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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16화 (16/183)

공작이 회귀함 16화

두두두-

드넓은 에버나스 평원을 배경으로 한 편의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선두에서 말을 타고 도망치는 소녀와 그 소녀를 잡기 위해 뒤쫓는 다섯 명의 용병들은 무척이나 빠른 속도로 평원을 질주하고 있었다.

“이럇! 이럇!”

선두에서 도망치는 소녀 신시아는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살벌한 기세로 쫓아오는 용병들이지만 다행히 활을 든 이가 없어 이대로만 도망친다면 베르덴에 도착할 때까지 저들에게 붙잡히는 일은 없을 듯싶었다.

히이잉-

“어!?”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지.

말이 무언가에 발이 걸린 듯 대차게 넘어지며 신시아의 몸이 허공위로 붕 떠올랐다. 순간 시간이 한없이 느리게만 흘러갔다.

신시아는 몸이 허공에서 회전하는 것을 느끼며 뒤쫓아 오는 용병들을 바라보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하필 재수 없게…….’

쿠당탕탕-

달리는 말에서 튕겨 나간 신시아는 땅바닥을 몇 차례 나뒹굴었다. 전신에서 밀려오는 통증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아파…….’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귀에서는 연신 삐- 거리는 이명이 들려오고 머리가 어질거렸다. 흔들리는 시야 너머로 말에서 내려 그녀에게 다가오는 용병들이 보였다.

‘도망쳐야 하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힘이 빠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빌어먹을 꼬맹이가 감히 쟈칼 용병단장을 건들고도 무사할 줄 알았냐!? 며칠 동안 돌려먹다 질리게 되면 네년 팔다리는 개먹이로 주고 남은 몸뚱이는 발정 난 돼지우리에 처박아주마!”

살기등등한 모습으로 다가오는 용병들의 모습에 결국 신시아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아씨, 그냥 애들이랑 도망칠걸.’

후회해 보았지만 이미 때늦은 후회였다.

용병들이 코앞까지 다가오고 신시아가 체념하려는 그때.

퍼억-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 한 발에 가장 앞서서 걸어오던 용병 하나가 눈이 꿰뚫리며 즉사했다.

챙-

“습격이다!”

“어디야?! 어디서 쏜 거야!”

“방패! 방패 어디 있어!?”

“이런 빌어먹을! 대체 어떤 놈이!”

용병들이 당황하는 중에도 화살은 착실하게 그들의 숫자를 줄여 나갔다.

한발에 한 명씩, 정확하게 그들의 급소를 노리고 날아든 화살은 한 번의 빗나감도 없이 모조리 명중했다.

결국 용병들이 모두 사살되는 데 걸린 시간은 과장 조금 보태서 눈 몇 번 깜빡일 정도의 극히 짧은 시간이었다.

신시아는 입만 뻥긋거리며 싸늘한 주검이 된 용병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너무 놀라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였다.

대체 누가 이런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떠오를 무렵 신시아의 귓가로 말발굽 소리와 함께 고운 미성이 들려왔다.

“이야. 이놈의 노예 상인들은 죽여도 죽여도 끝이 없네.”

신시아가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자 늑대 가죽을 뒤집어쓴 여인과 그녀의 일행들이 말을 몰아 신시아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척후대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트리스탄과 그녀의 수하들이었다.

“대장. 너무 혼자만 기분 내신 것 아닙니까? 저희는 뭐 해보기도 전에 다 끝장내시면 어떡합니까.”

트리스탄의 오른팔 격인 울프가가 즐거운 듯 방실방실 웃고 있는 그녀를 타박했다.

“에이. 몇 놈 되지도 않았잖니.”

트리스탄과 울프가는 용병들을 사살한 것을 두고 마치 동물 사냥이라도 한 것처럼 시시덕거리며 떠들어 대었다.

그 모습에 신시아는 용병들을 피했나 싶었더니 이번에는 살인귀들을 만났구나 싶어 오늘따라 유독 재수가 없음을 한탄했다.

“꼬마야. 괜찮아?”

그런 신시아에게 울프가가 말에서 내려 다가서며 자상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신시아가 몸을 움찔거리며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을 본 트리스탄은 말에 탄 채 발로 울프가의 팔뚝을 툭툭 쳤다.

