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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24화 (24/183)

공작이 회귀함 24화

챙─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이른 새벽.

발타자르는 미약하게 들려오는 쇳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비단 발타자르뿐만 아니라 신시아와 로젠다르크를 제외한 일행들 모두가 잠에서 깨어나 주변을 경계하였다.

들려오는 소리로 보아 어디서 싸움이라도 난 듯싶었다. 그것도 야영지에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말이다.

때마침 불침번 당번자로 보이는 기수가 무슨 일인지 살펴보고 온 듯 수풀을 헤치고 다가오고 있었다. 그에게 발타자르가 물었다.

“무슨 일인가?”

“대로변 쪽에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깃발로 보아 한쪽은 파판 영지의 병사들이고 다른 한쪽은 팔뚝에 찬 완장으로 보아 어제 만났던 도적놈들 같았습니다.”

“위치는?”

“그리 멀지 않습니다. 여기서 5분 거리입니다.”

짐작대로 가까웠다.

“어쩌실 거예요?”

트리스탄이 다가와 물었다.

어쩌고 자시고 싸움에 끼어들 생각도 구경할 생각도 없었다.

발타자르는 힐끗- 신시아와 로젠다르크를 바라보았다.

여행길에 피로가 제법 쌓였는지 깊이 잠들어 있었다.

“아직 해가 뜨지 않았으니 주변 경계만 확실히 하고 쉬고 있게.”

발타자르의 말에 트리스탄은 휘하의 기수들에게 지시를 내려 서로 간에 일정 간격을 두고 숙영지를 둘러싸는 형태로 배치하였다.

그러곤 주변을 경계하며 휴식할 것을 명령하곤 발타자르에게로 돌아와 말했다.

“저 구경 다녀와도 되나요?”

마치 산책이라도 다녀오겠다는 듯한 그녀의 말에 발타자르가 단호히 대답했다.

“불가.”

“얌전히 구경만 하다 올게요. 네?”

트리스탄이 재차 요청했지만, 발타자르가 그녀를 빤히 바라보자 푹 한숨을 내쉬며 포기했다.

“알겠어요. 그냥 얌전히 여기 있을게요.”

풀이 죽은 것만 같은 그녀의 모습에 발타자르는 피식 웃고 말았다. 어지간히도 싸움이 좋나보다 싶었다.

“그런데요.”

발타자르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애꿎은 무기들만 만지작거리던 트리스탄이 불쑥 말을 꺼냈다.

“뭔가?”

“그 찾는다는 사람요. 어떤 사람이에요?”

갑자기 그건 왜 묻느냐는 표정으로 트리스탄을 바라보자 ‘그냥. 심심해서요.’하고 대답했다.

싸움이라면 광적일 정도로 좋아하는 그녀에게 바로 근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 장소에 가지 못하게 하니 몸이 근질거리는 듯 보였다.

아직 해가 뜨려면 시간도 조금 남았고 해서 시간도 때울 겸 도원경에 대해 그가 아는 정보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이름은 도원경.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네.”

“다른 세계요?”

흥미가 동한 듯 트리스탄의 눈동자에는 호기심이 담겨 있었다.

“그래. 혹시 오스왈드 간다르바를 아는가?”

“현자 간다르바요? 제국 최고의 마법사?”

트리스탄의 대답에 발타자르가 의외라는 듯이 바라보았다.

이에 그녀는 멋쩍은 듯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저번에 가웨인 경에게 제국의 강자들에 대해 물어봤었거든요. 그때 들었어요.”

발타자르의 표정이 그럼 그렇지 하고 변했다.

“오스왈드 간다르바는 신과 소통하는 자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별의 운행을 읽고 해석할 줄 아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이라네. 그 간다르바가 몇 년 전 예언을 했다네.”

“무슨 예언요?”

“머지않은 미래에 마신이 강림할 것이란 예언이었네.”

“마신이요? 그거 동화 속에나 나오는 존재 아닌가요?”

트리스탄이 깔깔대며 웃었다.

마신은 드래곤이나 유니콘처럼 상상의 동물이나 다름없는 비현실적인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트리스탄의 반응을 보며 발타자르 역시 피식 웃었다. 믿기지 않겠지.

오스왈드 간다르바가 처음 예언을 떠벌리고 다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트리스탄과 같은 반응을 보였었다. 비웃거나, 농담 취급을 했었다.

이에 분개한 간다르바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예언은 사라져갔다. 사람들은 간다르바가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 어딘가에 숨어버렸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사실은 숨어버린 것이 아니라 혼자서라도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북부에서 조직을 결성하고 있었다. 그 조직이 바로 붉은 십자가 혁명단이었다.

“예언은 사실이라네.”

