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이 회귀함 42화
발타자르의 일격이 전장을 강타하며, 오필리아가 일으켜 세운 망자의 군대가 재로 변하여 사라졌다.
한순간에 3군과 혁명단 측 병사들 사이에 공터가 생겨나자, 발타자르가 공터의 중심으로 착지했다.
제법 높은 곳에서 떨어져 내렸음에도 발소리조차 들려오지 않았다.
“죽어라!”
용사들의 개입으로 기세가 등등해진 혁명단의 병사들 수십이 멋모르고 발타자르를 향해 달려들자, 발타자르가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선 검을 휘둘렀다.
가볍게 휘두른 검에 병사 수십이 병장기 채로 허리부터 베어 넘겨졌다.
개중에는 질 좋은 철갑으로 무장한 이들도 있었으나 그것이 그들의 몸을 지켜주지는 못했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비명조차 내지르지 못하고 싸늘한 주검이 되어버렸다.
발타자르의 검에서 솟아오른 오러 블레이드가 붉은빛과 함께 일렁거리며,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었다.
쿵-쿵-
혁명단의 병사들은 발타자르가 선보인 압도적인 무용에 겁에 질려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고, 3군의 병사들은 경외감을 담아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며 발타자르를 향해 경례를 올렸다.
주변 일대의 모든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발타자르가 혁명단의 병사들 너머로 보이는 오필리아를 응시했다.
일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하자 오필리아는 발타자르의 눈동자에 어린 살기를 감지하곤 몸을 흠칫 떨었다.
‘무슨 눈이…….’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낀 오필리아가 다급히 망자의 군대를 일으켜 세우며 통신 마법으로 마츠시마 형제를 불렀다.
그 순간 발타자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발타자르는 한시도 오필리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천천히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오필리아가 다급히 망자의 군대를 보내어 발타자르의 걸음을 막아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검을 휘두르는 잔상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저 검을 쥔 손을 축 늘어뜨린 채 걸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망자의 군대가 발타자르에게 접근하는 순간.
무언가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나가며, 한 줌의 핏물이 되어 주변으로 흩뿌려졌다.
그 압도적인 무위에 오필리아가 이를 악물었다.
“이익! 심연을 배회하는 공허의 포식자여!”
하급 소환수로는 발타자르의 옷깃조차 스치지 못한다고 판단한 오필리아가 주문을 읊조리며 중급 소환수들을 대거 소환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그녀의 주변으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그 속에서 팔다리가 비쩍 마르고, 배만 불룩 튀어나온 기이한 외형의 괴물이 하나둘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강철조차 씹어 먹는다는 심연의 아귀들이었다.
“오라! 칭송받지 못한 자여!”
하지만 오필리아는 거기서 끝내지 않고 고위 소환수까지 소환해 내었다.
심연의 아귀들이 튀어나온 검은 연기들이 하나로 뭉치기 시작하더니 그 안에서 목 없는 말이 끄는 검은 2륜 마차를 타고선 머리를 품에 안고 있는 기사, 듀라한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가라! 심연의 망령들이여!”
오필리아의 외침에 듀라한이 목 없는 말을 몰아 발타자르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고 심연의 아귀들이 그 뒤를 따랐다.
본래라면 이 정도 대규모 소환마법을 감행할 경우 몸에 상당한 무리가 왔어야 정상이지만 주변에 널린 시체들을 제물로 바친 덕에 여유가 넘치던 오필리아는 듀라한과 심연의 아귀들을 보조하기 위해 발타자르를 향해 온갖 저주마법을 난사했다.
발타자르의 발치에서 뼈만 남은 손들이 불쑥불쑥 솟아오르더니 그의 발목을 부여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검은 연기가 그의 두 눈을 가리고, 녹색 연기가 그의 코와 입에 머물며 연신 그의 몸 안으로 독을 퍼뜨리기 시작했다.
오필리아가 시전한 저주마법들이 발타자르의 몸을 속박하고, 약화시켰다.
그러는 사이 순식간에 발타자르의 지근거리까지 치달은 듀라한이 그를 향해 검을 휘두를 자세를 취하고 심연의 아귀들이 땅을 박차고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일촉즉발의 상황.
돌연 붉은 섬광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듀라한과 심연의 아귀들이 별다른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갈려 나갔다.
