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50 외전 - 우리 아빠를 소개합니다. =========================================================================
“호호호, 애들이 태우를 참 잘 따르더라고요.”
분명 참관일 때에는 그녀에 관해 수군거리면서 말 옮기고, 꺼려하던 그들이었다. 물론 송이와 친분이 있는 몇몇 엄마는 그러지 않았지만 말이다. 해서 오늘 각오를 하고, 태우를 위해서라도 대충 거짓말로 설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른 학부모들이 그녀를 너무나도 반갑게 맞이하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송이의 곁에 모여서 재잘거리면서 이렇게 태우가 참 똑똑하고 잘생겼다면서 칭찬을 해주기 시작했다.
송이는 그들이 혹여 그녀의 정체를 안 것인가 걱정했다.
“저희 아이를 잘 봐주셔서 감사하네요.”
“아니요, 오히려 태우가 저희 아이들이랑 잘 어울려줘서 고맙죠.”
엄마들은 송이에게 호감을 감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럴수록 송이의 표정은 더욱 더 오묘해져갔다.
얼떨떨하긴 하지만, 엄마들의 입에 발린 소리가 듣기 싫은 건 아닌 터라 그냥 넘겨 들어주고 있는데, 한 몸집 있고 딱 봐도 화려하게 치장하길 좋아하는 학부모가 송이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송이의 손목을 우악스럽게 잡고, 잠깐 자신과 대화를 좀 하자며 그녀를 끌고 갔다.
“무슨 일이신데요?”
그녀는 한참을 뜸들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송이는 의아해하면서도 차분하게 기다려주다가 이내 지쳐 말을 했다.
“우리 우영이 아시죠? 태우랑 친했잖아요.”
“당연히 알죠.”
태우가 예전에 우영이랑 친해서 자주 말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 우영이라는 이름은 태우의 입에 나오질 않았다. 그걸 기억해 낸 송이는 그녀가 자신을 부른 것이 그것 때문임을 직감했다.
“정말 미안해요 태우 엄마. 내가 정말 나쁜 뜻으로 그런 거 아니에요. 다 내 잘못이니까, 우리 아이, 태우한테 다시 친하게 지내라고 해주시면 안 될까요?”
“네??”
“진짜 진짜 다 내 잘못이니까, 우리 아이가 집에만 오면 펑펑 울어요. 엄마 때문이라고. 그 꼴을 더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흑.....우리 아이가 워낙 착하고 엄마 말을 잘 들어서 그런 거였어요.”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지 하나도 모르겠거든요. 제대로 설명 좀 해주시겠어요?”
송이가 표정을 굳히고 물었다. 우영 엄마가 눈물을 터트리며 사정을 말해주었다.
학부모 참관이 있었던 그날, 우영 엄마는 아들에게 태우와 친하게 지내지 말라면서 급에 맞는 아이와 놀라고 충고를 해주었다. 우영은 엄마의 말만 듣고 알겠다며 약속을 했다.
그리고 그것이 사단이 난 것이다.
“너 요즘 왜 나랑 인사 안 해?”
태우가 요즘 들어 자신을 피하는 우영 때문에 서운한 마음에 물었다. 축구도 매번 자신과 같은편을 했던 우영인데, 요즘은 자꾸만 적편에 붙는다. 우영은 그 물음에 순진하게도 사실을 털어놓았다.
“너희 아빠는 백수니까 엄마가 놀지 말랬어. 수준 안 맞는다고.”
“수준?”
태우의 눈썹이 꿈틀거린 것은 그 순간이었다.
안타깝게도 우영엄마는 알지 못했다. 우영이 태우와 논 게 아니라 태우가 우영을 선택해서 논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무리 티를 내지 않으려 한다 해도 태우의 주변은 모든 것이 최고급이었다.
태우는 친구들의 집에 놀러 가보면서 모두가 자신의 집처럼 살지 않는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태우는 똑똑한 아이였다. 괜히 선생님께 자주 칭찬을 받는 게 아니다.
또래보다 훨씬 어른스럽고, 교우관계도 좋으며, 똑똑하다는 평을 받는 태우였다.
우영은 자신이 한 말의 의미를 알지 못했지만, 태우는 그것을 눈치 챌 수 있었다.
우영의 집이 제법 잘 산다는 것은 태우도 알고 있는 일이었다. 삼촌이나 이모들이 사다주는 장난감들보단 못하지만 우영의 집에는 제법 장난감이 많았다. 놀이방이 건물 한 채인 태우에 비해선 작지만 놀이방도 갖고 있었다.
즉, 자신의 집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닌 집이라는 거였다. 그런데 수준이 안 맞는다고 놀지 말라고 했단다.
태우는 생애 처음으로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느꼈다.
“알았어. 나도 너랑 수준이 안 맞는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동안 네가 좋아서 계속 같이 다닌 거였거든. 근데 네가 싫다니까 너랑 앞으로 친구 안 할게.”
그러면서 태우가 말을 덧붙였다.
