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이 회귀함 6화
세상에서 가장 재밌는 구경은 모름지기 불구경과 싸움 구경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개인적으로 그중에서 특히 재밌는 것은 싸움 구경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정정한다. 세상에서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로. 전장에서는 지겹도록 볼 수 있는 것들이니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다.
여하튼 가게 한구석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며, 싸움 구경을 할 수 있는 이런 기회는 좀처럼 없었다.
“죽여!”
“이 새끼들 연장 들고 왔어! 우리도 연장 들어!”
“여기에 연장이 어디 있어! 이 멍청한 새끼야!”
“없으면 의자라도 들어!”
이리저리 부서진 각목의 파편들이 비산하고, 접시를 비롯한 식기류가 암기처럼 허공을 이리저리 날아다닌다.
식탁은 넘어져 바닥을 나뒹굴고 의자는 휘둘러지는 족족 박살 나 각목과 마찬가지로 그 잔해가 이리저리 목적 없이 날아간다.
개싸움도 이런 개싸움이 없었다.
처음에는 제법 체계적으로 싸우는가 싶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엉겨 붙어서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이빨로 물어뜯으며 동네 꼬맹이들 싸우는 것처럼 싸워 댔다.
보는 재미가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조직 간의 항쟁이라기에 좀 더 멋들어진 싸움을 기대한 나로서는 조금 실망이었다.
파리 쫓듯 손을 휘휘- 휘둘러 날아오는 파편들을 쳐내며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꿀꺽꿀꺽 식도를 타고 맥주가 부드럽게 넘어가며, 속을 따끈하게 데워 주었다.
“이 새끼는 뭔데 한가하게 밥을 처먹고 있어!”
싸움의 여파로 극도로 흥분했는지, 두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건달 한 녀석이 내게 다가와 밥상 뒤집기를 시도했다.
식탁에 기대어 놓은 검이 보이지도 않는지 녀석은 거침없는 발놀림으로 식탁을 발로 차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퍼억-
검집째로 검을 휘둘러 녀석의 미간을 후려쳤다.
단 일격에 녀석이 실 끊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다시 검을 식탁에 기대어 놓고선 고기를 한 점 입안에 넣고 우물거렸다.
“맛있네.”
마지막 남은 고기를 모두 먹어치운 나는 식사가 끝났기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싸움도 이제 거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것 같고 더 구경할 마음도 들지 않아 가게 한구석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가게 주인에게로 다가갔다.
그 와중에 피아식별이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건달 몇이 달려들었지만 가볍게 제압했다. 그러자 일순간 장내가 조용해졌는데 힐끗 주위를 둘러보자 시선이 온통 내 쪽으로 쏠려 있었다.
“난 신경 쓰지 말고 하던 것마저 하시게들.”
터벅터벅 가게 주인 앞에 선 나는 가게 주인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하루 숙박하고 싶은데.”
“……예?”
쪼그리고 앉아서 점원 아이와 서로 부둥켜안고 있던 가게 주인이 아이와 함께 멍하니 나를 올려다보았다.
“방. 남아 있는가?”
재차 묻자 가게 주인이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예에…….”
“하루 숙박에 5실버예요. 물론 이것도 선불이구요.”
가게 주인의 품에 안겨 있던 아이가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아이를 가만히 내려다보자 아이가 배시시 웃으며 양손을 포개어 수줍게 손을 내밀었다. 무척이나 똘똘한 녀석이었다.
“여기 있다. 1실버는 팁이란다.”
어린 나이에 열심히 일하는 것이나, 싹싹하게 일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어 품에서 6실버를 꺼내어 아이에게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원래 씻을 물은 10쿠퍼가 별도 요금으로 청구되는데 제가 서비스로 가져다 드릴게요!”
아이에게 팁을 주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으로 안내해 주겠니?”
“네! 따라오세요.”
앞장서서 방으로 안내하는 아이의 뒤를 따라가려는데 내 어깨를 붙잡는 손길이 있었다. 반사적으로 어깨를 잡은 이의 손목을 쥐고선 그대로 바닥에 매쳐 버렸다.
