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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67화 (67/183)

공작이 회귀함 67화

프락시온 제국의 기본 전술은 건국 초기부터 내려오는 전술로, 장창과 방패로 무장한 천인대가 2열로 늘어서 밀집 방패 대형을 이루고 그 양익에 기병대를 후미에는 궁수들을 배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전술은 치명적인 결점을 안고 있었는데 그것은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곧 전부가 무너져 버린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제국의 전술에는 크게 변화가 없었는데 그 이유는 마법사의 존재 때문이었다.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짜낸 전술로 병사들을 배치하고 운용한다고 해도 전쟁의 판도를 결정짓는 것은 결국 마법사의 유무였다. (기사 전력 또한 전쟁의 판도를 결정짓는 주요 요소이기는 하지만 전장에 한정해서는 마법사에 비교할 바가 되지 못했다.)

따라서 획기적인 전술을 짜내는 것보다는 마법사들을 확보하여 압도적인 화력으로 적을 몰아치는 것이 주가 되었고, 이는 곧 전술의 정체를 불러왔다.

물론 마법사들을 중앙에서 통제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조금씩 전술의 중요성이 부각되기는 하였지만, 그것도 제국 주요 접전지에 한정될 뿐이었다.

또한, 선제후들이 통치하는 각 지방에는 아주 가끔 영지전이 벌어졌으나 그것도 기사 전력의 차이로 결정될 정도의 소규모 전투가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제국 주요 접전지를 제외하면 제국군의 전술은 건국 이후로 일체의 발전이 없었다.

하지만 겨울 전쟁 당시 바이칸들에 비해 수적 열세인 상황에서 기본 전술의 단점을 안고서는 도저히 승기를 잡을 수 없다고 판단한 발타자르가 기존 전술의 단점에서 착안하여 군 편제를 대대적으로 개편하고 병사들의 무장을 좀 더 다양화시켰다.

우선 기존의 대형을 백인대라는 10개의 독립된 부대로 나누어 각 부대의 기동성을 살렸다.

이 편제의 장점은 한 개의 백인대의 승패가 군 전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었다.

한 백인대가 무너져도 뒤에 대기하던 다른 백인대가 보완해 주는 임기응변의 조치가 가능해진 것이다. 때문에, 각각의 백인대 사이에는 큰 간격이 있었다.

또한, 기존 2열에서 3열로 추가하며 새로운 병종을 배치하고 보병들에게 장창과 칼, 그리고 방패를 지급하던 것에서 필라와 필룸이라는 각기 다른 용도의 투창을 개발하고 가장 앞 열에 서는 병사들에게는 필라를, 가장 후 열의 병사들에게는 필룸을 추가 지급하였다.

이 필라와 필룸 중 필라는 견제용의 가벼운 투창이고, 필룸은 중 투척 무기였다.

이것들의 사용법은 우선 전열의 병사들이 필라를 던져서 적을 겁먹게 한 뒤 재빨리 접근하는 것과 동시에 가장 후 열의 병사들이 필룸을 던져서 적의 방패에 맞혀 그 무게로 방패를 떨어뜨리게 하는 등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단, 추가 무장이 지급된 만큼 행군 동안 병사들의 피로도도 빠르게 쌓였는데 발타자르는 이것을 수송마차로 보완하였다.

이렇듯 기동성과 유연성을 잘 살린 새로운 전술은 수적 열세를 딛고 바이칸들을 물리쳐 북부의 동토로 몰아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발타자르군의 최대 강점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 * *

고지를 선점한 혁명단의 병력 배치를 바라보던 가웨인이 말했다.

“진영이 제법 견고하군요.”

“첩보에 따르면 토벌대와의 전투로 마법사들이 대거 후방으로 물러나 요양 중이라고 하니 상대하는 것에 큰 무리는 없을 걸세.”

“하면 이대로 바로 진격하시겠습니까?”

가웨인이 묻자 발타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끌어서 무엇하겠나. 최대한 속전속결로 끝내게.”

발타자르의 말에 가웨인이 검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진격한다! 진격의 나팔을 불어라!”

가웨인의 외침에 발타자르의 진영에서 뿔 나팔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뿌우우우─

동시에, 고수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북을 치기 시작하고 북소리에 발맞추어 병사들이 함성과 함께 일제히 진격을 시작했다.

수만에 달하는 병사들이 지축을 뒤흔들며 검은 물결처럼 일렁이며 진격을 시작했다. 이에 대응하여 혁명단 측에서 화살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피비빙─

하늘에서 소나기처럼 화살들이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마치 거북이처럼 밀집 방패 대형으로 진군하는 발타자르군에게 큰 피해를 주지 못했다.

“가자! 적장의 목은 우리의 것이다!”

