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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12화 (12/183)

공작이 회귀함 12화

날랜 움직임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신시아가 옷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말했다.

“장난 그만 치고. 진짜 목적이 뭐야? 까놓고 말해서 방금 움직임을 보니까 용병은 아니고. 귀족 가문의 자제분, 아니, 기사나 장교 같은데. 그런 분이 왜 우리에게 접근하는 거야?”

“방금 전 움직임만으로 그게 보이던가?”

내 물음에 신시아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헹. 내가 애들 데리고 다니면서 용병이나 기사들을 한두 번 본 줄 알아? 단순한 움직임에도 살기가 철철 넘치는 것만 보면 실전에서 제법 구른 용병 같은데 또 체계적인 움직임을 보면 용병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고, 그렇다고 고귀하신 귀족 나으리라고 보기엔 실전 경험에 비해 젊어 보이니 당연히 기사 아니면 장교 아니겠어?”

제법 날카로운 추리력이었다.

그녀가 어디까지 추리할 수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묻자 신시아는 팔짱을 끼고선 한동안 날 응시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곳 온두라스의 기사라면 이런 더러운 곳에 발도 들이지 않을 테니 주인 없는 자유 기사인 것 같고. 우리 애들을 전부 책임질 수 있을 정도로 재력가로는 보이지 않는데 어제같이 따라가겠냐고 물었던 거나 최전방 요새로 가자는 말을 보면 기사가 아니라 장교. 그것도 최소한 고위급 장교 같단 말이지.”

‘끄응’ 하고 신음성을 토해내었다.

머릿속으로 지금껏 얻은 한정된 정보로 추리를 하려니 제법 골머리를 썩는 듯했다.

“아저씨 말대로 우리에게 하는 행동을 보면 노예로 잡아가려고 접근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정말로 선행을 베풀려고 한다기에는 너무 수상쩍단 말이야.”

“수상쩍다니?”

“애들 숫자가 적다면야 이해가 되는 행동인데. 한두 명 데려가겠다는 것도 아니고. 전부 데려가겠다고 했으니까. 내 추론이 맞다면 우리 애들을 데려가서…….”

신시아가 말끝을 흐렸다.

그녀의 추리력에 속으로 감탄하고 있던 나는 그녀의 대답을 재촉했다.

“데려가서?”

“군부의 비밀병기 뭐 그런 걸로 기르려는 수작 아니야?”

신시아의 말에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크게 웃었다. 아직 전성기 시절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이 정도 수준이면 당장 정보부에 넣어놔도 충분히 제 몫을 할 수 있을 수준이었다.

“왜 웃는 거야?”

신시아가 뚱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기특해서.”

“뭐?”

“자네 말이 맞네. 정확한 추론이야.”

내 말에 신시아가 말했다.

“그런 거라면 아저씨 제안은 거절이야.”

신시아의 단호한 거절에 나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자네 추론은 정확했지만 조금 틀린 점을 지적하자면. 첫째. 비밀병기가 아니라 행정요원으로 고용할 생각이라네. 둘째. 정확히 말하면 내가 원하는 것은 자네와 로젠일세. 마지막으로 셋째. 고위 장교가 아니라 난…….”

[꺄아아악-!]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한두명이 지르는 비명이 아니었다. 판자촌 곳곳에서 사람들의 비명과 고함이 뒤섞여 들려왔다.

[잡아라! 한 놈도 놓쳐선 안 된다!]

[도망쳐!]

[이 새끼들! 날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야!]

[반항하는 자는 사지 한두 곳 정도는 부러뜨려도 상관없다!]

비명은 빠른 속도로 확산되며 점점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뭐야?”

신시아가 재빠르게 건물 안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지붕 위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한동안 어딘가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신시아가 작게 욕설을 내뱉으며 지붕의 구멍을 향해 소리쳤다.

“빌어먹을. 너희들 빨리 비밀 통로로 도망쳐!”

무슨 일인가 싶어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이런 상황에 대비하여 만들어 놓은 듯 신시아가 바닥에 난 구멍 안으로 아이들을 밀어 넣고 있었다.

