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이 회귀함 8화
별의 구도자.
이름만 듣는다면 무슨 학자들의 집단이나 모임의 이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암살자와 정보상이 주축이 된 청부업체 집단이었다.
이 집단은 온갖 불법적인 일들을 마다하지 않고 처리하며 제국 제일의 암살단과 정보단체 ‘검은 사월’과 ‘망자의 요람’을 흡수하며 후에 칼 프란츠의 블랙마켓과 함께 제국 뒤 세계를 양분하는 대륙 최고의 청부업체 집단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러한 별의 구도자의 전신은 방금 이 소녀가 말한 ‘방랑자들의 집’이었다.
본래는 전쟁고아들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모인 일종의 고아원으로 정보단체라고는 하지만, 사실 고아들이 모여봐야 그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라고는 길거리에 떠도는 소문이 전부였다.
당연히 그런 정보를 살 얼치기는 없었고 방랑자들의 집 소속의 고아들은 정보를 사고파는 것보다는 도시 내의 온갖 잡일을 도맡아 하며 생계를 꾸려 나갔다.
그러던 중에 특출난 이야기꾼 하나가 방랑자들의 집을 크게 일으켜 세우니 그가 바로 ‘별의 구도자’라는 거대 청부업체 집단을 탄생시킨 그들의 수장, ‘신시아 베아트리체’였다.
그녀는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소문들을 종합하여, 이어붙이고, 살을 더하여 새로운 정보로 탈바꿈시키며 ‘방랑자들의 집’을 성장시켜 ‘별의 구도자’라는 거대 집단으로 탈바꿈시킨다.
당연히 그 능력이나 수완은 제국 유수의 인재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
워낙 유명한 집단이고, 그들의 수장인 신시아에 대한 이야기도 저잣거리에서 만담꾼들이 종종 영웅담처럼 떠들고 다니곤 했으니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신시아가 이 소녀라고?
나는 한동안 말없이 소녀, 신시아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방랑자들의 집이 본격적으로 유명해지는 것은 오슬로에서였다.
그 이전에는 어느 도시에서 시작되었는지 이야기가 분분하여 이곳 온두라스에서 신시아를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뭘 그렇게 보는 거야? 아하! 이제야 이 몸의 매력에 흠뻑 빠진 거구나?”
내가 그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신시아는 콧대가 높아져서는 히죽거리며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툭툭 건드렸다.
“이 꼬맹이가?”
신시아 베아트리체?
냉혹한 어둠의 여제?
조상 중에 서큐버스의 피가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요염함의 극치를 달리던 신시아의 모습과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뭐야! 꼬맹이? 아저씨 지금 말 다 했어?”
빠악-
정강이에서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신시아가 내 정강이를 발로 찬 것이다.
그러나 통증은커녕 그저 간지럽기만 했는데 신시아는 그렇지 않은 듯 제 발을 양손으로 쥐고선 한발로 콩콩 뛰며 난리를 쳤다.
“아파!”
나는 한심하단 표정으로 신시아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신시아는 나를 힐끔 보더니 난리 치는 것을 멈추곤 멋쩍은 듯 헛기침을 했다.
“흠흠. 여튼! 은혜 갚았다?”
신시아의 말에 나는 힐끔힐끔 이쪽의 눈치를 보고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저 아이는……?”
“아! 우리 애야. 아저씨를 찾아다니다가 요 녀석이 어디서 큰돈이 생겼는지 밀을 몇 포대나 가지고 오길래 추궁했더니 말을 훔쳤다고 실토하는 거 있지? 로젠 그 녀석이 말 한 것도 있고 해서 마 시장으로 가서 말을 보니까 로젠이 말한 아저씨 말과 비슷하게 생겨서 혹시나 하고 데려온 거야. 근데 아저씨 말이 맞다니 잘 찾아온 거지.”
장황한 설명을 끝마친 그녀는 ‘이제 됐지?’ 하고 말하며 떠나려 했다. 그러나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인재를 그냥 보낼 생각이 추호도 없었던 나는 그녀를 불러세웠다.
“그 로젠이라는 아이.”
“응?”
“기특해서 그런데 한번 만나볼 수 있겠는가?”
내 말에 신시아는 눈을 샐쭉하게 뜨고는 나를 위아래로 한번 훑어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뭐. 좋아. 로젠 그 녀석이나 아저씨한테 빵 얻어먹은 애들도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으니까. 따라와.”
그녀가 앞장서서 휘적휘적 걸어가자 나 역시 그 뒤를 따라갔다. 아직 통신구 개통이 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다.
