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249화 (외전) (249/251)

00249  외전 - 우리 아빠를 소개합니다.  =========================================================================

이 편은 본편과 상관없는 외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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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우 만 나이 9세, 난관에 부딪쳤다.

태우는 오늘 학교에서 받은 숙제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엄마에게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뭐라고 적어야 할지 모르겠기 때문이었다.

모르겠을 땐 엄마한테 달려가는 게 최고였다.

“엄마, 여기에다가 뭐라고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태우가 쪼르르 송이에게 달려가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기며 물었다. 송이는 태우의 손에 들린 종이를 건네받아 그곳에 쓰여진 것을 보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아빠는 맨날 집에서 놀잖아요. 그럼 직업에다 뭐라고 써야 해요? 여기 종이에다가 우리 아빠는 어떤 사람인지 소개해야해요.”

태우가 울상을 지었다. 태우가 아는 아빠는 아무것도 하는 게 없었다. 그냥 먹고 자기만 한다. 집에서 맨날 하품하고 엄마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가 그 행동을 은근히 좋아하기 때문에 태우는 그게 이상한 거라는 걸 몰랐다.

“음...보통 집에서 노는 사람은 무직이라고 적으면 되긴 한데.....이거 혹시 발표하는 거니?”

송이가 선뜻 뭐라고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뜸을 들였다. 그도 그럴 것이 정말 태상은 아무런 일도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혹시나 하고 물으니 태우는 고개를 끄덕여왔다.

현실적으로 말하면 그는 무직, 백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쉬는 걸 갖고 뭐라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가 목숨을 걸고 지구를 지켰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그다지 없었으니 말이다. 나머지 인생을 그가 원하는 대로 즐기는 것을 어떻게 말린단 말인가.

더욱이 그는 어마어마한 부를 쌓은 사람이었다.

지금이라도 그가 방송에 출현 하겠다고 말한 하면 제발 이 돈을 받아주세요 하고 모셔가려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의 신비주의 컨셉이 그의 몸값을 더 높여준 것이다.

“엄마도 몰라요?”

태우는 엄마가 정확히 대답을 해주지 않자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순진한 표정으로 물었다.

‘분명 무직으로 적으면 아이들한테 놀림 받겠지?’

더욱이 이건 그냥 직업을 적는 게 아니었다. 아빠를 소개해야 한다지 않은가!

“이거 언제 발표하는데? 친구들 앞에서 하는 거니?”

송이가 묻자 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학부모 참관일에 발표시킨댔어요.”

헉. 가장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앞이라면 대충 쓰면 되지만 참관일이라면 허투로 쓰게 할 수가 없었다.

송이는 난감함에 끄응....하고 신음을 흘렸다.

현재 태우의 학교에선 아무도 태우가 누구의 아들인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송이가 철저하게 티를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이다.

“음, 그럼 일단 직업은 자영업자로 적어놓고, 아버지는 자택근무를 한다고....”

“뭐해?”

그때, 태상이 슬금슬금 송이와 태우가 있는 곳으로 들어왔다. 그는 배를 퍽퍽 긁으면서 다가왔다. 티셔츠 안쪽에 숨겨져 있는 그의 근육이 살짝살짝 드러났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근육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이 중에 아무도 없었다.

“아빠!”

태우는 활짝 웃고 태상에게 달려가 안겼다. 태상은 읏차! 하고 제법 무거워졌을 태우의 몸을 가볍게 들어 올려 빙글빙글 돌려주었다. 태우가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엄청 어렸을 때에도 번쩍번쩍 하늘 위로 던져버려서 송이를 기함하게 만들었던 태상이었다.

“하지 말라고 하는 데도 꼭 저런다니까!”

송이가 아무리 핀잔을 줘도 소용이 없다. 태우는 또 좋다고 그걸 받아서 더 문제였고 말이다. 태상과 태우는 무척이나 사이가 좋았다. 그도 그럴 것이 태상이 태우와 시간을 많이 함께 보내기 때문이었다.

태상은 참 그런 성격 아닌 것 같으면서도 가정적이었다. 태우가 태어났을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한 것이 미안해서 그런 것 같아 송이는 가끔 그런 태상이 가엽게 느껴지곤 했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냐니까?”

태상이 태우를 금세 목마 태우고 다가와 송이의 손에 들린 종이를 뺏었다.

“나의 아빠를 소개 합니다?”

“이거 적어야 하는데, 아빠 직업을 뭐라고 적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태우가 재빨리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태상은 흐응~ 하고 잠시 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태우에게 말했다.

“직업은 백수라고 적으면 돼. 그리고 나머지는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네 생각을 적는 거지.”

