 나지 않는 다이어 울프들과 바이칸 출신의 용맹한 기수들.

수십의 기사를 상대로 그들을 압도하는 로열랭크들의 강자들이 등장하며 본격적인 전쟁의 시작을 알리자 중앙군은 버티지 못하고 연전연패를 거듭하기 시작했다.

특히 압권은 일 검에 수십에 달하는 적을 쓸어버리는 발타자르였다.

홀로 전장의 판도를 뒤바꾼다는 마스터를 상대할 전력은 중앙군 내에 전무했고 순식간에 성벽은 발타자르군에 의해 점거당했다.

이어서 성문이 열리며 성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군타낙스 기사단이 일제히 돌진을 감행해 오니 중앙군이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 * *

“피, 피해!”

누군가의 비명과도 같은 외침과 동시에 발타자르의 검이 휘둘러졌다.

전장 어느 곳에서고 선명하게 보이는 붉은 오러블레이드를 휘감은 검이 휘둘러지자 그것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단 일격에 기사, 병사 할 것 없이 베어지며 순식간에 싸늘한 주검이 되었다.

“마, 막아! 누구든 좋으니 저자를 막아! 조금이라도 시간을 끄는 이에게는 군부대신께서 큰 상을 내리실 것이다!”

기사 하나가 발타자르를 손가락질하며 발악하듯 소리쳤지만, 선뜻 나서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군부대신이 내릴 상이 탐나기는 하지만 그것이 목숨을 내던질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발타자르의 일격을 막아낼 자가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그의 앞을 막아선다는 것은 제 발로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쒜에엑-

발타자르가 근처에 널브러진 창을 하나 집어 들어 내던지자 순식간에 소리치던 기사를 향해 쏘아졌다.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낀 기사가 황급히 방패를 치켜들며 날아오는 창을 막아보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나름대로 막아보겠다고 방패에 마나까지 두른 기사였지만 마스터가 작정하고 내던진 창 한 번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창에 꿰뚫린 기사는 수 미터를 날아가더니 건물 외벽에 창이 박힘으로써 도살장의 고깃덩이처럼 건물 외벽에 매달리는 신세가 되었다.

“슬슬 정리가 끝나 가는군.”

발타자르가 기사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성벽의 점거는 슬슬 끝나가는 참이었고 진즉에 열린 성문으로는 발타자르군이 물밀 듯 꾸역꾸역 밀려 나오고 있었다.

“또다시 제도를 피로 물들이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것도 내 손으로 직접.”

중얼거리며 발타자르가 쓴웃음을 지었다.

주변에 낭자한 시체들과 핏물들.

사방에서 들려오는 함성과 비명까지.

회귀 전 발타자르가 맞이했던 최후의 순간을 보는 것만 같은 풍경이 발타자르의 두 눈 가득 들어왔다.

“그때는 이곳이 무엇이라고 그리도 중히 여겼는지…….”

이곳 제도는.

그리고 황궁은 발타자르에게 있어 많은 추억이 깃든 장소였다. 그것이 썩 좋은 추억들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곳이며, 그의 원수가 사는 곳이었고, 도망치듯 떠날 수밖에 없던 곳이었으며, 은인을 만나 그의 도움으로 원수를 갚고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었던 곳이었다.

그 은혜를 갚고자 몸 바쳐 충성했던 곳이었으며, 시시각각 보이는 몰락의 조짐들을 어떻게든 늦춰보고자 여러 중신과 밤을 새워가며 열띤 토론을 하던 곳이었다.

이처럼 많은 추억이 깃들어 있고 지키고자 부단히도 노력했던 곳이었지만 결국, 반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되며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 곳이었다.

발타자르에게 제도는.

그리고 황궁은.

시작과 끝의 장소였다.

“주군.”

감상에 젖어 있는 발타자르에게 갤러해드가 다가왔다.

한바탕 전투를 치르고 온 듯 그에게서 짙은 피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사로잡은 포로의 말에 따르면 대신들이 현재 대전에 계시는 황제 폐하에게로 향하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만. 어찌하시겠습니까?”

