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34 잠입 =========================================================================
“그럴 수 없어요. 제 몸이 괴물이 되어버렸거든요. 제 몸은 불사가 되어버렸어요. 괴물이죠. 괴물이 되었으니 괴물다운 방법으로 오빠를 가질 거에요.”
“넌 모르는 게 너무 많아.”
태상은 마나건으로 레베카를 겨눴다.
“소용없다니까요?”
지금 반은 넋을 놓고 레베카를 찾고 있었다. 정말 그녀를 죽이는 게 최선일까? 하는 우유부단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레베카는 위험분자였다. 그가 아니면 절대 막을 수 없는 불사의 몸을 갖고 있지 않은가.
그는 그동안 결정을 내린 것이 두 번 이상 흔들린 적이 없었다.
좀 더 좋은 방법이, 좀 더 나은 결말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게 그를 아쉽게 했지만 레베카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것에 망설임은 없었다.
타앙!!!
레베카는 태상에게 자신이 얼마나 괴물이 되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해서 부러 그의 마나건을 피하지 않았다.
아무도 날 죽일 수 없어요. 그러니 내게로 와요. 당신은 내 거야!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끝마칠 수가 없었다. 이상했다. 주르륵 복부에서 흘러내리는 피가 그녀의 다리를 타고 땅바닥으로 뚝뚝 떨어졌다.
“무슨....?”
레베카가 구멍이 뚫려버린 복부에 손을 가져다댔다. 믿을 수 없게도 그곳의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었다.
왜?
죽길 원했을 때엔 원망스럽게도 아물던 상처가 왜 그녀가 필요한 순간에는 아물지 않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레베카의 몸이 순식간에 스르륵 바닥으로 추락했다.
태상은 몸을 움직여 그녀의 몸이 바닥에 쓰러지지 않도록 안아들었다. 그게 그녀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동정이었다.
“오, 오...오빠...”
레베카가 숨을 헐떡였다.
“내 능력이 무력화라는 걸 잊었나보네.”
“아......”
그럴 수 있을 줄은 몰랐다. 레베카는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알았다면 다른 선택을 했을까? 그의 손에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레베카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그녀는....
“죽고 싶지..않아요.”
아직은 죽고 싶지 않다.
그를 다시 한 번만 더 갖고 싶었다. 한 번만 더 그 꿈을 꿀 수만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태상은 매정하게도 그녀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 없었다.
“죽지 않으면 뭘 할 거지?”
레베카는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이게 죽음이구나.’
죽음이 뭔지 알 것 같았다. 힘이 없지만, 태상의 물음에 꼭 답해주고 싶었다.
“오..빠를.....오...빠..를....가..질.....흐윽!”
레베카는 끝까지 태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만약 그녀가 여기에서 후회하고 있다고, 다신 그러지 않겠노라고 진심을 다해 대답했다 해도 태상은 그녀를 구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가족을 해칠 위험이 있는 이를 살려 둘 리가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태상은 한 번 더 그녀를 고통스럽게 해도 되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무력화가 채 끝나기 전에, 숨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
태상은 그녀의 시신을 바닥에 내려놓고, 혜연에게 전화를 걸려 했다. 구조대가 도착하면 그녀의 시체를 가지고 가서 수습을 해주길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그의 바람일 뿐이었다.
여왕은 시체를 남기지 않았다.
어디선가 날아 온 바람이 가루가 된 그녀의 몸을 함께 데리고 사라져버려 시체를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는 조금 허망한 표정으로 레베카가 있던 곳을 바라봤다.
조금이라도 그에게 감성적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면, 태상은 그녀를 위해 애도를 해줬겠으나 더 이상 그럴 시간은 없었다. 일행을 따라 잡으려면 빨리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시체라도 있었다면 마음의 짐이 좀 덜 했을 텐데 말이다.
아쉬운 일이지만 태상은 미련을 털어버리고 움직였다.