어지간한 로열 랭크의 기사 하나 정도는 순식간에 쓰러뜨릴 전력을 쏟아부었음에도 발타자르의 몸에 생채기 하나 내기는커녕 걸음조차 막아내지 못했다.
한순간도 멈추는 기색 없이 나아가며, 접근하는 모든 것들을 분쇄해 버리는 그의 모습은 칼날의 폭풍 그 자체였다.
* * *
[두 사람 모두, 빨리 이쪽으로 오세요!]
오필리아가 있는 곳에서 제법 떨어진 위치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던 마츠시마 형제가 오필리아의 부름에 서로를 바라보았다.
“형, 들었어?”
마츠시마 형제 중 동생인 겐지로가 살점과 핏물로 범벅이 된 쇠망치를 어깨에 걸치며 물었다. 그러자 형 오니자와가 기사의 가슴팍에 꽂아 넣은 할버드를 뽑아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떻게 할 거야?”
“어떻게 하긴. 싸가지 없기는 해도 귀중한 마법사이니 당장 가서 도와…….”
오니자와는 말을 채 끝내지 않고 한 곳을 응시했다.
그곳에는 조금 전 오니자와의 할버드에 가슴팍이 찍혔던 기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갑옷을 벗어 던지고 있었다.
맨몸이 드러난 기사의 상체에서는 하얀 연기가 일어나며 빠른 속도로 상처가 회복되고 있었는데, 특히 인상적인 것은 온몸을 뒤덮는 기이한 문신들이었다.
“하, 씨발. 이쪽에도 우리와 같은 재생력의 이능을 지닌 놈이 있을 줄이야.”
오니자와가 짧은 욕지거리와 함께 몸을 풀고 있는 기사를 노려보았다.
혁명단의 진영 한복판에서 미친 듯이 날뛰는 저 기사를 상대하기 위해 겐지로와 협공을 하였지만, 정면 대결로는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해서 겐지로를 고기 방패 삼아 기사의 검이 그의 몸을 꿰뚫는 순간 겐지로가 기사의 검을 부여잡으며 잠시나마 기사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그리고 그 틈을 노려 오니자와가 기사의 가슴팍에 할버드를 꽂아 넣으며 기습에 성공했다.
아니,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제법이군.”
상체를 이리저리 비틀며 몸을 풀고 있던 기사. 갤러해드가 껄껄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짐짓 호탕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의 상체는 언제 중상을 입었냐는 듯이 상처 하나 없이 말끔했다.
“자, 다시 시작해 보자.”
갤러해드가 클레이모어를 집어 들며 자세를 잡았다. 근육이 꿈틀거리며 그의 몸을 뒤덮은 문신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역동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지랄!”
파앗-
마츠시마 형제가 선공을 가해왔다.
땅을 박차고 각기 쇠망치와 할버드를 휘두르며 각기 갤러해드의 몸과 머리통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카앙-
갤러해드가 클레이모어를 휘두르며 그들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넓은 검면에 쇠망치와 할버드가 부딪치자 갤러해드는 손끝이 저릿한 통증을 맛보았다.
북부의 동토 야만족의 영역에서도 아주 극소량만 채광 된다는 한철寒鐵로 제작된 갤러해드의 검은 마츠시마 형제의 일격을 검면으로 막았음에도 작은 흠집조차 나지 않았다.
하지만 마츠시마 형제의 강맹한 일격에 갤러해드의 몸이 뒤로 미끄러지듯 밀려나기 시작했다.
갤러해드는 그들의 압박을 쳐내거나 피하기보다는 클레이모어를 굳게 움켜쥐며 힘 대결로 유도했다.
세 사내의 팔 근육이 울긋불긋하게 부풀어 오르며 밀고 밀리는 소리 없는 싸움이 지속되었다.
“크하아압!”
그리고 이 싸움의 승자는 갤러해드였다.
기합성과 함께 클레이모어가 휘둘러지며 마츠시마 형제들을 한순간에 밀쳐내었다.
쇠망치와 할버드가 뒤로 넘어가기 시작하고 생겨난 그 찰나의 틈에 갤러해드가 땅을 박차고 뛰어들며 마츠시마 형제를 향해 몸을 들이박았다.