“고생했네. 대전에는 홀로 갈 테니 자네는 중앙군을 정리하는 것에만 힘쓰게.”

홀로 가겠다는 그 말에 갤러해드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발타자르가 마스터의 강자이며 현재 황궁에서 그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발타자르는 사령관이었다.

어느 군을 둘러보아도 적진으로 향하는 사령관을 홀로 보내는 경우는 없었다.

“적진이나 마찬가지인데 조금이라도 호위 병력을 대동하시지요. 혹, 호위 병력이 거추장스러우시다면 저 혼자라도 따라가겠습니다.”

“내가 직접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네.”

발타자르가 단호하게 말했지만 갤러해드는 제 뜻을 굽히지 않았다.

“정 그러시다면 대전 인근에 군타낙스 기사단을 배치해 두겠습니다. 그러니 대전까지 향하시는 길은 호위를 받으시지요.”

평소 발타자르의 말이라면 불구덩이 속이라도 웃으며 들어갈 그가 이리 고집을 부리는 이유를 짐작한 발타자르는 결국 절충안을 내놓은 갤러해드의 제안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게.”

* * *

황궁이 소란스러워졌다.

성벽을 점거하고 황궁으로 진입한 발타자르 군으로 인해 곳곳에서 중앙군과 발타자르군의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사방에서 피와 비명이 난무했다.

그러한 가운데 발타자르는 군타낙스 기사단을 대동한 채로 황제와 대신들이 있을 대전으로 향했다.

앞을 막아서는 이는 없었다.

아니, 감히 그 앞을 막아설 수 없었다는 것이 옳은 표현이었다.

성벽 위에서 압도적인 신위를 발휘하던 발타자르의 모습은 황궁을 점령한 중앙군이라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목격한 광경이었다. 따라서 본능적인 두려움으로 인해 발타자르를 발견하면 몸을 숨기기에 급급했다.

발타자르나 군타낙스 기사단은 그런 이들을 굳이 찾아가 해치지 않고 대전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서두를 뿐이었다.

그렇게 거침없이 대전으로 향하던 중.

발타자르는 문득 주변에 숨어 있는 이들의 기척을 감지해 내었다. 발타자르를 발견하고 몸을 숨기던 이들과는 사뭇 다른 흉흉한 기운을 품고 있는 이들이었다.

“암살자로군.”

발타자르가 중얼거리기가 무섭게 군타낙스 기사단이 일제히 걸음을 멈추고선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어디선가 검은 구슬 하나가 데굴데굴 굴러오더니 이내 선두에 선 기사 하나의 발까지 굴러와 맞부딪쳤다.

퍼엉-

이윽고 검은 구슬이 폭발하더니 자욱한 연기가 앞을 가리기 시작했다.

“적습이다!”

갤러해드의 외침과 동시에 한 치 앞도 바라보기 힘들 정도로 연기가 짙어지더니 곳곳에서 칼부림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에 발타자르가 마나를 머금은 손을 휘둘렀다.

연기를 날려 보낼 생각이었지만 연기는 잠시 흩어지기만 할 뿐 여전히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머무는 연기로군.”

이 광경을 목격한 발타자르는 연기의 정체를 깨닫고선 팔짱을 끼고 가만히 앞을 응시했다.

‘머무는 연기.’

이것은 검은 사월이 마탑에 의뢰하여 특별 제작한 아티팩트였다. 별다른 효과는 없고 시야를 가릴 정도의 짙은 연기가 일정 시간 동안 주변을 뒤덮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어떠한 방법을 써도 연기를 날려 보내지 못한다는 점으로 인해 이렇게 습격을 할 때는 무척이나 효율적인 물건이었다.

이 머무는 연기는 검은 사월에 소속된 암살자들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물건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습격을 가해온 이들이 검은 사월이라는 뜻이었다.

“검은 사월이 자비에고 주교를 버리고 칼리우스와 손을 잡았나 보군.”

