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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10화 (10/183)

공작이 회귀함 10화

쿵쾅- 쿵쾅-

이른 아침부터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펴졌다.

무슨 일인가 싶어 창가로 가 보니 광장에 단상 같은 것을 설치하는 인부들이 보였다.

축제라도 벌이는 것인지 뚝딱뚝딱 망치질하는 소리와 함께 일을 하고 있는 인부들의 밝은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다 이내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서 1층 식당으로 내려갔다.

“일어나셨어요?”

부지런하게 식당을 청소하고 있던 아이가 쪼르르 다가와 인사했다.

“지금 식사 가능하니?”

하고 묻자 아이가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숙박하시는 분들께는 아침은 서비스로 제공돼요. 뭐로 드시겠어요?”

“간단하게 스프와 빵으로 하마.”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이가 쪼르르 주방으로 가는데 문득 어제 방랑자들의 집에서 보았던 광경이 떠올랐다.

내가 준 돈으로 곰팡이 핀 바게트 빵이 한가득 쌓여 있던 식탁. 내게는 배불리 먹었다고 했지만 아껴먹기 위해 남겨둔 것이 분명해 보였었다.

“얘야. 잠시만.”

아이를 불러 세웠다.

“더 필요한 것이라도 있으세요?”

“혹시 포장 가능하니?”

“포장이요? 혹시 요 앞에서 하는 노예 경매 구경 가시려고 그러세요?”

“노예 경매?”

축제가 아니었던가?

내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자 아이가 말했다.

“네. 오늘 노예 경매를 하는 날이거든요. 이따 정오에 시작할 거예요. 온두라스 백작님께서 주최하시는 건데 매주 야만족 노예를 구매하려고 이곳저곳에서 상인들도 많이 찾아와서 축제나 다름없어요.”

노예 경매는 제국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정확히는 제국민을 상대로 하는 노예 경매라는 전제가 붙어 있기에 야만족 노예를 거래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의 말을 들어보니 노예경매가 매주 벌어지는 것 같은데 온두라스가 그 정도의 야만족 포로를 보유하고 있을 리는 없었다. 그들이 판매하려고 내놓는 노예들은 제국민일 것이 분명했다.

어디선가 잡아 온 제국민을 대충 야만족으로 치장시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노예 경매를 진행할 것이 뻔했다.

“그리고 이건 비밀인데요.”

아이가 무척이나 중요한 것을 말해주겠다는 듯 결연한 얼굴로 ‘잠시만 귀 좀…….’ 하며 내게 손짓했다. 슬쩍 허리를 숙여 주자 아이가 내 귓가에 자그맣게 속삭였다.

“노예 경매에 판매되는 노예들이 대부분 난민이거나 납세를 거부한 영지민이라는 소문이 있어요.”

역시나. 내 짐작대로였다.

트집 잡아 3군단을 온두라스에 주둔시킬 명분이 또 하나 늘어났다. 물론 명분은 어제 있었던 일로도 충분하고 부족하다면 일단 영지를 점령하고 나서 찾아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명분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않겠는가? 그만큼 손에 쥘 수 있는 패가 늘어나는 것이니 말이다.

“아 참. 포장되냐고 물으셨었죠? 몇 인분이나 필요하세요?”

아이의 물음에 기억을 더듬어 방랑자의 집에 있던 아이들의 숫자를 세어보았다. 한 30명쯤 되어 보였었지?

“50인분.”

스프와 빵 같은 음식은 남으면 두었다가 나중에 먹어도 되니 넉넉하게 주문했다.

“잠시만요. 주방장님께 물어볼게요.”

아이가 주방으로 사라지더니 금방 나왔다.

“된다고 하세요. 다시 한번 확인할게요. 빵과 스프. 50인분 포장 맞으시죠?”

“그래.”

“다 해서 25실버예요.”

아이에게 돈을 건네주곤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방랑자들의 집에 다시 방문하려니 어제 헤어지기 전에 보였던 신시아의 태도가 걸리기는 하지만 썩 부정적인 것 같지도 않았고 선물을 한 아름 사간다면 매몰차게 대하기도 힘들겠지.

신시아 베아트리체와 로젠다르크.

