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6 잠입 =========================================================================
태상은 너덜너덜해진 자신의 오른팔을 보며 쯧! 하고 혀를 찼다.
악마들이 하나 같이 그의 오른팔을 경계한다. 당연히 오른쪽 손바닥에 박혀 있는 천계의 심장이 거슬렸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태상도 그의 오른팔을 경계하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천계의 심장을 파괴하겠다고 해놓고도 아직까지 해결을 보지 못했으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태상이 느끼기에 단순한 감이긴 하지만, 대악마를 죽이면 죽일 수록 천계의 심장의 힘이 강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감은 거의 대부분 맞아 떨어지는 편이었다.
해서 태상은 토다베스와의 싸움에서 오른손이 아닌 왼손을 사용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정확도가 조금 떨어지긴 하지만, 이번에도 천계의 심장에게 농락 당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태상은 잠시 싸움을 멈추고 몸을 뒤로 물렸다.
토다베스가 그의 생각을 읽고 공격을 잠시 멈췄다.
"왜 그러지? 갑자기 무서워졌나?"
태상의 오른팔이 너덜너덜한데, 토다베스의 몸이라도 성할까.
당연하게도 그의 몸 상태도 그리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그쪽 가슴에 구멍 뚫린 곳은 안녕한가 해서."
태상이 킬킬 거리며 웃었다. 그의 오른팔에서 주르륵 피가 타고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전혀 고통을 티내지 않고 있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는건데?"
토다베스도 잠깐동안 전투를 멈춘 것에 그다지 불만이 없는 모양이었다. 앞서 말했다 시피 지금 서로의 몸상태가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잠시간의 휴전이었다.
둘의 힘은 비등비등했다. 그래서 결말을 낼 수가 없었다. 누군가가 실수를 하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토다베스가 지금까지 싸워왔던 대악마들보다 수준이 높다는 것은 태상도 인정하는 중이었다. 그러니 지금 이렇게 그와 대등하게 싸우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태상은 지금 전력을 다해 그를 상대하고 있었다.
무력화를 쓰지 않은 게 아니었다.
능력을 써도 놈한테 제대로 먹혀들지가 않았다. 무력화가 들어가긴 했지만, 놈의 능력을 모두 무력화 시킬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놈이 태상을 이기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토다베스도 태상도 그것을 알았기에 굳이 대화를 하는 것에 반발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왜 인간계를 노린 거야? 내가 생각하기에 우리들은 굉장히 얌전하게 산 것 같은데, 너희들이 와서 우리들을 들쑤셨지. 그냥 천사랑 악마 너네 둘이서 지지고 볶고 싸웠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야."
태상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주변은 말 그대로 초토화였다. 자신이 나고 자라왔던 땅이 이렇게 엉망이 된다는 것은 그를 씁슬하게 만들었다.
그와 대화를 하는 것은 숨을 돌린다는 취지도 있었지만,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가 더 컸다. 지금 태상은 자신이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토다베스도 마찬가지였다. 해서 그의 말을 순순히 받아주었다.
"천사와 악마의 힘은 비등비등했다. 오랜시간 전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동료들만 죽어나갈 뿐 승기를 잡지 못했지. 변화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변화를 인간으로 선택했지."
"전쟁의 도구로 우리가 이용 당한 거군."
예상은 했는데 직접 들으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전쟁이 끝났으니 사냥개는 먹어 치워야 했고 말이다."
"이것 참 빌어먹을 놈일세? 너무 뻔뻔한 거 아니야?"
"우리들이 뻔뻔한 것도 있긴 하지만, 인간들은 어리석고 멍청해서 이기도 하지. 자신이 도구로 쓰이도록 허락을 한 건 그들이니까 말이야."
그들이 애초부터 탐욕을 부리지 않고 계약을 거절했다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계약을 했고, 그 결과가 파괴 되어 가는 인간계인 것이다.
"네놈들이 함정을 파놓고 거기에 걸린 놈이 멍청하다고 한들 네놈들의 죄가 죄가 아니게 되는 줄 아나?"
"상관없다. 결과만 얻으면 되니까."
"결과만 있으면 수단은 상관 없다 이거야?"
"물론이다."
"그럼 그거 나도 해도 되나?"
태상의 말에 토다베스가 불길함을 느낀 것은 당연했다.
