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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49화 (49/183)

공작이 회귀함 49화

갑작스러운 암살자들의 등장으로 연회장에 소란이 일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일 뿐이었다.

암살자들의 숫자가 몇 안 되기도 했고, 호위 병력들이 모두 연회장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들 하나하나가 마법사이며, 나름대로 저 한 몸 정도는 지킬 수 있는 이들이었다.

따라서 암살자들은 금방 제압당했고 다행히도 부상자는 있을지언정 사망자는 전무했다.

“이게 무슨 소란인가.”

연회장의 소란으로 밖에서 대기 중이던 호위 병력들이 들이닥친 것과 발타자르가 연회장으로 돌아온 것은 거의 동시였다.

발타자르가 성난 기색이 역력한 진페오에게 묻자 그가 마법으로 결박된 암살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무도한 자들이 겁도 없이 암습을 시도했어.”

마나로 이루어진 푸른 줄에 팔다리가 묶인 암살자들은 물의 마탑의 마법사들과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알아보니 견습 마법사 몇이 보이지 않는다더라. 아마 그들을 해치고 그들로 위장하여 잠입한 것 같아.”

발타자르가 무릎 꿇려진 암살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황제 폐하의 신하를 향해 암습을 시도하였는가?”

그의 물음에 암살자 무리의 대장으로 보이는 자가 고개를 들고는 발타자르를 바라보며 답했다.

“모든 것은 위대한 제국과 지고하신 황제 폐하를 위해서다!”

“황제 폐하를 위해서라? 폐하의 신실한 신하를 해하는 일이 어찌 황제 폐하를 위하는 일이란 말인가!”

발타자르가 호통을 치자 암살자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신실한 신하? 흥! 저들은 간신들이다. 황제 폐하의 눈과 귀를 막고 제국을 뿌리부터 썩게 만드는 만고의 역적들이란 말이다!”

소리치는 암살자를 바라보며 발타자르는 속으로 무척이나 흡족해하였다. 신시아가 제법 뛰어난 배우들을 섭외했구나 싶었다.

이들은 발타자르가 에버나스 지방을 평정하며 사로잡은 혁명단의 잔당들로 개중에서도 죄질이 악독한 자들만 선별하여 모은 이들이었다.

당장 사형에 처해도 이상하지 않을 죄인들이었지만 가족을 담보로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대가로 가족들의 미래를 보장받았다. 그런 만큼 맡은 배역에 충실할 것이고 실제로도 아주 잘 해주고 있었다.

“무엄하다! 이곳에 있는 이들은 오직 제국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헌신하며, 황제 폐하에게 충성하는 충신들이다. 한데 대체 그 누가 간신이란 말이냐!”

발타자르가 팔을 뻗어 중상을 입은 귀족들을 가리키며 외치자, 암살자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탄식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북부의 영웅이라더니 이제 보니 눈뜬장님이구나! 누가 간신이라 물었던가? 보라! 저들이 바로 만고의 역적들이며, 제국을 좀먹는 간신들이다!”

암살자가 발타자르가 가리킨 귀족들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이에 그들은 고통과 분노로 얼룩진 얼굴로 암살자를 노려보았다. 하나같이 제도의 대신들이나 선제후들의 사람들이었다.

“저, 저…… 빌어먹을 놈이!”

“감히 내가 누구인 줄 알고!”

귀족들이 노발대발하는 가운데 개중에 가만히 이 상황을 관망하던 중년의 귀족 하나가 암살자에게 다가와 물었다.

“누구냐. 누구의 사주를 받고 이런 천인공노할 짓을 저지른 것이냐!”

귀족의 물음에 암살자가 돌연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누구의 사주냐고? 좋다. 말해주지. 우리들은 백성들의! 황제 폐하의! 제국의! 이들 모두의 사주를 받았노라! 네놈 역적들을 처단하고 제국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거사를 일으킨 것이다. 비록 일을 성공치 못하고 이리 허망하게 잡혀 원통하기 그지없으나 안심하지 마라! 이것이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또 다른 동지들이 언젠가 네놈들의 숨통을 끊어 놓기 위해 찾아갈 테니!”

암살자의 말에 귀족이 무어라 말을 꺼내려던 순간.

“철의 제국 프락시온에 영광을! 제국이여 영원하라!”