* * *
그녀가 향한 곳은 번화가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성벽 근처의 판자촌이었다. 성벽 바로 밑에 위치하다 보니 해가 잘 들지 않고 성벽의 그림자로 인해 대낮인데도 골목길은 밤처럼 어둑어둑했다.
골목길을 지나갈 때마다 골목 어귀에서 얼굴에 땟국물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허름한 차림의 빈민들이 두려움 가득한 눈동자로 날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장교복 때문인 것 같았다.
“여기야. 여기가 바로 방랑자들의 집의 본거지야!”
이윽고 한 건물 앞에 도착한 신시아가 제법 뿌듯하단 표정을 지으며 건물을 소개했다.
나뭇가지로 덧댄 허름한 판잣집들에 비해 제법 건물 같은 외견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 봐야 헛간보다 조금 나은 수준이었다.
“자자. 사양 말고 들어와.”
신시아가 건물을 구경하는 내게 손짓하며 문을 열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 역시 말을 건물 입구에 묶어두고는 건물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
“나 왔어! 빨리들 나와!”
신시아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건물 안 가득 울려 퍼졌다. 그러자 그녀가 소리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족히 수십 명은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쪼르르 달려나왔다.
“언니!”
“누나!”
“얘들아! 대장 왔어!”
“대장이 남편감을 보쌈해 왔다!”
“와아아-!!”
워낙 아이들이 많다 보니 저마다 한마디씩 하는 것만으로도 시장통처럼 시끌벅적했다.
“로젠! 빨리 안 나오고 뭐 하는 거야!”
신시아의 재촉에 안쪽 방에서 낮에 내게 길을 알려주었던 아이가 쪼르르 달려나왔다.
“나가요!”
방에서 나온 아이는 신시아에게 다가오다 돌연 걸음을 멈추더니 날 바라보곤 꾸벅 허리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동생들 모두 배부르게 빵을 먹을 수 있었어요.”
인사하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건물 내부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가구는 직접 만든 것 같은 어설픈 외견의 커다란 식탁과 의자를 제외하면 몇 개 보이지도 않고, 지붕에는 구멍이 숭숭 나 있어 비가 오면 건물 안에 있어도 비를 맞을 것만 같았다.
임시방편으로 놔둔 듯 구멍 밑에는 양동이가 하나씩 배치되어 있었다. 심지어 며칠 전에도 비가 왔는지 양동이 안에는 물도 제법 고여 있었다.
천장 곳곳에는 새하얀 거미줄이 저들 세상인 것처럼 집을 짓고 있었으며 아이들의 행색은 초라했다.
볼이 홀쭉하고, 몸에 살점 하나 없어서 살가죽이 뼈에 붙은 듯 비쩍 마른 외견에 기이하리만치 배만 불룩 튀어나와 있는 것이 전형적인 고아들의 모습이었다.
다만. 눈동자 하나만큼은 생기를 머금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뭣들 해!? 너희들도 얼른 인사하지 않고!”
신시아의 호통에 아이들이 배꼽 인사를 하며 한목소리로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감사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닌데도, 이렇게 감사의 인사를 받으니 나답지 않게 가슴 한편이 간질거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괜히 낯이 뜨거워졌다.
“아! 부끄러워한다!”
그걸 용케도 눈치챘는지 유독 왜소한 체격의 아이가 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덕분에 시선이 몽땅 내게로 집중되었다.
“뭐야. 아저씨 보기보다 부끄럼을 많이 타는가 보네?”
씨익- 능글맞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신시아가 날 올려다보았다. 난 괜히 헛기침을 하며 분위기 전환을 시도했다.
“흠흠. 그보다, 저기 먹다 남긴 것 같은 빵들은 뭔가?”
식탁 위에는 푸른빛의 곰팡이가 핀 바게트 빵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보아하니 내가 준 돈으로 산 것 같았는데 이 많은 아이들이 한 번 먹으면 사라질 양이었다.
분명 배불리 먹었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껴먹으려고 놔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아…… 저거?”
내 물음에 신시아가 멋쩍어하며 말했다.
“애들 먹는 양이 적어서 두고두고 먹으려고 놔둔 거야.”
그럴 리가.
이 나이 때의 아이들이 아무리 먹는 양이 적다고 해도 저 정도면 거의 먹지 않은 수준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그리고 애들 몸 상태를 보면 먹는 양이 적어도 억지로라도 배불리 먹여야 할 것 같은데 저렇게 빵을 둔 것으로 보아 이곳 ‘방랑자들의 집’의 재정 상태가 그다지 좋은 것 같지 않은 것 같았다.