“비켜. 너 때문에 우리 꼬마 숙녀께서 놀라셨잖니.”

“아니, 제가 뭘 했다고…….”

울프가가 억울하다는 듯 신시아에게서 멀어지며 하소연했다. 그런 울프가의 가슴에 트리스탄이 비수를 꽂았다.

“넌 생긴 것 자체가 범죄야. 어디 그 험악한 상판을 애 앞에 들이미는 거야?”

트리스탄의 독설에 주변의 병사들이 낄낄거리며 폭소했다. 울프가의 미간이 단박에 좁아지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웃냐!? 웃어!?”

“에이. 형님. 뭘 그리 발끈하십니까? 솔직히 대장 말이 맞지 않습니까.”

“레이븐, 너 이 새끼!”

울프가가 레이븐을 향해 달려들자 레이븐은 말을 몰아 재빨리 울프가에게서 멀어졌다. 두 사람이 한바탕 추격전을 벌이기 시작하자 다른 병사들이 그들을 보며 낄낄거리며 저마다 잡히냐, 잡히지 않느냐를 놓고 내기를 했다.

트리스탄은 그런 부하들을 바라보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더니 은근슬쩍 땅을 기어 도망치고 있는 신시아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 가지고 언제 도망갈래?”

트리스탄의 말에 신시아가 몸을 움찔거렸다.

그러더니 천천히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돌려 트리스탄을 올려다보더니 배시시 웃어 보였다.

“헤, 헤헤…… 봤어요?”

트리스탄이 그런 신시아를 바라보며 피식 웃으며 말했다.

“해코지하려고 구해준 거 아니니까 겁먹지 마. 그보다 왜 쫓기고 있던 거니?”

“그게 좀 개인적인 사정이라서요.”

트리스탄은 더 캐묻지 않았다.

온두라스로 향하는 길에 이런 비슷한 상황을 자주 보았기에 이번에도 대충 그런 상황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러니? 뭐 어쨌든. 이쪽 길은 잠시 동안 사용할 수 없으니까 다른 길로 가든지, 아니면 저 멀리 비켜나 있으렴.”

그녀의 말에 신시아가 당황한 표정으로 다급히 말했다.

“왜 못쓰는데요? 제가 좀 급한 일이 있어서 빨리 베르덴에 가야 하는 데. 이리 막으시면 곤란해요.”

“오해한 것 같은데. 길을 못 쓰게 하는 것이 아니라 경고해 주는 거야.”

“그게 무슨……?”

“보면 알 거야. 아! 저기 오네.”

트리스탄이 손으로 그녀가 왔던 방향을 가리키자 신시아는 얼떨결에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지평선 너머로 거대한 흙먼지가 다가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혹시 저 모래바람 때문에 그런 것인가 싶었는데 이내 그녀의 눈에 흙먼지 사이로 질주하는 무언가가 들어왔다.

그것은 처음에는 작은 점 같았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눈으로 식별이 가능할 정도로 커졌는데, 자세히 보니 중무장한 기사들이었다.

선두에서 내달리는 기사들의 뒤로는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무수히 많은 마차가 달리고 있었다. 저 모래폭풍 같은 흙먼지는 마차들이 일으킨 것이었다.

“이제 이해가 됐지? 3군단이 공무 수행 중이니. 잠시 비켜주렴?”

트리스탄이 찡긋- 윙크하며 말하는데 신시아가 ‘3군단’이라는 말에 반응하며 재빨리 소리쳤다.

“가, 가웨인!”

“응?”

“3군단에 가웨인이란 기사분에게 전해야 할 말이 있어요!”

“할 말?”

“네! 늦으면 조만간 자유 기사가 될지도 모른다고 전해달라고 했어요.”

신시아의 말에 트리스탄의 얼굴이 굳었다. 그러나 곧 표정을 풀고선 허리를 숙이며 신시아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자세한 건 가서 얘기하자?”

신시아가 내뻗은 트리스탄의 손을 붙잡자 트리스탄이 쑥 신시아를 끌어당기더니 순식간에 그녀의 앞에 앉혔다.

“꼴통들아! 그만들 놀고 복귀하자!”

