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이 회귀함 74화
용사란 이들은 본래 그들의 출신지인 지구에서 사망한 이들이 사후 신과의 계약에 의해 마신의 강림을 저지하기 위해 이 땅으로 찾아온 이방인들이었다.
대륙을 마신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이 세계에서 찾아왔다는 점만 놓고 보면 아주 훌륭한 위인들 같지만, 실상 그들을 자세히 지켜보면 그들은 마왕들과 다를 바가 없는 존재들이었다.
신이 부여한 그들만의 특권인 ‘시스템’으로 인해 그 어떤 종족보다 빠른 성장이 가능했지만, 반대급부로 감정이 하나씩 결여되어 그들이 존재하는 곳에는 항상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어느 마을에서는 야밤에 처녀를 강간하는 강간마가 용사였고 어느 도시에서는 대규모 마약 유통망을 만들어 도시를 마약 천국으로 만든 마약왕이 용사이기도 했다.
개중에는 용사라는 호칭에 걸맞은 이도 더러 존재했지만, 그들 역시 그리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는 이들이었다.
이렇듯 어떤 면에서는 마왕보다 더 흉악한 것이 바로 용사들이었다.
그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빠른 성장과 다방면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뛰어난 능력들로 인해 그들의 가치는 급부상하였고 발타자르의 회귀 전에는 제국 권력자들이 용사들을 하나라도 더 끌어들이기 위해 혈안이 되었었다.
그렇다면 마왕은 어떤 존재 들인가.
마신의 강림을 위해 심연 속에서 기어 올라온 그들은 대륙에 널리 퍼진 일반적인 상식대로 흉악한 존재들임은 부정할 수 없으나 그들 역시 한 세상의 주민들이었다.
그런 만큼 선한 자도, 악한 자도 존재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서로를 향해 창칼을 겨누기도 혹은 손을 잡기도 했다.
심지어 대륙 권력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이도 더러 존재했다.
사실 대륙 권력자들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통제되지 않는 용사들보다는 오히려 마왕들이 매력적인 동맹이었다. 적어도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한 말이 통하는 존재들이었으니 말이다.
이러한 이유로 발타자르는 꼭 필요한 용사 몇을 제외하면 용사란 존재들을 북부에서 모조리 축출할 생각이었고 그로 인한 전력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마왕과 손을 잡을 생각이었다.
이미 생각해 둔 마왕이 있었고 실제로 그 마왕과 손을 잡기 위해 발타자르는 현재 엄선한 3만의 정병들과 함께 북부와 동부의 접경지로 향하고 있었다.
* * *
대로를 따라 3만의 군세를 이끌고 진군하던 발타자르는 어딘가 언짢은 기색이 역력한 갤러해드를 발견하곤 물었다.
“여전히 마왕과 손을 잡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발타자르의 물음에 갤러해드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예. 그렇습니다. 이미 주군께서 결정하신 일을 무르고자 함은 아니지만, 여전히 마왕과의 동맹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마왕에 대한 일반적인 평은 둘째치고서라도 믿지 못할 동맹이 될 것이 분명하니까요.”
북부의 정리가 끝나고 발타자르의 주관하에 열린 회의에서 발타자르는 마왕과의 동맹을 언급하였고 이에 대해 대다수의 봉신들이 반대하는 의견을 피력했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갤러해드였다.
마왕은 미지의 존재임과 동시에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따라서 믿지 못할 악한 존재들이란 편견이 있었고 이를 거론하며 마왕과의 동맹을 반대했다.
특히나 바이칸들 사이에서 마왕은 악의 화신 그 자체였기에 바이칸 출신 무장들의 반대가 심했다.
“그렇다면 용사는 믿을 만한 존재들인가?”
발타자르의 물음에 갤러해드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도원경의 경우만 놓고 보면 마왕보다는 믿을 만한 존재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발타자르의 명에 따라 북부에 등장한 용사들을 잡아들이는 과정에서 그들이 벌인 만행들을 떠올려 보면 빈말이라도 믿을 만한 존재라고 말할 수 없었다.