한편 보병들이 일제히 진군을 개시하자 양익에서 대기하고 있던 기병대 또한 적진을 향해서 돌진을 감행하였는데, 혁명단 측에서도 마찬가지로 기병들을 출진시켜 이에 대응하였다.

“사격 준비이이─!”

말을 몰아 가장 선두에서 치달리던 트리스탄이 외치자 그녀를 뒤따르던 기병들이 일제히 활시위에 화살을 장전하고 달려오는 혁명단의 기병대를 향해 겨누었다.

두 기병대의 간격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혁명단의 기병대가 사정권 내로 들어오자 트리스탄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사격 명령을 내렸다.

“발사!”

피비빙─

트리스탄을 뒤따르던 기병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아 보내자 혁명단의 기병들이 화살에 맞아 전열이 무너져 내렸다.

직후.

트리스탄과 그녀의 기병들이 혁명단의 기병대를 집어삼키고, 기병전이 시작되었다.

* * *

퉁- 퉁-

들어 올린 방패 위로 화살들이 소나기처럼 내리꽂혔다. 망치로 두드리는 듯 방패를 들어 올린 팔을 통해 거센 충격이 밀려왔다.

“대열 유지하고 궁수들의 먹잇감이 되기 싫다면 절대 대열에서 이탈하지 마!”

겨울 전쟁에서 전공을 세워 노예병에서 보병으로, 다시 보병에서 백인장에 진급하며 장교직에 오른 모드레드가 휘하 병사들을 다독이며 소리쳤다.

“이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너희도 나처럼 장교직에 오를 수 있어! 그러자면 무조건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남으려면 절대 대열을 무너뜨리지 마!”

발타자르는 신분에 대한 차별 없이 인재를 등용하기로 유명했다.

그 대표적인 예로 야만족 출신이면서도 발타자르의 최측근인 트리스탄과 갤러해드가 있으며, 당장 모드레드만 해도 일개 노예 출신임에도 장교직에 올라 있었다.

“그게 말이 쉽지. 큭…….”

모드레드의 휘하 병사 중 하나가 부서질 듯 흔들리는 방패를 겨우 고쳐 잡으며 소리쳤다.

“대장처럼 출세하겠답시고 눈 돌아간 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게르 이 새끼! 방패 똑바로 안 들어!”

“죄, 죄송합니다!”

“실전 경험을 해봤다는 놈이 왜 이렇게 어리바리해!”

갑작스레 날아온 투창의 충격에 순간 방패를 놓칠 뻔한 후임병에게 선임병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러는 순간에도 이들 백인대는 혁명단의 진영 인근까지 도달했다.

방패의 벽 너머로 혁명단 병사들의 얼굴이 식별될 정도까지 근접한 것을 깨달은 모드레드가 소리쳤다.

“투창 준비!”

모드레드의 외침에 백인대가 일제히 소리쳤다.

[투창 준비!]

가장 전열의 병사들이 필라와 필룸을 던질 준비를 했다. 모드레드는 점점 가까워지는 적을 응시하며 창을 던질 타이밍을 기다렸다.

“하아, 하아…….”

점점 주변의 소리가 하나둘씩 사라지고 모드레드 자신의 숨소리만 들리기 시작했다.

시야가 좁아지기 시작하고 적병의 두려움에 찬 얼굴이 점점 확대되었다.

모든 신경을 시선에 집중시킨 모드레드의 눈에 적 보병들의 대형에 아주 자그마한 틈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을 목격한 모드레드가 재빨리 소리쳤다.

“투창 개시!”

모드레드의 외침과 동시에 방패 밀집 대형이 해체되며 준비하고 있던 선두의 병사들이 힘차게 필럼을 내던졌다.

얇은 투창이 바람을 가르며 나아가고, 이에 당황한 혁명단의 병사들이 방패를 들어 올리며 날아오는 필럼을 막아내었다.

퉁-

힘차게 날아간 필럼은 힘없이 혁명단의 방패에 막혔지만, 진짜 공격은 다음 것이었다.

“죽어랏!”

가장 후열의 고참병들이 일제히 필룸을 내던졌다.

무거운 중 투창이 혁명단 병사들의 방패에 꽂혀 들고 필룸에 적중당한 방패가 부서지거나, 방패를 든 병사들이 몸을 크게 휘청거렸다.

이때가 돌진할 적기라 판단한 모드레드가 검을 뽑아 들며 소리쳤다.

“돌격!”

가장 선두에서 모드레드가 방패를 앞세워 돌진하고, 그의 뒤를 따라 백인대의 병사들이 일제히 적의 진영을 향해 달려들었다.

쿵- 쿵-

사방에서 방패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성이 뒤섞이더니 순식간에 난전이 펼쳐졌다.