악마들이 대피소를 공격했다. 그렇다면 우리 쪽에서도 뭔가를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저들이 먼저 수를 쓰기 전에 말이다.
**
토다베스는 자신의 군대를 바라봤다.
더 이상 대악마가 토다베스 한 명밖에 없는 상황인지라 강제적으로 그들 모두가 토다베스의 소속이 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토다베스가 대악마들 중 가장 힘이 약하다고 알려진 것이었다.
토다베스는 자신의 야망을 숨기기 위해 대악마들 사이에서 힘보단 머리를 쓰는 편이라는 것을 주입시켰다. 해서 다른 악마들도 그가 가장 약하다고 알게 된 것이다.
그들은 자신을 모시던 대악마를 쉽게 잊지 못했다.
더욱이 모시던 대악마보다 힘이 약하다고 알려진 토다베스를 주군으로 모셔야 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었고 말이다.
토다베스 또한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손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인간계를 정벌하고, 건방진 인간을 죽이기 위해서는 그들을 모두 자신의 손아귀에 넣어야 했다.
“우린 그대의 말을 듣지 않겠소.”
결국 악마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드러내고 반발하는 악마가 나타났다.
토다베스가 군대를 끌고 가 인간계를 공격하라고 했는데, 그것을 한 악마가 하지 않겠다 나선 것이다.
“그대는 우리가 모시는 대악마가 아니오. 그대가 우리에게 명령을 할 권리는 없소.”
“우린, 우리들끼리 인간계를 접수할 것이오. 그리고 그 접수한 땅은 그대의 것이 아닐 거요.”
뜻을 모은 악마들이 모여서 대항하면 그도 어쩔 수 없을 거라는 계산속이었다.
“커허억..!!”
하지만 잠시 후, 그들은 토다베스의 발아래 엎드려 피를 토해내야 했다.
순식간에 A등급 악마 수십의 배에 구멍을 뚫은 토다베스가 씨익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온 몸을 저릿하게 만드는 기세가 결코 그들이 모시던 대악마에 뒤지지 않았다.
아니, 그들 모두를 압도하고 있었다.
“나 대악마 토다베스의 아래에 무릎 꿇어라!!”
주변에 그를 지켜보던 수많은 악마들이 갑자기 풀린 그의 존재감에 저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 그가 어떻게 이렇게 강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지만 누구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들의 세계는 ‘약육강식’.
강한 자의 발아래 무릎을 꿇는 것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았다.
전보다 강한 주군을 섬길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면 모를까 말이다.
“나 토다베스는 인간계를 정복하고 천계와 인간계 그리고 마계 모두의 군주가 될 것이다! 그것에 불만 있는 자들은 내 앞으로 나와라! 직접 상대해주겠다!!”
그의 앞으로 나오는 이는 없었다. 더 이상 그가 그들의 위에 군림하는 것에 반대하는 이도 없었고 말이다.
토다베스는 그렇게 순식간에 악마들을 휘어잡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그가 걱정해야 할 것은 악마들이 아니었다. 그를 죽이기 위래 달려오고 있는 태상 일행을 걱정해야 했다.
“왜 소식이 없는 거지?”
토다베스는 여왕과 거래를 했다. 그녀는 마계에서 만났던 건방진 놈의 약점을 안다며 군대를 주면 데려오겠노라 약속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왕에게서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토다베스는 자신이 속은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으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닐 것이다.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간절했었다. 그런 눈빛을 한 이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는 없었다.
여왕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면, 작전에서 실패를 했을 지도 몰랐다.
그때!
“토다베스님!!”
다급하게 그에게 소식을 전하러 온 이가 있었다.
“지금 최전방이 공격당하고 있습니다. 인간들이 선제 공격을 했습니다!”
토다베스의 미간에 주름이 만들어졌다.
인간들의 선제 공격이라.....
놈의 약점을 데려오겠다고 했던 여왕에게서 소식이 없는 지금, 마냥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순 없었다. 토다베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본격적으로 전쟁을 해야 할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그는 태상이 자신의 근처까지 왔음을 모르고 있었기에 전쟁에 정신이 쏠려 있었다.
