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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38화 (38/183)

공작이 회귀함 38화

발타자르가 온두라스에 복귀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는 그동안 밀렸던 업무를 처리하고 로마노프 공작가로부터 얻은 이권들을 정리하느라 정신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럼 에버윈 상단은 자네에게 일임하도록 하겠네.”

발타자르가 들고 있던 서류를 내려놓으며 말하자 밀튼이 고개를 작게 숙여 보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책임지고 확실하게 정리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애슐리로부터 넘겨받은 에버윈 상단은 문제가 무척이나 많았다. 내부에 비리가 만연하고 그나마 쓸 만한 인재들은 모조리 빼간 상태라 속이 빈, 아니, 속이 썩은 고목과도 같았다.

하여 발타자르는 에버윈 상단의 내부 정리에 착수하며 그 일에 대한 전권을 밀튼에게 일임하였다. 그의 올곧은 성품이라면 공정하게 일을 처리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다음으로 조사대가 돌아왔다고 들었는데. 노예병들은 어떻게 되었다던가?”

노예병은 빌로스가 내어주겠다던 7천의 병력이었다. 4일 전에 빌로스로부터 이 7천의 노예병을 온두라스로 보내었다는 소식을 전해 받았고 하루 간격으로 노예병을 인솔하는 자가 전령을 보내며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한데 이틀 전부터 노예병에 대한 소식이 전해져 오지 않고 있었다. 이에 이상함을 감지한 발타자르가 조사대를 파견하였고 오늘 막 복귀했다는 보고를 들었던 참이었다.

조사대로부터 발타자르보다 먼저 보고를 받았던 가웨인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그것이…… 온두라스로 향하던 길에 혁명단이 습격을 가해 감시역으로 붙여둔 1천의 병사들을 살해하고 노예병들을 혁명단으로 합류시켰다고 합니다.”

“난리 났군. 어디서 일이 벌어졌다던가?”

“베른 요새 인근입니다.”

가웨인의 대답에 발타자르가 지도를 펼쳐 보이더니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노렸군.”

“노렸다니요?”

가웨인이 묻자 발타자르가 지도에서 베른 요새를 가리키며 말했다.

“보게. 이 베른 요새를 비롯한 인근 요새들의 너머에 있는 영지들은 죄다 혁명단의 손에 넘어갔거나 공격받고 있는 중이지 않은가.”

발타자르가 가리키는 영지들은 모두 이번에 로마노프 공작가로부터 양도받은 영지들이었다.

“일반 병사들이었다면 모를까 노예병 7천이 혁명단이 득실거리는 땅을 지나가는데 혁명단이 이를 그냥 두고 볼 리가 없지.”

충성심 따위는 눈곱만큼도 없는 노예병들이기에 감시병들만 제거한다면 손쉽게 7천의 병력이 생기는 것인데 머저리가 아닌 이상에야 그냥 눈뜨고 보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고 말이다.

“빌로스 공자는 성격상 이런 수를 좋아하지 않으니 아마도 이슈카 공자나 애슐리 공녀 쪽에서 손을 써둔 것이겠지.”

그들에게서 강탈하듯이 많은 이권 들을 획득하였지만, 그들도 마냥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로마노프 공작가의 직계들로부터 건네받은 이권들은 하나같이 문제투성이였다.

에버윈 상단은 내부가 비리에 절어 있었고, 영지들은 대다수가 혁명군의 손에 넘어갔거나 그들에게 공격받고 있었으며 도튼 철광과 요새들은 이 영지들을 통과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노예병 7천이 혁명단에 합류했으니 영지 공략이 더 어려워지겠군요.”

가웨인이 말하자 집무실의 소파에 앉아 과자를 먹고 있던 트리스탄이 대화에 끼어들며 말했다.

“고작해야 노예병 7천이잖아요. 저랑 제 기병대가 다 쓸어버릴 테니까 걱정마세요.”

트리스탄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불룩 튀어나온 볼을 씰룩이며 말하자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세 남자가 피식 웃었다.

“왜들 웃으시는 거예요? 설마 못 믿으시는 거예요?”

그녀가 뚱한 표정이 되어 묻자 가웨인이 웃으며 답했다.

“아뇨. 믿습니다.”

“아닌 것 같은데…….”

트리스탄이 그런 가웨인을 흘겨보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발타자르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곤 제 가슴을 두어 번 두드리며 경례를 올리며 말했다.

“보고하겠습니다.”

“보고하게.”