“동맹에서 믿음 따윈 무의미한 것이네. 동맹에서 필요한 것은 오직 이해관계뿐이지. 서로가 서로에게 이득이 된다면 동맹이 되는 것이고 더 이상의 이득이 없다면 그 동맹은 끝이 나는 것이라네.”
발타자르가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갤러해드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며 말을 이어갔다.
“그동안 날 따라다니며 수없이 보아오지 않았는가. 제국의 권력자들이 서로의 이해관계로 손을 잡고 싸우기를 반복하는 것을 말일세. 마왕이라고 다를 것이 없네. 그들 역시 이해관계만 일치한다면 충분히 훌륭한 동맹이 될 수 있음이야.”
아직까진 마왕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가 강한 지금 다른 이들보다 한발 빠르게 마왕과 손을 잡는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 누가 마왕과 손을 잡는다는 생각을 하겠는가.
만약 이번 동맹이 성사된다면 발타자르의 비장의 한 수가 될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최소한의 신의는 있지 않습니까.”
갤러해드의 반론에 발타자르가 웃어 보였다.
이상론을 말하는 갤러해드가 멍청해 보이기보다는 순박해 보였다.
사실 갤러해드가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가치관의 차이였다. 바이칸들은 신의를 그 무엇보다 중시하는 이들이니 말이다.
“이해관계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는 신의가 신의던가? 그리고 아직 마왕을 직접 만나보고 겪어본 것도 아니지 않나.”
“……그렇긴 합니다만.”
옆에서 발타자르와 갤러해드의 대화를 듣고 있던 트리스탄이 툭 한마디를 내뱉었다.
“뭘 그렇게 고민해요? 대장이 결정한 일이니 그냥 따르면 되지.”
트리스탄의 말에 갤러해드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하지.”
주군이 결정한 일에 더 이상 왈가왈부하는 것은 불충이었다. 트리스탄의 말대로 주군이 결정한 일이니 자신은 그에 따르면 될 일이었다.
* * *
레오나스에서 출진하여 일주일에 걸쳐 진군한 끝에 발타자르와 그의 군세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거대한 동굴이 있었다.
캄캄한 어둠으로 뒤덮인 동굴 안은 마치 이야기 속의 괴물이 살 법한 스산한 기운을 풍겼다.
“대장. 저곳에 마왕이 살고 있는 거예요?”
동굴을 바라보며 트리스탄이 물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호승심이 가득했는데 발타자르의 명만 떨어지면 마왕과의 일전도 불사할 기색이었다.
“정보가 사실이라면.”
발타자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동굴 안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내 땅이 거칠게 울리며 거대한 몸집의 우인족牛人族이 아귀 무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내었다.
“무우- 이곳은 바르바토스 님의 권역. 인간들이 이곳에는 무슨 일로 찾아왔는가.”
그들의 등장에 따로 지시하지 않았음에도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궁수들은 일제히 그들을 향해 화살을 겨누고, 방패병들은 방패를 앞세워 발타자르의 앞을 막아섰다.
발타자르는 방패병들 사이로 말을 몰고 나아갔다.
다그닥- 다그닥-
말발굽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발타자르가 우인족의 코앞까지 다가섰다.
푸흥-
우인족이 다가온 발타자르를 내려다보며 거친 콧김을 내뿜었다.
“무우- 네가 인간 무리의 대장인가?”
우인족의 물음에도 발타자르는 답 없이 그를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그를 보고 있자니 실로 감회가 새로웠다.
눈앞의 우인족은 마왕 바르바토스의 3대 맹장 중 하인 ‘질주하는 폭군’ 스페디악이었다.
회귀 전에는 정말 치열하게 싸웠던 이들 중 하나였다.
그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발타자르가 제대로 찾아온 것이 맞다는 뜻이었고 저 동굴 안의 어딘가에 바르바토스가 있다는 뜻이었다.
“무우- 인간. 이 몸을 보고 겁이라도 먹은 것이냐? 왜 답이 없느냐?”
스페디악이 조소를 담은 얼굴로 묻자 침묵을 고수하던 발타자르가 말을 꺼냈다.
