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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28화 (28/183)

공작이 회귀함 28화

짧은 여행을 끝마치고 발타자르 일행은 온두라스로 돌아왔다. 그런데 발타자르가 온두라스의 성문을 코앞에 두고 말을 멈추어 세웠다.

발타자르는 한동안 말없이 성문을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이에 이상함을 느낀 신시아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왜 그러세요?”

“조금. 긴장되어서 그렇네.”

“에이. 동생분 만나시는 건데 뭐가 긴장돼요.”

“그런가?”

신시아의 말에 발타자르가 웃어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회귀 전과 현재를 통틀어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동생이었다.

만나면 어떤 모습을 보일까?

늘 그랬듯이 꽃처럼 화사한 미소를 지어줄까?

아니면 몇 번이고 약속을 어긴 것에 대해 화를 낼까?

혹시 날 알아보지 못하면 어쩌지?

오만가지 생각이 발타자르의 머릿속을 휘저었다.

도저히 발타자르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자 그것이 답답했던 신시아는 발타자르가 탄 말의 엉덩이를 짝 소리 나게 후려쳤다.

히이이잉─

깜짝 놀란 말이 빠른 속도로 앞으로 치고 나갔다.

신시아가 태연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아. 저질렀다.”

* * *

신시아에 의해 떠밀리듯 온두라스로 들어온 발타자르는 기왕 이렇게 된 것 기세를 몰아 내성으로 직행했다.

이미 발타자르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는지 내성에 도착하자 관리들과 장교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발타자르는 혹시나 저들 중에 가웨인과 아이린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중 나온 이들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달리 두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 가웨인 경이 복귀하지 않았는가?”

본래 일정대로라면 이미 도착했을 그들이 보이지 않자 이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발타자르가 물었다.

그러자 밀튼이 나서며 대답했다.

그는 온두라스 백작 휘하의 관리로 행정업무 능력은 일반적인 수준이었지만 백작 휘하의 관리 중에서 청렴하기로 유명한 이라 발타자르가 온두라스의 행정업무에 관한 전권을 위임한 인물이었다.

“이런 말씀 드리긴 송구스럽습니다만. 가웨인 경과 아이린 아가씨께서 오슬로에 억류되어 계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헉-”

발타자르의 등 뒤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시아였다.

“자세히 설명해 보게.”

“호위 역으로 따라갔던 기사의 보고에 의하면 본래 일정대로 가웨인 경께서 아이린 아가씨를 모시고 바로 어제 전이 마법진을 이용하기 위해 오슬로 대지의 마탑 분점을 방문했습니다만 이슈카 로마노프 공자님께서 직접 찾아가셔서 두 분을 로마노프 가家로 모셔갔다고 합니다.”

“……그런가.”

생각외로 발타자르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신시아가 트리스탄을 바라보며 물었다.

“아저씨. 크게 화를 낼 줄 알았는데 별 반응이 없으시네요?”

신시아의 물음에 트리스탄은 손으로 제 두 눈을 가리며 탄식하듯 대답했다.

“그게 아니야. 지금 대장 엄청 화 나셨어.”

“네?”

트리스탄의 말에 신시아가 재차 발타자르를 바라보았다. 화내는 기색 없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두 눈을 감고선 팔짱을 끼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화를 내는 것 같지는 않은데…….”

“원래 저런 분이셔. 진짜 화가 나시면 노발대발하기보다는 무척이나 냉철해지시지. 대장 밑으로 들어간 후에 저렇게 화를 낸 적은 이번이 두 번째네.”

“첫 번째는 언제였는데요?”

“베디비어 경이 포로로 잡혔을 때.”

트리스탄은 그때의 일을 떠올렸는지 몸을 옅게 떨었다. 그 모습에 신시아는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발타자르를 바라보았다.