“아빠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서?”

태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어렵다는 듯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태상이 목마 태운 태우를 번쩍 들어 올려 품에 안곤, 볼에 뽀뽀를 쪽! 하고 했다. 태우가 울상을 지으며 그가 뽀뽀한 뺨을 슥슥 닦아냈다.

요즘 들어 부쩍 뽀뽀하는 걸 싫어하는 태우였다.

“뽀뽀하지 마아~! 나 이제 애 아니거든?”

“그럼 목마 안 해준다?”

“그건 싫어.”

“이 욕심쟁이. 목마는 받고, 뽀뽀는 못해줘? 뭐든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는 거야.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고.”

“애한테 뭘 가르치니? 그리고 거기다가 그렇게 적으면 안 돼. 애들한테 놀림이라도 당하면 어떡하려고 그래?”

“놀림? 내 아들이?”

“아빠가 백수라는데 그럼 애들이 놀리지 안 놀리겠어?”

송이가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말하자 태상이 씨익 웃었다.

“아닐 걸?”

“됐어. 태우야. 엄마 말대로 해.”

송이가 그의 말을 무시하려고 하자 태상이 말했다.

“지금 애한테 거짓말하는 법을 가르치려는 건 아니지?”

“.........”

송이가 태상의 말에 합죽이가 됐다. 그의 말을 들으니 차마 입이 떼어지지가 않는 것이다. 확실히 그녀가 태우에게 시키는 일은 거짓말이었다. 그는 확실히 ‘백수’였다. 하지만 백수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루에 수백억을 벌어들이는 자산가였다.

“그러니까 명예직이라도 갖고 있음 이럴 때 편하게 적고 좋잖아.”

송이가 투덜댔다. 물론 대놓고 적을 순 없겠지만 CMC 직원이라고 적는 것이 적어도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지 않겠는가.

태상은 CMC를 혜연에게 완전히 맡겨버린 상태였다. 그는 회사에 미련이 없었다. 애초에 그 회사를 세운 것도 악마들을 대비하기 위함이었고, 더 이상 이 세상에는 악마가 존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엄마보다 아빠가 더 쌘 거 알지? 아빠 말대로 해.”

태상이 태우를 바닥에 내려주고 종이를 건네주며 말했다. 태우는 겉으로 보면 송이가 강해보이지만, 아빠에게 매번 그녀가 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이곤 배시시 웃으면서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어떡하려고 그래? 저거 학부모 참관일에 발표 시킨다던데.”

“날 믿어봐. 절대 놀림 받을 일 없어.”

“......”

송이는 과연 그럴까 싶으면서도 결국 태상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며칠 후, 학부모 참관일이 밝았다.

송이는 잔뜩 긴장한 채로 적당한 옷들로만 차려 입고 나섰다. 태상은 안타깝게도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다. 그를 못 알아 볼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태우가 어린 나이에 아빠 때문에 피해를 받으며 인간관계를 만들게 하고 싶지 않았기에 철저하게 숨겨야 했다.

송이가 교실로 들어오자 학부모들이 그녀를 힐끗힐끗 쳐다봤다.

송이는 그들의 시선을 어색하게 웃음으로 받았다.

“안녕하세요.”

“태우어머님 오셨네요!”

“준호어머님. 오랜만에 봬요.”

송이는 학부모들끼리의 모임에 빠지지 않았기에 아는 얼굴이 몇몇 있어 쉽게 그들 사이로 끼어들 수 있었다. 처음에 학부모 모임에 갔을 때, 그녀를 보고 수군거림이 장난이 아니었다. 송이는 9살 난 아들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젊고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었다.

분명 어릴 때 사고를 쳐서 아이를 낳은 게 분명하다고 학부모들은 생각했었다. 하지만 곧 그녀의 나이를 듣고, 그들은 오해했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어느덧 서른 후반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였기 때문이다.

학부모들끼리 정신없이 얘기를 나누다가 이내 수업이 시작됐다.

아이들은 가족이 왔음에 들뜸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태우에게 미리 들었던 발표 시간이 왔다.

발표를 하게 될지 안 하게 될지 확실하지 않다고 말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엄마라면 다들 자신의 아이가 발표를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은연 중 하게 되곤 했다. 아마 뒤에서 수업에 참관하는 가족이라면 모두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단 한 명.

송이는 부디 태우가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태우는 반에서 모범생이었다. 똑똑하고 성격도 좋아 교우관계가 무척 좋아서 선생님이 가장 발표를 시키기 든든한 아이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태우 학생, 일어나서 발표해보세요.”

“네!”