쿵-
등부터 바닥에 내리꽂힌 사내가 억- 하고 단말마의 비명성과 함께 기절했다.
바지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처음 가게 안으로 난입하며 소리쳤던 벨락스라는 건달패의 대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내게 각목을 겨누며 말했다.
아무래도 승리한 쪽은 벨락스인 듯 레펜서의 건달들은 중상을 입은 제 동료들을 부축하며 가게를 벗어나고 있었다.
“네놈. 보아하니 온두라스의 장교 같은데 영주께서 우리 벨락스와 마찰을 빚지 말라는 전언을 듣지 못했느냐!”
고작 건달패 주제에 장교에게 윽박지르는 그 행태에 절로 실소가 새어 나왔다. 재밌네. 온두라스.
“영주님께 문책당하기 전에 얼른 용서를 구하고 썩 꺼져라!”
“그런가? 용서를 구해야 한다면 응당 그래야겠지.”
놈들에게 허리 숙여 사과하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다가 뚝- 움직임을 멈추고선 벨락스 무리의 대장에게 말을 걸었다.
“자네가 이들의 대장인가?”
“그렇다만.”
“실례지만 이름이……?”
내 물음에 사내는 뚱한 표정으로 답했다.
얼른 날 보내고 일을 마무리 짓고 싶어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오닐. 오닐이다.”
“그렇군. 오닐, 미안한데 내가 기억력이 나빠서 그러니 한 가지만 묻겠네. 자네들은 지금 이 온두라스 영지의 영주. 온두라스 백작의 이름 아래 움직이고 있는 것. 맞는가?”
“멍청한 놈. 내가 이미 말하지 않았더냐! 영주께서 우리 벨락스와 마찰을 빚지 말라고! 그게 무슨 뜻이겠느냐!”
오닐은 주섬주섬 품에서 양피지 한 장을 꺼내 들어 펼쳐 보였다.
“자! 보아라! 여기 이 영주인이 보이느냐!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영주께서 승인하신 일이라는 뜻이다! 즉! 합법이라는 뜻이지!”
오닐이 기세등등해져서는 소리쳤다.
그의 말에 나는 씨익 웃어 보였다.
“그렇군. 그렇군. 말인즉슨, 자네들은 온두라스 백작의 사병이나 마찬가지라는 소리렷다?”
“그렇다니까! 궁금증이 풀렸으면 얼른 용서를 구하고 꺼져라!”
오닐의 말에 나는 숙였던 허리를 세우며 바짝 굳어 있는 아이에게 10실버를 추가로 건네주었다.
“……?”
아이가 얼떨결에 돈을 받으며 멍하니 날 올려다보았다.
“이틀 더 묵으마. 이 영지에 며칠 더 머물러야 하는 일이 방금 생겼거든.”
씨익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오닐이 그새를 참지 못하고 각목을 휘둘러왔다.
온두라스 백작의 비호를 받으며 천방지축으로 날뛰고는 있지만, 군의 장교를 다치게 할 생각은 없었는지 내 등을 노리고 각목을 휘둘렀다.
빠각-
단번에 각목이 내 등을 후려치며 부서져 그 파편을 흩날렸다. 등으로 미약한 충격이 밀려오기는 했지만 그래 봐야 어린아이가 등을 떠미는 수준이었다.
일반인이었다면 단박에 앞으로 고꾸라져 충격에 몸부림쳤겠지만, 인간의 한계치까지 단련된 신체는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오닐은 내가 각목으로 등을 후려 맞아도 미동조차 하지 않자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는지 황급히 소리쳤다.
“기, 기사! 네 녀석 기사구나!”
오닐의 외침에 대답하지 않고 부러진 각목을 쥐고 있는 손을 잡아채며 가볍게 비틀었다.
“크악-!”
오닐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며 비명성을 토해내었다.
“틀렸네.”
검을 들고 있는 기사 한 명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잘 무장한 병사 10명이 달려들어야 한다. 그것도 하급 기사일 경우에 말이다.
