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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68화 (68/183)

공작이 회귀함 68화

듀락 후작가는 북부에서도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무가이다.

따라서 그들의 성은 무가의 성답게 어지간한 요새에 비견될 정도로 견고함을 자랑했는데, 십 수만의 병력이 주둔할 수 있는 넓은 연병장과 비축된 식량은 대군이 주둔하기에 적합했다.

하여 혁명단은 듀락 후작령에 자리를 잡고 최후의 결전을 준비했다.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는 이들답게 성벽 위로는 화살과 돌무더기를 비롯하여 각종 공성 물자를 쌓기 시작했고, 성벽에는 수백에 달하는 마법사들이 각종 마법을 덕지덕지 치 발랐다.

성벽을 둘러싼 해자는 더욱 넓고 깊게 팠으며, 그 주변으로 각종 함정을 설치하였다.

그렇게 며칠 사이에 듀락 후작성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탈바꿈하였고, 거기에 더하여 30만에 달하는 대군이 주둔하니 어지간한 전력으로는 감히 공성전을 시도해 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게 되었다.

덕분에 전장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지루한 대치전이 시작되었다.

섣불리 공성전을 시도했다가는 발타자르의 참전을 감안한다고 하여도 도리어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에 발타자르는 제도에 지원을 요청하였고, 듀락 후작성이 함락되면 이 지난했던 민란도 끝이라는 생각에 제도의 대신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지원하겠다며 나섰다.

민란이 끝나면 변변한 승리조차 못 한 토벌대에 비해 연전연승을 거듭한 발타자르가 최고 수훈자가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황제파의 입김이 더 커질 것을 염려한 탓이었다.

물론 반대하는 여론도 있기는 하였지만, 어차피 대세는 발타자르에게 기울었으니 이렇게 된 것 차라리 승승장구하는 발타자르에게 슬쩍 한발 걸치는 것이 합리적인 판단이라는 자비에고 주교의 강력한 주장 아래 이례적인 속도로 발타자르에 대한 지원이 승인되었다.

그렇게 제도에서는 5만의 중앙군과 그동안 꽁꽁 싸고돌며 애지중지하던 아크메이지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 * *

“불의 마탑에서는 아직 소식이 없는가?”

“안 그래도 반나절 내로 도착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가웨인의 말에 발타자르는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지원군을 요청했다면 제도의 대신들이 차일피일 시간을 끌며 눈치만 볼 것이라고 판단하여 인질로 잡은 켈마르크 백작을 빌미로 자비에고 주교에게 넌지시 입김을 불어 넣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자비에고 주교의 상황이 좋지 않은 듯 근래에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대규모 지원군이 편성되었다.

중앙군 5만에 마법사 500명.

중앙군이 파견되는 것이야 그들의 공명심을 이용한다면 제도 대신들의 세력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니 환영할 만하지만, 문제는 마법사들이었다.

아크메이지를 위시한 500명의 마법사.

특히나 지원 오는 마법사들은 모두 불의 마탑의 소속으로 이 불의 마탑의 마법사들은 화력 면에서는 여타의 마탑들 중에서도 단연 발군의 힘을 자랑하는 이들이었다.

이들은 분명 강력한 전력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통제되지 않을 것이 분명한 전력이었다.

“한데 왜 갑자기 제도에서 이렇게 대규모로 지원을 해주는 것일까요? 솔직히 황제가 혁명단의 토벌을 천명하긴 했어도 직접적으로 손을 쓰지는 않았잖아요. 혹시 대신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걸까요?”

순진한 트리스탄의 물음에 발타자르는 피식 웃었다.

“설마, 그럴 리가.”

그 무능하고 탐욕스러운 대신들은 저들 목에 칼을 들이밀기 전까지는 제도에 틀어박혀 사치와 향락을 즐길 위인들이었다.

설령 만에 하나의 경우 북부가 혁명단의 손에 넘어간다고 하여도 혁명단이 제도에 이전과 다를 바 없이 진상금을 올려보낸다면 직접 손을 쓰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왜? 그들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없으니까.

그 정도로 제국의 정계는 썩었다. 그러니 황태자가 버젓이 존재함에도 현 황제의 사후에 황위를 놓고 내전이 벌어진 것이고 말이다.

“하면 그 콧대만 높은 이들이 어째서 참전하는 걸까요? 바이칸들의 침공 당시에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이들이었잖아요.”

“손익계산이 끝나서겠지.”

“그게 무슨……?”

트리스탄이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발타자르가 말했다.

“최근 우리의 전적이 어떻지?”

내 물음에 트리스탄이 뿌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전승이죠.”

트리스탄의 말대로 발타자르군과 혁명단의 싸움은 발타자르군의 전승이었다.

