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이 회귀함 60화
발타자르를 비롯해 모든 주력이 자리를 비운 온두라스에 제도의 조사단이 방문하였다.
총 300명에 이르는 조사단을 이끄는 자는 슈미트라 교단의 아크 크루세이더 켈마르크 백작, 외무대신의 사냥개로 유명한 이였다.
그는 인자한 동네 아저씨와 같은 외견과는 달리 슈미트라를 믿지 않는 이들은 이교도라 칭하며 배척하고 그 정도가 심할 경우 성전이라는 이름 아래 살수를 자행하기를 망설이지 않는 냉혹한 자였다.
신종서약을 할 정도로 슈미트라의 열렬한 신자이며, 교단 내에서는 ‘이단 심문관’으로 더 유명한 그가 온두라스에 방문하자마자 가장 먼저 행한 것은 이단 색출이었다.
온두라스를 방문한 주목적은 잊었다는 듯이 켈마르크 백작이 이끌고 온 크루세이더들과 사제들이 연일 온두라스를 들쑤시고 다니며 슈미트라를 믿지 않는 이들을 이단자라 칭하며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사망자는 나오지 않았지만 그들의 만행으로 제법 많은 시민이 다치거나 감옥에 투옥되었고, 이에 시민들은 온두라스의 행정관인 밀튼을 찾아가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하루하루가 불안해서 살 수가 없습니다.”
“언제 슈미트라 교단의 사제들이 들이닥칠지 모르니 상점들도 다 문을 닫고 있습니다.”
발타자르가 떠나기 전 밀튼에게 조사단이 찾아와 무슨 짓을 저지르더라도 참고 인내하라는 말을 남겼기에 처음 밀튼은 슈미트라 교단의 만행에도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들이 어떤 일을 벌여놓건 간에 발타자르가 돌아온다면 모두 해결될 것이란 믿음이 있었기에 그저 침묵하며 그들이 저지른 만행들을 기록하고 수시로 발타자르에게로 보내었다.
하여 최근 발타자르에게서 조만간 돌아올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기에 속에서 불길이 치밀어도 꾹 참고 인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크, 큰일 났습니다!”
행정 관료 하나가 헐레벌떡 밀튼의 집무실로 찾아왔다.
“무슨 일이기에 그리 호들갑인가?”
처음에 밀튼은 오늘도 역시나 슈미트라 교단의 사제들이 난리를 치는 것 때문에 저리 호들갑을 떠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그들이 벌인 일은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했다.
“조, 종교재판! 켈마르크 백작이 종교재판을 실시한다고 합니다!”
종교재판.
일반적으론 사제가 이단의 혐의가 있는 자를 기소하여 재판대 위에 세우고 명망 높은 사제의 주도 아래 이단 심문관이 심문하여 이단자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교단의 교권을 강화하기 위한 술책으로 이단자의 탐색, 적발, 체포, 재판, 처벌을 포함하는 이단자 박멸을 위한 일체의 활동이 종교재판에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아주 명확한 증거가 있지 않은 이상에야 이단 혐의는 오로지 이단 심문관 혹은 사제들의 판단에 의해 결정된다.
결국, 종교재판이란 정치와 마찬가지로 교단이 저들의 정적들을 상대하기 위해 벼려 놓은 그들의 칼날이었다.
지금 켈마르크 백작은 교단의 위세를 등에 업고 본격적으로 온두라스를 향해 칼날을 들이밀고 있다는 뜻이었다.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린 밀튼이 다급한 음성으로 물었다.
“대상자는? 그들이 지목한 이단자들이 있을 것 아닌가!”
그의 물음에 행정 관료가 답했다.
“그동안 투옥 시킨 시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다고 합니다. 또한.”
그동안 슈미트라 교단에서 이단 혐의로 잡아들인 시민들만 수백이었다. 이건 정말 대참사가 벌어질지도 모를 큰일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잠시 말하기를 망설이던 행정 관료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어갔다.
“이만한 수의 이단 혐의자들이 색출된 적은 근래 들어 처음이라며 온두라스 관리 중에도 이단자가 있을지 모른다며 밀튼 님을 비롯하여 온두라스에 남아 있는 관료들과 장교들을 모두 기소하였습니다.”
