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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22화 (22/183)

공작이 회귀함 22화

온두라스를 점거한 지도 7일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임에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우선 온두라스 백작이 아그리파의 손에 그 명을 달리하였으며, 바로 다음 날 백작을 제도로 압송하라는 황실의 공문이 내려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미 죽은 백작을 제도로 보낼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 사실을 제도에 전하자마자 대신들이 노발대발하며 당장 아그리파를 잡아들이기 위해 집행관을 온두라스에 파견하였다.

하지만 공문이 내려오기 전에 일이 벌어졌다는 점을 감안하여 죄를 삭감하여 달라는 발타자르의 간곡한 요청 덕분에 아그리파는 기사가 아닌 병사로서 3군단에 복무하는 것으로 일이 마무리되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온두라스의 점거를 공인받기 위해 발타자르가 제도에 막대한 뇌물을 뿌려 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외에도 검은 태양 상단과의 협상을 비롯하여 여러 일이 있었지만 크게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없었고 온두라스를 3군단의 세력화시키는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아저씨. 편지가 또 왔는데 이거 어떡할까요?”

휴가를 떠난 가웨인을 대신하여 임시로 발타자르의 보좌관직을 맡은 신시아가 편지 뭉치를 팔랑거리며 물었다.

“어디서 보낸 건가?”

하고 묻자 신시아가 편지를 하나하나 휙 뒤집어 보곤 막힘없이 곧장 대답했다.

“요기 밀랍에 찍힌 인장을 보니까 이건 이슈카 로마노프 공자가 보낸 것 같네요. 그리고 요건 빌로스 공자. 또 요건 랭카스터 백작. 으음…… 이건. 아! 애슐리 공녀가 보낸 거네.”

“그새 인장들을 다 외웠나?”

발타자르가 감탄하며 물었다.

괜히 거물급 인재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글을 모른다던 신시아는 보통 일반인이 글을 익히는 데 몇 달이 걸리는 것에 비해 3일 만에 글을 다 떼는 기염을 토해내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처음에는 버벅거리던 행정업무도 곧잘 처리하고 업무에 필요한 지식들은 혼자 공부하여 익히는 기특한 모습도 보였다.

“뭘 고작 이런 걸로 감탄하고 그래요. 이런 것쯤은 저한테 식은 스프 먹기보다 쉽다구요.”

발타자르의 감탄에 절로 콧대가 높아진 신시아가 어깨를 으쓱이며 너스레를 떨며 발타자르에게 편지 뭉치를 건네었다.

신시아에게 편지 뭉치를 건네받은 발타자르는 로마노프 공작가의 직계들이 보낸 편지들부터 훑어보았다.

온두라스를 점거하기 이전에도 그랬지만 점거를 한 이후에 로마노프 공작가의 직계들이 자신의 파벌에 들어오길 권유하는 편지가 하루가 멀다 하고 날아들었다.

뭐. 내용이야 다 비슷비슷하고 다소 뻔한 것이지만 날이 갈수록 애가 타는지 점점 그들이 내미는 조건들이 좋아지고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도 온두라스의 일로 이의를 제기하는 이가 하나쯤은 나올 줄 알았더니.’

특히나 빌로스 로마노프의 대처는 의외였다.

그의 파벌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세력을 자랑하던 온두라스 백작이 발타자르에 의해 한순간에 몰락했음에도 그것에 대해 별다른 말이 없었다.

오히려 온두라스 백작의 잘못을 성토하며 자신들은 온두라스 백작이 저럴 줄은 몰랐다며 발뺌했다.

“아이들은 잘 지내고 있나?”

집무실 한편에 마련된 소파에 드러누워 빈둥거리는 신시아에게 편지를 훑어보던 발타자르가 물었다.

“우리 애들이요? 당연히 잘 지내죠. 요즘은 누가 먼저 글을 떼는지 서로 내기하고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니까요.”

신시아가 신이 나선 아이들의 근황과 주변에서 주워들은 이야기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전부 시시콜콜한 이야기뿐이었지만 이렇게 발타자르에게 그녀가 들은 소문들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 이들의 일과 중 하나였다.

