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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21화 (21/183)

공작이 회귀함 21화

웅성웅성.

3군단에 의해 통제받고 있던 광장은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그도 그럴 것이 갑작스레 3군단의 병사들이 몰려와 누구도 자리를 떠날 수 없다며 통제를 하니 소란스러울밖에.

개중에는 제 직위를 내세워 병사들을 향해 윽박지르는 사람들도 있었고, 자신은 아무런 잘못도 없다며 애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향해 겨누어진 창날에 감히 병사들에게 접근하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단상 위에서 노예 경매를 진행하던 사회자와 노예로 끌려온 난민들이 모두 아래로 내려가고 그 자리를 대신하여 서 있던 장교가 소리쳤다.

“3군 총사령관 알레한드로 발타자르 후작 각하께서 오신다! 부대 차렷!”

장교의 외침에 사람들을 향해 창날을 겨누던 병사들이 마치 한 몸처럼 일사불란하게 창날을 거두곤 차려 자세를 취했다.

이윽고 발타자르를 위시한 일단의 무리가 광장에 도착하자 장교는 절도 있는 동작으로 발타자르를 향해 경례를 올렸다.

척-

“프락시온 제국에 영광을!”

장교의 선창에 병사들이 주먹으로 제 가슴을 두드리며 광장이 떠나가라 소리쳤다.

[프락시온 제국에 영광을!]

그 우레와도 같은 외침에 일순간 광장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짙은 적막이 내리깔린 광장에 말발굽 소리가 고요하게 울려 퍼졌다.

다그닥- 다그닥-

말을 몰아 단상의 코앞에 도달한 발타자르는 말에서 내려 느긋한 걸음걸이로 단상 위로 올라갔다.

머리는 산발이고, 옷은 넝마나 다름없는 초라한 몰골이었지만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기세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 몸이 짓눌리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저벅- 저벅-

마침내 발타자르가 단상 위에 도착했을 때 그를 힐끔힐끔 몰래 쳐다볼지언정 감히 똑바로 바라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숨죽였다.

“반갑네. 제국의 신민들이여. 본관은 위대하신 황제 폐하의 성은으로 과분하게도 3군 총사령관직을 맡고 있는 발타자르 후작일세.”

묵직한 발타자르의 음성이 광장에 울려 퍼지고, 그제야 사람들은 숙였던 고개를 들며 발타자르를 올려다보았다.

“갑작스레 3군단이 온두라스를 찾아와 이렇게 제국의 신민들을 억압하고 있으니 실로 유감을 표하는 바일세.”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까진 병사들의 눈치를 보는 터라 저들끼리 귓속말로 속삭이는 수준이기에 크게 소란스럽지는 않았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는 온두라스 백작이 반역죄에 준하는 중죄를 저질렀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아두었으면 하는 바이네.”

웅성거림이 커졌다.

발타자르의 말 중에서 반역자라는 세 글자가 무겁게 다가왔다. 사람들 사이로 두려움이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이제는 병사들의 눈치도 보지 않고선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만큼 반역죄라는 이름이 무거운 탓이었다.

본래 반역죄의 경우 이를 저지른 이와 그의 일족 그리고 일에 연루된 이들만이 참형을 당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제도의 대신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처벌을 강화하였다.

반역죄가 확정되면 중앙군이 움직여 해당 영지를 포위하여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 누구도 영지를 벗어날 수 없게 통제한다.

그러곤 평생에 얼굴 한 번 보기 힘들다는 제국에 단 넷뿐인 아크메이지가 반역죄를 저지른 영지를 방문하여 영지에 강력한 마법을 발현시키는 것이 현재 반역죄에 대한 처벌이었다.

그라운드 제로 Ground Zero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가장 강력하고 위대한 이 궁극의 마법은 그 이름에 걸맞게 마법이 구현된 일대를 일거에 소거시켰다.

문제는 마법이 구현된 일대가 향후 50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죽음의 대지로 변모한다는 점이었다.

이 때문에 반역죄가 무서운 것이고 제도의 대신들이 가진 최강의 패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여담이지만 몇몇 충신들이 반역죄의 처벌에 이 극악의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제 살을 깎아 먹는 너무 과한 처사라 황제에게 충언했지만, 받아들여지기는커녕 대신들의 눈 밖에 나는 바람에 한직으로 좌천당하였다.

“대체 온두라스 백작께서 저지른 죄가 무엇입니까?”

한 사내가 물었다.