태우가 활짝 웃으면서 일어났다가 힐끔 뒤를 보면서 송이와 눈을 마주했다. 그는 발표하는 것이 무척이나 설레는 모양이었다. 송이는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말이다.

“저희 아빠를 소개 하겠습니다.”

태우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낭랑했다. 송이는 망했다는 생각에 발만 동동 굴리고 있는데 말이다.

“저희 아빠 직업은 백수입니다.”

너무나도 당당하게 말하는 태우의 목소리에 송이는 이마를 짚었고, 학부모들은 슬그머니 그녀를 향해 시선을 두었다.

“그래서 아빠는 매일 집에서 엄마를 졸졸 따라 다닙니다. 제가 왜 엄마를 맨날 따라 다니냐고 물으면, 엄마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합니다. 아빠는 저도 무척이나 사랑해서 저랑 잘 놀아줍니다. 가끔 너무 달라붙어서 좀 피곤하긴 하지만 그래서 전 아빠가 참 좋습니다.”

선생님의 얼굴에 당황스러움이 역력한 표정이 지어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인지라 낭랑하게 말하고 있지만, 그 안의 내용은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다니는 학교는 최상류층이 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중상류층의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그런 곳에서 아빠가 백수라고 했으니, 분명 타격이 없을 리가 없었다.

사정을 모르는 태우는 활짝 웃으면서 계속해서 발표했다.

“그리고 아빠는 힘이 무지무지 쌥니다. 저를 번쩍번쩍 들어 올려 주십니다. 아빠가 다칠 뻔한 아이를 구해준 적이 있었는데, 저도 나중에 커서 아빠처럼 힘도 쌔고 달리기도 빨라져서 위험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누군가를 구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백수라는 단어를 희석시켜주진 못했다.

학부모들의 시선이 어느새 노골적으로 송이에게 꽂혔다.

‘어쩐지...그래서 저렇게 수수하게 입고 다니는 거였구나.’

‘적당히 맞는 곳 골라서 입학시키면 될 걸, 무리하게 여기는 왜 입학시켰대?’

‘저번 모임 때 일 안 한다고 했었는데, 거짓말이었나 봐.’

차마 대놓고는 하지 못하고, 귓속말로 속닥거리면서 학부모들이 수군거렸다.

"이상으로 발표를 마치겠습니다."

태우는 자신의 발표가 무척이나 마음에 쏙 드는 모양이었다. 무척이나 흡족한 듯 배시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앉았으니 말이다. 아이들과 선생님 그리고 학부모들 사이에서 서로 다른 의미의 박수가 오갔다.

"태, 태우 학생 발표 잘 들었어요. 그럼 다음으로 누가 또 발표해 볼까요?"

선생님이 울상을 지으면서도 서둘러 이 화제를 넘기고 싶은지 말했고,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이들이 번쩍 손을 들었다.

송이는 따가운 시선을 느끼며 앞으로 태우의 학교 생활이 나빠지면 어떡하나 걱정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그의 아빠가 누구인지 알린다면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이었다.

그녀는 도대체 이 문제를 그가 어떻게 해결하려 하는 것인가 싶어 작게 원망을 담아 한숨을 쉬었다.

**

"학교 다녀왔습니다~!!"

며칠 후.

그녀의 걱정과는 달리 태우는 딱히 변화 없는 무난한 학교생활을 즐기는 모양이었다. 그 발표 이후에도 별다른 변화가 없었던 것이다.

송이는 걱정스레 허물을 벗고 있는 태우를 불렀다.

"태우야."

"네?"

뛰어 놀았는지 두 볼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는 태우였다. 이 천진난만한 아이에게 혹시 그날 이후 아이들이 널 따돌리지 않니? 하고 묻기엔 양심에 찔렸다.

"학교에서....친구들이랑 잘 지내니?"

"네."

태우는 그걸 왜 물어보는지 모르겠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잔뜩 흥분해서 말했다.

"오늘 축구 시합했는데 우리가 이겼어요!"

"그러니? 다친 데는 없고?"

"응!"

태우가 땀에 절어 있었기에 서둘러 그녀는 몸부터 씻기라며 고용인에게 태우를 맡겼다.

태우의 얼굴에는 한 치의 수심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의문을 가진 송이는 왜 백수 발언의 여파가 태우에게 미치지 않았는지에 대한 진실을 조금 늦은 학부모 회의 때 알게 되었다.

============================ 작품 후기 ============================

완결 축하 코멘 감사합니다 ㅜㅜ 차기작 얘기가 생각보다 있어서 부끄럽지만 덧붙입니다.

(*차기작 '몬스터 블러드'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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