“근데 그럼 너 누구랑 놀려고 그래? 수준 맞춰서 노는 거면?”
태우의 말에 우영은 왠지 모르게 무서워져 울음을 터트렸다. 그 날 일은 선생님이 우영을 달래주면서 끝났지만, 그 후부터가 문제였다.
아이들은 어른스럽고 잘생기고 리더십 있는 태우와 늘 놀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에 비해 우영은 운동을 잘 못하는 삐쩍 마른 아이였다. 성격이 태우의 마음에 들어서 같이 놀아 줬기 때문에 축구에서도 매번 낄 수 있었던 거였다.
태우와 함께 놀지 못하자, 친구들이 더 이상 우영이랑 놀려고 하지 않았다. 축구도 더 이상 끼워주지 않았다. 축구를 너무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더욱이 태우랑 공개적으로 절교 선언을 한 게 컸다.
아빠가 백수니 뭐니 그런 건 어른들의 사정이었다.
아이들은 운동 잘하고, 늘 반짝반짝 빛나는 태우를 좋아했다.
해서 우영은 자신의 친구들을 모두 잃고 엉엉 울음을 터트렸다. 엄마는 뒤늦게 사태를 파악하고 집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됐다.
“여보세요!? 거기 태우네 맞죠?!”
[예, 맞습니다.]
“태우 어머님이신가요?!”
목소리가 여자였기에 당연히 송이인 줄 알고 말한 그녀는 생각지 못한 말을 듣게 됐다.
[아뇨, 지금 사모님께선 외출 준비 중이십니다. 용건을 말씀해주시면 전해드리겠습니다.]
사모님?
그녀는 이상한 소리에 대한 의문을 품고 물었다.
“전화 받은 당신은 누구죠?”
[저는 집안일을 담당하고 있는 메이드입니다.]
“거기서 메이드를 고용 하고 있다고요?”
남편이 백수인데?
말이 안 되는 일이 아닌가. 그때,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통화 속에서 들려왔다.
[뭐야?]
[아, 사장님. 사모님을 찾는 전화입니다.]
[송이를? 누구냐고 물어봐.]
[네. 실례지만 어디신지 말씀해주시겠어요?]
“저...는 우영이 엄만데요.”
[우영이 엄마시랍니다.]
[우영이? 태우 친구? 무슨 일이지? 줘봐.]
낯선 남자가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네.”
[우영이 어머님이 무슨 일이시죠?]
“아....그게 할 말이 좀 있어서요.”
[저한테 말하면 제가 전해드리죠.]
“될 수 있으면 어머님이랑 직접적으로 얘기하고 싶네요. 나중에 다시 걸죠.”
[그런데 이 번호는 어떻게 아신 거죠?]
“네?”
학교에 압박을 넣어 연락처를 손에 넣었던 그녀는 그의 물음에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애엄마랑 개인적인 일이 있으면 핸드폰으로 통화하시면 될 텐데, 여기다가 전화를 한 걸 보면 그 정도로 친한 사이는 아닌 것 같고. 본가 번호는 어떻게 아셨죠?]
본가?
이상한 말이 자꾸만 튀어나온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아무런 일도 안 한다는데 왜 메이드가 있고, 그녀가 그를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걸까?
“학...교에 물어봤어요.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래요? 거참, 보안 수준 하고는. 이래서 수준에 맞는 학교를 가야 한다니까. 한 소리 해야겠네. 알겠습니다. 저희 쪽에서 먼저 전화드릴 겁니다.]
“예? 저기 잠깐!”
뚝!
전화가 허무하게 끊겨버렸다. 그녀는 화를 내야 한다는 것도 잊은 터라 벙찐 표정을 지었다. 이상한 일이 한 가지도 아니고 여러 가지다. 그냥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태상은 전화를 끊고 피식 웃음을 지었다.
“쯧쯧.”
“사모님께 연락 할까요?”
“됐어요. 그리고 번호 바꾸세요.”
“네.”
태상이 휘적휘적 걸어갔다. 태상은 그녀가 왜 전화를 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태상과 태우는 일반적인 아빠와 아들 관계보다 훨씬 친했다. 시시콜콜 학교의 얘기를 털어놓을 만큼 말이다.
태우가 굉장히 자존심이 상했다며 태상에게 한 얘기가 있었다. 그리고 현재 학교에서 그로인해 벌어지고 있는 일은 쉽게 예측이 됐다. 모르는 척 했지만 왜 전화를 걸었는지 알았다.
태상은 자신의 아들이 왕따를 당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100% 확신했다. 자신이 그랬으니 아들도 그래야 하는 것이 맞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릴 적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자라왔다. 그리고 그건 태우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배경 때문이 아니라 본연 스스로의 능력으로 말이다.
그리고 태상은 자신의 생각처럼 외적인 것에 흔들리지 않는 태우의 교우관계를 보고 흡족해했다.
역시 내 자식이라니까.
