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계약자-239화 (239/251)

00239  고립과 기다림  =========================================================================

악마들은 서로 친목을 다지진 않지만, 마을 같은 곳을 만들어 지내긴 한다. 그곳에서 악마들은 자신의 모험담을 늘어놓곤 했다.

또한 악마라고 모두가 전투를 하는 건 아니었다. 그들에게도 전투를 하지 못하는 비전투원들이 있었다. 그런 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 바로 마계 심층부의 '마을'이었다.

천사들이 심층부에 자리를 잡고 생활하는 것과 같은 이치로 말이다.

욱신-

태상은 갑자기 느껴지는 오른팔의 통증에 미간을 찌푸렸다. 이놈의 환상통은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질 않는다. 마치 그의 오른팔이 멀쩡하게 있는 것 같은 감각이 있다.

하지만 볼 때마다 텅 비어 있던 지라, 사라진 오른팔을 볼 때마다 그를 현실로 이끌어주곤 했다.

오른팔을 잃었다 해도 그는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반드시 아니, 죽을 때까지 인간계로 돌아가기 위해서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

태상은 숲을 가로질러 계속해서 움직이자 그가 그토록 바라던 심층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운 마음에 성큼성큼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가 걸어간 곳에는 악마들이 천막같은 것을 세워놓고 지내고 있었다. 그 천막 사이로 악마들이 우글우글거리고 있었다.

태상은 혼자 임에도 불구하고 그 악마들사이로 뛰어드는 것을 전혀 꺼리지 않았다.

“캬악! 인간!?”

굳이 은신하려고 마음을 먹지 않았기에 당연하게도 악마들에게 그의 기척을 들킬 수밖에 없었다. 태상은 악마의 얼굴을 단 번에 잡아채서 성큼성큼 계속해서 걸어갔다.

물론 질문도 빠트리지 않고 말이다.

“타치다라는 이름을 가진 악마가 이곳에 있다고 들었다.”

“어떻게 여기에 인간이 있을...끄아악!”

태상이 손에 쥔 얼굴에 힘을 주자 얼굴이 뭉개지면서 악마에게 끔찍한 고통이 찾아왔다.

“내 질문에 대답만 해라.”

“으윽...윽...크흐...”

힘을 풀자 악마의 입에서 침이 줄줄 흘렀다. 주변에 있던 악마들은 그 광경을 보고 달려들기는커녕 점점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어느새 태상은 천막들이 늘어져 있는 곳 중앙에 서서 악마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악마 한 명이 달랑거리며 들려 있었고 말이다.

그들도 눈과 귀가 있다. 태상이 이곳에서 지낸지 7개월 동안 수많은 악마들을 죽이고 다녔기에 소문이 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그는 대악마를 죽인 사람이었다.

대악마 다섯을 죽였으니 당연하게도 그 악명은 악마들 사이에서 어마어마했다.

“마계를 돌아다니는 인간이라면...계약자...악마를 학살하고 다니는...설마 그놈이?!”

"우아아악!!"

“그, 그놈이...우릴 죽이러 왔어!! 도망쳐야 돼!!!”

우당탕탕!!

악마들이 횡설수설하며 태상의 정체를 깨닫기 시작하자 비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인간이, 그것도 엄청나게 강한 인간이 마계에 돌아다니는 것을 보는 것은 자주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수가 분명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악마들은 감히 그에게 덤빌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가 죽인 악마들의 수가 더 이상 세아릴 수 없는 수가 된 지금, 그냥 그를 피해 숨는 것이 더 현명하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타앙!

그때, 한 줄이 탄환이 하늘을 뚫고 커다란 소리를 내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움직이는 놈들부터 먼저 죽여주지.”

“!!!!!!!!!!!”

휘이이잉-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던 그곳이 조용해졌다. 태상은 마나건을 사용해야 한 터라 바닥에 떨어트려 놓은 놈의 가슴을 발로 밟으며 말했다.

“타치다라는 악마가 어디에 있는지 불어라.”

타치다?

“그, 그런...놈의 이름은 처음 들어 본다. 정말이야..!”