앞으로 창설될 정보단체의 수장에 신시아를 앉히기 위한 사전 훈련 정도로 보아도 좋았다. 한데 개중에 무척 신경 쓰이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러고 보니까 저 어디냐. 파판? 응. 파판 영지에 별이 떨어졌다고 난리가 났다고 하더라구요. 근데 별이 떨어진 자리에 가보니까 별은커녕 웬 사람이 한 명 있었다나 뭐라나.”

뚝-

편지를 넘기던 발타자르의 손이 정지했다.

황급히 고개를 들고 신시아를 바라보았다.

“사람?”

“네. 곧장 도망쳐서 얼굴은 잘 못 봤는데 분명 사람이라고 했어요. 왜요. 이런 얘기 좋아하는가 보죠?”

발타자르가 미간을 찌푸리며 검지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별이 떨어진 자리에 사람이 나왔다라…….’

용사가 분명했다.

용사들이 이 대륙에 등장할 때와 같았다.

로마노프 공작가의 내전이 끝날 무렵 하늘에서 유성우가 떨어져 내리고, 지상으로 추락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속에서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들은 스스로를 용사라 칭했으며, 어떤 신과의 계약에 의해 마신의 강림을 저지하기 위해 이 땅을 방문했다고 주장했다.

처음 사람들은 그들의 말을 헛소리로 치부하며 정신 나간 이들이라 말했지만, 용사들은 신의 축복인 ‘시스템’의 가호 아래 급속도로 성장하며 그들이 용사임을 스스로 증명해 내었다.

제국의 권력자들은 이러한 용사들을 경계하였으나 곧 이들이 쓸 만한 패가 될 거라는 것을 깨닫곤 자신들의 세력으로 끌어들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게 용사들의 등장으로 제국의 세력 구도가 뒤집히기 시작하고 이는 결국 제국 내전이라는 거대한 전쟁으로까지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그 뒤로 마왕들이 등장하고 이것저것 많은 일이 벌어지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어째서 벌써 그들이…….’

머리가 지끈거려왔다.

본래 회귀 전에 그들이 등장하던 시기와 너무 차이가 컸다. 이는 분명 회귀 전과 무언가 달라졌기에 벌어진 일이 분명했다.

‘가장 유력한 것은 나 때문인가?’

발타자르는 자신의 회귀와 용사의 등장 시기가 앞당겨진 것이 관련이 있다고 추론했다. 그것 말고는 달리 이 상황을 설명할 것이 없었다.

자신이 세워 두었던 계획이 크게 틀어진 것은 사소한 문제였다. 용사가 등장했다는 것은 조만간 마왕들 역시 모습을 드러낸다는 뜻이었고 이는 앞으로 벌어질 미래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해질 것이란 소리였다.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을 처리하는 것도 버거운 판국에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벌어지니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디 아파요? 왜 자꾸 인상을 찌푸리고 있어요?”

“……혹시 파판 영지에 다른 소문은 없던가?”

“어떤 소문요?”

“가령 사람이 다수 죽었다거나, 가축들이 사라졌다던가 하는 것 말이야. 사소한 것이라도 좋네.”

용사들은 무언가 한 가지씩 감정이 결여되거나 뒤틀려 있었는데 마법사들은 이를 두고 혼의 공백이라 칭하였다.

타 차원에서 왔다는 특이점만 제외하면 용사도 결국은 인간이었다.

인간의 몸에 ‘시스템’이라는 신의 가호를 그냥 부여했다가는 인간의 몸이 버티지를 못한다.

때문에 이 결여되거나 뒤틀린 부분, 즉 혼의 공백에 신의 가호를 채워 넣는 식으로 균형을 유지하여 용사들에게 가호를 내린다.

라는 것이 마법사들의 주장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결여되거나 뒤틀린 부분으로 인해 용사들이 있는 곳에는 항상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발타자르의 말에 신시아가 팔짱을 끼고선 생각에 빠져들었다.

“아! 하나 있네.”

“그게 뭔가?”

마음이 급해진 발타자르가 신시아를 재촉했다.

