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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13화 (13/183)

공작이 회귀함 13화

“자넨 마스터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소란이 일어난 곳으로 향하는 길에 아그리파가 뜬금없이 그리 물어왔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밀레오는 그가 알고 있는 마스터에 대한 정보들을 떠올려 보았다.

마스터Master.

제국 유수의 기사들 중에서도 선택받은 자만이 도달할 수 있다는 지고의 경지이며, 동시에 기사들의 정점에 오른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사용하는 무기에 따라 소드 마스터, 랜스 마스터, 보우 마스터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인간의 몸으로 이적에 가까운 행위를 일으킬 수 있기에 각국에선 그들을 결전병기로 취급하며 한 명이라도 더 새로운 마스터를 끌어들이기 위해 안달을 낸다.

가까운 예로 프락시온 제국에선 마스터가 등장하면 출신에 상관없이 백작위와 함께 황족의 여식과 혼례를 올려 황실의 일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강대한 힘으로 인해 그들은 일거수일투족을 항상 감시당하며, 때때로 시험받는다. 자칫 그들의 검이 잘못된 방향으로 향할 경우 크나큰 재앙으로 돌변하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감시받는 것이 싫어 일부러 마스터임을 밝히지 않는 은거기인들도 더러 존재했다.

“글쎄요. 기사들이 바라 마지않는 최고의 경지? 듣기로는 전장의 판도를 뒤집을 정도라고는 하는데 실제로 봤어야 뭐라고 이야기라도 해 볼 텐데 제국에 6명뿐인 마스터를 제가 볼일이 있어야지요.”

어깨를 으쓱이며 밀레오가 대답했다.

“그렇지. 살면서 한 번 보기 힘든 이들이지. 마스터는. 하지만 난 보았다네.”

아그리파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10년 전을 떠올렸다.

전대 로마노프 공작이 살아 있을 당시 공작가에서 주최한 연회에 우연히 참석할 기회를 얻게 된 아그리파는 그곳에서 난생처음으로 마스터를 볼 수 있었다.

생전 처음 본 마스터의 모습은 생각 외로 무척이나 실망스러웠다. 등이 굽은 노인. 그것만큼 그의 외관을 잘 표현할 말도 없었다.

만약 주변에서 저 노인이 마스터라고 말하지 않았더라면 노인이 마스터인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노인은 평범했다.

‘하도 마스터, 마스터 하기에 뭔가 대단할 줄 알았더니 별거 없는 것 같은데?’

당시 갓 로열 랭크에 오른 아그리파는 한참 자신감에 가득 차 있었고, 주위에서 빠른 시일 내에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지도 모른다는 감언甘言에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그가 목표로 하던 마스터가 볼품없는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아그리파는 내심 마스터도 별것 아니라며 속으로 비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자신만만하게 그에게 걸어갔다.

‘어디 실력 좀 한번 볼까?’

아그리파는 뽐내고 싶었다. 살아 있는 전설이라 칭해지는 마스터보다 자신이 더 낫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의 오만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호승심을 내뿜으며 아그리파가 노인에게 다가간 순간.

노인이 아그리파를 바라보았고, 아그리파는 순간 세상이 정지한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 정지된 시간 속에서 왜소한 체구의 노인이 하늘을 뒤덮을 듯 한없이 거대해졌다.

숨조차 쉴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인 존재감에 짓눌린 아그리파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눈을 내리깔고 노인의 시선이 거두어지기를 숨죽여 기다리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당시 아그리파가 느낀 감정은 단 하나였다.

경외심? 아니었다.

두려움? 그것도 아니었다.

아그리파가 느꼈던 감정.

그것은.

“마스터란 불합리의 극치일세.”

불합리였다.

저것은 인간이 아니다.

저것은 닿을 수 없다.

저것은…….

“도저히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되지 않더군.”