발타자르가 막 말을 꺼내려는데 단상 위로 끌려오던 온두라스 백작이 발버둥 치며 소리쳤다.

“이건 모함이다! 난 절대 그러한 중죄를 저지르지 않았다!”

억울함을 성토하는 백작이었지만 도둑이 제 발 저려 하는 것만 같은 모습에 사람들의 불안감은 커져만 갔다.

그렇게 발버둥 치던 백작은 결국 병사들에 의해 무릎을 꿇리고 입에 재갈이 물려졌다. 발타자르가 그런 백작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이 온두라스 백작은 위대하신 프락시온의 지배자의 명을 받아 북부의 야만족으로부터 제국을 수호하는 본관을 벨락스라는 폭력조직을 사주하여 겁박하였다. 이는 황제 폐하의 권위에 대한 도전과도 같다.”

광장에서 노예 경매를 관람하던 중에 졸지에 광장에 갇히게 된 오닐은 자신의 조직이 발타자르의 입에서 거론되자 적잖이 당황했다.

‘기사인 줄 알았는데 3군단의 총사령관이었다니!’

일이 꼬여도 제대로 꼬였다는 것을 직감했지만 도망칠 구석이 없었다. 괜히 발타자르가 자신을 알아볼까 싶어 고개를 숙이고 수하들의 등 뒤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것을 단상 위에서 지켜보던 발타자르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또한 자신의 영지민이라고는 하나 엄연히 황제 폐하의 신민들을 야만족으로 분장시켜 백주 대낮에 노예 경매를 자행하는 범법행위를 저지르며 제국의 위신을 땅에 떨어뜨린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를 막으려던 본관을 결박하고 고문을 감행하였다. 심지어 상황이 여의치 않자 본관을 죽여 증거인멸을 시도하였으니 그 죄질이 실로 악하다!”

밀레오를 비롯한 노예 경매의 관련자들이 일제히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재수가 없다면 이 자리에서 목이 달아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두려움이 가득한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발타자르가 끝을 고했다.

“따라서! 황실의 처분이 내려올 때까지 온두라스 백작과 그의 일족들을 자택에 연금토록 하며, 백작이 저지른 중죄에 연루된 이들을 색출하여 3군 총사령관의 권한으로 극형에 처한다!”

무언가 찔리는 구석이 있거나, 발타자르가 거론한 죄목에 연관된 자들이 무릎을 꿇고 살려 달라 애원하기 시작했다.

몇몇은 자신이 어디 소속이다, 누군가의 가신이다 하며 자신들의 배후를 언급해 그 위세를 빌려 이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발타자르가 한발 물러서고, 가웨인이 앞으로 나서며 검을 뽑아 들었다. 동시에 병사들의 창날이 자신들에게로 향하자 광장이 재차 적막을 되찾았다.

그러한 가운데 가웨인이 입을 열었다.

『하나. 현 시간부로 온두라스는 3군단의 통제 아래 들어간다.』

『둘. 온두라스 백작의 중죄와 연관된 이들은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사형에 처한다.』

『셋. 이번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 그 누구도 온두라스를 벗어날 수 없다. 만약 이를 무시하고 벗어나려는 이가 있다면 공범자로 간주하고 극형에 처한다.』

『넷. 같은 제국의 신민이 노예 경매에 끌려가는 것을 묵인한 죄를 물어 도시의 시민들에게 10골드의 벌금을 부과한다.』

『다섯. 기존에 거두던 세금의 비율을 제국의 법규에 따라 7할에서 4할로 축소한다.』

『여섯. 3군단의 통제에 따르지 아니하는 자는 현장 지휘관의 재량으로 즉결 처형한다.』

『이상을 3군 총사령관 알레한드로 발타자르 후작의 이름으로 공표하는 바이다.』

가웨인의 입에서 공표가 하나씩 튀어나올 때마다 사람들의 안색이 거무죽죽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저 공표에 해당하지 않는 자가 없기에 더 그랬다.

발타자르가 단상을 내려가고, 사람들이 애타게 발타자르를 불렀다. 그러나 발타자르는 뒤를 돌아보는 법 없이 그저 묵묵하게 광장을 떠나갔다.

* * *

광장을 벗어난 발타자르는 그 길로 온두라스의 내성으로 향했다. 그 뒤를 따라 군타낙스 기사단이 호위하며 함께 움직였다.

거리에는 이게 무슨 소란인가 싶어 집을 나온 시민들이 길 양옆으로 물러나 발타자르와 그 일행들의 행렬을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아저씨, 아니, 사령관님은 엄청 무서운 사람이었네요.”