“목이 아픈데.”
“무우?”
뜬금없는 발타자르의 말에 순간 스페디악이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이해하지 못해 되새기고 있는데 그의 무릎에서 강렬한 통증이 밀려왔다.
우지끈-
거대한 그의 몸이 휘청이더니 이윽고 땅바닥에 두 무릎을 꿇었다. 그런 스페디악의 앞에는 어느샌가 검을 뽑아 든 발타자르가 그의 목을 향해 검날을 겨누고 있었다.
“이제야 눈높이가 맞군.”
발타자르의 그 말에 스페디악은 분노와 동시에 경악했다.
정황상 눈앞의 인간이 자신의 무릎을 후려친 것이 분명한데 그것을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그 말인즉 눈앞의 인간이 자신을 아득히 넘어서는 강자라는 소리였다.
“손님이 왔으니 주인이 마중을 나오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는가. 가서 바르바토스를 불러오게.”
“무우- 어딜 감히 인간 따위가 바르바토스 님을 오라 가라 하느냐!”
발타자르가 바르바토스를 언급하자 스페디악이 노성을 터뜨리며 발타자르를 향해 거대한 쇠망치를 휘둘렀다.
말과 함께 발타자르를 날려 버릴 기세로 휘둘러지는 쇠망치를 향해 발타자르가 주먹 쥔 손을 내뻗었다.
일견 무모해 보이는 발타자르의 반격과 함께 주먹과 쇠망치가 격돌했다.
쿠웅-
거센 충격파가 주변을 휩쓸었다.
스페디악의 생각과는 달리 발타자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스페디악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그가 타고 있는 말은 작은 생채기 하나 없이 멀쩡한 모습으로 투레질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충돌 직후.
쩌저적-
스페디악의 쇠망치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발타자르의 주먹과 맞부딪친 부위에서부터 시작된 균열은 순식간에 쇠망치를 뒤덮더니 이내 쇳조각으로 변하며 땅 위로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무우- 이게 무슨…….”
쇠망치의 자루를 타고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충격도 충격이지만 마계에서 가장 강도가 높기로 유명한 흑철로 제련된 자신의 망치가 고작 인간의 주먹질 한 번에 쇳조각으로 변한 이 현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이제는 바르바토스를 불러올 마음이 생겼는가?”
스페디악의 흔들리는 동공을 바라보며 발타자르가 물었다.
자신의 일격에도 딱히 적의를 보이지 않는 그 모습에 스페디악이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무우- 바르바토스 님께서는 동면 중이시다. 뵙고자 한다면 한 달 후에 다시 찾아와라.”
스페디악의 말에 발타자르가 말했다.
“내가 괜히 이만한 병력을 끌고 왔다고 생각하는가? 이 자리에서 그대들을 모조리 도륙 내고 직접 바르바토스를 부를 수도 있음이야.”
명백한 협박이었다.
발타자르의 협박에 스페디악이 자루만 남은 쇠망치를 발타자르를 향해 겨누며 말했다.
“그리 말한들 내가 할 수 있는 답은 하나다. 무우-”
일전이라도 불사하겠다는 그 태도에 발타자르가 재차 말을 꺼내려는데 동굴 안에서 강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동시에, 검은 반원을 그리는 참격이 발타자르를 향해 날아왔다.
스페디악의 일격에도 제자리에서 주먹을 내지르는 것으로 그쳤던 발타자르가 말 위에서 뛰어오르며 날아오는 일격을 향해 오러블레이드를 휘감은 검을 휘둘렀다.
꽈아앙-
발타자르가 날아온 일격을 쳐냄과 동시에 동굴 안에서 작은 그림자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발타자르가 그곳을 바라보자 머리에 산양의 뿔이 자라난 소녀가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건들거리는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오고 있었다.
“하아암- 왜 이렇게 시끄러워?”
절망의 바르바토스.
서열 8위의 마왕으로 용사 중에 도원경이 있다면 마왕 중에는 바르바토스가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힘만큼은 서열 1위의 바알에 비견될 정도의 강자가 등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