그리고 그의 스산한 감은 틀리지 않았다.
태상의 오른쪽팔이 어느새 멀쩡한 모습이 되어 있었다. 토다베스는 그것을 보며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아무런 변화도 없던 천계의 심장이 반응을 한 것은 태상의 심경 변화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에 더불어 다급해진 것은 토다베스였다.
"천계의 심장의 주인은 바로 나다!"
태상이 천계의 심장을 흡수하려는 것으로 생각한 토다베스가 분노를 터트리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주변을 울렸다. 그의 기운을 실은 바람이 태상의 머리카락을 훑고 사라졌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태상은 속으로 이것봐라...? 하고 중얼거렸다.
오른팔이 재생되는 것은 천계의 심장이 독단적으로 한 일이었다. 사실 아까부터 오른팔이 전투에 걸리적거려서 이 팔을 완전히 떼어내면 예전처럼 다시 붙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중이긴 했었다.
그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그가 생각을 끝내기 무섭게 오른팔이 재생을 시작한 것이고 말이다. 천계의 심장이 마치 자신에게 허락을 맡고 오른팔을 고친 느낌이라서 일단 봐주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걸 본 토다베스가 무척이나 다급한 표정을 지으니 그를 떠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를 건드는 데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있음을 직감했던 것이다.
토다베스가 가장 꺼려하는 상황이 태상이 천계의 심장을 흡수하는 거였다. 그래서 일까, 그의 오른팔이 재생되는 것을 보면서 생각이 자연스럽게 그리로 튈 수밖에 없었다.
그가 힘이 필요한 나머지 천계의 심장을 흡수하려 하고 있다는 오해를 말이다.
태상의 말은 토다베스가 가장 꺼려하는 상황을 꺼내놓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일그러졌다.
"인간인 네놈은 천계의 심장을 감당해내지 못할 거다!! 그걸 가질 수 있는 자는 나밖에 없다!"
"글쎄, 난 네가 나랑 수준이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태상이 일부러 약을 올리듯 멀쩡해진 오른팔을 잘가라고 인사하듯 이리저리 흔들었다. 토다베스를 약올리려는 수작이 잘 드러나는 행동이었다.
"으드득...!"
태상의 수준이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강했고, 지금 자신이 저 건방진 인간 놈 하나를 처리하지 못해 쩔쩔매고 있다는 것은 그도 잘 알았다. 하지만 입으로 인정하려니 속이 쓰렸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까, 이걸 이용해서라도 널 죽일 수 있는 거면 얘랑 손 잡아도 나한텐 손해가 아닐 것 같거든."
"아니! 네놈의 몸이 견디지 못하고 터져 죽을 거다."
"그래? 정말 그렇게 생각해? 한 번 실험이나 해볼까? 나도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고 네놈을 죽여야 할 것 같거든."
태상의 도발에 토다베스의 표정에 조급함이 서렸다.
그때, 토다베스의 시야에 사로나가 들어왔다. 그녀는 뒤쪽에서 조심스럽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중이었다. 둘 사이에서 대화가 오가서 끼어들 틈을 찾지 못했던 것 뿐이었다.
그는 그녀가 태상의 일행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긴 하지만, 놈은 자신의 일행을 끔찍이도 아꼈다.
즉, 그의 일행이 힘이 되기도 하지만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토다베스의 신형이 있던 자리에서 갑자기 사라졌다. 그리고 그가 나타난 곳은 당연하게도 사로나의 뒤쪽이었다.
그녀가 위기를 느끼고 검을 휘두르며 몸을 뒤로 피하려 했지만, 토다베스는 그녀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다만 생각보다 사로나의 반사신경이 뛰어나서 토다베스는 그녀를 잡기 위해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야 했다.
"큭! 건방진..!"
그의 어깨가 깊게 베어 피를 뿜었다. 속으로 태상과 싸우지 않은 상태였다면 저런 계집에게 상처를 입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사로나의 손에 들린 검을 빼내 던져버렸다.
비록 다치긴 했어도, 이 계집을 잡은 것에 만족했다. 그럴 가치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로나가 도망치기 위해 발버둥쳤지만, 목을 조르고 있는 손에 힘만 더 가해질 뿐이었다.
태상은 대화에 집중하느라 사로나가 왔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입술을 깨물었다.
"자, 이제 상황이 좀 바뀐 것 같구나."