표정을 보니 무척 다급해 보이는 것이 무언가 일이 터진 것을 직감한 나는 신시아가 그랬던 것처럼 지붕 위로 올라가 보았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판자촌을 중심으로 수백에 달하는 병사들이 포위망을 형성하고는 사람들을 납치하고 있는 광경이 두 눈 가득 들어왔다. 개중에는 기사들도 여럿 보이는 것이 아주 작정하고 일을 벌이는 듯했다.

힐끗- 지붕에 난 구멍 아래를 바라보자 아이들이 줄지어 작은 구멍 안으로 한 명씩 차례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아이들의 수에 비해서 입구는 좁다 보니 아이들이 도망치는 속도가 무척이나 더뎠다. 이대로라면 아이들이 다 도망치기도 전에 병사들에게 붙잡힐 것 같았다.

“신시아.”

조급한 표정으로 아이들이 비밀 통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던 신시아의 어깨를 두드리며 부르자 그녀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뭐야?”

“시간이 촉박하지?”

“그걸 말이라고 해!”

버럭 소리를 지르는 그녀에게 웃으며 말했다.

“시간을 끌어주지.”

“……뭐?”

내 말에 신시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바라보았다. 자기가 방금 들은 것이 맞냐는 듯 멀뚱멀뚱 바라보는 모습이 우스워 그녀의 이마에 딱밤을 먹여주었다.

따악-

신시아가 이마를 양손으로 감싸며 소리쳤다.

“악! 이 상황에서 그렇게 장난을 치고 싶어!”

제법 아팠는지 눈망울에 눈물까지 그렁그렁 맺힌 그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며 말했다.

“저 비밀 통로. 아마 근처로 이어져 있겠지?”

하고 묻자 신시아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꾹 다물었다.

“단순히 내 짐작이지만 성문의 경비는 평소와 같이 느슨할 걸세. 그렇지만 이 많은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친다면 당연히 눈에 띌 테고 추적자들이 따라붙는 것은 순식간일 테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내가 최대한 시간을 벌어 줄 테니 이 길로 곧장 북부로 달려가게. 지금쯤이면 베르덴 인근을 지나치고 있을 걸세.”

베르덴은 온두라스에서 반나절 거리에 있는 제법 큰 규모의 마을이었다. 지금부터 죽어라 달려간다면 늦어도 3시간이면 도착할 거리였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인지 당최 이해가 안 되는데 무슨 말이야? 시간을 벌어줘? 지나가다니?”

혼란스러워하는 신시아의 머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또 딱밤을 먹이려는 줄 알고 그녀가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런 그녀에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베르덴을 지나고 있을 3군단에 가서 가웨인이라는 기사를 찾게나. 가서 전하게. 늦으면 조만간 자유 기사가 될지도 모른다고.”

그제야 신시아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차리곤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저씨. 너 대체 누구, 아니, 그것보다 왜 우릴 도와주려는 거야?”

그녀의 물음에 나는 뻗었던 손으로 그녀의 머리칼을 헝클어뜨리며 대답했다.

“말했잖나. 자넬 원한다고.”

물론 로젠다르크도.

이렇게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며 난리를 치게 된다면 원래 계획에 조금 차질이 생기겠지만, 그것을 감수하더라도 신시아와 로젠다르크는 얻을 가치가 있는 이들이었다.

이 정도까지 해주는데 설마 나중에 가서 내 제안을 거절한다거나 하지는 않겠지. 아마도…….

“아니, 그…….”

순간 말문이 막힌 듯 신시아가 입을 뻐끔거리며 얼빠진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런 그녀의 등을 떠밀며 말했다.

“아이들이 도망칠 시간은 충분히 벌어줄 테니까 먼저 가게. 그리고 서두르게. 자네가 늦을수록 조금 곤란해질 것 같으니까.”

그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건물을 나가 문을 닫고는 문에 등을 기대고서 다가오는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많기도 하네.”

그렇다고 해도 내 몸에 생채기 하나 낼 수 없겠지만 말이다.

* * *

온두라스의 총관 밀레오는 초조한 듯 연신 주위를 서성거리며 병사들이 투입된 판자촌을 바라보았다.