잔뜩 굳어 있던 신시아가 처음으로 말을 꺼내었다.

가웨인과 함께 온두라스로 돌아와 발타자르를 만났을 때만 해도 그가 무척 반가웠던 신시아였다.

하지만 워낙 분위기가 무거운지라 선뜻 말을 꺼내기가 어려워 입을 꾹 다물고 있었는데, 돌연 손짓 한 번으로 온두라스의 병사들 수십 명을 순식간에 죽여 버렸다.

그러고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모습은 방랑자들의 집에서 보여주었던 것과는 사뭇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신시아는 발타자르에 대한 평가를 수정했다.

무언가 감추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래도 마냥 성격 좋은 아저씨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무척이나 무서운 사람이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신시아를 바라보며 발타자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원래 하던 것처럼 하게. 답지 않게 긴장하지 말고.”

“누가 긴장했다고 그러는 건데! ……요.”

저도 모르게 원래 대하던 식으로 말을 내뱉던 신시아는 기사들의 살벌한 시선을 한 몸에 받자 급히 ‘요’를 덧붙이며 존대했다.

그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신시아에게 향하던 시선들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이거 뭐 살벌해서 말이나 꺼내겠어?’

속으로 투덜거리며 신시아가 말을 몰아 발타자르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의 옆에 붙어 있으면 기사들도 쉽게 눈치를 주지 못할 것이란 판단이었다.

그리고 그 판단은 실로 정확했다. 발타자르의 곁으로 다가간 신시아를 힐끔 바라볼지언정 더 이상 눈치를 주는 기사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아저씨 왜 저한테 사기 쳤어요?”

겁도 없이 3군 총사령관을 향해 사기를 운운하는 신시아의 언행에 기사들의 미간이 꿈틀거렸지만 감히 나서는 이는 없었다.

“……사기?”

발타자르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신시아를 바라보았다.

“네, 사기요. 저한테는 분명 장교라고 했잖아요.”

“내가 언제 그랬는가? 난 내 입으론 내가 장교라고 말한 기억이 없네만.”

발타자르의 말대로 그는 자신의 입으로 장교라고 한 적이 없었다. 발타자르가 장교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신시아의 추측일 뿐이었고 발타자르는 그 추측이 어느 정도 정확하다고 말한 것이 전부였다.

“어…… 그건 그렇네.”

신시아가 멋쩍었는지 쩝- 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그 있잖아요. 저번에 했던 말.”

볼을 긁적이며 운을 떼는 신시아에게 발타자르가 반색하며 물었다.

“어찌. 이젠 마음이 좀 바뀌었나?”

신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마음이 바뀌었는지 물어봐도 되는가?”

발타자르의 물음에 신시아가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무서운 사람 같기는 해도 북부의 영웅이시니 믿을 만하겠다 싶으니까요.”

그리 말하곤 작게 중얼거리듯 덧붙였다.

“그…… 판자촌에서 도와준 것도 있구요.”

발타자르가 흡족한 표정으로 신시아의 어깨를 두드리자 그녀는 멋쩍은 듯 어깨를 흔들며 그 손길을 거부하곤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저나 애들이나 행정 일은 해본 적도 없고 글도 모르는데요. 괜찮아요?”

“글이야 배우면 되는 것이고 자네라면 충분히 해낼 테니 걱정 말게.”

보면 얼마나 봤다고 신시아에 대한 믿음을 가진 것처럼 이야기하는 발타자르를 묘하게 바라보던 신시아는 이내 고개를 휙 돌리며 중얼거렸다.

“저는 뭐든 금방 잘하니까 걱정하는 건 아니구요. 그냥 그렇다구요.”

* * *

이윽고 발타자르의 일행이 내성의 성문 앞에 도달했을 때 막 내성을 빠져나오는 인물이 있었다.

한바탕 일을 치르고 온 듯 온몸이 붉은 피로 범벅인 사내, 아그리파는 한쪽으로 비켜서며 내성을 향해 다가오는 발타자르를 향해 깊이 허리 숙여 인사했다.

발타자르는 아그리파를 지나치며 혼잣말을 하듯 툭 말을 건네었다.

“마무리하는 즉시 영주관저로 오게나.”

아그리파는 대답 대신 광장을 향해 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응답했다.

“아저씨는 역시 무서운 사람이에요.”

멀어져가는 아그리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신시아가 중얼거렸다.

“그럴지도.”

발타자르가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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