광기 어린 외침과 함께 암살자들이 일제히 입에서 붉은 피를 흘리기 시작했다. 이에 진페오가 황급히 회복 마법을 시전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암살자들은 혀를 깨물어 자결한 것이 아닌 입안에 숨겨 둔 독단으로 자결한 까닭이었다. 진페오가 자결한 암살자들을 바라보며 치를 떨었다.

“독한 놈들…….”

손으로 암살자들의 뺌을 눌러 벌려진 입안을 살펴본 발타자르가 보랏빛 액체가 들끓는 것을 발견하곤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독이군. 그것도 단박에 즉사할 만한 극독.”

“말하는 것을 보니 혁명단 놈들이 보낸 자들일지도 모르겠어. 그들이 주장하는 것과 대부분 일치하니 말이야.”

진페오가 암살자들의 정체에 대해 추측하자 암살자에게 말을 걸었던 중년 귀족이 이견을 제시했다.

“내 생각은 조금 다르오. 진페오 부탑주.”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여기 계신 발타자르 공작 각하의 손에 의해 에버나스 지방에서 죄다 쓸려 나간 혁명단 놈들이 이곳 온두라스에 암살자들을 보낼 여력은 없었을 것이오. 또한 우리들에게 쉽게 제압당할 정도인 암살자들이 이 삼엄한 경비를 뚫고 올 실력자라고 보기는 힘들지. 그렇다는 것은 내부의 소행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인데…….”

중년 귀족의 말에 진페오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으신 겁니까?”

진페오의 물음에 중년 귀족이 싸늘한 눈빛으로 진페오를 응시하며 말했다.

“슈텔리앙 후작 각하께서 우리들을 제거하고자 일을 꾸민 것은 아니냐 묻고 있는 것이오.”

중년 귀족의 말에 선제후 혹은 대신들의 파벌에 속한 귀족들이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하긴. 생각해 보면 너무 순순히 동행을 허락했지.”

“그러게 말일세. 우릴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슈텔리앙 후작이 아무런 조치도 없이 보냈을 리가 만무한데 우리가 너무 안일했네.”

이들에게 암살자들의 실제 배후는 중요치 않았다. 암살자들을 사주한 것이 혁명단이든, 혹은 다른 누군가이든.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평소 사사건건 그들의 행보에 딴지를 걸던 슈텔리앙 후작을 정치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명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정황상 유력한 배후는 혁명단 혹은 슈텔리앙 후작인데 그렇다면 슈텔리앙 후작을 범인으로 몰고 가는 것이 이득일 테니 말이다.

그렇게 여론이 슈텔리앙 후작이 이번 일을 사주했다는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하자 진페오가 황급히 중년 귀족의 말을 부정하고 나섰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십니까! 대체 이런 일을 벌여 후작 각하께서 얻는 이득이 무엇이라고…….”

중년 귀족이 진페오의 말을 끊어내며 말했다.

“말이 왜 안 된다는 것이오? 지금까지 암습을 당한 귀족 중에 슈텔리앙 후작 각하의 파벌이 있었소?”

중년 귀족의 말에 진페오가 할 말을 잃었다.

확실히 정황만 놓고 보자면 슈텔리앙 후작이 의심을 피할 길은 없어 보였다.

“그건…….”

“내부의 소행이고. 슈텔리앙 후작 각하의 파벌에 소속된 귀족들만 암습을 피해갔네. 그렇다면 의심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소?”

말문이 막힌 진페오가 말을 망설이자 중년 귀족이 기세등등해져서는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나는 결코 이 일을 좌시하지 않을 생각이오! 내일 날이 밝는 대로 제도에 연통을 넣어 이 일에 대해 상세히 보고할 것이오. 슈텔리앙 후작은 필히 이 일에 대해 해명을 해야 할 것이오!”

분위기가 과열되기 시작했다.

암습의 배후에 슈텔리앙 후작이 존재한다는 것이 기정사실처럼 여겨지며 후작을 힐난하거나 옹호하는 이들로 패가 나뉘어 열띤 언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발타자르 역시 이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지만, 이들 중에 그 누구도 발타자르에게 책임소재를 물어야 한다는 이가 없었다.

진페오의 입장에서는 같은 파벌이라 생각하는 발타자르를 공격하는 것은 아군을 공격하는 일이기 때문이었고, 중년 귀족은 발타자르에게 책임을 묻는 것보다는 슈텔리앙 후작에게 집중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진페오와 중년 귀족이 이들의 중심에서 언성을 높이며 싸우기 시작하자 발타자르는 그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져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개판이네요.”

