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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59화 (59/183)

공작이 회귀함 59화

야만족의 싸움 방식은 거칠고 투박하다.

적의 공격을 피하거나 흘려내기보다는 정면에서 맞받아치는 것을 선호하며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것이 그들의 싸움법이다.

이 점만 놓고 본다면 기교가 주가 되는 제국 기사들이 손쉽게 야만족의 전사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하나 실상 그들과 검을 나누게 되면 사냥개처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며, 상처 입기를 주저하지 않고 끊임없이 근접전을 요구하는 그들의 맹공에 고전하기 일쑤였다.

따라서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무수히 많은 변화를 가진 기교의 검술이 아닌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누르는 패도적인 검술이 필요했다.

콰아앙─

로키의 도끼와 발타자르의 검이 맞부딪치며 거센 충격파가 일어났다.

흩날리던 거센 눈보라가 역으로 쓸려나가고, 두 사내가 발을 딛고 있는 지면이 움푹 파여 들어갔다.

파앙-

재차 두 사내가 땅을 박차고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로키의 양날 도끼가 발타자르의 목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발타자르가 이를 정면으로 맞받아치고, 내리친 로키의 양날 도끼가 튕겨 나갔다.

퍼억-

이어서 발타자르의 발차기가 로키의 안면에 적중하고 로키의 고개가 옆으로 크게 돌아갔다.

“퉷-”

로키가 소복이 쌓인 눈 위에 핏물을 뱉어내자 핏물이 새하얀 눈을 묽게 물들였다.

“못 본 사이 제법 강해졌구나!”

로키가 즐겁다는 듯이 웃으며 양날 도끼를 머리 위로 빙글빙글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점점 회전력에 가속도가 붙으며 거친 폭풍이 로키를 감싸며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푸른 오러블레이드를 머금은 로키의 양날 도끼가 회전하며 오러블레이드의 폭풍이 휘몰아치자 주변을 사납게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파앗-

로키가 땅을 박차고 튀어 오르며 양날 도끼를 휘둘러 왔다. 마치 폭풍이 쏘아지는 것만 같은 그 일격을 발타자르는 피하기보다는 정면에서 맞받아쳤다.

발타자르의 장기인 횡 베기가 펼쳐지고 붉은 오러블레이드를 머금은 일격이 로키의 푸른 오러블레이드에 대항하여 휘둘러졌다.

쿠우우웅─

방금 전의 접전보다 더욱 거센 충격파가 주변 일대를 휘몰아쳤다. 대지를 뒤덮고 있던 눈이 마치 먼지처럼 피어오르며 주변을 뿌옇게 뒤덮었다.

이윽고, 눈보라가 몰아치며 서서히 피어올랐던 눈 먼지가 걷히고 두 사내의 모습이 드러났다.

“쿨럭…….”

땅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로키가 피를 한 움큼 토해내었다. 그런 로키의 왼쪽 어깨에는 한 끗 차이로 발타자르의 검이 멈추어져 있었다.

스르륵-

로키의 양손 도끼가 미끄러지듯 반으로 갈라지며 얼어붙은 대지 위로 떨어졌다.

쿵-

로키가 자루만 남은 양날 도끼를 내팽개치듯 던지며 발라당 뒤로 드러누웠다.

겨울 전쟁 당시에는 두 사내가 치열한 접전 끝에 중상을 입고 물러난 것에 비해 사뭇 다른 결과였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로 패배한 로키가 눈동자만 굴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느새 도착한 족장들이 떨리는 눈동자로 로키와 발타자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괴물이군.’

마지막으로 발타자르와 맞붙은 것이 1년이 채 되지도 않았는데, 그사이에 힘의 격차가 크게 벌어져 있었다.

재차 싸운들 결과는 같으리라.

발타자르가 검을 거두고 로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 몸에 좋은 약이라도 밥 먹듯 먹고 왔나 보지?”

제가 말하고도 어이가 없었는지 로키가 피식하고 웃었다.

“내가 졌네.”

로키가 손을 내밀며 말하자, 발타자르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하면, 바로 세 번째 약속을 이행하도록 하지.”

발타자르의 말에 로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지금부터 전사들의 연회를 시작한다!”

발타자르와 로키가 맺은 세 번째 약속.

그것은 전사들의 연회를 개최하는 것이었다.