이는 곧 발타자르의 세력이 여기서 더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이로 인해 대신들이 아크메이지를 파견하는 강수를 두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였을 것이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의 힘만으로 듀락 후작성을 함락하고 혁명단을 완전히 일망타진한다면 이 전쟁의 주역은 누구지?”

발타자르가 묻자 트리스탄이 고민할 것도 없다는 듯이 힘차게 답했다.

“바로 저희죠!”

“그래. 우리가 이 전쟁의 주역이 되겠지.”

순간 트리스탄이 무언가 깨달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아! 그러니까 제도의 대신들은 대장이 여기서 더 출세하는 것을 견제하려고 지원을 보낸 것이겠네요. 맞죠?”

트리스탄의 물음에 답한 것은 발타자르가 아닌 가웨인이었다.

“맞습니다. 첨언하자면 대신들의 입장에서 장군께서는 황제파의 소속. 따라서 장군의 힘이 커진다면 자연스레 황제파의 입김도 세지는 것이니까요.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자면 황제파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견제하기 위해서입니다. 덧붙여 저희 공적에 숟가락을 얻겠다는 심보도 있겠지요.”

가웨인의 말에 트리스탄이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그거 완전 양아치들이잖아요!”

빽- 소리치는 트리스탄을 보며 발타자르가 피식 웃었다. 그때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가, 각하!”

갑작스레 병사 하나가 황급히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다급한 표정으로 보아 무언가 큰일이 난 것 같았다.

“무슨 일이기에 그리 호들갑이야?”

가웨인의 물음에 병사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대답했다.

“마, 마법사들이…….”

얼마나 헐레벌떡 달려왔는지 말을 끝맺지 못하고 숨을 헐떡였지만, 그 뒷말은 쉬이 짐작되었다. 마법사들이 도착한 것이리라.

“생각보다 빨리 왔군요.”

“불의 마탑은 성격 급하기로는 제국 제일이니까. 자, 가세. 손님들이 찾아왔으니 주인 된 도리로서 직접 마중 나가야지 않겠나.”

말하며 발타자르가 가웨인과 트리스탄을 대동하고서 막사 밖으로 나섰다.

* * *

“우와…… 저게 마법사인가?”

“나 태어나서 마법사 처음 봐.”

“딱 봐도 신비로워 보이는 것이 역시 마법사네. 마법사야.”

“이제 전투가 좀 더 손쉬워지겠지?”

“그거야 모르지. 아무리 마법사들이 대단하다고는 해도 혁명단이 얼마나 준비를 철저히 했던지 도무지 틈이 보이지 않으니까.”

막사 밖으로 나서자 병사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어수선한 분위기를 뒤로하고 발타자르가 목책 위에 올라서자 지평선 너머로 대기가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무언가 작은 점 같은 것이 보이는가 싶더니 눈 한 번 깜짝할 새에 일단의 무리가 아군의 진영 코앞까지 다가왔다. 지켜보던 병사들이 기함했다.

“여전히 주목받는 걸 좋아하는군.”

불의 마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화염 계통의 마법을 익히는 이 불의 마법사들은 그들이 익히는 마법의 특성상 신체 주변으로 고온의 열기를 쉼 없이 뿜어낸다.

하지만 저들은 보통 마법에 입문하면 체내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제어하는 법부터 배우기에 평소에는 그들이 뒤집어쓰고 있는 로브가 아니라면 일반인과 별다를 바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데 지금 저렇게 대놓고 대기가 일그러질 정도의 열기를 뿜어내며 다가오는 것을 보니 불의 마탑의 마법사들이 일으키는 왜곡 현상이 신비롭다기보다는 그냥 우습기만 했다.

그냥 평범하게 오면 될 것을 저리 요란하게 등장하니 헛웃음만 나왔다.

물론 발타자르의 중얼거림대로 단순히 주목받는 것을 좋아해서 저러는 것이 아니라 마법사에 대한 신비감과 경외심을 가지도록 저러는 것이지만 말이다.

조금 더 덧붙이자면 이런 이적을 일으킬 수 있는 귀한 몸들이 친히 찾아주셨으니 빨리 마중 나오라는 무언의 압박이기도 했고.

“대단하네요.”

“그러게요. 전장에서 써먹으면 좋을 것 같아요.”

가웨인과 트리스탄이 저마다 한마디씩을 하며 감탄했다.

발타자르가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래. 대단하긴 하지.”

여러 의미에서 말이다.

* * *

회귀 전 발타자르는 불의 마탑의 마법사들과 함께 전장에 선 적이 있었다.

당시 발타자르는 베일에 싸여 있던 마법사들이 참전한다는 사실만으로 기뻐서는 오냐오냐해주며 거의 떠받들다시피 하며 극진히 모셨었다.