“정말인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난 분명 타치다라는 놈이 이곳에 있다는 정보를 들었다. 그런데 모른다고? 갑자기 같잖은 동료애라도 솟아나서 모르는 척 해주는 건가?”

태상이 물었다.

“정말 몰라! 진짜 모른다고!”

꿀꺽-

주변에 있던 악마들이 저 멍청한놈....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모른다고 하면 죽는다는 걸 정말 몰라서 저렇게 죽여달라고 필사적으로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 차라리 안다고 하고 거짓말을 했어야 하는 게 옳았다.

태상은 악마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넌 정말 모르는 것 같군.”

“그렇다니까! 난 정말 몰라!”

악마가 그제야 자신의 진심을 알아줬냐며 꿈틀거렸다. 그는 자신이 이제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악마는 더 이상 생각을 하지 못했다.

태상이 그의 몸을 밟고 있는 발에 힘을 주었기 때문이다.

우득-

하는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뭉개졌다. 피가 사방에 튀었다.

악마들은 그 끔찍한 광경에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주르륵 흘렸다. 지금이라도 그냥 도망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그들을 지배했다.

타치다라는 악마에 대해 알고 있다면 살 확률은 있겠으나, 모르는 이들은 어차피 이곳에 있어도 죽고, 도망쳐도 죽는다는 걸 깨달았다.

태상이 눈알을 굴리며 눈치를 보고 있는 악마들에게 말했다.

“이중에 타치다라는 악마에 대해서, 내가 만족할 만한 정보를 갖고 있다면 모두 다 살려주지.”

“!!!”

“저, 정말?”

악마들은 믿을 수 없이 솔깃한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이들 중 한 명이라도 타치다에 아는 것이 있다면, 살 수 있다는데 솔깃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차피 그가 자비를 베풀어주지 않으면 도망치다가 결국 죽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누구 타치다라는 놈에 대해 아는 거 없어?”

“젠장, 그게 누군지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어?”

웅성거리는 악마들을 태상은 느긋하게 내려다봤다. 악마들은 다른 이를 위해 자신이 손해 보는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태상이 과연 저들이 자신에게 만족스러울 만한 정보를 줄 수 있을지 생각했다.

“타치다...타치다...뭔가 좀 익숙한 이름이긴 한데....”

그때, 한 악마가 머뭇거리면서 말했다. 작게 말했지만, 악마들의 신경이 모두 곤두서 있었던 터라 그의 말은 모두에게 아주 잘 들려왔다.

“뭐야 너 뭔가 알고 있는 거야?”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해 줘버리라고!! 네놈 때문에 우리가 다 죽게 생겼잖아!!”

악마들이 격하게 말했다. 그들이 죽는 건 운이 나빠서 태상을 만났다는 것 뿐일 텐데도 남탓을 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아는 게 별로 없어! 그냥 이름이 낯익은 것 뿐이야! 기억이 안 난다고!!”

“낯이 익었다면 알고 있는 이름이라는 거겠지!! 네놈 머릿속을 뒤집어 엎어서라도 기억해 내! 네놈이 기억을 해내면 우리가 다 살 수 있잖아!”

악마들이 당황스러워 하는 악마의 멱살을 잡아 채 태상의 앞으로 끌고 갔다. 그는 몸을 벌벌 떨며 고개만 저었다.

"이놈이 알고 있답니다! 그러니 우릴 살려주십시오!"

악마들의 얼굴에 희망이 깃들었지만, 태상의 앞으로 끌려 온 악마의 얼굴은 기절할 듯이 창백했다.

“아는 게 없어! 정말 그냥 이름이 좀 낯익다는 거밖엔 생각이 안 난다구!!”

악마의 말을 들은 태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모른다는데?"

그의 말에 악마들의 눈초리가 스산해졌다.

태상의 앞에 끌려 온 놈의 허리부분을 발로 찬 악마가 으르렁거리며 협박했다.

"어서 말해!! 네놈이 아는 걸 다 말해드리란 말이야!!"

그 악마는 아무래도 무척이나 죽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른 놈들은 아는 게 없나?”