두려움이라고는 모를 것 같은 트리스탄이 옅게나마 두려운 기색을 내비치니 대체 발타자르가 화를 내면 얼마나 무서워지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을 풀어주려는 듯 트리스탄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겨울 전쟁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에 베디비어 경이 유격대 임무를 수행하던 중에 포로로 잡힌 일이 있었어. 바나족이라고 북부의 부족 중에서도 두 번째로 세력이 크던 부족이었지. 요툰 족과 함께 잔인하기로 유명한 부족이었는데 바나족이 포로로 잡은 베디비어 경의 오른팔을 잘라 대장께 보냈었어.”

트리스탄이 ‘아직도 그때 기억이 선명해.’하고 중얼거렸다.

“그때도 크게 화를 내실 것 같던 대장은 저런 반응을 보이셨지. 팔짱을 끼고 한참을 생각하시던 대장이 군을 움직였어. 그때만 해도 다들 바나족과 전면전을 벌이시려는구나 하고 생각했지. 그런데.”

본대를 이끌고 출정한 발타자르는 바나족들과 군을 맞대고 대치전을 유지했다. 군타낙스 기사단을 비롯한 발타자르 군의 주력이 모두 모여 있었기에 바나족에서는 발타자르가 베디비어를 구하기 위해 무리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군 진영에서 있어선 안 될 이들이 모습을 드러내었지. 그게 뭐였을 것 같아?”

트리스탄의 물음에 신시아가 고민했다.

그 상황에서 발타자르 군에서 있어선 안 될 이들이라니.

마법사나 특수한 비밀병기는 아닐 테고.

고민하던 신시아의 뇌리로 순간 한가지 가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신시아는 파리해진 안색으로 물었다.

“혹시 그거. 바나족의 부족민이에요?”

“그래. 맞아. 바나족의 부족민들이었어.”

겨울 전쟁 후반기 무렵.

초전에 제국군을 박살 낸 야만족들은 이 전쟁이 승리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여 몇몇 대 부족들은 비프로스트 요새 너머에서 거주하던 부족민들을 데려와 자리를 잡고 새로운 터전을 마련했다.

발타자르는 본대를 미끼 삼아 바나족의 시선을 끄는 한편 따로 기병대를 차출하여 바나족의 부락을 급습했다.

야만족들이라고 해도 그동안은 단 한 번도 노약자들을 해치지 않았던 발타자르는 이례적으로 바나족의 부족민들을 학살했다.

“바나족의 부족민 6만 명 중에서 5천 명을 제외하고 모두 도륙하셨지. 그리고 남은 5천 명은 전장으로 끌고 와 바나족이 보는 앞에서 살려달라 울부짖는 그들의 오른팔을 베고 목을 날려 버렸어.”

당연히 크게 분노한 바나족은 진지를 구축한 발타자르 군을 향해 돌격을 감행하였고, 4만에 달하던 바나족의 전사들은 치열한 접전 끝에 패배하였다.

“그런데 그때 모습이 지금 또 보이네?”

사뭇 진지한 얼굴로 말하는 트리스탄을 보며 신시아가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그 모습을 보곤 트리스탄이 작게 웃었지만, 잔뜩 긴장한 신시아는 미처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 베디비어라는 분은 어찌 되었어요?”

“다행히도 잘 살아계셔. 비록 의수를 달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야. 지금도 비프로스트 요새에서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있을걸?”

트리스탄이 전투 후의 뒷이야기를 생략했지만, 바나족과의 전투가 끝난 후 발타자르는 바나족의 족장이 보는 앞에서 포로로 잡은 바나족 전사들의 오른팔을 잘라내고 창끝에 목을 내걸었다.

그 잔혹함에 야만족들은 치를 떨며 이후로는 발타자르의 수하들을 포로로 잡게 되면 죽이면 죽였지 그들을 이용해 감히 발타자르를 도발하려는 행동을 꺼려 했다.

“생각을 끝내신 것 같네.”

트리스탄이 장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발타자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녀의 말대로 생각을 끝마친 듯 발타자르는 수하들을 한 명씩 호명하며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지금 즉시 비프로스트에 연락을 넣어 군타낙스 기사단을 소집하게. 그리고 트리스탄!”

발타자르의 부름에 트리스탄은 제 주먹으로 가슴을 두어 번 두드리며 힘차게 대답했다.

“예! 대장.”