연회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이것은 야만족, 아니, 바이칸 일족의 존망을 결정지을 정도의 큰 안건이 생겼을 때 열리는 대회의에 가까웠다.

바이칸 왕의 주도하에 열리는 대회의는 족장들만이 참여하여 다수결로 안건에 대해 결정을 내린다.

대표적으로 지난 겨울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도 이 전사들의 연회가 열렸고 과반수의 동의하에 전쟁을 일으켰었다.

발타자르의 요구에 따라 로키는 전사들의 연회를 개최하였고, 북부에 자리 잡은 여러 부족을 대표하는 족장들이 모여들었다.

* * *

둥- 둥- 둥-

눈으로 만든 벽돌로 쌓아 올린 거대한 회의장이 순식간에 건설되고, 그 안에 바이칸의 왕을 비롯해 여러 족장과 발타자르가 모였다.

회의장의 가장 상석에는 로키가 자리를 잡고 그의 앞으로 양쪽에 각기 부족의 크기가 큰 족장들 순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발타자르는 로키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회의장 중심에는 거대한 모닥불이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그 앞에 주술사가 무릎을 꿇고 경건한 몸짓으로 의식을 진행하고 있었다.

“……하여 우트가르트 로키의 이름으로 전사들의 연회를 개최하오니 바이칸의 위대한 선조들이시여, 부디 후손들을 굽어살피시옵소서.”

주술사의 의식이 끝나고 전사들의 연회가 시작되었다.

의식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로키가 의식이 끝난 직후 감았던 눈을 뜨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 모인 것은 지난번 대회의 이후로 처음이로군.”

그때, 요툰의 족장이 손을 들었다.

“말하게.”

로키가 발언을 허락하자 요툰의 족장이 물었다.

“왕이여. 근래에 연회를 개최할 만한 일이 없는데 이렇게 갑작스레 연회를 개최한 까닭이 무엇이오?”

요툰 족장의 물음에 로키가 어깨를 으쓱여 보이며 답했다.

“나도 모르네.”

로키의 대답에 요툰 족장의 얼굴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만이 아니라 몇몇 족장들 역시 그와 같은 표정이었다.

“왕! 그대가 아무리 바이칸의 지도자이고 또한 전사들의 연회를 개최할 자격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렇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우리들을 불러모을 수는 없는 것이오!”

그의 말에 동의하듯 여러 족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성토했다.

“옳소!”

“특별한 이유 없이 개최한 연회라면 이만 가 보겠소!”

“진정들 하시게. 아무렴 왕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연회를 개최했으려고. 이 자리에 제국의 용이 함께한 것을 보니 그와 이번 연회가 관련이 있는 듯하니 좀 더 이야기를 들어 보세들.”

알프헤임의 족장이 로키와 그를 성토하는 족장들 사이에서 중재했다. 그러자 그의 중재로 저마다 떠들어대던 족장들이 입을 다물고선 일제히 발타자르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발타자르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오랜만이군.”

발타자르가 그를 바라보는 족장들의 시선을 하나하나 마주하며 인사했다. 하나같이 겨울 전쟁에서 발타자르와 검을 맞대지 않은 이가 없었다.

강자를 존중하는 그들의 전통답게 족장들은 발타자르에 대한 존중의 의미로 작게 눈인사를 하곤 그의 말을 경청했다.

“알프헤임의 족장이 짐작한 대로 이번 연회는 내 요청에 의해 개최된 것일세. 그대들도 잘 알다시피 나와 그대들의 왕인 로키가 맺은 세 번째 약속 때문에 열린 연회이지.”

약속이 언급되자 그때까지 얼굴에 불만을 띄던 족장들이 표정에서 불만을 지워내었다. 그만큼 약속이란 것은 바이칸들에게 중요한 것이었다.

“이렇게 내가 전사들의 연회를 개최한 이유는 향후 바이칸들의 거취 문제 때문이라네.”

발타자르의 말에 로키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거취 문제라 함은……?”

“지난, 겨울 전쟁이 발발한 이유도 그렇고 최근 강해지는 스카디의 분노 때문에 여기 모인 족장들 모두 난처해하는 것을 알고 있네.”

스카디의 분노는 일정한 주기로 북부에 찾아드는 한파를 말했다.

물론 사시사철 한파가 몰아치는 북부이지만 이 스카디의 분노가 찾아오는 계절이면 추위에 익숙한 바이칸들조차도 쉬이 거동이 힘들 정도의 한파가 몰아쳤다.

