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이 회귀함 65화
제도帝都 탈라브하임.
제국 최고 통치권자인 레오노플 프락시온의 주관하에 대신들이 모여 열띤 논쟁이 벌이고 있었다.
여러 가지 안건이 논의되지만 가장 화제가 되는 붉은 십자가 혁명단의 민란에 대한 것이었다.
창백한 안색의 황제는 정치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논쟁을 벌이는 대신들을 턱을 괴고선 지켜볼 뿐이고 옥좌의 아래에선 수많은 대신이 패를 나뉘어 서로를 향해 삿대질하며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거참. 고작 농민들에게 이리 겁을 먹어서야 되겠습니까? 어차피 토벌대가 단숨에 쓸어버릴 것인데요. 그것보다는 요즘 대해에서 기승을 부리는 해적 놈들에 대한 안건에 대해 논의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동부의 대영주 애보니 후작의 말에 서부의 대영주 스테판 후작이 일어나 소리쳤다.
“고작 농민들이라니요! 지금 제정신으로 하시는 말입니까? 그 민란을 일으킨 자가 누군지나 아시고 하시는 소립니까? 무려 오스왈드 간다르바입니다! 현자라 불리는 제국 최고의 아크메이지 말입니다.”
그가 다스리는 영지는 현재 혁명단이 점거한 센피단 지방과 영지를 접하고 있기에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대가 말한 토벌대는 단숨에 쓸어버리기는커녕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지지부진한 상황 아닙니까!”
황명에 따라 제국 전역에서 수많은 인재들이 로마노프 공작가에 합류하여 혁명단의 토벌에 힘쓰고 있지만, 전황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의 크고 작은 교전이 벌어지지만, 일진일퇴를 거듭할 뿐 어느 한쪽이 딱히 유리하다고 볼 수 없는 대치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다.
스테판 후작의 말에 한 대신이 마스터의 투입에 대해 거론했다.
“그렇게 걱정이시라면 빌 헬름 공작 각하께 청을 드려 마스터를 투입하시지요. 전장이 이렇게 지지부진한 것이 오스왈드 간다르바. 그자 때문이 아닙니까. 혁명단 측에서 아크메이지가 날뛰니 그를 상대할 자가 없어 이리 전황이 늘어지는 것이니 마스터를 파견하여 그를 상대하면 될 일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여기서 크게 하는 것 없이 밥만 축내는 이들이 서부의 마스터들 아닙니까.”
대신의 말에 스테판 후작이 기함하며 소리쳤다.
“그게 무슨 무례한 말씀이십니까! 그들은 지금 7왕국 연합으로부터 제국을 굳건히 지키는 충신들인데 밥만 축내다니요! 그런 말씀을 하시는 저의가 무엇입니까!”
스테판 후작의 반박에 대신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7왕국 연합과 마지막 국지전이 벌어진 것이 3년 전입니다. 그것도 수십 명 단위의 소규모 국지전이었고요. 그 이후로는 이렇다 할 전투 한번 벌어지지 않은 것을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다 알고 있습니다. 딱히 하는 것도 없음에도 제국의 안위를 위협하는 혁명단의 토벌에 힘쓰기보다는 제 영지에 틀어박혀 있는 이들이 식충이들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표면적으로 드러난 제국의 마스터는 총 6인.
중앙과 동부에 각각 한 명, 서부와 남부에 각각 두 명이 존재했다.
남부와 동부의 마스터들은 슈리마 왕국과 해적들을 상대하는 것에 투입되어 있고, 중앙의 마스터는 현재 온두라스에 파견되어 있었다.
따라서 현재 가용할 수 있는 마스터는 서부의 마스터들뿐이었다. 하지만 각 세력의 핵심 전력인 마스터를 섣부르게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에 상응하는 이권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에는 말이다.
“말씀이 심하시오!”
스테판 후작과 대신의 언성이 점점 높아지자 내무대신 안티오플 슈텔리앙 후작이 그들을 중재했다.
“두 분은 목소리를 낮추십시오. 황제 폐하께서 계신 어전입니다.”
슈텔리앙 후작의 말에 스테판 후작과 대신이 서로를 노려보더니 이내 황제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였다.