그 때문인지 통제가 되지 않았다. 꼭 필요한 전투에는 위험하다 하여 전투를 꺼려 하더니 전혀 필요 없는 전투에서는 자신들의 힘을 보여준다며 과잉 전력을 투입하여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내곤 했다.

심지어는 적과 아군의 본대가 대회전을 벌이는 와중에 적의 전력을 대폭으로 줄일 절호의 기회라며 아군과 적군이 싸우는 한복판에 궁극의 마법이라 칭해지는 미티어 스톰Meteor Storm을 떨구는 정신 나간 짓거리까지 벌이던 놈들이었다.

물론 제도 대신들의 극진한 보살핌 아래 온실 속의 화초처럼 곱게 자란 그들이 전쟁의 광기에 집어삼켜 진 것도 모르고선 오냐오냐하며 그들의 오만방자한 행태를 방관한 발타자르에게도 책임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회귀 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할 생각이 없었다.

당시처럼 허울뿐인 공작이 아닌 명실상부 북부 최고의 권력자인 지금. 그들에게 굽히고 들어갈 이유가 전혀 없으니 말이다.

* * *

불의 마탑의 마법사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붉은 로브를 뒤집어쓴 마법사 무리가 발타자르군의 진영 코앞까지 당도했다.

이에 발타자르는 군타낙스 기사단을 소집하곤 발타자르와 함께 마법사들을 맞이하기 위해 목책 문으로 향했다.

구구궁-

목책 문을 열자 문 너머로 살이 익을 듯한 강렬한 열기가 덮쳐왔다.

발타자르가 마나를 끌어올려 손을 휘저으며 열기를 날려 버리자 아주 잠깐이지만 열기가 사라졌다.

‘아주 대놓고 무력시위를 하는군.’

문이 열리기 전 발타자르가 지시한 대로 군타낙스 기사단 역시 기세를 아낌없이 뿜어내며 흡사 일전을 치를 듯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양측 모두 서로를 탐색하듯 잠시간 말이 없었다.

발타자르는 마법사들의 선두에 선 이를 바라보았다. 펑퍼짐한 로브 너머로도 잔뜩 굽은 허리가 눈에 띌 만큼 자그마한 체구의 노인이 보였다.

‘오랜만이군. 레티시아.’

불의 마탑주.

진홍의 여제.

레티시아 스칼렛.

그녀가 500명의 마법사를 대동한 채 전장에 찾아온 것이었다. 발타자르는 레티시아의 굽은 허리를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 악취미도 여전하고.’

지금 그녀가 입고 있는 로브 너머의 모습은 노파와 다름없겠지만 사실 레티시아의 실제 나이는 30대 후반이었다.

그런 그녀가 나이에 맞지 않는 노파의 모습으로 위장한 이유는 실로 어처구니가 없는 것이었다.

여타의 마탑주가 60대의 노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녀의 나이는 무척이나 어린 축에 속했다.

때문에, 종종 다른 마탑주들에게 아이 취급을 받고는 했는데 그것이 자존심 상한다며 대외적인 활동을 할 때는 저렇게 노파의 모습으로 위장하고는 했다.

자존심 세고, 오만하며 그것이 당연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재능과 실력을 갖춘 천재天才를 넘어선 천재天災가 바로 그녀였다.

일순간 레티시아와 발타자르의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눈을 빛내며 흥미로운 눈동자로 발타자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회귀 전의 첫 만남에서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서로 눈빛을 마주하며 응시하기를 잠시.

먼저 말을 꺼낸 쪽은 의외로 레티시아 쪽이었다.

“반갑구려. 이 늙은이는 과분하게도 불의 마탑을 이끌고 있는 레티시아 스칼렛이라 한다네.”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 손을 내미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발타자르가 손을 내밀며 맞잡았다.

“그대의 여정 끝에 진리가 존재하기를. 반갑네. 제3군 총사령관. 알레한드로 발타자르 공작일세.”

발타자르의 인사에 그녀가 흥미롭다는 목소리로 물어왔다.

“우리네 인사말을 알고 계시는구려?”

“친우가 마탑의 소속인지라.”

발타자르가 답하자 레티시아가 클클거리며 웃어 보였다. 그러고는 로브의 후드를 뒤로 젖히며 얼굴을 드러냈다.

노파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게 선홍빛에 가까운 붉은 머리칼이 부드럽게 흘러내리며, 주름이 가득하나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희고 고운 얼굴이 드러났다.

“그렇구먼. 이것 참 인연이구먼.”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녀를 바라보며 발타자르가 속으로 피식 웃어 보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연기 실력 하나는 일품이었다.

회귀 전에는 저 인자한 미소에 속아 친할머니처럼 얼마나 극진히도 모셨던지. 물론 지금은 다를 테지만.

“손님을 너무 오랫동안 세워 두었군. 자, 안으로 들어가세.”

기 싸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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