“요즘 혁명단 녀석들이 온두라스를 침범하는 빈도가 잦아지고 있습니다. 온두라스로 넘어오는 족족 모조리 머리를 창끝에 꽂아 경고 표시로 내걸어 두었습니다만 겁도 없이 지속적으로 넘어오는 것을 보니 간을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트리스탄의 보고에 발타자르가 펼쳐놓은 지도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첩보에 따르면 인근 세 남작령에 주둔하는 혁명단의 수가 급속도로 불어나고 있다고 하였다.

짐작일 뿐이지만 혁명단이 조만간 온두라스를 칠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동안은 군수품을 확보하고 보급망을 준비하고 계획하느라 지켜만 보고 있었지만 이제 슬슬 움직일 때가 된 듯싶었다.

“가웨인 자네는 지금 바로 비프로스트에 연락을 넣어 병력들을 출발시키라 전하게.”

“알겠습니다.”

“밀튼 자네는 계획대로 보급선을 준비해 주게.”

“예.”

일단의 지시를 끝마친 발타자르가 지도를 내려다보는데 트리스탄이 불쑥 고개를 들이밀며 물어왔다.

“저는요?”

눈을 반짝이는 트리스탄을 보며 발타자르는 속으로 당황했다. 무척 기대하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 당장은 딱히 그녀에게 시킬만한 일이 없었다.

“……자네는.”

“네!”

간신히 트리스탄에게 지시할 만한 일을 떠올린 발타자르가 말했다.

“도원경. 그자를 불러오게.”

“그 망나니를요? 그 녀석 아직 정신교육도 덜 끝났는데요?”

트리스탄의 말에 발타자르가 속으로 쓰게 웃었다.

어지간히도 그녀에게 밉보인 듯싶었다.

“그래도 불러오게. 그는 실전을 통해야만 빠르게 성장하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트리스탄이 경례를 올리곤 사라졌다.

그녀가 떠난 후에도 한동안 지도만 내려다보던 발타자르가 힐끗- 수북이 쌓여 있는 서류뭉치를 보곤 고개를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린에게 다녀와야겠군.”

전쟁이 일어나면 당분간 만나지 못할 테니 출정식 전까지는 최대한 시간을 함께하기로 결심하곤 집무실을 벗어났다.

* * *

아이린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녀는 발타자르가 시녀 겸 호위 역으로 붙여둔 엘프 자매가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이 시간대면 항상 엘프 자매와 함께 정원을 가꾸고 있었다.

정원으로 향하자 양 뺨에 흙먼지를 묻혀가며 꽃을 심고 있는 아이린이 보였다. 그런 그녀의 양옆에는 각기 은발과 금발의 엘프 여성들이 손뼉을 짝짝 치며 아이린을 응원하고 있었다.

“잘하고 계세요. 아가씨.”

“조심조심. 아기 다루듯 흙을 살살 토닥여 주세요.”

머리 색만 제외하면 똑 닮은 외견의 이 엘프 자매들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는데 이들은 웨즈가 내어준 것 중 하나였다.

다른 하나인 암살자들의 경우에는 신시아에게 지휘권을 할양하여 주며 정보단을 창설하도록 지시한 상태였다.

“아이참! 엘! 나 혼자서 할 수 있다니까.”

“알아요. 하지만 같이하면 더 빨리 끝나잖아요. 얼른 끝내고 저희 간식 먹으러 가요.”

아직 발타자르가 온 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 그녀들은 서로 담소를 주고받으며 꽃 심기에 열중이었는데, 발타자르는 근처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서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린이 무척 좋아하는 것을 보니 역시 린에게 붙여주길 잘한 것 같군.’

엘프들은 그 미모가 워낙 빼어나다 보니 일반적으로 엘프 노예라고 하면 성노(性奴)라는 개념이 강했는데 사실 그건 하반신에 머리가 달린 멍청한 놈들이나 그렇게 다루는 것이었다.

엘프는 정령의 피가 흐르는 종족으로 태어날 때부터 세계수의 가호를 받으며 자라기에 마나와 정령에 대한 친화력이 높아 엘프들 대다수가 뛰어난 마법사이거나 정령사였다.

한데 그런 이들을 고작 성노로 부리는 것은 인력 낭비나 다름이 없었다. 특히나 서약에 묶여 노예가 된 엘프들의 경우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할 줄 안다면 더더욱 성노로 부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툭툭-

“응?”

발타자르는 무언가 발등을 두드리는 감각에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흙으로 이루어진 난쟁이가 발타자르의 발을 주먹으로 툭툭 치고 있었다. 보아하니 하급 정령에게 주변 경계를 부탁해 놓은 것 같았다.