그런 발타자르를 신시아가 신기한 생물 보듯 바라보며 말했다.

“희한하네. 이런 거에 별 관심 없어 보이는데.”

“쉰 소리 말고.”

“네네. 알겠으니까 재촉하지 마요. 보자…… 그 파판에 요즘 유명한 싸움꾼이 나타났다던데요? 좀 강해 보인다 싶으면 기사 나리고 뭐고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데 문제가 마나도 다룰 줄 모르는 놈이 무척 싸움을 잘해서 골치라고 하더라구요.”

순간 발타자르의 뇌리를 스치는 한 인물이 있었다.

단신으로 수만에 달하는 마족의 군세를 뚫고 결국 마왕의 목을 따 낸 괴물.

이 땅에 강림한 수많은 용사 중에서도 단연 독보적인 존재들.

세븐스타 Seven Star.

그들 중 한 명인 투신鬪神 도원경이 분명했다.

“혹시 그자의 인상착의에 대한 정보는 없는가?”

“저처럼 흑발이라 하기는 하던데.”

발타자르는 확신했다.

소문의 주인공이 도원경임을.

회귀 전에는 칼 프란츠 대공의 수족으로 맹위를 떨치던 자를 자신의 수하로 끌어들일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음이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도원경은 투쟁의 신이라 불릴 정도로 싸움에 미친 자다.’

분명 도원경은 조만간 내전으로 혼란스러워질 북부에서 그 누구보다 탐나는 인재임은 분명했으나 통제가 힘들고 자칫 제 주인의 목을 물어뜯을지도 모를 투견이었다.

양날의 검이었으나 품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발타자르의 진영에서는 널리고 널린 흔한 성격이었다.

당장 발타자르 휘하의 무장들만 봐도 싸움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녀석들이 대부분이었으니 말이다.

거기서 하나 더 늘어난다고 해서 부담되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두 팔 벌려 환영하면 환영했지.

또한 도원경의 성향으로 볼 때 발타자르의 진영은 북부의 그 어느 세력보다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어차피 일어난 일. 그렇다면 이를 최대한 이용하는 수밖에.’

알고 있던 것보다 너무 빠르게 용사가 등장하기는 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 발타자르가 취해야 할 행동은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보다 발 빠르게 움직여 실리를 취해야 하는 것이었다.

‘다른 녀석도 아니고 도원경이라면…….’

발타자르에게 최강의 패가 되어줄 것이 분명했다.

‘칼 프란츠 대공은 압도적인 힘으로 도원경을 찍어 눌러 그를 세력으로 끌어들였다. 나라고 그러지 못하란 법은 없음이니.’

어떤 면에서 보자면 도원경은 야만족과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발타자르는 적대관계였던 야만족의 전사들을 다수 휘하에 두고 있었다.

도원경 같은 자를 다루는 것에는 도가 텄다는 뜻이었다. 도원경을 품기로 결심한 발타자르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정했다면 다른 이들이 도원경에게 눈독을 들이기 전에 한발 먼저 움직여 그를 데려와야 했다.

“지금 달려가 트리스탄과 그녀의 기수들을 불러 모으게. 지금 당장!”

갑작스러운 발타자르의 외침에 신시아는 순간 당황하기는 했지만 이내 황급히 집무실을 벗어나 트리스탄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 달려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발타자르는 시간을 두고 진행하려던 계획들 몇 가지를 앞당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정보단체는 조금 시간을 두고 창설하려고 했지만…….’

도원경 말고도 다른 용사들이 나타났을 것이 분명하니 도원경의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정보단체를 창설하고 그 수장에 신시아를 앉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만큼 용사들의 행보는 중요했기에 내릴 수 있는 결심이었다.

‘하나라도 더 많은 용사를 끌어들일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발타자르의 계획들이 모조리 틀어진 이 상황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지도 몰랐다.

‘신시아가 유능한 인재임은 지난 7일간 충분히 증명하였으니 처음에는 어설프더라도 금세 자리를 잡고 제 기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발타자르 역시 곧이어 집무실을 벗어나 출발 준비를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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