“자네는 현 시간부로 자네의 기수들을 이끌고 온두라스 영지를 순찰하며 리스펄, 파판, 멜리우스 이 세 남작령에서 넘어오는 이가 있다면 수색하여 수상한 낌새가 조금이라도 보인다면 투옥 시키거나 자네 재량으로 현장에서 처분하게.”

“알겠습니다.”

“퍼시벌.”

“예. 장군.”

“자네는 방금 언급한 세 영지 인근으로 이동하여 대규모 군사 훈련을 실시하게. 언제라도 지시가 떨어지면 세 남작령으로 출진할 수 있게 준비하란 말일세. 알겠는가?”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지시를 끝마친 발타자르가 밀튼을 바라보았다.

“밀튼 자네는 오슬로에 연락을 넣어 군용 게이트를 열어달라 요청하게.”

군용 게이트는 한 번에 한 사람만 이동이 가능한 마탑의 전이 마법진과 달리 대규모 인원이 통과할 수 있는 대규모 전이 마법진이었다.

본래는 3군 총사령관의 권한으로 오슬로와 온두라스에 연결된 군용 게이트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으나 그것은 로마노프 공작이 3군 총사령관직에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발타자르가 총사령관직에 오른 후로는 이 군용 게이트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오슬로의 주인인 로마노프 공작가의 허락을 구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아그리파.”

“예.”

“자넨 나와 함께 오슬로에 가야 하니 미리 채비해 놓게.”

“알겠습니다.”

발타자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시를 받은 이들은 황급히 지시를 수행하기 위해 떠나갔다.

* * *

집무실로 향하는 길.

조용히 발타자르의 뒤를 따라가던 신시아는 이 묘한 침묵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는지 불쑥 말을 꺼냈다.

“진짜 전쟁이라도 벌이실 생각이세요?”

신시아의 물음에 발타자르가 걸음을 멈추고선 웃어 보였다. 평소와 같은 미소였지만 어쩐지 그 미소가 묘하게 살벌하다고 느껴졌다.

“그럴 리가. 린이 죽었다거나, 크게 다쳤다면 모를까. 억류되었다고는 해도 표면적으론 로마노프 가에 초대되어 가 있는 것이니 그런 무모한 짓을 벌일 리가 없지.”

다르게 말하면 앞서 언급한 일들이 벌어졌다면 전쟁이라도 불사할 생각이었단 소리였다. 신시아는 내심 발타자르가 아이린을 무척이나 아낀다는 생각을 했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하나뿐인 여동생이라는데.

“그럼 왜 그러신 거예요?”

“무엇이 말인가?”

“막 병사들도 움직이시고, 당장에라도 오슬로로 쳐들어가실 것처럼 말씀하셨잖아요.”

그녀의 질문에 발타자르가 손을 뻗어 신시아의 머리칼을 헝클어뜨리며 머리를 꾹꾹 눌렀다.

“아파요!”

신시아가 바둥거리다 이내 발타자르의 손을 탁- 하고 쳐내며 소리쳤다.

발타자르는 그런 신시아를 내버려 둔 채 다시 걸음을 옮겼다.

“아! 진짜!”

신시아가 버럭 소리 지르며 그런 발타자르의 뒤를 따라갔다. 신시아가 다시 발타자르의 옆에서 나란히 걷기 시작하자 발타자르가 말했다.

“그냥 보여주려는 것뿐이었네. 내가 이만큼 화가 나 있으니 알아서 대처할 준비를 하라고 말일세. 이 행동으로 내가 린을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할 무모한 인물이라 생각하게 만들려는 의도도 있고.”

“그러다가 만약에 동생분을 인질로 잡아서 협박을 하려고 하면요?”

“그러면 더 좋고.”

발타자르가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 안에 은연중에 짙은 분노가 깔려있다는 것을 눈치챈 신시아가 복잡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번에도 그렇지만 아저씨는 가끔 보면 진짜 무서운 분 같아요.”

집무실 앞에 도착한 발타자르가 집무실의 문을 열며 대답했다.

“적어도 내 적에게는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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