필룸으로 인해 순간 진형이 와해된 혁명단 측은 발타자르군이 아군 진영 내로 난입하는 것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죽여라!”

단박에 적 보병의 목을 따낸 모드레드가 피로 물든 검을 들어 올리며 재차 돌진했다.

“대장을 따라라!”

그의 용맹에 감화된 병사들이 혁명단의 진영 속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피와 광기가 전장을 집어삼켰다.

* * *

“잘 싸우는군요.”

빠른 속도로 와해되어 가는 혁명단의 진영을 바라보며 가웨인이 짧게 평했다.

사방에서 괴성과 비명이 난무하는 전장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순식간에 적의 기병대를 와해시키고, 적진의 후미를 선점하여 재차 돌진을 감행하는 트리스탄과 그녀의 기병대였다.

첫 격돌에서 적의 기병 전력을 글자 그대로 박살을 내놓은 것으로도 모자라 적의 후미에서 돌진하는 트리스탄과 그녀의 기병대는 이 전장에서도 단연 돋보였다.

“신났군.”

피범벅이 된 얼굴로 연신 미소 짓는 트리스탄을 바라보며 발타자르가 피식 웃어 보였다.

“한데 저들은 누구인가?”

발타자르가 트리스탄에게서 시선을 거두곤 적진에서 날뛰는 한 백인대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트리스탄과 그녀의 기병대 다음으로 눈에 띄는, 적진 깊숙이 파고들어 날뛰는 한 장교가 있었다.

발타자르의 물음에 그가 가리킨 방향을 응시하던 가웨인이 답했다.

“모드레드와 그의 백인대로군요.”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이었다.

“모드레드라면…….”

발타자르가 기억을 더듬는데, 가웨인이 옆에서 말을 덧붙였다.

“노예병에서 장교직까지 오른 이입니다. 그 왜 있지 않습니까. 기사직을 거부하고 장교직을 요구했던 당돌한 녀석 말입니다.”

그 말에 그제야 모드레드에 대해서 떠올랐다.

“아! 그렇군. 그때 그자가 저 사내란 말이지?”

모드레드는 발타자르군 내에서도 제법 유명인사였다.

그가 세운 전공도 그렇지만 발타자르가 직접 수여한 기사직을 거부하고 장교직을 요청한 일화는 무척이나 유명했다.

회귀 전에는 존재조차 몰랐던 이로 새로이 등장한 인재에게 당시 발타자르가 넌지시 장교직을 고집한 이유를 물어보자 모드레드는 이리 답했다.

‘출세하기 위해서입니다. 밑바닥 생활은 질리도록 해봤으니, 한번 귀족분들처럼 높은 자리에 올라 보려고 합니다.’

다소 건방진 대답이었지만, 발타자르는 화내기보다는 그의 야망이 마음에 든다며 오히려 기꺼워하며 그를 장교로 임명했었다.

겨울 전쟁 당시에 발타자르가 나름 눈여겨보던 인재였지만 최근 들어 일이 바쁘다 보니 잊고 있던 이 이기도 했다.

흡족한 표정으로 모드레드를 바라보는 발타자르의 모습에 가웨인이 웃으며 말했다.

“이 전쟁이 끝나면 또 진급하겠군요.”

두 사내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전투는 그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 *

혁명단과 발타자르군의 첫 전투는 발타자르군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을 맺었다.

혁명단의 20만 군세와 발타자르군 13만의 대격돌.

병력의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먼저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수비태세에 접어든 혁명단이었지만, 제대로 된 싸움 한번 못해보고 대패를 당했다.

병력의 질과 무장의 차이는 둘째 치더라도 기병대 간의 첫 격돌에서 혁명단 측의 기병이 너무 허무하게 와해된 것이 패배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수적 우세 덕분에 발타자르군의 보병 전력을 상대로 제법 분투를 하였지만, 기병 전력이 대패하면서 후미를 빼앗기고, 사방에서 몰아치는 발타자르군의 공세에 결국 대패를 면치 못했다.

포로 15만.

사상자 도합 5만에 달하는 뼈아픈 패배를 당한 혁명단에 남은 전력은 30만.

민란 초기 당시 100만을 훌쩍 넘기던 대 군세는 오간 데 없고 이젠 정말 한 줌의 병력 밖에는 남지 않았다.

물론 마법사들을 비롯하여 주요 전력들은 아직 건재하지만, 간다르바가 토벌대와의 격돌의 여파로 요양 중이기에 혁명단의 입장에선 실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그러한 와중에 발타자르의 본대와 2군인 캐러독의 군대가 연전연승을 거듭하며 노도와도 같은 기세로 밀려오니 혁명단은 듀락 후작령에서 그들의 존망을 건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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