“송구하옵니다. 폐하.”
“무례를 용서하시옵소서.”
말하면서도 끝까지 서로를 노려보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황제가 손을 뻗어 대충 휘휘 내저었다.
“용서하노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제의 말에 회의장이 잠시간 조용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곧 한 대신의 말에 의해 깨졌다.
“기왕 마스터 이야기가 나와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북부에도 마스터가 있지 않습니까. 듣자 하니 야만족의 재침을 막아낸 이후 곧장 로마노프 공작가를 향해 영지전을 선포했다던데…… 이에 대해 아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말을 꺼낸 대신이 슈텔리앙 후작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에 슈텔리앙 후작은 말문이 턱 하고 막혔다.
그 건은 슈텔리앙 후작도 보고를 받은 것이었다.
황제파에 아무런 말도 없이 영지전을 벌인 발타자르로 인해 언제 제도 대신들이 딴지를 걸어올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차에 결국 이야기가 나와 버렸다.
“허허. 제국 북부를 지켜야 할 3군의 사령관이 어느 것이 중요한지도 분간하지 못하다니.”
“그러게나 말입니다. 혁명단이 제국의 안위를 위협하는 작금에 한다는 것이 고작 이권 다툼이라니.”
“이게 다 겨울 전쟁으로 과대평가 받았기 때문입니다. 백작에서 공작위에 오른 것이 불과 2년이 채 되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이참에 발타자르 공작에게서 3군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새로이 3군 사령관을 임명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요즘 군부대신의 장자인 델차르 공자가…….”
“아니, 그보다는 프리드리히 공작 각하의 차남이신…….”
방금 전까지 혁명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는 언제이고 이제 와서 제국의 안위를 위협하는 거대 세력으로 둔갑시키며 새로이 3군 사령관을 임명해야 한다 주장하는 그들의 꼴을 보고 있자니 참 기가 찰 노릇이었다.
참다못한 슈텔리앙 후작이 한마디 하려는데 헐레벌떡 달려온 귀족 하나가 회의장에 들어와 소리쳤다.
“급보입니다! 역도들과의 대회전에서 토벌대가 대패하였다 합니다!”
그 충격적인 소식에 타오르던 연회장의 분위기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혁명단과 호각지세를 이루며 접전 중이라는 보고를 받은 것이 불과 며칠 전인데. 얼마나 지났다고 대패라니!”
한 대신이 기함하며 외치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귀족 하나가 회의장에 들어와 외쳤다.
“급보입니다! 발타자르 공작 각하께서 현재 군을 이끌고 패퇴하던 토벌대를 구원. 혁명단의 본대와 대회전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충격적인 소식이 연달아 제도를 강타했다.
* * *
오슬로를 점거한 직후 발타자르는 올리오 지방의 뒷정리는 로키에게 일임하고선 군을 센피단 지방으로 이동시켰다.
비록 로마노프 공작가와의 영지전에 대한 명분은 충분했다. 하지만 혁명단의 토벌이 진행 중인 시점에서 이것은 자칫 발타자르가 제국의 안위는 도외시한 채 제 이권만을 위해 움직인다며 정치적 공세를 받을 가능성이 높았다.
작금에 이르러 북부 최고의 권력자가 된 발타자르가 그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그들이 발타자르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칠 수 없지만, 제도에 있을 황제파는 달랐다.
제도의 대신들이 발타자르가 황제파에 가담했다고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은 황제파를 압박할 수 있는 명분을 줄 수 있는 문제였다.
연회장의 암습과 발타자르의 승작 건으로 인해 그 세가 많이 위축된 황제파였다.
여기서 더 압박을 받는다면 간신히 세력을 유지하고 있던 황제파가 와해 될지도 모를 심각한 문제였다.
아직 이용 가치가 충분한 황제파가 와해되는 것은 발타자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고, 따라서 힘을 실어줄 필요성이 있었다.
그렇기에 발타자르는 10만의 본대와 함께 센피단 지방으로 진군했다.
또한, 베른 요새 방면에서는 눈치만 보고 있던 바실란 백작에게서 군의 지휘권을 회수.
혁명단의 잔당들로 구성된 5만의 병력에 3군의 정병 2만이 더해져 총 7만의 병력을 캐러독 모그샤트로 하여금 지휘하도록 하였다.