그동안 슈미트라 교단이 온두라스의 관료들에게는 마수를 뻗지 않는다 싶었더니 이것을 노리고 있었구나 싶었다.
“지금 슈미트라 교단의 크루세이더들이 밀튼 님을 연행하기 위해 내성으로 오고 있습니다. 이걸 어찌합니까?”
행정 관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밀튼의 집무실 문이 부서지듯 거칠게 열렸다. 그리고 슈미트라의 상징인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태양이 새겨진 갑옷으로 중무장한 크루세이더들이 난입했다.
“온두라스의 수석 행정관 밀튼 자작. 맞소?”
난입한 크루세이더 중 하나가 밀튼을 바라보며 물었다.
“맞네.”
밀튼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하자 크루세이더가 말했다.
“이단 혐의로 기소 되었소. 오늘 정오에 종교재판이 실시될 예정이니 우리와 함께 재판장으로 향해야 하오. 이에 불응할 경우 현장에서 사살해도 좋다는 아크 크루세이더의 말씀이 있었으니 순순히 따라오시는 것이 좋을 것이오.”
크루세이더의 말에 밀튼이 안경을 추켜올리곤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백작 이상의 고위 귀족이 다스리는 영지에서 종교재판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해당 영지의 영주 혹은 주교의 승인이 있어야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소만.”
밀튼의 말에 크루세이더가 피식 웃으며 품에서 한 장의 서찰을 꺼내 펼쳐 들었다.
“슈미트라 교단의 주교이신 프란체스 자비에고 님께서 보내신 공문이오.”
크루세이더가 펼쳐 든 서찰에는 외무대신임과 동시에 슈미트라 교단의 주교인 프란체스 자비에고의 인장과 함께 온두라스에서 종교재판을 시행하는 것을 승인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것을 보자 밀튼은 어떻게 손을 써볼 방도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지금 작정하고 온두라스, 아니, 발타자르를 향해 칼날을 들이밀고 있었다.
여기서 저들의 소환 요구에 불응해 봐야 발타자르에게 누가 되는 일밖에 되지 않았다.
“알겠네. 따라가지.”
결국, 밀튼은 순순히 연행되는 것을 택했다.
* * *
온두라스의 광장.
사제복을 입은 켈마르크 백작이 단상 위에서 광장에 모인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단상 아래에는 그동안 슈미트라 교단에서 잡아들인 시민들과 온두라스의 장교와 관리들이 포승줄에 손발이 결박된 채로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크루세이더들과 사제들이 이들을 감시하듯 둘러싸고 있었으며 그들의 앞에는 켈마르크 백작이 소집한 온두라스의 시민들이 나와 재판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부터 재판을 시작하겠다. 이들은 자애로우신 슈미트라 님의 손길을 거부하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신을 부정하고 그분을 욕되게 하는 말을 일삼았다. 또한! 악신을 숭배하여 영혼이 타락하였으니 이에…….”
켈마르크 백작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그대들이 슈미트라 님을 믿느냐는 질문에 아니라고 답하자마자 이교도라며 잡아들여 놓고선 사교라니!”
“악신은 또 무엇입니까! 제라트레온 님께서 언제부터 악신이 되셨습니까! 그분은 북부의 토착신 이십니다! 결코 악신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가 내뱉는 이교의 증거들은 하나같이 그의 억측들뿐이었다.
확실한 증거 하나 없이 그의 편파적인 심증만으로 이들을 재판대에 세운 것이 드러나자 슈미트라 교단의 사제들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재판을 지켜보아야 했던 시민들이 거세게 항의했다.
“이게 무슨 재판이라고 부른 거냐!”
“발타자르 공작 각하가 두렵지 않느냐!”
“증거도 없으면서 사람들을 잡아가다니! 신께서 노하실 거다!”
분위기에 편승하여 시민들이 하나둘 한마디씩 꺼내기 시작하자 광장이 무척이나 소란스러워졌다.
“시끄럽군.”