마스터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가 아닌, 인간을 벗어난 인외人外의 존재들을 칭하는 것이라는 것을 아그리파는 그때 깨달았다.

코앞에 닿을 것만 같았던 마스터의 경지가 한없이 추상적이게만 느껴지게 된 것도 바로 그때부터였다.

그 일 이후로 아그리파는 단 한 걸음의 진전도 없이 10년째 로열 랭크에 머물러 있었다.

세간에선 새로운 마스터가 등장한다면 그 주인공은 바로 아그리파가 될 것이라고 떠들어 댔지만 아그리파로서는 그저 헛웃음만 나오는 이야기일 뿐이었다.

“그래도 마스터가 아무리 강해 봤자 결국 사람 아닙니까?”

밀레오의 말에 아그리파는 피식 실소했다.

“그래. 결국은 사람이지.”

‘외관은 말이야.’ 하고 아그리파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그리파가 노인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이야기였다.

내리치는 벼락.

7대 신검神劍

산달폰Sandalphon의 주인.

브라티슬라바 페흐트라.

제국에서 손에 꼽히는 기사 집단인 검우회劍友會의 수장이며 제국 유일의 대공인 레온하르트 칼 프란츠의 검이었다.

그와의 만남 이후로 아그리파는 마스터에 대한 서적과 논문을 찾아보며 마스터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마스터와 아크메이지의 활약에 대한 자료는 없었다. 프락시온 제국이 중앙 대륙을 통일한 이래로 그들의 강력한 힘을 견제한 황실에서 그들에게 수많은 제약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들이 활약할 무대가 없었다는 점도 있고 말이다.

그러나 그 이전의 시대.

대륙에 수많은 국가가 난립하며 건국되고 사라지기를 반복하던 전국시대의 자료를 어렵사리 입수할 수 있었던 아그리파는 거기서 마스터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되었다.

그 서적에는…….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회상에 빠져 있던 아그리파에게 밀레오가 물었다.

덕분에 현실로 돌아온 아그리파는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갑자기 옛 생각이 나지 뭔가.”

다시 마스터를 만난다면 어떨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 아그리파였다.

* * *

본보기로 병사 몇 놈을 날려 버렸더니 싸움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자신만만하게 내게 덤벼들던 처음의 모습은 오간 데 없고 그저 두려움 가득한 눈동자로 창을 겨누며 대치 상태를 이어갔다.

나야 뭐 시간만 끌면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이런 상황은 오히려 환영이었다. 그리고 이런 사소한 상황 하나하나가 다 내게 명분을 주는 일들이었으니 나쁠 것도 없고 말이다.

그렇게 한동안 대치 상황이 이어지기를 잠시.

병사들의 사이로 일단의 무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검게 도색 된 흑색의 풀 플레이트로 무장한 기사들이 그 주인공이었다. 그들의 가슴 한가운데는 산양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는데 그것으로 이들이 온두라스의 검은 산양 기사단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북부에서도 나름 손에 꼽히는 기사단으로 그들을 이끄는 기사단장 아그리파는 로열 랭크의 강자로 알고 있었다.

소문으로는 강하다고 종종 듣고는 했지만 회귀 전과 현재를 통틀어 이렇게 직접 만나는 것은 처음이었다.

‘곤란한걸.’

야만족과의 전투 때처럼 지닌바 일신의 무위를 아낌없이 발휘할 수 있었더라면 모를까 힘을 숨겨야 하는 나로서는 조금 곤란한 상대였다.

기사 정도 되는 이들을 상대하려면 필연적으로 마나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되면 내가 마스터라는 것을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마스터에 오르면 마나의 질 자체가 달라지니 이건 숨기고 말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넷……? 아니, 셋 정도겠군.’

저들의 숫자나, 무장 상태 등을 바탕으로 짐작해 볼 때 마나 없이 상대할 수 있는 기사의 수는 고작 셋이 전부였다.