"......내가 신경 쓸 거라고 생각해?"
"크하하!! 네놈이 신경쓰지 않는 척 연기한다는 걸 내가 모를 거라 생각하는 거냐? 이 년의 목숨을 하찮게 여겼다면 네놈은 벌써 날 공격했었어야 했다!"
토다베스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사로나가 목이 졸려 숨이 막히는 와중에서도 태상에게 말했다.
"날..흣..신..경쓰..허억..!! 지마..!!"
그녀 때문에 태상이 진다면 세상 사람 모두가 죽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건 엄연히 수지에 맞지 않는 일이었다. 태상은 당연히 사로나의 목숨을 포기하는 게 맞았다.
"쓸데없는 소리를 내뱉는 구나 계집!"
토다베스가 목을 쥔 손에 힘을 좀 더 주자 사로나의 얼굴이 창백해지고 점점 반항이 줄어들었다. 정신을 잃어가기 시작한 것이다.
토다베스는 아직 인질을 죽일 생각이 없었기에 적당하게 힘을 빼냈다.
이 계집과 교환할 수 있는 적당한 거래선이 있을 것이다. 그에게 계집을 놓아 주는 대가로 무엇을 받아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토다베스가 혀로 자신의 입술을 훑었다.
목숨을 맞바꿔 누군가를 지킨다는 건 토다베스가 이해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해서 어떤 조건을 걸어야 그가 받아들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만약 악마를 데리고 태상이 반대로 인질극을 벌였다면 토다베스는 그 악마와 태상 둘 다를 죽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네놈의 오른팔을 잘라 내게 받쳐라. 그럼 이 계집을 놓아주지."
"어차피 네놈 손에 천계의 심장이 들어가면 모두 다 죽어. 난 악마와 거래하지 않는다."
태상이 생각 할 필요도 없다는 듯 딱 잘라 말했다. 사로나를 지켜줄 수 없을 거란 사실에 죄책감이 들었지만, 그녀도 자신을 구하겠다고 그런 선택을 하는 걸 바라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토다베스는 정말 이 계집이 쓸모가 없는 것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자신의 날카로운 손톱으로 그녀의 복부를 찔러넣었다.
"아아아악!!!!!!!!"
희미해진 정신을 겨우 붙잡고 있던 사로나의 입에서 고통 섞인 비명이 내질러졌다.
태상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다만 주먹을 꽈악 쥐었을 뿐이었다.
"정말 이 인간계집이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건가?"
토다베스는 역시나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인질극으로 가치있는 것을 받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미련을 버리고 사로나의 목을 우그러트리려는 순간, 태상이 질끈 눈을 감으며 제안을 했다.
"네놈에게 주진 않지만, 오른팔을 잘라서 그 힘을 쓰지 않겠다고 약속하겠다!"
빌어먹게도 태상은 인내하고 또 인내하다가 결국 사로나가 죽는 것을 끝끝내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말은 굉장히 충동적으로 내뱉은 말이었다.
그 순간 토다베스의 얼굴에 씨익 미소가 지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쓸모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폐기하려다가 이득을 취할 수 있어졌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좋다. 그 정도라면."
토다베스가 먼저 사로나의 목을 쥐고 있던 손아귀 힘을 풀었다. 그러자 그녀의 몸이 털썩 바닥으로 쓰러졌다.
사로나가 콜록콜록 거리며 거친 숨을 쉬었다. 복부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감싸 쥔 그녀는 재빨리 몸을 피하려 했지만, 자신의 등 위를 짓누르는 발 때문에 땅에 가슴을 박아야 했다.
"크흐윽...!! 차라리 날 죽여!!"
사로나가 독한 눈을 빛내며 외쳤다.
태상에게 짐이 될 바에야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는 게 나았다. 하지만 토다베스는 그녀가 가치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죽게 할 생각이 없었다.
"그건 절대 안 되지. 자, 성의를 보였으니 그쪽도 거래를 해야하지 않나?"
태상은 품에서 단검을 꺼냈다.
사로나가 손을 뻗으며 비명을 지르 듯 외쳤다.
"안 돼!!! 너 미쳤어?! 이딴 짓 한다고 누가 고마워 할 줄 알아!? 날 죽여! 차라리 죽이라고!"
그게 옳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말리기엔 태상의 손이 훨씬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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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