이 둘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손에 넣어야 할 인재였다. 특히 신시아는 무조건. 꼭.

내 밑으로 가신들이 제법 되기는 하지만 어떻게 된 것이 가웨인을 제외하면 죄다 머리를 쓰는 일에는 경기를 일으키는 놈들만 득실거리니 행정과 관련된 인재가 절실하던 참이었다.

해서 어디 데려올 만한 인재가 없나 고민하던 차에 만난 것이 신시아였다.

후에 뒤 세계를 장악할 정도의 수완과 능력을 갖춘 신시아를 영입할 수만 있다면 행정 쪽으로는 크게 숨통이 트일 수 있을 것이었다.

물론 아직은 냉혹한 어둠의 여제라 불리며 이름을 날리던 전성기 시절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태이지만 그 비상한 머리가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가르친다면 금세 1인분은 족히 해낼 것이 분명했다.

“읏차, 음식 나왔습니다.”

아이가 자그마한 손수레를 끌고 나타났다.

스프와 빵이 50인분이나 되다 보니 저렇게 손수레를 이용하지 않고서는 들고 다니기가 힘들어 보였다.

다 들기에는 손이 모자라는 데다 가는 길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선물들을 사갈 생각이라 아이에게 손수레를 빌릴 수 있는지 물었다.

“필요하시면 사용하셔도 되는데 다 사용하시고 나서는 꼭 반납해 주셔야 해요. 안 그럼 변상해 주셔야 해요.”

흔쾌히 알겠노라 대답하고선 수레를 끌고 여관을 나섰다.

* * *

거리로 나오자 마치 유령도시 같던 어제와는 달리 오늘은 거리에 생기가 흘러넘쳤다.

광장을 중심으로 거리 곳곳에 노점상들이 들어서고 있었으며, 분명 어제는 대부분 문을 닫았던 상점들도 가게 문을 열고 장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노예 경매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거리 전체에 활기가 넘치는 모습은 제법 보기 좋았다.

어느 가게에 들러 선물을 살까 고민하다가 마침 가게 앞에 장난감들을 전시해 놓은 잡화점이 눈에 들어왔다.

자고로 ‘장수를 노리려면 말을 쏘라’고 하였다. 신시아를 공략하려면 우선 방랑자의 집 아이들의 환심을 살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은 대게 장난감 선물을 좋아한다고 들었다. 해서, 장난감 선물을 사기 위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후덕한 인상의 가게 주인이 반겨주었다. 가게 안에는 장난감을 비롯해서 잡다한 물건들이 어지럽게 진열되어 있었다.

“따로 찾으시는 거라도 있으세요?”

가게주인이 다가와 친절하게 물어보았다.

회귀 전에는 자식은커녕 혼인조차 못 해보았기에 솔직히 아이들이 뭘 좋아하는지 잘 몰랐다. 그나마 있는 경험도 여동생인 린에게 어릴 때 인형을 선물했던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이 마음에 들어 할 만한 선물을 살 자신이 없었던 나는 가게 주인의 도움을 받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에게 사 줄 선물을 고르려고 합니다만. 추천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어머. 아이들이 좋아하겠네요. 아버지가 이렇게 선물도 사 주시니.”

하고 너스레를 떨며 가게주인이 ‘자녀분들 나이랑 성별이?’하고 물어왔다. 내 자식들은 아니지만 굳이 정정해 줄 필요는 없어 보였기에 묻는 질문에만 대답했다.

“10대 중반부터 3살배기까지 나이대별로 다양합니다.”

“어머. 어머. 능력도 좋으셔라.”

가게 주인이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툭툭 건드려왔다.

그러면서 힐끔 날 위아래로 훑어보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등골이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이 많으신 것 같아서 선물을 뭐로 해야 할지 고민 많으시겠지만 사실 아이들 선물은 간단해요.”

가게 한구석에 가득 쌓여있던 자그마한 목검을 건네주며 가게주인이 말했다.

“사내애들에게는 요런 장난감 무기 하나만 사주면 아주 좋다고 방방 뛰어다닐 거예요.”

호오? 그렇군.

남자아이들은 이런 걸 좋아한단 말이지?

