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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70화 (70/183)

공작이 회귀함 70화

어슴푸레한 이른 새벽.

아직 어둠이 물러가지 않은 빛 한줄기 없는 새벽의 정적 속에서 발타자르군의 기습적인 공격이 시작되었다.

불의 마탑의 마법사들이 주위를 불그스레한 빛으로 물들이며 일제히 마법을 쏘아내었다.

대규모 폭격이 시행되며 혁명단이 설치해 놓은 함정들과 성벽을 둘러싼 해자를 무자비하게 파헤치기 시작했다.

콰아앙- 콰아앙-

쉴 새 없이 폭음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유독 눈에 띄는 것은 허공 위에 두둥실 떠올라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레티시아 스칼렛이었다.

화염에 휩싸인 채 주문 영창과 함께 춤을 추듯 두 팔을 유려하게 휘저으며 수인을 맺는 그녀의 모습은 그 이명에 걸맞은 진홍의 여제. 그 자체였다.

아크메이지가 왜 전장의 신이라 불리는지를 보여주겠다는 듯 붉은빛을 토해내는 거대한 마법진이 하늘을 뒤덮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강렬하고 선명한 빛을 뿜어내는 마법진은 이내 어둠을 몰아내고 사위를 붉은빛으로 물들였다.

마치 세상이 노을에 젖어 든 것만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발타자르군, 혁명단 할 것 없이 병사들이 경외감과 두려움을 담아 그 거대한 마법진과 레티시아를 바라보았다.

서서히 마법진을 빠져나오는 불덩이들.

그 불덩이들이 뿜어내는 강렬한 열기.

한껏 달아올라 목을 옥죄이는 공기.

마법진이 뿜어내는 빛이 절정에 달했을 때 레티시아가 들어 올린 손을 튕기는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들리지는 않았지만 바로 옆에서 따악- 하고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던 그 순간.

화염계 최고위 마법.

궁극의 마법 중 하나.

미티어 스톰Meteor Storm이 발현되었다.

쿠우우우웅─

화염을 휘감은 돌 무리들이 마치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하고 성벽을 비롯하여 듀락성과 그 주변 일대를 집어삼켰다.

그 압도적인 힘의 폭력에 혁명단은 저항 한번 해보지 못하고 까만 잿가루로 산화했다.

혁명단 측의 마법사 일부가 미티어 스톰을 막아보고자 방어 마법을 펼쳐 보이지만 소용이 없었다.

미티어 스톰은 모든 것을 쓸어버렸다.

성벽도. 병사도. 해자도. 모두.

그렇게 세상을 멸망시킬 것만 같았던 폭격이 끝이 나자 뿌연 흙먼지가 마치 안개처럼 듀락성을 휘감았다.

탓-

지상으로 착지한 레티시아가 가볍게 손을 휘젓자 어디선가 거센 돌풍이 밀려와 듀락성을 휘감은 흙먼지를 날려 보냈다.

이윽고 드러난 듀락성의 모습은 무척이나 처참했다.

성벽이 무너져 내리고, 해자를 가득 메운 물이 순식간에 증발했다.

혁명단이 심혈을 기울여 설치한 함정들이 파괴되고 듀락성으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

레티시아가 제가 만들어낸 결과물이 어떠냐는 듯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발타자르를 바라보았지만, 그는 레티시아에게는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전군 진격한다.”

진격령이 떨어지고 발타자르의 군세가 일제히 듀락성을 향해 진격하기 시작했다.

선두는 두말할 것도 없이 트리스탄과 그녀의 기수들이었다.

“가자! 선봉은 우리의 것이다!”

트리스탄의 외침과 함께 기마대가 일제히 듀락성을 향해 진격해 나아가자 지지 않겠다는 듯이 갤러해드 역시 군타낙스 기사단을 이끌고 빠르게 치달리기 시작했다.

노도와도 같은 기세로 발타자르군이 듀락성을 향해 밀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응전을 해야 할 혁명단 측은 레티시아가 펼친 마법의 여파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정신 차려라!”

“적들이 온다! 서둘러 진형을 갖춰라!”

발타자르군이 내지르는 함성에 정신을 차린 몇몇 지휘관들이 황급히 병사들을 움직여 보려 시도했지만 그들의 외침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뿐이었다.

대다수의 병사들이 무너진 성벽의 잔해에 깔리거나 미티어 스톰의 여파로 인해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었고, 그나마 무사한 이들도 대부분 전의를 상실해 있었다.