켈마르크 백작이 눈썹을 찌푸리며 중얼거리자, 단상 아래에서 대기 중이던 크루세이더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이에 시민들이 황급히 입을 다물곤 그들에게서 물러나기 시작했고, 켈마르크 백작은 근엄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지금부터 이들을 옹호하는 자들은 이교도로 간주하고 함께 재판대에 세우겠다.”
그 말을 끝으로 켈마르크 백작은 하나같이 억측뿐인 증거들을 나열하며 잡아들인 이들에게 판결을 내리기 시작했다.
거기에 반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당장 살기 어린 눈으로 연신 주변을 훑어보는 크루세이더들의 검이 두려웠으므로.
* * *
재판은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체의 변론도 받지 않고 일방적으로 죄목을 나열하며 판결을 내리니 시간이 오래 걸릴 턱이 없었다.
판결은 하나같이 사형.
아니, 정화형이었다.
슈미트라의 상징인 태양의 불길로 오염된 영혼을 정화시킨다는 명목 아래 단상의 바로 앞에 장작들이 층층이 쌓아 올려졌다.
사제 하나가 쌓아 올린 장작에 불을 붙이자 거센 불길이 순식간에 장작을 집어삼키며 불길을 키워 나갔다.
켈마르크 백작이 피어오르는 불길을 내려다보며 두 팔을 벌렸다.
“슈미트라 님을 찬양하라! 그분의 은총으로 그대들의 오염된 영혼을 정화할지니!”
켈마르크 백작의 말과 동시에 형이 집행되었다.
정화형의 판결을 받은 이들이 거칠게 저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크루세이더들이 그들을 강제로 단상 위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가장 먼저 한 사내가 단상 옆의 불길 앞에 섰다. 그는 다리를 후들거리며 크루세이더들의 손을 피해 달아나려 발버둥 쳤지만 헛수고였다.
그의 두 팔을 강하게 붙잡은 크루세이더들이 그를 불길을 향해 내던지려 하던 순간이었다.
“집행을 멈추어라!”
일단의 무리가 광장으로 난입했다.
인파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들은 순식간에 단상 아래에서 대기 중이던 크루세이더들과 사제들을 제압했다.
이들은 하나같이 망토를 뒤집어쓰고 있어 정체를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켈마르크 백작은 단상 아래의 불청객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들은 누구인가.”
켈마르크 백작의 물음에도 이들은 답이 없었다.
그저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제압한 크루세이더들과 사제들을 무릎 꿇리고 그들의 목에 검을 겨눈 채 일체의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켈마르크 백작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더니 발을 들어 올려 거칠게 내리찍었다.
쿵-
일순간 강렬한 기운이 주변 일대를 짓눌렀다.
“누구냐. 누가 그대들을 사주하여 이 성스러운 재판을 모욕하려 드는 것이냐.”
켈마르크 백작이 성난 기색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순간 유독 눈에 띄는 이가 있었다.
화려한 용이 수놓아진 망토를 뒤집어쓴 그는 시종일관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천천히 켈마르크 백작을 향해 다가갔다.
그가 켈마르크 백작을 향해 다가갈수록 크루세이더들과 사제들을 제압했던 이들이 주먹으로 제 가슴팍을 두드리며 그를 향해 경례를 올렸다.
쿵쿵-
“프락시온 제국에 영광을!”
그리고 그 경례는 이윽고 하나의 함성이 되어 광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프락시온 제국에 영광을!]
단상 앞에 도달한 그는 망토의 후드를 뒤로 넘기며 모습을 드러내었다.
연보랏빛 머리칼이 물결치듯 흘러내리며, 그의 금빛 눈동자가 단상 위에 서 있는 켈마르크 백작을 응시했다.
“누가 사주하였냐고 물었는가?”
팟-
순식간에 사내가 단상 위로 치솟으며 켈마르크 백작의 앞에 내려섰다.
일순간 시선이 교차하고, 켈마르크 백작이 사내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켈마르크 백작의 물음에 사내가 슥 주변을 둘러보더니 답했다.
“발타자르 공작.”
온두라스의 주인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