이제는 숫제 서로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몸싸움을 벌이는 귀족들을 바라보며 신시아가 짧게 평했다.

“재밌지 않나? 저런 한심한 인사들이 국정을 운영한다는 것이 말이야.”

“글쎄요. 재밌는 것은 모르겠는데. 저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제국의 앞날이 어둡게만 보이네요.”

* * *

비프로스트 너머에 펼쳐진 얼어붙은 땅.

사시사철 거센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이 극한의 대지에 수만의 군세가 집결해 있었다.

뿔이 솟아난 투구와 나무 방패.

가죽 갑옷으로 무장하고,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쓴 이들의 체구는 무척이나 거대했으며, 온몸이 근육질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나같이 형형색색의 문신들을 얼굴에 새긴 이들이 눈보라 너머로 보이는 거대한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동토를 종횡무진하는 북부의 지배자.

제국인들에게 야만족이라 불리는 이들이 식량 수급을 위해 마수 사냥에 나선 것이었다.

삐이이익-

거친 눈보라를 뚫고 한 마리의 매가 빠른 속도로 야만족의 군세를 향해 활강해 내려왔다.

매는 순식간에 군세의 선두에 선 이의 팔뚝에 내려앉았다.

거구의 사내들 사이에서 유독 왜소한 체구의 사내.

그러나 그 눈빛만은 그 어느 전사들보다 강렬하며, 얼굴을 가로지르는 긴 검상이 무척이나 인상적인 사내.

야만왕野蠻王.

우트가르트 로키.

겨울 전쟁에서 발타자르에게 대패하여 도망치다시피 북부로 쫓겨난 수백만 야만족들을 지배하는 동토의 왕이었다.

로키는 매의 발목에 묶인 전서를 풀어 펼쳐 보더니 이내 크게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그가 웃음을 터뜨리자 옆에서 그를 호위하던 전사들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로키를 바라보았다.

“왕, 대체 무슨 서신이기에 그리 즐거워하십니까?”

호위대장 힐가르트가 묻자 로키가 손에 쥔 전서를 구겨 입안에 넣고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다.

“제국의 용이 날 제 개처럼 부리는구나!”

말투는 거칠기 그지없었으나 그 음성에는 즐거움이 물씬 풍겼다.

“힐가르트!”

로키의 부름에 힐가르트가 무릎을 꿇으며 답했다.

“왕이시여. 하명 하십시오.”

“지금 즉시 전사들을 소집하라!”

로키의 지시에 힐가르트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전쟁입니까?”

그의 입에서 전쟁이라는 두 단어가 튀어나오자 주변을 호위하고 있던 전사들의 눈에 불꽃이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 불꽃은 야만족의 군세 전체로 삽시간에 퍼져 나가며 거센 불길이 되었다. 투지에 불타는 전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로키를 응시하는 가운데 로키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아쉽게도 전쟁은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전쟁이기도 하다.”

알 수 없는 그의 대답에 힐가르트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로키가 웃으며 말했다.

“제국의 용은 우리에게 비프로스트 요새를 공격하는 시늉을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로키의 말에 힐가르트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건 마치 자신들을 제 종 부리듯 하는 것이 아닌가!

“그게 무슨……!”

“약속이다.”

분노를 터뜨리려던 힐가르트는 로키의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약속이 언급된 까닭이었다.

겨울 전쟁의 끝.

발타자르는 야만족을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로키와 협정을 맺고 그들이 남은 전력을 온전히 보전한 채로 북부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왔다.

대신 그 대가로 세 가지 약속을 맺었다.

그중 하나가 발타자르가 원할 때 야만족의 군대를 움직일 수 있는 것이었고 로키는 이를 승낙하였다. 그리고 지금 발타자르가 로키에게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하였다.

약속을 어긴다는 선택지는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다. 이들에게 약속이란 목숨과도 같은 것이기에.

“북부의 용이 우리에게 약속을 지킬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약속은 우리의 방식대로 이행될 것이다!”

로키가 소리치자,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다이어울프를 탄 기수들이 일제히 인근 부락들을 향해 달려 나가고, 전사들이 저마다의 병장기로 땅을 쿵쿵- 찍어대기 시작했다.

지축이 뒤흔들리고 대기가 전율했다.

그들의 기세에 흉폭한 북부의 마수들이 지레 겁을 먹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가자! 제국으로!”

[가자! 제국으로!]

사흘 후.

수만에 달하는 야만족의 군세가 일제히 비프로스트 요새를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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