지휘관들이 피를 토하듯 소리쳐 간신히 끌어모은 병력은 겨우 수백 명 남짓.

이 정도 병력으로는 발타자르군을 막기는커녕 시간을 끄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지금 이 상황을 뒤집을 방법은 단 하나.

“간다르바 님께 빨리 이 소식을 전해라!”

그들의 신.

오스왈드 간다르바의 힘이 절실했다.

* * *

전의를 상실한 혁명단의 병사들은 그야말로 추풍낙엽처럼 쓰러져 갔다.

동쪽 성벽이 무너진 것을 깨달은 남은 세 방면의 지휘관들이 다급히 지원 병력을 파견하였지만, 이미 성내로 발타자르군이 진입한 시점에서 전쟁의 승패는 결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시가전을 염두에 둔 듯 골목마다 장애물이 설치되어 혁명단들은 그것을 방패 삼아 거센 저항을 했지만 오러의 폭풍을 휘감은 군타낙스 기사단의 돌진에 맥없이 무너져 내렸다.

트리스탄의 기수들과 군타낙스 기사단이 적의 진영을 헤집으면 그 뒤를 보병들이 파고들어 적들을 와해시켰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적들은 빠르게 무너져 내렸고 발타자르군이 성내로 진입한 지 불과 3시간이 채 지나기도 전에 듀락성의 외성이 함락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내성에 틀어박힌 혁명단의 수뇌부들과 일부 잔당들뿐이었다.

* * *

어둠이 뒤덮인 방 안.

양초 몇 개의 불빛이 희미하게 주변을 비추며 묘한 침묵이 감도는 방안에 한 노인이 눈을 감은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노인의 이름은 오스왈드 간다르바.

제국 최고의 아크메이지이며, 현자라 칭송받는 자.

동시에 제국 최대 규모의 민란을 조장한 역적이었다.

“스승님!”

간다르바가 몸을 추스르고 있던 지하 수련실에서 그의 제자 하나가 헐레벌떡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열린 문으로 스며들어온 빛이 연무장을 밝게 비추고 어둠에 잠겨 있던 간다르바의 모습이 드러났다.

한 손으로 물구나무를 서고 있던 그는 60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잘 단련된 몸을 하고 있었다.

“왜 이리 소란이냐.”

간다르바가 물구나무를 서던 자세를 풀고선 호들갑을 떠는 제자를 꾸짖었다.

“내 누차 말하지 않았더냐. 마법사란 언제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침착해야 한다고 말이다.”

“스승님.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외성이 함락되었습니다!”

제자의 말에도 간다르바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느긋한 몸짓으로 몸을 적신 땀을 수건으로 닦아내곤 옷을 하나하나 입을 뿐이었다.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그 모습에서는 조급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답답했던지 제자가 말했다.

“이러실 때가 아닙니다. 어서 이곳을 벗어나셔야 합니다.”

“벗어나다니? 어디로 말이냐?”

“이곳만 아니라면 어디든 말입니다.”

“내 목숨 하나 건사하자고 날 믿고 여기까지 따라온 이들을 내팽개치고 도망치라는 것이냐?”

간다르바의 물음에 제자는 말문이 막혀왔다.

이곳 듀락성은 혁명단의 최후의 보루였다.

따라서 외성에 이어 내성마저 함락된다면 사실상 혁명단은 괴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난 그러기가 싫구나.”

“스승님!”

“어젯밤 별의 운행을 읽어보니 아직 죽을 때가 되려면 멀었더구나.”

“예?

그리 말하곤 간다르바는 제자를 지나쳐갔다.

어디론가 향하는 간다르바에게 제자가 물었다.

“어딜 가시려는 것입니까?”

이에 간다르바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선 껄껄 웃음을 터뜨리며 답했다.

“오늘 죽을 운명이 아니니 그렇다면 다른 이들이 좀 더 살 수 있게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않겠느냐.”

그리 말하곤 재차 발걸음을 움직여 떠나가기 시작했다.

“아직 서클하트가 완전히 회복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제자가 떠나가는 간다르바의 등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 * *

외성 점령 직후 발타자르군은 기세를 몰아 곧장 내성으로 향했다.

마법사들의 도움을 받아 성벽으로 향하는 거대한 길을 만들어낸 직후에는 내성 역시 외성과 마찬가지로 순식간에 점령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갑작스레 등장한 간다르바가 성벽과 이어진 길을 무너뜨리곤 곧이어 고위 마법을 펼쳤다.

