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이 회귀함 50화
연회장의 사건 이후로 제도에서는 슈텔리앙 후작이 이끄는 황제파가 대신들과 선제후들의 파벌의 맹렬한 지탄을 받으며 정치적 공세를 받았으며, 일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온두라스에 조사단을 파견하였다.
조사단을 이끄는 자는 켈마르크 백작으로 제국 2대 종파인 슈미트라 교단을 수호하는 성기사들의 수장 아크 크루세이더Ark Crusader였다.
달리 외무대신의 사냥개라 불리는 켈마르크는 슈미트라의 열렬한 신자이며, 그의 수식언에 항상 따라붙는 것이 바로 제국 최강이었다.
켈마르크의 파견 소식에 선제후와 대신들의 파벌에 속한 귀족들은 축제 분위기가 되었고 반대로 황제파의 귀족들은 침통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조사단이 도착한다면 황제파에 불리한 편파적인 수사가 진행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미치겠네. 외무대신이 이런 초강수를 둘 줄은 몰랐어.”
발타자르의 집무실의 소파에 드러누워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진페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발타자르는 그런 진페오에겐 시선조차 주지 않고 서류 작업에 열중이었다.
“암살자들에 대한 정보는 아직이야?”
진페오가 고개만 치켜들어 발타자르를 바라보며 물었다.
“에버나스 지방 전역에 사람들을 보내 조사 중이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더군. 슈텔리앙 후작께서는 별말씀 없으시던가?”
“아버지께서도 따로 조사 중이긴 한데 너랑 마찬가지야. 거기다 요즘 정치적 공세를 받고 계셔서 쉽게 움직이기도 힘드셔서 내게 이번 일에 대해 전권을 일임하셨어.”
“제도 쪽에서도 상황이 좋지 않은가 보군.”
“그렇지 뭐. 아무래도 정황만 놓고 보면 우리 쪽에 불리한 일이니까.”
말하며 진페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발타자르는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으며 물었다.
“혹 이번 일이 황제파의…….”
“아니, 절대 아니야. 혹시나 해서 따로 조사를 해봤는데 우리 쪽에서 벌인 일은 아니었어.”
진페오가 발타자르의 말을 끊으며 단호히 부정했다.
“그렇다면 대신들 혹은 선제후 중에서 누군가 일을 벌인 것이 분명하겠군.”
발타자르가 진페오에게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소파 위에 드러누워 있던 진페오가 벌떡 일어나 발타자르가 내민 서류를 집어 들었다.
“이게 뭔데?”
진페오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서류를 살펴보기 시작하자 발타자르가 말했다.
“혹시나 해서 최근 온두라스에 출입한 이들 중 행방이 묘연한 이들에 대해 따로 조사해 보았네. 보고서에 따르면 그들에게 한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보다시피 손등에 초승달 모양의 문신이 있었다고 하더군.”
단박에 진페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검은 사월……?”
초승달 모양은 제국 제일의 암살단.
‘검은 사월’의 상징이었다.
회귀 전에는 외무대신의 실각 이후 끈 떨어진 연 신세가 된 이들이었으며, 신시아가 이끄는 ‘별의 구도자’에게 흡수당한 세력이었다.
“누군가 이들에게 사주하여, 이번 일을 벌였단 소리야?”
“확실한 것은 좀 더 조사해 봐야겠지만.”
물론 이것은 조작된 서류였다.
애초에 연회장에서의 암습을 주도한 것이 발타자르인데 그와 아무런 접점도 없는 검은 사월이 이번 일에 개입할 리가 없었다.
“황제파는 현재 움직이기 힘든 상황이니 원한다면 내 사람들을 빌려주겠네.”
“자네 사람들을?”
“그렇네. 최근 ‘별의 구도자’라는 정보단체를 신설했는데 제법 쓸 만하다네. 그 정보를 물어 온 것도 그들이라네. 어찌하겠나?”
현재 제도는 대신들과 선제후들이 손을 잡고 황제파를 압박하는 중이었다. 연일 정쟁을 벌이며 정신이 없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발타자르는 이 기회에 제도에 자신의 사람들을 심어놓을 생각이었다.
회귀 전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는 해도 그것과는 사뭇 다른 흐름으로 흘러가는 지금. 제도의 상황을 미리 인지하고 있을 필요가 있었다.