“인간들이 아직까지 나의 군대의 무서움을 모르고 있군! 카샨!”
“토다베스님의 명을 받습니다!”
카샨이라고 불린 악마가 그의 발 치에 무릎을 꿇었다.
“나의 군대를 데리고 가서 저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와라!!!”
카샨은 A등급 악마로 토다베스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가 이끄는 군대는 공중에서 싸우는 원거리 군대였다.
“다르만!”
“예! 토다베스님!”
토다베스가 다른 악마에게 말했다.
“나의 군대를 이끌고 가서 저들에게 악몽을 선사해주거라!”
다르만은 육지를 맡아 인간들을 상대하게 될 것이다.
다르만과 카샨이 함께 대답했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그동안 인간들이 상대하던 악마들은 오합지졸이라고 생각하면 됐다. 하지만 이제부터 공격하게 될 악마들은 토다베스의 훈련받은 군대였다.
인간들은 아마 순식간에 무너지게 될 것이다. 하늘과 땅에서 쉬지 않고 몰아치는 공격을 그들이 견뎌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얼마 남지 않았구나.'
놈의 약점을 얻을 수 있다는 여왕의 제안이 여전히 토다베스를 아쉽게 만들었지만, 상황이 이리 되었으니 다른 방법을 써야 겠다는 생각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많은 계획들이 설계되어 있었다.
어차피 여왕과의 일은 되도 그만, 안 되도 그만인 일이었다.
토다베스의 얼굴에 승리를 확신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
태상은 기지를 빠져나가는 엄청난 수의 악마를 보고 있었다.
"엄청난데?"
"최전방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
하늘을 시커멓게 수놓으며 지나가는 악마들과 땅에 거대한 줄기를 만들면서 움직이고 있는 악마들을 보며 태상은 아무래도 최전방이 제법 시끄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어서 빨리 그들이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지금 현재 상황은 성희의 장거리 능력 쿨타임이 모두 사라진 시간이었다. 혜연이 기습공격을 시작할 시간이었고 말이다.
"저들이 최전방에 도착하기 전에 토다베스를 죽여야 해. 그렇지 않으면 일이 커질 거다."
아무래도 대피소를 호위하는 이들까지 모두 데리고 나와야 겨우 저들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민간인들이 위험해진다.
그것을 토다베스가 노리고 군대를 보낸다면 일은 더욱 심각해질 게 분명했다.
최선의 방법은 태상 일행이 그를 죽이는 것밖에는 없었다.
"방법이 하나밖에 없으니 갈등 할 필요가 없어서 좋긴 한데, 언제 시작 할 거야?"
사로나가 태상에게 물었다.
"저 군대가 시야에 사라질 때, 시작한다."
저들의 군세가 생각보다 더 어마어마해서 걱정 되긴 하지만, 저들이 빠져나간 토다베스의군기지의 병력이 줄어들게 된 셈이니 아예 나쁜 일은 아니었다.
태상 일행은 저들이 모습을 감출 때까지 숨 쉬는 것도 자제하며 기척을 줄였다.
그리고, 태상은 드디어 일행에게 손짓했다.
"시작한다."
군기지를 치는, 그들의 습격이 드디어 시작됐다.
"컥!"
짧은 단발의 비명을 지른 채 악마가 바닥에 쓰러졌다. 태상은 기지에 들어 왔을 때부터 자신의 능력을 아끼지 않았다.
사방에 있는 악마들에게 자신의 무력화를 사용했고, 그들은 일행의 손에 순식간에 목숨을 잃어야 했다.
어떤 등급의 악마이건 상관없었다. 그들 모두 일격에 목숨을 잃었다. 일행은 자신의 손에 너무나도 허무하게 죽어나가는 것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매번 봤던 거긴 하지만, 이 능력은 사기여도 너무 사기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두 편 올라갑니다.
다음편은 17분에 올라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