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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이 회귀함-1화 (1/183)

공작이 회귀함 1화

흠흠. 목 좀 가다듬고.

아에이오우. 아이아에오.

좋아. 목이 잘 풀렸군.

그럼 시작해 볼까?

“폐에하아아!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땅바닥과 하나가 된 듯 바짝 엎드리고선 황제 폐하를 향해 마치 가래가 끓는 듯한 목소리로 읍을 하자 화려한 예복을 입은 황제 폐하께서 작은 한숨을 내쉰다.

내 이름은 알레한드로 발타자르.

제국의 북쪽 얼어붙은 동토의 야만인들로부터 제국을 지키는 제3군 총사령관이며 동시에 황제파의 수장이다.

“공작. 그만하게.”

머리맡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만 살짝 들고선 폐하를 올려다보았다.

“하면, 제 뜻대로 해주시는 것이옵니까?”

“그럴 수는 없네.”

폐하의 단호한 거절에 나는 다시 땅에 머리를 쿵- 하고 들이박으며 소리쳤다.

“폐에하아아!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만! 그만! 내 이미 결정하였다 말하지 않았소! 짐은 이 제국과 그 끝을 함께할 것이오. 더 이상의 반론은 듣지 않을 터이니 경도 그리 아시오.”

저놈의 똥고집.

한번 정하면 결코 번복하는 법이 없는 저 고집불통 황제 때문에 그동안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던지. 새삼스레 지난날의 고생하던 내가 떠올라 과거의 나에게 작은 위로를 보내주었다.

간신배들의 세 치 혀에 현혹되어 나라를 망치는 줄도 모르고 성군이 된 것처럼 기뻐하며 그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자처하던 멍청하신 우리 폐하.

그래도 미우나 고우나 내가 모시는 주군이고, 황제이니 이곳에서 개죽음을 당하게 할 수는 없었다.

“차라리 신의 목을 베어 주시옵소서!”

“그만! 그만! 어찌하여 경은 단 한 번도 내 말을 따라주는 법이 없는 것인가!”

그거야 폐하 당신이 간신배들의 손에 놀아나니까 그랬던 것이지.

지금 성벽을 넘어오는 반란군의 지휘관들 대다수가 폐하께서 평소 충신이라 칭찬하던 이들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은 아니겠지요?

“드미트리 경. 폐하를 부탁드리겠습니다.”

황실기사단장 드미트리에게 황제를 맡기고선 주먹을 꽉 말아쥐고 황제의 복부에 주먹을 때려박았다.

퍼억- 하고 손끝으로 묵직한 감촉을 만끽하며 씨익 미소 지었다. 한 번쯤은 이 얄미운 황제 폐하를 한 대 때려보고 싶었는데 그 기회가 이렇게 찾아올 줄은 몰랐다.

혼절한 황제 폐하를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드미트리에게 넘겨주고는 황실을 빠져나왔다.

쏴아아-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거 죽기 딱 좋은 날씨구만 그래.“

* * *

제국의 몰락에 하늘도 슬펐던 것인지 장대비가 후드득 쏟아져 내리고 있다. 그럼에도 제국의 몰락은 피할 수 없다는 듯 제도를 집어삼킨 화마는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그 광경을 두 눈에 담으며 두 무릎을 꿇고서 고개를 푹 숙이곤 거친 숨을 몰아쉰다. 격한 전투로 온몸이 경련을 일으키며 비명을 토해낸다.

쏟아지는 빗물이 갑옷 사이로 스며들어 무언가에 의해 짓눌린 듯 몸은 한없이 무겁기만 하다.

주위에는 무수히 많은 시체가 작은 산을 이루어 강물이 흐르듯 주변으로 붉은 피를 쉼 없이 흘려보내고 있다.

“공작.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네. 투항하시게.”

머리맡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예복을 입은 중년의 사내가 날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두 눈 가득 들어왔다.

레온하르트 칼 프란츠.

칼 프란츠 대공.

황제의 숙부.

남부의 늑대.

제국 제일 검.

그를 칭하는 수식어는 무수히 많지만, 현재 가장 잘 알려진 그의 수식어는 단 하나였다.

조카인 현 황제를 폐위시키고 결국 제국의 절대 권좌에 오른 찬탈자.

그의 깃발 아래 하나둘씩 모여드는 군웅들의 기세가 심상찮아 그를 견제하고 멀리 두라고 황제 폐하에게 그토록 간언을 드렸음에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현 황제를 황위에 올린 공신이라는 이유로 그 많은 간언을 무시하고 황제 폐하께선 그를 가까이하고 신임하였으며 중히 썼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제국의 몰락이었다.

서부에선 빌 헬름 공작이, 동부에선 프리드리히 공작이 왕을 참칭하며 군을 일으켰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던 제국은 이제 존재하지 않았다.

드넓은 제국의 영토는 사분오열되었고, 제국의 상징이던 제도는 한 줌의 잿더미로 변해가는 중이었다.

아아. 제국이여.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신화의 상징이여.

불타오르는 제도를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검을 지팡이 삼아 힘겹게 몸을 일으켜 세우고 타오를 듯한 두 눈으로 대공을 응시했다.