발타자르가 요 녀석을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아이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라버니!”

아이린이 손에 쥐고 있던 모종삽을 내팽개치며 쪼르르 다가와 발타자르에게 안겨들었다. 발타자르는 그런 그녀를 번쩍 안아 들고는 웃어 보였다.

“정원 가꾸는 것이 무척 즐거운가 보구나. 이렇게 얼굴에 흙먼지도 묻히고서.”

발타자르가 손을 뻗어 엄지로 아이린의 뺨에 묻은 흙먼지를 슥슥- 닦아내 주었다. 그러자 아이린이 배시시 웃으며 눈을 감고 발타자르의 손길을 만끽했다.

“이제 일은 끝나신 거예요?”

“그래. 막 끝난 참이란다.”

발타자르의 대답에 아이린이 콕- 하고 발타자르의 어깨를 찌르며 말했다.

“그럼. 오늘 오라버니 남은 시간은 제가 찜할래요.”

“그러렴. 그전에 좀 씻어야지 않겠니?”

아이린이 요즘 들어 부쩍 애교가 늘어난 것 같다고 생각하며 발타자르가 아이린을 품에서 내려놓았다. 그러곤 잔뜩 긴장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엘프 자매들에게 말했다.

“린을 좀 씻겨주겠나?”

“네, 넵-!”

발타자르의 말에 은발의 엘프가 황급히 대답하더니 물의 정령을 소환했다.

“아큐네. 아가씨를 씻겨주겠니?”

그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공에서 기포가 뽀글뽀글 생겨나더니 그 안에서 반투명한 물고기 한 마리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물의 하급 정령 아큐네였다.

모습을 드러낸 아큐네는 허공 위를 헤엄치듯 몸을 꿈틀거리며 아이린에게로 날아가더니 이내 그녀의 머리 위를 빙글빙글 맴돌기 시작했다.

쏴아아-

순식간에 아이린의 머리 위에서 물줄기가 쏟아져 내리며 그녀의 몸을 물로 흠뻑 적시더니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사라졌다.

물줄기가 쏟아져 내릴 때만 해도 비 맞은 생쥐 꼴이던 아이린은 언제 물에 젖었냐는 듯이 이제 막 씻고 나온 것처럼 뽀송뽀송한 상태였다.

“엘! 고마워!”

아이린이 은발의 엘프, 엘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자 엘이 고개를 내저으며 웃어 보였다.

“아뇨. 별것 아닌걸요.”

물의 정령이 씻겨주는 호사를 누린 아이린이 발타자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오라버니. 저희 광장 구경 가요.”

아이린의 말에 발타자르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온두라스의 거리는 예전과는 달리 한바탕 청소를 해 둔 상태였기에 더 이상 예전처럼 위험한 거리가 아니었다. 날이 지날수록 상가들도 늘어가고, 거리에 활기가 가득했기에 함께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그러자꾸나.”

“엘룬도 같이 가도 돼요?”

엘룬은 엘프 자매들을 아이린이 뭉뚱그려 부르는 애칭으로 그녀들의 이름은 각기 은발의 엘프가 엘, 금발의 엘프가 룬이었다. 엘은 중급 정령사였고, 룬은 하급 마법사였다.

아이린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힐끗 엘룬 자매를 바라보았다. 그녀들은 여전히 긴장한 표정으로 발타자르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래로 축 처진 길쭉한 귀는 제쳐놓더라도 무척이나 빼어난 미모의 그녀들을 함께 데려간다면 이목이 집중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이린의 간절한 눈빛을 보고 있자니 차마 안된다고 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한동안은 얼굴을 보지 못할 테니 오늘 하루는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한 발타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원한다면. 그리 하려무나.”

“정말요? 오라버니, 정말 좋아요!”

아이린의 와락 발타자르에게 안겨들었다.

발타자르는 그런 아이린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어 주었다.

* * *

이날 하루는 오직 아이린을 위해 시간을 보내며 온두라스의 이곳저곳을 구경 다녔고 아이린의 얼굴에선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다만 일정의 마지막에 발타자르가 한동안 일 때문에 떠나 있어야 한다는 말을 건네자 아이린이 무척 아쉬워했지만, 그것만 제외한다면 무척 즐거운 하루였다.

그리고 삼 일 후.

발타자르가 이끄는 3군이 온두라스 인근의 세 남작령을 향해 일제히 진격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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