뚝- 트리스탄의 웃음을 그쳤다.

그러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사실이라구요?”

“그래. 간다르바는 마신의 강림 말고도 몇 가지 예언을 더 하였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용사에 대한 예언이라네.”

“용사요?”

마신에 이어 용사까지 나오자 트리스탄은 발타자르가 진담으로 하는 말인지 아니면 농담을 하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얼굴만 보면 진심인 것 같은데 하는 말들이 하나같이 비현실적인 것들이니 긴가민가했다.

“그리 볼 것 없네.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까. 지금 우리가 찾으려는 사내가 바로 그 용사라네.”

“정말요?”

트리스탄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렇다네. 내가 찾고 있는 사내. 그러니까 도원경은 용사들 중에서도 특출난 인재라네. 타고난 싸움꾼이며 광적일 정도로 싸움을 좋아하지. 마치 자네처럼.”

“에이. 제가 그렇게까지 싸움을 좋아하진 않죠, 아니. 잠깐만요. 용사들요?”

“무슨 문제라도 있는가?”

“보통 용사는 한 명 아닌가요?”

“그거야 동화 속에서나 그렇지. 이건 동화가 아니라 현실이지 않은가.”

발타자르의 대답에 트리스탄은 말문이 막혔다.

맞는 말이긴 한데…….

“용사가 몇 명이나 되는데요?”

트리스탄의 물음에 발타자르는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나도 잘 모른다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수가 적지 않다는 것이지.”

“그게 무슨 용사예요.”

실망스럽다는 듯 말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발타자르가 쓰게 웃었다.

“확실히 말만 용사지 동화 속 용사와는 다른 존재긴 하지.”

* * *

“무례한 놈! 얼른 날 풀어 주지 못하겠느냐!”

말 위에 짐짝처럼 걸쳐져 있는 필로폰이 몸을 바둥거리며 소리쳤다. 밧줄에 온몸이 결박되어 있기에 이렇게 소리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도원경이 그를 바라보며 귀를 후비적거렸다.

“새끼. 더럽게 시끄럽네.”

“뭐, 뭣! 새끼? 비천한 천민 놈이 내가 누구인 줄 알고!”

도원경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고래고래 소리치는 필로폰에게 다가갔다.

짜악─

도원경의 큼지막한 손바닥이 인정사정없이 필로폰의 뺨을 후려쳤다.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던 필로폰은 이내 정신을 차리곤 재차 소리쳤다.

“이 미천한 놈이……!”

짜악─ 짜악─

그러자 다시 한번 도원경의 손바닥이 필로폰의 뺨을 연달아 후려쳤다.

“주둥아리 한 번 놀릴 때마다 팔다리를 하나씩 뽑아버릴 테다.”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도원경의 말에 필로폰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에 도원경이 만족스럽다는 듯 빨갛게 부어오른 필로폰의 뺨을 가볍게 툭툭 건드렸다.

그럴 때마다 필로폰은 몸을 움찔움찔거리며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가리 닥치니까 얼마나 좋아. 계속 그렇게 있으라고. 네 역할은 거기서 얌전히 누군가 구해주기를 기다리는 거니까. 역할에 충실 하라고. 알겠어?”

도원경의 말에 필로폰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순종적으로 변한 필로폰을 뒤로하고 도원경은 기지개를 켜며 주위를 쭉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사지가 잘려 나간 병사들의 시체 조각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다. 도원경에게 납치당한 필로폰을 찾기 위해 파판 남작이 보낸 병사들이었다.

그 수가 무려 스무 명에 달했는데 비록 도원경 홀로 그들을 쓰러뜨리는 무위를 선보였지만 그렇다고 그가 무사한 것도 아니었다.

입고 있던 옷은 베여서 헤지고, 양 팔뚝과 등에는 기다란 상처가 나 연신 붉은 피를 흘려 대었다. 한가지 신기한 점은 상처 부위가 끓듯이 부글거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힐끗 상처 부위를 내려다본 도원경이 중얼거렸다.

“시스템이니 뭐니 애들 장난 같기는 해도 이런 건 참 편리하단 말이지.”

도원경이 자연 치유되는 상처를 지켜보고 있는 그때.

저 멀리서 일단의 무리가 다가왔다.

그런데 그들의 복장이 조금 특이했다.

기존에 도원경을 찾아오던 파판 영지의 병사들이나 기사들과는 복장 자체가 달랐다.

붉은 십자가가 그려진 새하얀 망토를 걸치고 있는 그들은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아 보이는 분위기를 풍겼다.

“새로운 손님인가?”

인기척을 느낀 도원경이 다가오는 무리를 바라보았다.

느껴지는 기세로 보아 제법 범상찮은 녀석들인 것 같았다.