“없습니다. 다들 모른다고 했어요. 하지만 이놈은 알 겁니다. 분명 똑똑히 들었습니다. 그 악마 놈의 이름을 알고 있었어요!"

"아니야!! 정말 몰라! 모른다고! 믿어줘!"

"네가 모른다고 하면 우린 다 죽어! 조금이라도 생각나는 게 있으면 말 하라고! 네가 말 하지 않으면 내가 네놈을 죽여 버릴 거다!"

굳이 태상이 협박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자기네들끼리 해주니 무척이나 편했다. 악마의 기세에 자신이 마냥 모른다고 하는 게 좋지 않다는 걸 깨달았는지 훌쩍거리면서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마, 많은 걸 아는 건 아닙니다. 작은 정보지만, 그래도 말씀드리면 살려주시는 겁니까?"

태상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정보였다면 그렇게 하지. 하지만 내 마음에 드는 정보여야 할 거야. 거짓말이 조금이라도 들어간다면 약속은 무효다."

태상의 말에 악마는 눈을 데굴데굴 굴렸다.

그는 필사적으로 타치다라는 악마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 그놈은 그리 특별한 놈이 아닙니다. 제가 알고 있는 그 놈이 아니라 다른 놈을 찾는 것 같아서 나설 수가 없었....”

악마가 주절거리며 시간을 끌자 태상이 말을 끊고 말했다.

"짧게."

"흑..."

태상의 기분이 나빠질 수록 주변에 있던 악마들의 분위기도 덩달아 험악해졌다. 결국 그는 눈물을 애써 훔치며 말했다.

"놈에 대해서 정확히 뭘 알고 싶은 겁니까?"

"네가 뭘 알고 있건 그 전부."

"그러니까 이놈은....예전에 여기서 살던 놈인데 싸움질도 잘 못해서 근근히 남들 뒤치다꺼리 해주면서 사는 놈이었죠."

“그리고?”

“그놈은 시체 털이 일을 했었습니다. 그놈이 싸움질은 못해도 이곳저곳 돌아댕기는 능력은 제법 쓸만했거든요."

악마의 말을 들으며 태상은 자신이 찾는 이가 맞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나?"

"아뇨! 맹세코 정말 모릅니다. 소식이 끊어진지는 오래에요. 아마 다른 곳에서 시체털이 하면서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밑바닥 인생인 놈을 태상이 찾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악마는 자신이 아는 놈이랑 그가 찾는 놈이랑 동일 인물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가 없었던 거였다. 태상은 그의 정보가 제법 쓸모있다고 생각했다.

태상이 마나건의 총구를 악마에게 겨누자 등골에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린 그가 좀 더 다급하게 정보를 뱉어냈다.

“그놈을 찾으시려는 거라면 정보상인한테 물으면 됩니다! 그놈이라면 타치다라는 악마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을 수 있을 거에요!”

주변에 있는 악마들한테 도와달라는 듯 필사적으로 말하자 다른 악마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북쪽으로 가면 커다란 나무가 있죠. 그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정보상인이라는 놈에 대한 정보는 태상도 알고 있었다. 이곳 심층부에 정보상인한테 가면 놈의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하는 악마가 한 둘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지?”

“여기서 북쪽으로 쭉 가면 있습니다! 아니, 제가 데려다 드리겠습니다!”

악마가 태상에게 잘 보이겠다는 생각 때문인지 그렇게 말했다가 똥 씹은 얼굴을 했다. 데려다주려면 그만큼 태상과 함께 있어야 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멍청함을 자책하고 있는데, 태상이 말했다.

"좋아."

"...예?"

"날 정보상인이 있는 곳까지 데려가라. 네놈의 정보는 제법 쓸만했어. 다른 놈들도 살려주지."

"우, 우와아!!!"

주변에 있던 악마들이 환호했다. 살았다!!!!

거의 죽었다 확신하고 있었다가 살았으니 당연히 기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의 앞에서 주절거리던 악마는 울상을 지었지만 말이다.

이놈의 주둥아리가 결국 사고를 치는구나!!

"안내해라."

태상이 세상 다 산 표정을 짓고 있는 악마에게 말했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한 편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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