또한, 황제파와 대신들 간의 갈등을 심화시킬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으니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기회였다.
“고마워. 이 빚은 내가 꼭 갚을게.”
고심하던 진페오가 결정을 내리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자 발타자르가 씨익- 웃으며 답했다.
“고맙기는 무슨.”
오히려 내가 더 고맙지.
발타자르는 속으로 조소를 금치 못했다.
검은 사월은 외무대신의 비장의 카드였다. 발타자르가 정보를 조작하지 않는다고 해도 분명 조사한다면 외무대신과 검은 사월의 접점이 나올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황제파에서는 이번 일의 배후로 외무대신을 확정할 것이고,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테지.
“각하! 급보입니다.”
발타자르와 진페오가 서로 다른 생각으로 미소지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가운데 집무실로 장교 하나가 난입했다.
헐레벌떡 달려온 그는 연신 거친 숨을 몰아쉬며 황급히 소리쳤다.
“야만족이 비프로스트 요새를 향해 진군을 개시했다 합니다!”
북부의 야만족이 재침공을 시작했다는 비보가 온두라스로 날아들었다.
* * *
온두라스에 긴급회의가 열렸다.
발타자르의 수하들을 비롯해 진페오와 그를 따라온 황제파와 대신들, 그리고 선제후들의 세력에 소속된 귀족들이 한데 모인 가운데 회의가 진행되었다.
“다들 들었다시피 야만족이 재침공을 개시하였네. 이에 본관은 군을 이끌고 비프로스트로 향할 생각이네.”
발타자르의 말에 웅성거림이 커지기 시작했다.
이에 발타자르가 회의용 테이블을 손으로 툭툭 두드리며 소란을 진정시켰다.
“그대들을 이리 모은 것은 로마노프 공작가에서 출발하는 토벌대 1진과의 연계 작전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일세.”
귀족 중 하나가 손을 들어 올렸다.
지난번 연회장에서 진페오를 압박했던 중년 귀족이었다.
그는 대신들의 파벌에 속한 이로 이번에 대신들에게 막대한 뇌물을 바쳐 에버나스 지방의 비어있는 영지 중 한 곳에 영주로 부임할 예정인 바실란 백작이었다.
“말하게.”
“하면 공작 각하께옵선 황명을 어기시고 북부로 향하시겠단 말씀이십니까?”
바실란 백작이 사뭇 공격적인 어조로 물었다.
이것만 보아도 이들이 발타자르가 황제파에 가담했다고 생각하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에 진페오가 발끈하며 나서려 했지만, 발타자르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본관은 지엄하신 황제 폐하의 명에 따라 북부를 지키는 3군의 책임자일세. 따라서 본관이 최우선으로 해야 할 것은 혁명단의 토벌이 아니라 북부 야만족의 침공으로부터 제국을 지키는 일일세.”
발타자르의 말에 바실란 백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주위 귀족들을 둘러보며 발타자르의 말을 반박했다.
“혁명단을 토벌하는 것 또한 제국을 지키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아니, 오히려 혁명단 토벌이 더욱 선행되어야지요. 자칫 저들의 세가 커진다면 제국 전역으로 민란의 불길이 확산될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자네는 한낱 무지렁이들이 일으킨 민란 따위에 제국의 군대가 패배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인가?”
발타자르의 물음에 바실란 백작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전 그저 만약의 상황을 상정하고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혹여 공작 각하께서 3군 총사령관직과 에버나스 지방의 통치를 겸하기에 무리가 있는 것은 아닐는지 걱정이 들어서 말입니다. 다들 아니 그렇습니까?”
바실란 백작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자, 그와 같은 파벌에 소속된 귀족들이 맞장구를 치며 발타자르를 힐난했다.
이에 발타자르가 회의용 테이블을 쿡- 하고 내려치며 소란을 진정시켰다. 그러곤 서릿발처럼 차가운 냉기가 내려앉은 미소와 함께 바실란 백작을 비롯한 귀족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자네들이 뭔가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본관은 에버나스 지방을 점거한 혁명단을 몰아냄으로써 에버나스 지방을 통치하는 이로서 책임을 완수하였네. 또한! 제국 북부를 지키는 것이 3군의 임무이기는 하나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것은 야만족으로부터 비프로스트 요새를 지키는 일일세.”