지금도 계속해서 판자촌에 거주하던 난민들이 병사들에게 포박되어 줄줄이 끌려 나오고 있었지만, 밀레오는 조급해하는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단순히 잡아들이는 것만이 아닌 노예 경매가 시작되기 전에 이들을 야만족으로 분장시키고 경매장까지 끌고 가야 하니 시간이 너무 빠듯했다.

“뭘 그리 안절부절인가.”

수염이 덥수룩한 장대한 체구의 사내가 초조해하는 밀레오의 어깨를 두드리며 그를 진정시켰다.

“아그리파 경.”

“순조롭게 일이 풀리는 중이니 너무 조급해 말게.”

“하지만 이대로라면 시간에 늦을지도 모를 일 아닙니까. 만약 시간에 맞추지 못하는 날에는 영주님께서 절 가만히 두지 않으실 겁니다.”

“무얼. 이리 열심히 일하는 가신을 영주님께서 정말 어떻게 하시겠는가? 그냥 열심히 하라는 뜻에서 그리 말씀하신 거겠지.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내가 막아주겠네. 그러니 너무 걱정 말게나.”

말은 그렇게 하지만 정작 일이 벌어진다면 아그리파가 나서지 않을 것이란 것은 밀레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말만이라도 이렇게 해주니 한결 마음이 놓였다.

“아그리파 경. 고맙습니…… 다?”

밀레오가 아그리파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려던 순간.

판자촌 중심부에서 소란이 일었다.

[으아아악-!!]

단말마의 비명성과 함께 병사 하나가 허공 위로 떠오르는 것이 밀레오의 망막에 맺혔다.

“저게 무슨…….”

밀레오가 한마디를 내뱉는 순간 바로 옆에서 강렬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실력자가 숨어 있었나 보군.”

숨이 턱 하고 막혀올 정도로 농도 짙은 기운에 밀레오가 숨을 힘겹게 몰아쉬며 다급히 아그리파를 불렀다.

“아, 아그리파…… 경…… 컥-”

“이런. 미안하네. 나도 모르게 호승심이 들끓어서 말이야.”

아그리파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방금 전까지 주변을 짓누르던 기운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허억…… 허억…….”

그제야 숨을 제대로 쉴 수 있게 된 밀레오가 다급히 숨을 몰아쉬더니 제 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실력자라니요. 판자촌엔 난민들뿐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런 줄 알았는데…… 아니군.”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아그리파에게 숫제 애원하듯 그의 옷자락을 잡으며 밀레오가 다급히 말했다.

“그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이대로라면 정말 시간에 맞추지 못할 겁니다.”

밀레오의 말에 아그리파가 사나운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걱정 말게. 내가 그렇게 두진 않을 테니.”

아그리파에게 밀레오는 아직 효용 가치가 많이 남아 있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이런 시답잖은 일에 아그리파가 직접 찾아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었다.

온두라스 백작의 최측근인 밀레오로부터 온두라스 백작에 대한 정보를 얻으며 그간 제법 쏠쏠한 이득을 취했던 아그리파였기에 밀레오가 온두라스 백작에게 밉보이는 일은 벌어지지 않게 할 생각이었다.

“아딘.”

“예, 단장.”

아그리파의 부름에 검은 산양 기사단의 부 기사단장 아딘이 한 걸음 앞으로 나오며 대답했다.

“애들 몇 데리고 가보게. 나도 곧 뒤따라가지.”

“알겠습니다.”

아딘이 곧장 검은 산양 기사단의 기사 열을 데리고 소란이 일어난 곳을 향해 달려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그리파가 밀레오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말했다.

“자. 우리도 가 보세나.”

“어, 어딜 말입니까?”

불안한 눈동자로 아그리파를 바라보는 밀레오에게 아그리파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어디긴. 당연히 소란의 주인공을 구경하러 가야지.”

밀레오가 ‘끄응-’ 하고 앓는 소리를 내었지만 가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에게 지시하여 그들을 호위하도록 명했다.

상대가 얼마나 강하건 아그리파가 나선다면 다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한 밀레오는 최대한 빠르게 일을 해결하여 더 이상 시간이 지체되는 불상사를 막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 가세나.”

아그리파가 이끄는 대로 밀레오는 소란이 난 곳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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