북쪽에는 캐러독이 이끄는 7만의 군대가.
동쪽에는 발타자르가 이끄는 10만의 병력이 진군했다.
혁명단으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격이었다.
가뜩이나 토벌대를 상대하느라 전력이 약화 된 상황에서 발타자르의 군대까지 더해진다면 전멸을 면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었다.
남으론 중앙이, 서쪽으로는 동부의 대 영지들이 존재했다. 괜히 그쪽 방면으로 도망쳤다가는 적을 더 늘리는 꼴밖에는 되지 않았다.
따라서 혁명단의 주구 오스왈드 간다르바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무리해서라도 발타자르의 군대가 도착하기 전에 토벌대를 쓸어버린 후 병력을 추스르고 곧이어 밀려올 발타자르의 군대와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띄우기로 말이다.
* * *
“천운이 따르는가 보군.”
척후대가 물어온 급보를 접한 발타자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무슨 소식입니까?”
옆에서 가웨인이 묻자 발타자르가 답했다.
“토벌대가 대패하였다는군.”
깜짝 놀란 가웨인이 되물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말입니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간다르바가 무리한 모양일세. 반나절 간의 전투 동안 쉴새 없이 고위 마법들을 난사했다는군. 덕분에 토벌대는 제대로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속절없이 패퇴하는 중이고.”
말하는 발타자르의 표정이 무척이나 여유로웠다.
이에 이상함을 느낀 가웨인이 물었다.
“그렇다면 저희도 마냥 낙관적인 상황은 아니지 않습니까? 장군께서 계시다고는 하지만 대군의 호위를 받는 아크메이지를 처리하기란 무척이나 지난할 텐데요.”
“간다르바는 움직이지 못할걸세.”
“예? 움직이지 못하다니요. 혹시 따로 손이라도 써두신 겁니까?”
발타자르가 고개를 내저으며 답했다.
“아크메이지는 신이 아닐세. 토벌대를 일거에 쓸어버릴 정도로 고위 마법을 남발했다는 것은 간다르바가 당분간 요양을 해야 할 정도로 크게 무리를 했다는 뜻이지. 그것은 토벌대와 우리 군을 동시에 상대할 여력이 없다는 뜻이고. 최대한 빠르게 토벌대를 정리하고 병력을 추슬러 우리 군을 상대하겠다는 의도이기도 하지.”
혁명단의 상황은 극도로 좋지 않았다.
비록 민란이 제국 전역으로 퍼져 나갔으나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 규모가 크지 못했고, 결국 민란은 북부에 한정될 뿐이었다.
거기에 더해 병력의 규모에 맞지 않게 식량 수급에 난항을 겪고 있으며 연신 토벌대와 전쟁을 치르다 보니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는 중이었다.
“물론 여전히 혁명단의 규모는 압도적이고 간다르바의 제자들 역시 큰 위협이지만, 마법사가 그쪽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발타자르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가웨인을 흘겨보며 말했다.
“설마. 마법사들의 지원도 받지 못하는 혁명단에게 질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겠지?”
가웨인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아니지요. 이 전쟁에서 이겨야 지난번의 내기대로 술을 사지 않겠습니까?”
가웨인의 농담에 발타자르가 마주 웃어 보이곤 트리스탄을 불렀다.
“트리스탄!”
발타자르의 부름에 근처에서 제 수하들과 시시덕거리던 트리스탄이 말을 몰아 다가왔다.
“예, 대장. 부르셨어요?”
“기병 1만을 붙여주겠네. 먼저 가서 토벌대가 퇴각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게.”
발타자르의 명에 트리스탄이 씨익 웃더니 살기 띤 목소리로 물었다.
“알겠습니다. 아 참. 여차하면 다 죽여도 되죠?”
“뜻대로 하게.”
발타자르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하자 트리스탄이 제 가슴팍을 두어 번 주먹으로 툭툭- 두드리더니 제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예! 가자! 꼴통들아! 전쟁이다!”
트리스탄의 쾌활한 목소리와 함께 그녀의 기수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내지르더니 그녀의 뒤를 따라 빠르게 치고 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