그동안은 그래도 어느 정도 버틸 만한 정도였지만 최근 들어 스카디의 분노가 점점 거세져 마수들조차 한파를 피해 동면에 드는 일이 잦아졌다.

그 탓에 식량 수급에 난항을 겪는 것은 물론 부족민들이 동사하는 일도 잦아진 것이다.

때문에, 이번 겨울 전쟁이 벌어진 것이고, 일족의 사활을 걸고 일으킨 겨울 전쟁에서 마저 대패한 지금 바이칸의 족장들은 스카디의 분노를 피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내가 그대들에게 제안할 것은 나와 손을 잡자는 것일세. 혈맹을 맺자는 말일세.”

발타자르의 말에 족장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땅을 내어 주겠네. 제국에 터를 잡게.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겠네. 그곳에서 자네들의 전통대로 살아가게.”

소란이 더욱 커져갔다.

발타자르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로키가 손을 들어 올렸다.

“말하게.”

“혈맹이라고 포장하기는 하지만, 땅을 그냥 내주지는 않을 것 아닌가? 그대의 요구 조건은 무엇인가? 또한, 이것이 제국의 뜻인가?”

로키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닐세. 이것은 오로지 내 독단적인 판단일세.”

“그렇다면 자네는 제국과 척을 지겠다는 소리인가? 그만한 가치가 우리에게 있다고 자넨 판단한 것인가?”

“자네들 바이칸에게 그만한 가치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맞네. 자네들은 그럴 가치가 충분한 이들일세. 다만 이것이 제국과 척을 지겠다는 뜻은 아닐세.”

발타자르가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갔다.

“현재 제국은 극도로 정세가 불안한 상황일세. 혁명단이라는 반란군이 민란을 일으켰으며 거기에 모든 이목이 집중되어 있지. 또한, 조만간 제국에 큰 소란이 일어날 걸세. 그것은 자네들이 제국에. 내 영토에 터를 잡는다고 해도 그것에 대해 신경 쓸 여유가 없다는 뜻이지.”

발타자르의 말에 로키가 말했다.

“솔직히 자네가 제국과 척을 져도 상관이 없고, 이 제안을 우리가 받아들임으로써 자네가 어떤 이득을 취하든 상관없네. 다만. 자네는 아직 내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았네. 다시 묻지. 그대의 요구 조건이 무엇인가?”

로키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답했다.

“앞서 말했듯이 혈맹일세. 자네들과 내가 생사를 함께한다는 뜻이지. 조만간 제국의 정세는 극도로 혼란스러워질 것이고 그에 대비하기 위해 나는 강력한, 믿을 수 있는 혈맹이 필요하네. 그에 걸맞은 것이 바로 자네들이고. 그리고…….”

발타자르가 잠시 뜸을 들이며 족장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발타자르의 제안에 썩 흥미가 동한 듯 그의 이어질 말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발타자르는 거부하지 못할 제안을 건넸다.

“내 제안을 수락한다면 자네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전장을 끊임없이 제공해 주겠네.”

작금의 바이칸들에게 들이닥친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물론 그들이 그 무엇보다 선호하는 전장을 끊임없이 제공해 주겠다는 발타자르의 말은 그들에게 무척이나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전장이라는 두 단어에 족장들이 흥분하기 시작하는 가운데 로키가 발타자르의 눈동자를 응시하며 물었다.

“자네의 이름으로 약속하는 것인가?”

로키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일말의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일세. 아 참. 표면적으로 자네들은 내 아래로 들어온 것으로 해주어야 하네.”

“그건 그닥 달갑지 않은 소리인데?”

로키가 불퉁한 목소리로 말하자 발타자르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솔직히 자네들이야 전장만 제공해 준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나.”

발타자르의 말에 로키가 실실 웃기 시작했다.

“그건 그렇지.”

그리 답하곤 로키가 쿵- 하고 테이블을 내려치며 말했다.

“표결하겠다. 제국의 용이 내민 손을 잡겠는가?”

로키가 표결을 선언했고, 연회장에 모인 족장들은 만장일치로 발타자르의 제안을 수락했다.

* * *

일주일 후.

수백만에 달하는 바이칸들이 비프로스트 요새를 지나 발타자르의 영토로 대이동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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