유일하게 떨어져 나간 것은 단 한 명. 우영이라는 친구였다. 태상은 슬퍼하는 태우에게 말해주었다. 어떤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은 주변의 인물들을 선택해서 곁에 둘 자격이 생긴다. 그럼 그는 자신의 곁에 둘 이를 누구로 할 지 결정해야 한다. 사람을 보는 안몫.
그리고 확실하게 맺고 끊을 수 있는 결단력이 필요했다. 태우는 이번 일로 그것을 배웠을 것이다.
며칠 후, 오라는 연락은 오지 않고 발만 동동 구르던 우영 엄마는 집에 서 있는 고급 세단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오는 인물을 보고 더더욱 그랬고 말이다.
“어머!”
그녀의 입이 헤 하고 벌려졌다. 한 때 TV에 얼굴이 도배 된 적 있고, 지금도 심심치 않게 나오는 그 인물이 그녀의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보니 더 잘생겼네....’
넋을 놓은 그녀의 앞에 태상이 섰다.
멋진 정장을 입은 것도 아니고, 그냥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거였지만 귀티가 좔좔 흘렀다. 하긴 그가 입은 옷이 1~2만원 짜리가 아니었으니 당연했다. 눈이 트이지 않은 사람이 보면 그냥 티셔츠에 청바지지만, 저것의 값을 아는 이가 제대로 본다면 놀라 눈을 크게 뜰 것이기 때문이다.
태상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삐딱하게 서서 그녀를 내려다봤다.
그녀의 두 볼이 설렘으로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곧 시퍼렇게 변할 수밖에 없었다.
“우영이 어머님?”
그의 목소리가 많이 낯이 익었다.
“네, 네?”
그녀가 놀랐으나 우영이 엄마인 건 맞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그가 씨익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태우 아빠입니다.”
“.....네? 누구시라고요?”
“태우 아버지, 라고 했습니다만.”
태상의 미소가 더 이상 멋있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이 서서히 창백해졌다.
“저희 아들한테 얘기 들었습니다. 우영이한테 하신 말씀이요.”
“.......”
“수준....이라. 하핫. 그렇긴 하죠? 우리 서로 차이가 좀....있긴 하니까요.”
태상이 그녀의 뒤에 있는 집을 보다가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둘 중 누구의 수준이 떨어지는 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 그, 그건 그러니까. 그게...어떻게..태우 아버님이 강..명진씨.인지...이해가 안..되는데..”
우영 엄마가 패닉이 온 듯 눈동자가 이리저리 흔들렸다.
“저희 애엄마가 아직 아이가 어리니까, 숨기고 다니게 하고 싶다고 해서요. 굳이 알리면 소란스럽잖아요. 애들 학교에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있나 싶네요. 그러니까 우영이 어머님도 저희 비밀을 숨겨주실 거라고 믿겠습니다. 그런데 우영이 아버님은 무슨 일을 하시나요? 제가 백수라서 참 궁금하네요.”
“.........”
그날 이후, 우영 엄마는 시름시름 앓아누웠다. 자신이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찍어 누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을 찍어 누를 수 있는 맹수였다.
우영은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는다며 매일 학교가기 싫다고 울음을 터트렸다. 이게 다 엄마 때문이라고, 엄마 때문에 태우가 자기랑 놀아주지 않는다고 짜증을 부렸다.
그녀는 결국 아이가 전학을 하게 하거나 아니면 그녀의 엄마를 만나 화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초지정을 들은 송이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말은 해볼게요.”
송이의 말에 우영 엄마가 그제야 살 수 있는 탈출구를 찾았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하지만 이어진 그녀의 말에 다시 울상을 지었다.
“하지만 전 태우한테 누구랑 놀지 마라 놀아라 하지 않거든요. 어른들 사정 때문에 아이들이 누구랑 놀고 말고를 정한다는 게 좀....그렇잖아요?”
송이가 나이 어려보이고, 아직 세상 물정 모른다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그녀의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엄연히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우영 엄마는 우영이 받은 상처만 생각하고 저렇게 애원하고 있지만, 송이는 자기 아들이 받은 상처가 제일 신경 쓰였다.
“전 태우가 싫다고 하면 그렇게 하라고 할 거에요. 그럼 아마도 우영 어머님은 전학을 가시는 게 좀 더 현실적으로 편하시겠네요. 만약 태우가 더 이상 우영이를 보고 싶지 않다고 했는데도 앞에 자꾸 알짱거리면 제가 화가 날 것 같아서요.”
“...흑......”
우영 엄마는 송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겁에 질려 벌벌 떨었다.
“우리 아들이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말은 해볼게요. 서로 돕고 살아야죠.”
송이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것이 훨씬 더 우영 엄마를 무섭게 만들었다. 늘 송이가 태상에게 져주지만, 그렇다고 태상이 그녀를 이긴 건 아니다.
본디 세상을 움직이는 건 남자지만, 그 남자를 움직이는 건 여자다.
============================ 작품 후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