발타자르가 자리에서 일어나 바실란 백작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회의장을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발타자르가 바실란 백작의 앞에 도착했을 때 그의 안색은 새하얀 백지장처럼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발타자르는 다정한 손길로 바실란 백작의 어깨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주며 말했다.
“전대 로마노프 공작을 비롯한 로마노프 공작가는 이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기에 총사령관직을 박탈당한 것이고. 본관은 그 일을 충실히 이행했기에 총사령관직에 임명된 것이네. 이만하면 자네의 걱정이 해결되었는가?”
바실란 백작이 털썩 자리에 주저앉으며 황망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만족스럽게 바라본 발타자르가 여전히 바실란 백작의 어깨에 손을 얹은 채로 말을 이어갔다.
“물론 전군을 이끌고 북부로 향하겠다는 말은 아닐세. 병력 5만을 지원해 주겠네. 3군의 지휘관들은 나와 함께 비프로스트로 향해야 하니 군을 이끄는 것은 그대들이 되어야겠지. 애초에 그러기 위해 온 것이 아니던가.”
아직 정식 공문이 떨어지기 전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진페오가 온두라스를 방문한 표면적 이유인 혁명단 토벌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책임자는…… 그래. 자네가 좋겠군.”
주변을 둘러보던 발타자르가 바실란 백작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이에 바실란 백작이 몸을 흠칫 떨었다.
“진페오 부탑주는 독립부대로 마법사들을 이끌어야 하니 자네가 가장 적임자로 보이네만. 어떤가. 할 수 있겠지?”
발타자르의 압박에 몸을 떨던 바실란 백작은 순간 이것이 위기임과 동시에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발타자르에게 밉보인 이상 제대로 된 병력을 붙여줄 리가 없었다. 그렇지만 5만이었다. 거기에 이 5만의 병력으로 혁명단을 토벌하는 것도 아니었다.
본대는 어디까지나 로마노프 공작가에서 출발하는 1진이었다. 따라서 2진은 혁명단의 전력을 분산시키는 역할만 해도 충분히 제 몫을 하는 것이었다.
‘북부의 영웅이라 떠받들어도 결국은 무장 나부랭이. 싸우는 시늉만 해도 된다는 생각은 못 했겠지.’
바실란 백작이 속으로 조소를 금치 못하는 가운데 발타자르의 말이 이어졌다.
“아참. 부끄러운 말이지만 야만족의 침공과 혁명단의 발호로 인해 에버나스 지방엔 지금 막 터진 야만족의 재침공을 막아내는 것에도 모든 힘을 쏟아부어야 하는지라 군수품 지원을 해줄 여력이 없다네. 하니 보급은 일단 자네들의 사비로 충당하게.”
바실란 백작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진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 * *
회의가 끝나고 집무실로 돌아가는 발타자르를 진페오가 다급히 불러 세웠다.
“나와 함께 온 이들이야 혁명단 토벌에 함께한다고 해도 제도에서 나오는 조사단은 어쩔 거야? 그들이 여길 들쑤시고 다닐 것이 뻔할 텐데.”
다들 착각하는 것이 있는데 발타자르의 본진은 이곳 온두라스가 아닌 제국 최북단에 위치한 비프로스트 요새였다.
암만 켈마르크가 이끄는 조사단이 온두라스를 들쑤시고 다닌다고 해도 문제 될 것이 나올 리가 없다는 소리였다.
“어쩔 수 없지. 최대한 정리를 하고 가겠지만 뒷일은 우선 야만족의 침공을 막아내고 난 이후에 생각할 수밖에 없다네.”
발타자르가 체념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진페오가 얼굴 가득 미안함을 담아 사과했다.
“너한테 계속 도움만 받는데 정작 나는 도움을 주지 못하니 정말 미안해.”
이에 발타자르는 진페오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괜찮네.”
진페오가 적잖이 감동한 얼굴로 말했다.
“알. 네가 이토록 제국을 위한다는 것을 아버님께 꼭 전해줄게.”
그 말에 발타자르는 그저 묘한 미소를 지어 보일 뿐이었다.
* * *
이틀 후.
온두라스에서 두 개의 군세가 출진했다.
하나는 비프로스트로 향하는 발타자르의 군이었고. 다른 하나는 혁명단의 잔당들로 구성된 5만의 병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