“죽이십시오.”

목이 쉬어 가래 끓는 듯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내 대답에 대공은 짙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날 원망하는가?”

“패자무언이라 하였습니다.”

“다가올 환란에 대비하여 제국은 강력한 지도자의 지휘 아래 하나로 단결되어야 한다네. 그런 점에서 현 황제는 적합하지 않았지.”

마치 제국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듯 말하는 그의 모습에 헛웃음만 새어 나왔다.

“당신이 권좌에 올린 제국의 지배자이십니다. 결국 이러실 것이었다면 대체 무엇을 위해 폐하를 황위에 올리셨습니까?”

대공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때는 용사들이 실패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네. 그 누가 알았겠는가. 계약에 묶인 용사 중에서 배신자가 나올 줄.”

‘신과 소통하는 자’라고 불리던 현자 오스왈드 간다르바가 예언을 남겼다. 아니, 그것은 신탁에 가까웠다.

머지않은 미래.

이 땅에 마신이 강림할 것이란 예언이었다.

별 무리와 함께 마신의 강림을 저지하기 위해 ‘지구’라는 이세계에서 ‘계약’에 따라 차원을 넘어온 ‘용사들’이 이 땅을 방문하였다.

용사들이 도래한 지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사흘의 낮을 휘감은 어둠과 함께 ‘마왕들’이 심연의 나락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대륙 곳곳에서 마족들이 날뛰기 시작하고, 남쪽 대수림에서 그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는 마물들이 숲을 뛰쳐나와 북상하기 시작했다.

용사들은 ‘시스템’이라는 신의 가호 아래 급격한 성장을 거듭하며 마족과 마물들을 물리치고 마왕들을 무찔렀다.

그리하여 대수림의 심처 깊숙한 곳에서 진행되고 있던 마신의 강림의식을 저지하기 위해 서대륙 모든 국가가 힘을 합쳐 대수림으로 향하였다.

무수한 희생을 발판삼아 결국 그들은 마신의 제단까지 당도할 수 있었다. 만약 배신자만 없었다면 마신의 강림을 저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누가 알았겠는가.

계약에 묶여 있던 용사 중에서 배신자가 나올 줄.

결국 강림 의식은 성공하였고 마신의 강림이 확정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워낙 강대한 힘을 지니고 있기에 의식이 성공한다고 해서 바로 강림하는 것이 아닌 3년이라는 유예 기간을 가진다는 점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 동안 대륙은 다가올 마신에 대비하여야만 했다.

그러던 중에 의견이 갈렸다. 더 이상 용사들을 믿을 수 없다는 불신파와 배신한 이들은 극소수이며, 그동안 용사들이 대륙을 위해 행한 헌신들을 상기하며 그들을 믿자는 신뢰파로 말이다.

칼 프란츠 대공은 불신파의 대표자였고, 황제 폐하께선 신뢰파의 대표자였다.

“황제는 정이 많아 인덕은 있었으나, 너무 고집불통이었네. 대륙이 평화로운 시기였다면 그의 치세 아래 무난한 통치가 이어질 수 있었겠지.”

대공의 말대로였다.

폐하께선 고집불통이었고, 한번 정한 것을 돌이키는 법이 없었다.

“하나, 작금의 시기엔 적합하지 않다네. 특히나 용사들의 처우를 보게나. 그들에게 뒤통수를 맞아놓고선 여전히 그들을 신임하다니. 애초부터 타인들에게 이 땅을 지켜주길 바라는 것 자체가 잘못이었네.”

대공이 두 팔을 펼쳐 보였다.

그의 등 뒤로 타오르는 제도가 보였다.

“이 땅은.”

제아무리 대륙을 위한다고 하지만 저 모습을 보라.

“이 땅의 주민들이 지켜야 하네.”

대체 무엇을 위한 희생인가.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베십시오.”

단호한 거절에 대공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나만 물어보세. 어찌 그리 황제에게 충성하는 것인가.”

충성? 충성이라…….

글쎄. 내가 끝까지 황제 폐하의 곁을 지켰던 것은 충성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그저 폐하에게 큰 은혜를 입었고 나는 내 남은 생을 걸고 그 은혜를 갚아 나간 것뿐이었다.

나는 말없이 대공을 바라보았다.

대공은 한동안 내 눈동자를 응시하더니 이내 짙은 한숨과 함께 검을 들어 올렸다.

“자네라면 제국을 재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건만.”

안타깝다는 듯이 말하는 대공을 바라보며 그저 웃음만 지어 보였다.

“발타자르. 제국의 용이여.”

제국의 용이라.

한때는 그리 불리기도 했었지.

제국 북부를 수호하는 용의 가문 발타자르 공작가.

이제는 전란에 휩싸여 그 터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버린 가문.

“잘 가시게.”

대공의 검이 순식간에 강철의 갑옷을 꿰뚫으며 심장을 관통한다.

푸욱-

차가운 검의 냉기를 느끼며 서서히 시야가 점멸되어갔다.

‘만약…….’

정신이 아득해져 간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몸이 점점 기울어져 간다.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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