호승심에 도원경의 몸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쳤던 검을 쥐어 들며 다가온 무리를 빤히 응시했다.

“그대가 요즘 파판 영지를 떠들썩하게 만든 싸움꾼인가?”

무리 중 한 사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도원경에게 말을 걸었다.

“그쪽도 이 녀석을 찾으러 온 건가?”

도원경은 대답 대신 필로폰을 가리키며 물었는데, 이때 필로폰이 재빨리 사내를 향해 소리쳤다.

“구, 구해다오! 날 구해준다면 아버지께 말해 큰 상을 내리도록…….”

필로폰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도원경이 단박에 필로폰의 뒤통수를 후려친 탓이었다.

빠악─

“내가 분명 한 번만 더 주둥아리 놀리면 팔다리를 뽑아버린다고 말했을 텐데?”

당장이라도 필로폰의 사지를 잡아 뜯을 듯한 기세에 필로폰의 안색이 파리하게 변하며 소리쳤다.

“잘못했다! 얌전히 있겠다!”

그런 필로폰을 바라보며 도원경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한결같은 새끼. 그래서. 그쪽은 나한테 무슨 용무인데?”

건들거리며 묻는 도원경에게 사내가 물었다.

“용사. 맞는가?”

순식간에 도원경의 검이 사내의 목젖에 맞닿았다.

단박에 도원경의 기세가 돌변했다.

전신에서 살기가 흘러넘치고, 금방이라도 사내를 향해 덤벼들 듯 몸의 근육이 연신 움찔거렸다.

“이 새끼. 너 뭐야. 마왕의 졸개냐?”

그런 도원경에게 사내는 싸울 의사가 없다는 듯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진정하게. 대화를 하려고 온 것이니 그리 경계하지 말게나.”

휙- 하고 도원경이 손목에 스냅을 주자 검이 당장이라도 사내의 목을 베어버릴 기세로 움직였다. 그 불시의 일격을 사내는 한걸음 뒤로 물러나는 것으로 가볍게 피해내었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도원경은 땅을 박차고 사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사내의 코앞으로 치달은 도원경이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안면을 적중당한 사내가 땅바닥을 나뒹굴었다.

도원경은 주먹을 내지른 손과 사내를 번갈아 보더니 피식 웃었다.

“피한 거 다 아니까 빨리 일어나.”

도원경의 말에 사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벌떡 일어나 옷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내었다. 그러곤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하아, 말했지 않나. 대화를 하려고 자넬 찾아온 것이라고. 자꾸 이런 식이면 곤란하네.”

“대화? 대화도 좋지만 일단 싸워 보자고!”

도원경의 발차기가 사내를 향해 날아들었다.

연달아서 펼쳐지는 화려한 발놀림에도 사내는 당황하지 않고 아주 자연스럽게 공격들을 피해내었다.

“정 그렇다면 움직이면서 듣게.”

도원경의 맹렬한 공세를 피해내며 사내가 말했다.

“우린 붉은 십자가 혁명단이라는 조직이라네. 자네 같은 용사들을 도와 마신의 강림을 저지하기 위해 결성된 조직일세.”

“어디 이것도 피할 수 있나 보자!”

도원경은 사내의 말을 들을 생각이 전혀 없는지 정신없이 사내를 몰아쳤다. 그런 도원경의 행동에 사내가 고개를 내저었다.

“용사들은 하나 같이 이상한 놈들뿐이라고 하시더니 정말이었군.”

사내는 한숨과 함께 처음으로 반격에 나섰다.

사내의 미간을 노리고 휘둘러지는 도원경의 발차기를 가볍게 쳐낸 사내는 그대로 손을 뻗어 도원경의 하관을 가격했다.

퍼억-

무척이나 깔끔한 동작이었다.

그 일격에 도원경의 몸이 휘청이더니 털썩- 자리에 쓰러졌다.

사내가 도원경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가볍게 친 것이니 조금만 지나면 다시 움직일 수 있을 걸세. 이제 대화를 할 수 있는 것 같으니 빠르게 말하겠네. 우리가 자네를 찾아온 목적은 자네를 우리 조직에 합류시키거나 혹은 자네를 보좌하기 위해서였네. 혹시 생각 있는가?”

도원경은 대답 대신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생각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는지 연거푸 땅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을 뿐이었다.

“듣지 않아도 대답은 알겠군. 하지만 이것 하나만 기억해 주게나. 우리 붉은 십자가 혁명단은 언제든 용사들을 향해 문을 열어두고 있다는 것을. 그럼 이만 물러가겠네.”

그리 말하곤 사내가 일행들을 이끌고 떠나갔다.

도원경은 멀어져 가는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허탈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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