마스터씩이나 되는 이가 고작 기사 셋밖에 쓰러뜨리지 못하냐고 비웃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나를 사용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의 차이는 너무 컸다. 솔직히 마나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마스터도 그저 검 좀 잘 쓰는 일반인 수준이니 말이다.

반면 상대측 기사의 숫자는 열 명. 개중에 한 명은 고위기사도 끼어 있는 것 같으니 셋을 쓰러뜨릴 수 있을지도 조금 긴가민가하긴 했다.

병사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검은 산양 기사단은 성큼성큼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내게 다가오더니 일정 거리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단 한 번만 권하겠다. 살고 싶다면 투항해라.”

기사의 투항 권고에 나는 피식 웃었다.

검을 들어 올려 녀석을 향해 겨누자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검은 산양 기사단의 기사들과 나는 한동안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했다.

잠시간의 대치 끝에 선공을 취한 것은 검은 산양 기사들 측이었다. 마나를 머금은 검이 내 목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저걸 그대로 맞받아치면 내 검이 그대로 잘려 나갈 것은 안 봐도 뻔했다. 때문에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해내며 검을 사선으로 휘둘렀다.

카앙-

적의 심장을 베어버릴 듯 휘둘러진 검은 강철의 갑옷에 막혀 튕겨 나왔다. 그러나 거기에 신경 쓰고 있을 새가 없었다.

이어서 좌측과 우측, 그리고 전방.

이 셋 방향에서 검이 찔러 들어왔다.

이번에도 역시나 마나를 머금은 검이었고 쳐낼 수 없는 공격이었다.

‘얼추 다 도망간 것 같으니…….’

건물 안에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모두 도망친 것이 분명했다.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나는 건물의 외벽을 박차고 뛰어올라 찔러오는 공격들을 피해내곤 우측에 있던 기사의 투구를 발판삼아 뛰었다.

탁-

순식간에 지휘관급의 기사 앞에 착지한 나는 손에 쥐고 있던 검을 바닥에 내던졌다.

“항복.”

그러곤 두 손을 들어 올리며 항복 의사를 밝혔다.

“허?”

그게 황당했던지 주위에서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던 병사 중 한 녀석이 얼빠진 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동시에 기사가 소리쳤다.

“포박해라!”

기사의 외침에 병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내 몸을 포승줄로 결박하기 시작했다.

* * *

지금쯤 한참 격전을 치르고 있을 줄 알았던 아딘이 돌아와 하는 보고에 아그리파는 황당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방금 전 그가 느꼈던 기운으로 미루어 보아 먼저 보낸 기사들이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마스터가 나타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기운이 무척이나 강렬했기에 그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벌기용으로 보낸 것이었다.

그런데.

“투항했단 말이지?”

“예, 아주 잠시 대치하기는 했지만 금세 투항했습니다.”

아딘의 말에 아그리파가 미간을 찌푸렸다.

‘혹시 내가 잘못 느낀 건가?’

분명 브라티슬라바 그 노인에 비견될 정도로 강렬한 기운이라고 느꼈는데 아무래도 착각이었던 듯싶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아딘이 지금 이렇게 자신에게 보고하고 있을 리가 없으니 말이다.

“신원은? 확인해 보았나?”

“소지품을 뒤져 보았지만 딱히 신원을 확인할 물건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입고 있던 장교복으로 미루어 볼 때 타 영지의 장교인 것 같았습니다.”

“일단 그 면상부터 한번 봐야겠군. 미안하지만 총관께선 먼저 경매장으로 향하시지요. 남은 난민들은 잡는 대로 경매장으로 보내드리리다.”

아그리파의 말에 옆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던 밀레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하면 먼저 가 보겠습니다.”

그러곤 뭐가 그리도 급한지 헐레벌떡 경매장을 향해 달려갔다.

“우리도 이만 가지.”

“예.”

아그리파의 말에 아딘이 앞장서 걸어가며 길을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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