퍼억-
마츠시마 형제가 ‘아차’하는 순간 갤러해드와 충돌하였고 그들이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작은 틈이 커져 마츠시마 형제가 무방비한 상태가 되자 갤러해드가 클레이모어를 양손으로 쥐고선 겐지로의 목을 내리찍었다.
툭-
순식간에 겐지로의 머리가 몸에서 잘려 나가며, 목에서 붉은 피를 울컥울컥 쏟아내었다. 압도적인 재생력을 보유한 겐지로라고 해도 잘려나간 목은 어찌하지 못했다.
머리가 잘려 나간 겐지로가 간헐적으로 몸을 꿈틀거리더니 이내 움직임을 멈추곤 절명했다.
“끄아아아! 겐지로오오오!”
겐지로가 즉사하자, 그 광경을 목도한 오니자와가 괴성인지 울부짖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뱉으며 갤러해드를 향해 할버드를 휘둘렀다.
퍼억-
오니자와의 할버드가 갤러해드의 허리에 박혀 들었다.
일반인이었다면 그대로 몸이 토막 났을 정도의 강력한 일격이었지만 허리의 삼분지 일 정도에만 박혀 들고 거기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갤러해드는 허리에 할버드가 박혔음에도 얼굴을 찌푸리기는커녕 즐겁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리며 오니자와의 할버드의 창대를 덥썩 쥐었다.
빠각-
그러곤 어린아이 손목 비틀 듯 가볍게 창대를 분지르더니 허리에 박혀 든 도끼날을 손으로 뽑아내었다.
푸화하학-
도끼날이 박혀 들었던 부위에서 피가 마치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갤러해드의 허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피가 오니자와의 몸을 적셨다.
치사량에 가까운 피를 흘려내었음에도 갤러해드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손에 쥔 도끼날을 아무렇게나 내던지고는 주먹을 말아쥐었다.
퍼억-
기민한 몸놀림으로 순식간에 오니자와의 몸에 올라탄 갤러해드가 그의 안면에 주먹을 때려박았다.
퍼억- 퍼억-
갤러해드의 양 주먹이 차례로 오니자와의 안면에 틀어박히더니 점점 그 속도에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잔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내지르는 갤러해드의 주먹질에 오니자와의 머리가 서서히 땅속으로 파고들기 시작했다.
이에 저항하고자 오니자와가 몸을 버둥거리며 팔을 내질렀다.
퍼억-
우연찮게 오니자와의 주먹이 갤러해드의 안면에 적중했지만 갤러해드는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흐릿해져 가는 의식 속에 오니자와는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재생력에 모든 힘을 집중하여 갤러해드의 공세를 버텨내며 죽어라 주먹을 내질렀다.
갤러해드와 오니자와가 서로의 안면에 주먹을 내지르는 격한 사투가 이어졌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니자와의 주먹질은 느려지는 반면 갤러해드의 주먹질은 더욱더 빨라져만 갔다.
퍼억-
이윽고 오니자와의 움직임이 멈추었을 때 갤러해드가 마지막 일격을 가하곤 양팔을 들어 올리며 괴성을 내질렀다.
“크아아아아!”
그런 갤러해드의 아래에는 오니자와의 머리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곤죽이 된 채로 싸늘한 주검으로 변해 있었다.
* * *
터벅- 터벅-
오필리아는 두려움에 가득 찬 눈동자로 다가오는 발타자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 어린 발타자르의 모습은 마치 사신과도 같았다.
그녀를 호위하던 혁명단의 병사들은 발타자르의 압도적인 무위에 겁을 집어먹고 도망친 지 오래였다. 이제 그녀의 주위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 오지마!”
오필리아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뒷걸음질을 치던 그녀는 무언가에 발이 걸려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쿵- 하고 자리에 주저앉은 그녀는 격하게 발버둥을 치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는 와중에도 두 사람의 거리는 서서히 좁혀지기 시작했고, 오필리아는 죽음을 직감했다.
‘여, 여기서 죽을 순 없어!’
오필리아는 숨겨두었던 비장의 한 수를 꺼내기로 결심했다.
‘패널티가 뼈아프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허무하게 죽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그리 생각하며 오필리아가 주문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거룩한 이에게 존재를 부정당한 이여! 그대의 제안에 응하여 내 혼을 바치겠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