제도에 거점을 두고 있는 만큼 제도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모를 리는 없을 테니 자비에고 주교가 발타자르와 손을 잡고 북문을 열어 주었다는 정보는 사전에 인지하고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습격을 가해온 것을 보면 확실했다.

“잘되었어. 신시아에게 좋은 선물이 되겠군.”

안 그래도 검은 사월을 어떻게 별의 구도자에 흡수시킬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제 손으로 빌미를 내어주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 * *

챙- 채앵-

시간이 지날수록 칼부림 소리는 격렬해졌다.

그러한 가운데 아주 은밀히 발타자르에게 접근하는 기운이 느껴졌다.

로열랭크의 강자인 갤러해드가 근처를 지나쳐 감에도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무척이나 은밀한 기운이었다.

휘이익─

이윽고 연기 속에서 그림자가 드리우는가 싶더니 비수 하나가 발타자르의 심장을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습격자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 발타자르의 모습으로 이 암습이 성공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턱-

하지만 암습은 성공하지 못했다.

맹독이 발린 비수는 어느샌가 팔짱을 푼 발타자르에게 빼앗겼으며, 암습이 실패하자마자 몸을 빼려던 습격자는 발타자르에게 목을 붙잡힘으로써 제압당했다.

발타자르는 팔을 접으며 습격자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습격자의 모습이 선명히 보이기 시작했다.

민 대머리에 얼굴이 붉게 물든 습격자는 피부가 마치 물이 끓어 오르듯이 울긋불긋 튀어 오르고 있었다.

이에 발타자르가 본능적으로 제압한 습격자를 연기 너머로 내던졌다.

퍼엉-

곧이어 무언가 폭발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붉은 살점들이 빗물처럼 쏟아져 내렸다.

“제법 본격적인걸?”

은신하는 실력을 보면 검은 사월 내에서도 손꼽히는 암살자가 분명한데도 이렇게 자폭하기를 불사하는 것을 보니 검은 사월도 사활을 걸고 이번 암습에 임하는 듯 보였다.

“어찌할까…….”

발타자르는 잠시 고민했다.

동료가 죽어 나가는 것은 개의치 않고 필사적으로 군타낙스 기사단을 향해 달려드는 검은 사월의 움직임을 보면 시간을 끌려는 것이 분명했다.

시간을 끌려는 목적은 대신들이 황제의 신병을 확보할 시간을 벌려는 것일 테고 말이다.

“이런 같잖은 수를.”

그들의 목적대로 움직여 줄 이유가 전혀 없었다.

생각의 정리가 끝난 발타자르가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암살자들과 접전을 벌이는 군타낙스 기사단은 내버려 두고 거침없이 나아가는 발타자르의 움직임으로 인해 근처에서 발타자르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던 시카리오는 당황했다.

처음에는 의도대로 일이 잘 풀리는가 싶더니 갑작스레 발타자르가 돌발 행동을 하며 수하들을 내버려 둔 채 대전으로 향하기 시작하자 지금까지 벌인 일이 모두 무용지물이 될 상황에 놓여 버렸다.

칼리우스가 원하는 것은 황제의 신병을 확보하고 마탑의 전력을 끌어들일 때까지 발타자르의 발목을 붙잡고 최대한 시간을 끄는 것이었다.

한데 이대로 발타자르를 그냥 보내게 된다면 지금까지 벌인 일들이 모두 헛된 일이 되어버릴 것이 자명했다.

“제길!”

시카리오는 이를 악물었다.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스터와 싸우는 일 만큼은 최대한 피하고 싶었지만 달리 수가 없었다.

시카리오가 신호를 보내자 막 연기 속을 빠져나가는 발타자르를 노리는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검은 사월이 자랑하는 최고의 암살자 집단 흑야십이월黑夜十二月이 일제히 발타자르를 향해 암습을 감행한 것이다.

“걸렸군.”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발타자르의 검이 휘둘러지고.

검은 사월이 자랑하는 최고의 암살자 집단.

흑야십이월이 일거에 쓸려 나갔다.

“꺽-”

그리고 시카리오 역시 그 일격을 피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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