만약 강렬한 마나의 파동을 느낀 발타자르가 재빨리 달려와 막아내지 않았다면 뜻하지 않게 대대적인 병력 손실을 입었을지도 몰랐다.

“그렇군. 자네가 바로…….”

간다르바가 자신의 마법을 막아낸 발타자르를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발타자르 공작이로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간다르바가 갑작스레 두 팔을 위로 훅 들어 올리자 대지에서 거대한 기둥들이 치솟기 시작했다.

기둥들이 발타자르를 향해 쏘아지듯 솟아오르자 발타자르는 병력을 뒤로 물리도록 지시하곤 재빠르게 허공 위로 뛰어올랐다.

그러나 그것을 노리기라도 했다는 듯 대기가 일그러지더니 발타자르의 등 뒤에서 기둥들이 솟아났다.

콰앙- 콰앙-

오러블레이드에 휘감긴 발타자르의 검이 거침없이 휘둘러지며 솟아오르는 기둥들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일 검에 하나씩.

맹렬한 기세로 솟아오르던 기둥들은 속절없이 발타자르의 검에 의해 산산이 조각 나버렸다.

“심판의 망치.”

때마침 주문 영창이 끝난 간다르바가 마법을 발현했다.

발타자르에 의해 산산조각 났던 기둥 조각들이 하나로 뭉쳐 손의 형상을 이루더니, 이내 허공에 생겨난 거대한 돌 망치를 쥐고는 발타자르를 향해 휘둘렀다.

쒜에에엑─

대기가 고통에 찬 비명을 내질렀다.

물 흐르듯 자연스레 연계된 그 일격이 발타자르의 코앞까지 밀려왔다.

간발의 차이로 발타자르가 피해냈지만 뒤이어 밀려온 풍압에 몸이 뒤로 밀려났다.

발타자르의 몸이 지면을 향해 빠른 속도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몸을 회전시키며 자세를 바로잡은 발타자르가 지면 위로 가볍게 착지했다.

제법 높은 곳에서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렸음에도 아무런 소리도,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

지면에 내려오기가 무섭게 발타자르가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빛살처럼 그의 신형이 쏘아져 나갔다.

동시에.

거대한 흙무더기 손이 돌 망치를 재차 내려쳤다.

내려치는 돌 망치에 비해 발타자르의 몸은 몹시도 작았다.

이윽고 발타자르와 돌 망치가 맞부딪쳤다.

돌 망치는 아무런 막힘없이 지면을 향해 내려갔고, 곧 지면과 부딪치며 거대한 크레이터를 만들어내었다.

발타자르가 돌 망치에 의해 짓뭉개져 버렸다고 생각될 만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쩌저적-

지면과 맞부딪친 돌 망치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균열은 점점 돌 망치를 뒤덮기 시작하더니 이내 돌 망치를 비롯하여 돌 망치를 쥐고 있던 거대한 흙무더기 손까지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파앗-

그리고 무너지는 잔해들 사이로 발타자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떨어지는 잔해들을 발판삼아 재빠르게 튀어 오른 발타자르가 순식간에 간다르바의 코앞까지 치달았다.

이에 간다르바가 모래 방벽과 함께 방어 마법을 펼쳤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발타자르의 검을 막아낼 수 없었다.

타오를 듯 일렁이는 오러블레이드에 휘감긴 발타자르의 검이 휘둘러졌다.

슥-

휘둘러진 검은 간다르바의 모래 방벽을 일거에 베어내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간다르바의 몸을 둘러싼 방어 마법마저 베어내더니 그의 가슴팍에 긴 검상을 남겼다.

푸화하학─

순간 간다르바의 가슴에서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의 앞섬이 붉은 피로 물들고 그의 두 다리가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털썩-

제 자리에 무릎을 꿇은 간다르바가 떨리는 손길로 제 가슴팍을 매만졌다.

화끈거리는 통증과 함께 붉고 끈적거리는 피가 한가득 묻어나왔다.

“컥-”

울컥 피를 토해낸 간다르바의 몸이 천천히 앞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풀썩-

이윽고 간다르바가 쓰러지고 이를 지켜보던 혁명단의 수뇌부들이 일제히 발타자르를 향해 달려들었다.

“……부나방들 같군.”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혁명단의 수뇌부들을 짧게 평한 발타자르가 자세를 낮추고 검을 휘둘렀다.

검이 휘둘러지고, 주변 일대가 갈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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