하긴. 이런 판자촌에 있는 것만 봐도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건 그만 얘기하고. 로젠이랑 만나고 싶다고 했으니까 쟤랑 가서 이야기라도 나눠. 나는 할 일이 있어서 이만 가 봐야 하니까.”
그리 말하곤 신시아는 방안으로 사라졌다.
그런 신시아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이내 날 둘러싸고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올려다보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오빠는 시아 언니 남편이에요?”
방금 전에 내게 부끄러워한다며 소리쳤던 아이가 내게 다가와 올려다보며 물었다. 나도 모르게 아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마치 종잇장처럼 가벼운 몸무게에 절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니?”
“음…… 언니가 남자를 데려온 건 처음이거든요.”
배시시 웃으며 말하는데 그 웃는 모습이 무척 사랑스러웠다.
“언니는 매번 어른 남자들이랑 싸우는데 싸우지 않고 장난치는 것도 처음 봤어요.”
“그러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내게 길 안내를 해주었던 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름이 뭐니?”
내 물음에 아이는 쑥스러워 하며 대답했다.
“로젠. 로젠다르크예요.”
아이의 소개에 나는 일순간 뒤통수에 망치를 한 대 후려 맞은 것 같이 머리가 멍해졌다.
로젠다르크.
‘소리 없는 사신’이라는 악명으로 더 잘 알려진 제국 제일의 암살자.
냉혹한 어둠의 여제 신시아 베아트리체의 검.
제국 제일의 암살단인 ‘검은 사월’을 단신으로 침묵시킨 도살자.
그게 이 꼬맹이?
“왜 그러세요?”
뜻밖의 수확이었다.
무슨 이런 변두리 촌구석에 제국의 유명인사들이 둘씩이나 있는 거야? 혹시 찾아보면 더 있는 것 아니야?
“오빠?”
“아…… 미안하구나. 잠시 생각할 것이 있어서.”
로젠다르크와 품에 안은 아이가 연이어 날 부르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너무 예상 밖의 인물이 등장해서 넋을 놓아버렸다.
워낙 인재에 굶주려 있다 보니 차후에 제국 뒤 세계를 장악할 거물들이 연달아 등장하자 절로 마음이 조급해졌고 나도 모르게 말을 내뱉어버렸다.
“날 따라가지 않으련?”
“뭐야! 지금 우리 애를 빼돌리려는 거야?”
뜬금없는 내 제안에 로젠다르크의 두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졌고, 동시에 방안에서 업무라도 보는 줄 알았던 신시아가 단번에 방문을 박차고 튀어나와 소리쳤다.
내 품에 안겨있던 아이를 뺏어 들며 날 바라보는 신시아의 눈동자에는 적의가 가득했다. 순간 너무 성급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좀 더 시간을 들여 이들과 친해진 이후에 제안을 할 생각이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로젠만이 아니라 그대를 포함해서 이곳 방랑자들의 집 아이들 모두에게 하는 말일세.”
내 말에 신시아가 뚱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어디 큰 부잣집 주인님이라도 되는가 보지?”
“뭐…… 비슷하지.”
정확히는 북부 전선 일대를 다스리는 3군 총사령관이지만.
그거나, 이거나. 이들에겐 다를 바가 없을 테지.
“쉰 소리 말고 이제 꺼져. 애들에게 빵 사 준 건 고맙지만 아저씨를 따라갈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가라고.”
이제는 숫제 내 등을 떠밀었다.
힐끗- 아이들을 둘러보니 하나같이 적의가 가득한 것이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결말은 뭐…… 안 좋은 쪽으로 흘렀을 것이 분명해 보이고 말이다.
결국 신시아에게 떠밀리듯 쫓겨난 나는 ‘방랑자들의 집’을 떠나게 되었다.
대지의 마탑 분점으로 돌아가는 길에 뒤를 돌아보자 팔짱을 끼고 있는 신시아가 여전히 심술 난 아이 같은 표정을 지은 채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 적의 가득한 모습에 다시 한번 너무 성급했던 스스로를 책망하며 등을 돌려 걸어갔다.
“그래서.”
“……응?”
등 뒤로 신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며 신시아를 바라보자 그녀가 물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자는 건데?”
그래도 내 제안에 조금은 생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녀의 물음에 나는 씨익 웃으며 답해주었다.
“비프로스트.”
나는 태연히 전방의 요새에 함께 가자는 말을 꺼냈다.
당연히 좋은 말은 나오지 않았다.
신시아의 얼굴이 대번에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꺼져!”
답은 부정적이었지만…….
그래도 마지막 반응을 보니 썩 부정적인 것만은 아닌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