고개를 끄덕이며 가게 주인이 건네준 목검을 만지작거렸다. 크기도 작고 무게도 가벼운 것이 애들이 가지고 놀기에 적당해 보였다.

“그리고 여자아이들은…….”

휙휙 주위를 둘러보던 가게 주인은 이내 원하는 것을 찾았는지 성큼성큼 어디론가 걸어갔다. 그 뒤를 따라가 보니 선반 밑에서 상자를 하나 꺼내기 시작했다.

펑퍼짐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낑낑거리는 모습이 힘겨워 보여 잠시 양해를 구하고는 상자를 대신 꺼내주었다.

“어머나. 이걸 어째. 여기 먼지가…….”

가게 주인이 손을 뻗어 내 어깨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 주었다. 원래 성격인지는 모르겠으나 가게 주인의 행동 하나하나에 교태가 넘쳤다.

아니, 그보다 왜 자꾸 등골이 오싹한 거지?

누군가 날 노리는 건가 싶어 주변으로 마나를 흩뿌려 보아도 딱히 걸리는 것은 없었다. 이상하네…….

“여자아이들은 인형을 선물해 주면 좋아할 거예요. 동물 인형부터 시작해서 종류별로 많으니까 이건 아버님께서 고르시는 게 더 낫겠네요.”

상자 안에는 인형들이 한가득 담겨 있었는데 가게 주인 말대로 사람부터 시작해서 동물에 이르기까지 여러 종류의 인형이 한가득 있었다.

뭘 고를까 하다가 장난감이 많아서 나쁠 건 없다는 생각에 가게 주인에게 그냥 상자째로 구매하겠다고 말하려는데 가게 주인이 내 옆으로 바짝 다가오며 말했다.

“고르시기 힘드신가 봐요. 제가 좀 더 도와드릴게요.”

그러면서 인형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추천해 주려는 것을 손을 내저으며 말렸다.

“아뇨. 그냥 상자에 있는 것 전부 사겠습니다.”

“어머나. 그쪽 능력만 좋으신 줄 알았더니 이쪽 능력도 좋으시네요.”

가게주인이 손바닥으로 입을 가리며 연신 어머어머 감탄사를 내뱉었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기분이 찜찜했다.

“다 해서 얼마죠?”

선물을 고르느라 제법 시간을 지체한 터라 빨리 물건을 사서 난민촌으로 가야겠다 싶었다.

“저…….”

해달라는 계산은 안 하고 가게주인은 내게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렸다.

“뭔가 하실 말씀이라도?”

“제가 조금 깎아드릴 수도 있는데…….”

뭔가 했더니 가격 흥정을 하려는 듯했다.

얼마나 가격을 후려치려고 저렇게 깎아준다며 밑밥을 까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이 아까운지라 조금 덤터기를 쓰더라도 그냥 구매하기로 했다.

“괜찮습니다.”

“아뇨. 원래 애들 장난감이 비싼 편이거든요. 그걸 이만큼이나 사시면 당연히 부담되실 거예요.”

말하면서 은근슬쩍 내 손등을 쓰다듬는데 순간 소름이 돋았다. 아까 전부터 찜찜하던 느낌의 정체를 이제야 깨달았다.

‘아니, 뭐 이런…….’

황당하기가 그지없었다.

묘하게 가게주인이 친절하다 싶었는데 그게 다…….

‘하아…….’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웨인이 이 일을 알게 될 가능성은 전무하지만 만약에라도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두고두고 놀려댈 만한 일이었다.

“얼마입니까?”

“네? 아이…… 그러지 말고…….”

가게 주인이 교태를 부리며 아양을 떨었지만 눈썹 하나 꿈쩍하지 않고 재차 물었다.

“얼마입니까?”

그러자 내가 그쪽으론 전혀 생각이 없는 것을 깨달았는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해서 3골드예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둘러 돈을 건네주고는 수레에 구매한 물건들을 담은 후 도망치듯 가게를 나섰다.

“또 오세요!”

등 뒤로 가게 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오히려 발걸음을 재촉해서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가게로부터 멀어졌다.

앞으로 갈 일은 없겠지만 속으로 다시는 저 가게 근처에도 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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