그녀의 외침에 여태껏 추격전을 벌이고 있던 그녀의 수하들이 재빠르게 말에 올라타며 그녀의 뒤를 따라 본대로 복귀했다.

* * *

신시아에게서 자초지종을 들은 가웨인은 푹-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트리스탄이 신시아를 데려올 때만 하더라도 그녀가 어디서 또 사고를 치고 왔구나 싶었었다.

한데 트리스탄이 데려온 소녀 신시아에게서 발타자르의 소식을 전해 듣게 되니 사고는 신시아가 아니라 발타자르가 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군께서 그리 말씀 하셨다고요?”

“그 아저씨가 장군인지는 모르겠는데요. 그렇게 전하라고 했어요.”

빌어먹을 장군 같으니라고.

사고 치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

가웨인이 속으로 한탄했다.

겨울 전쟁이 한창이던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이 변한 것처럼 행동하면서 종종 돌발 행동을 하며 일을 벌이더니 이번에도 어김없이 일을 거하게 벌여 놓았다.

하도 겪은 일이 많다 보니 무슨 생각으로 아이들을 구하겠답시고 온두라스 영지군과 마찰을 빚었는지는 대충 짐작이 되었다.

이미 벌어진 일 같으니 어쩔 수 없지만 발타자르가 벌여 놓을 일들의 뒤처리를 생각하니 골이 지끈거렸다.

팔짱을 끼고서 이를 가만히 지켜보던 트리스탄이 가웨인에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 할 거예요? 구출대라도 편성해야 하려나?”

가웨인이 마른세수를 하며 물었다.

“……진담이십니까?”

트리스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농담이죠. 장군께서 한참 재미 보시는 중일 텐데 그걸 방해해서야 되겠어요?”

신시아와 아이들이 도망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홀로 온두라스의 영지군을 상대하고 있을 발타자르는 현재 적진 한가운데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지만 트리스탄은 그가 전혀 걱정되지 않았다.

겨울 전쟁 당시 보여준 신위를 떠올려 본다면 걱정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그보다는 간만에 신나게 날뛰고 있을 발타자르가 무척 부러웠다.

두 사람이 전혀 발타자르의 신변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 것 같자 신시아는 그들의 그러한 태도를 이상하게 여기며 말했다.

“저기, 아저씨 지금쯤 온두라스 영지군에 잡혀갔을 텐데요. 도시에 기사단장이 무려 로열 랭크라고 하던데. 지금쯤 붙잡혀서 고문받고 있거나 아니면 노예 경매에 팔려가고 있을지도 몰라요.”

신시아의 말에 가웨인과 트리스탄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저마다 한마디씩 툭 내뱉었다.

“제발 팔려갔으면 좋겠군요. 제발.”

“고문? 어머. 재밌겠다.”

신시아는 이게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싶어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눈을 보니 진심이었다. 세상에 뭐 이런 미친년놈들이 다 있나 싶었다.

황당해하는 신시아에게 트리스탄이 깔깔거리며 말했다.

“걱정 말렴. 온두라스 전체가 덤벼들어도 멀쩡할 위인이니까.”

“그게 무슨 소리예요?”

신시아의 물음에 트리스탄은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주며 대답했다.

“무슨 소리긴. 엄청 강하단 소리지.”

“누가요? 그 아저씨가요?”

그 장난기 많은 아저씨가 강하다고 하니 신시아는 도저히 믿겨지지 않았다.

물론 실력은 좀 있어 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온두라스 영지군과 마찰을 빚고서도 무사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신시아가 믿거나 말거나 그녀를 내버려 둔 채로 트리스탄이 가웨인에게 말을 걸었다.

“그래도 서둘러야겠죠?”

가웨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최대한 빠르게 오라고 하셨으니 그에 따라야지요.”

그러곤 검을 뽑아 들더니 하늘을 향해 치켜들며 소리쳤다.

“진군을 재개한다. 더 이상의 휴식 없이 전속력으로 이동한다! 목적지는 온두라스! 진군 개시!”

가웨인이 소리치자 장교들이 3군단의 진영 곳곳으로 흩어지며 소리쳤다.

[휴식 끝! 진군을 개시한다! 서둘러 마차에 올라라!]

휴식을 취하던 3군단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임을 재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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