그런데 이들은 무장은커녕 어설픈 각목으로 무장하고 있으니 그 수가 많다고 해도 하급 기사 한 명을 제압하기는커녕 목이 달아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오닐도 그런 생각을 했는지 달려들려는 부하들을 제지하며 어설픈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날 달래려 했다.
“죄, 죄송합니다. 제가 기사 나리인 줄 모르고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팔목이 꺾인 채로 오닐이 무릎을 굽히며 용서를 구했다.
“이번에도 틀렸네.”
이대로 팔목을 분질러 버릴까도 싶었지만 생각지도 않은 큰 선물을 내게 안겨주었으니 잡고 있던 오닐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하던 것들마저 하게나.”
“예……?”
오닐이 얼빠진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되물었다.
그 표정이 제법 우스웠다.
오닐에게 가볍게 웃어주고선 여전히 굳어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잠시 볼 일이 있어 다녀올 테니 방 정리 좀 해주련?”
“네, 네! 이미 청소되어 있기는 한데 제가 한 번 더 청소할게요!”
“고맙구나.”
아이의 등을 가볍게 토닥여 주며 얼이 빠져 있는 사람들을 내버려 두고선 가게를 나섰다.
* * *
“방금 뭐였던 거야?”
벨락스의 조직원 중 한 명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것은 가게 안의 사람들 모두가 같았다.
온두라스 영지의 뒷골목을 장악하고 있던 레펜서를 몰아낼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벨락스의 두목 오닐이 가지고 있는 온두라스 영주의 인장이 찍힌 공문 덕분이었다.
두 조직이 싸웠다 하면 승패에 상관없이 영지의 병사들이 레펜서의 조직원들만 잡아들이니, 벨락스는 하루가 다르게 급성장을 해가며 레펜서를 몰아내었다.
그렇게 영지 대부분의 상권을 장악한 벨락스는 레펜서의 간부들이 ‘풍요로운 암말’ 여관에 숨어들어 있다는 첩보를 받고 여관으로 쳐들어갔다.
입구에 가드로 위장한 레펜서의 조직원들을 단숨에 제압할 때만 하더라도 별다른 문제 없이 무난하게 이 싸움이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우연히 여관에 영지의 하급 장교로 보이는 사내가 식사를 하고 있었고, 멋모르고 조직원이 그에게 손을 대었다가 단박에 제압당했다.
하지만 드물게나마 몇 번 있었던 일이기에 오닐은 온두라스 백작의 이름을 거론하며 장교를 압박했다.
처음에는 온두라스 백작의 위세를 등에 업은 오닐에게 고개를 숙이는 듯하더니 갑자기 이런저런 쓸데없는 질문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해서, 참다못한 오닐이 그의 등을 각목으로 후려치는 순간 깨달았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순식간에 사내에게 제압당한 오닐은 그가 하급 장교가 아닌 기사라는 것을 깨닫고는 황급히 태도를 바꾸어 용서를 구했다.
기사는 영지의 핵심 전력이었다. 그런 기사를 건드린다는 것은 군비 확충을 위해 벨락스의 지원을 결심했던 온두라스 백작의 얼굴에 먹칠하는 것과 진배없었다.
자칫 온두라스 백작의 심기를 거슬러 그의 눈 밖에 난다면 벨락스 역시 레펜서의 꼴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었다.
해서 황급히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연거푸 오닐이 용서를 구함에도 기사는 연신 ‘틀렸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X됐다.’
오닐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이대로라면 그가 이룩해 놓은 모든 것들이 한순간의 물거품처럼 허무하게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오닐은 재빠르게 무릎을 꿇고 다시 용서를 구했다. 그가 자리를 잡고 성장하여 온두라스 백작의 수족이 된다면 모를까 지금 당장 그에게 있어서 기사는 감히 손을 댈 수 없는 이들이었다.
땅바닥을 기는 한이 있더라도 그에게 용서를 구하고 이번 일이 온두라스 백작의 귀에 들어가는 것을 막아야만 했다.
오닐의 간절한 마음이 통했던 것일까? 사내는 오닐에게 한번 웃어 보이고는 말없이 여관을 떠나갔다.
“사, 살았다…….”
긴장이 풀린 오닐이 자리에 주저앉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