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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229화 (229/251)

00229  침략  =========================================================================

토다베스가 한 약간의 장난질로 일행들은 다수결로 하자며 태상에게 의견을 보였다. 아무래도 태상의 길드원들 빼곤 모두가 토다베스와 거래를 하는 것에 찬성을 하는 모양이었다.

토다베스가 일이 성공적으로 해결됐다는 생각이 들었을 무렵, 갑자기 태상이 아! 하고 뭔가 깨달은 듯 말했다.

“뭐야, 갑자기 다들 왜 저러나 했더니 또 수작질을 부린 거였어?”

“......!”

토다베스는 그의 말을 듣고 자신의 수가 들켰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안 거지?’

저 인간은 도통 그의 짐작대로 움직여주질 않는다.

모든 게 다 그가 의도한 대로 되었다. 해서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피해 없이 천계의 심장을 얻을 수 있는 그의 계획이 완벽하게 진행이 된 것이다. 이보다도 만족스러울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태상의 말 한 마디에 엉망이 된 것이다. 토다베스가 마치 제대로 정곡을 찔렀다는 표정이자 태상이 자신의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사샤가 말했었지. 그 수작질을 누가 했는지에 대해서 말이야.”

태상이 이어서 말했다.

“인간들에게 호의적인 척 하고 있으면서 뒤로 또 수작질을 부리고 있잖아? 잘도 거짓말을 하는네. 좀 부끄럽지 않아? 나 같으면 창피할 것 같은데.”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군.”

토다베스가 시치미를 떼며 말했지만, 속으로는 설마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태상은 찌르르한 통증을 내고 있는 천계의 심장이 아니더라도 알 수 있었다. 놈이 수작질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네놈들은 항상 그렇더군. 새치 혀로 번지르르하게 말을 하고 결국은 배신을 하지. 그리고 상황을 봐. 네놈들이 우리한테 평화협정이니 뭐니 그런 걸 제안할 수 있는 위치라고 생각하는 거냐?”

대악마는 토다베스 혼자 남았고, 태상은 그를 죽일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잖아. 이제 지게 될 놈들이 살려달라고 비는 것도 아니고, 평화협정을 하자고? 천계의 심장을 주면 봐주겠다고?”

일행들은 태상의 말에 어쩐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도, 토다베스도 태상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네 말대로 우린 대악마 4명을 죽였다. 대악마는 네놈 혼자 남았지. 너만 죽이면 저 악마들은 더 이상 인간계를 공격하지 못해. 왜? 인간계에 내가 있으니까. 내가 악마들을 가만히 두지 않을 거거든.”

어라?

“너희는 패배할 거고, 우린 승리할 거다. 패배한 놈이 승자한테 살려달라는 것도 아니고 살려주겠다고 제안을 하는 걸 도대체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 거야?”

일행들이 서로 시선을 번갈아 주며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토다베스는 태상의 말에 얼굴을 와락 일그러졌고, 일행들은 뭔가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그러네?

이기고 있는 건 그들이다.

5명이었던 대악마를 4명이나 죽였다. 이제 한 명밖에 남지 않았는데, 뭐 하러 협정을 맺는단 말인가. 뿌리를 뽑을 수 있는 일을 찝찝하게 끝낼 이유가 없었다.

“차라리 살려달라고 빌지 그랬어. 그랬다면 조금은 혹했을지도 모르겠는데.”

뭐, 그래봤자 대악마를 살려 두진 않았겠지만.

일행들은 당당하게 말하는 태상을 바라보며 자신들이 무슨 어이없는 생각을 했는지 깨달았다. 굳이 태상이 무력화를 쓰지 않아도 그들은 토다베스의 힘을 튕겨냈다. 그들의 정신력이 강해진 것이다.

그들은 치열하게 싸웠고,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굳이 적에게 천계의 심장을 받쳐 평화를 이룰 필요가 없다.

“아.....”

정신이 돌아 온 일행들은 자신이 다수결이니 뭐니 하는 말을 하며 태상에게 불만을 품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왜 무모하게 끼어든 거지?

그토록 철썩 같이 믿었던 태상이 옳지 못하다고 생각했었던 걸까?

그들은 마른세수를 하며 깊게 한숨을 쉬었다. 누군가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지 손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었고 말이다.

“그리고 네놈이 수작을 부릴 때마다 천계의 심장이 자꾸 경고를 해서 귀찮아 죽겠거든? 그만 좀 할래? 이놈한테 유감이 아주 많은데, 자꾸 이런 식으로 도움받는 거, 기분 별로거든.”

천계의 심장이 이런 짓을 하는 게 썩 좋진 않지만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얌전한 척 하며 도움을 주다가도 배신을 때리는 놈이었다. 반드시 파괴해버리고 말 거라 다짐, 또 다짐하는 중이었다.

“감히....그런 말을......!”

토다베스는 태상이 준 굴욕에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니까 왜 자꾸 시간을 낭비하냐고. 쓸데없이.”

그냥 처음부터 싸웠으면 이렇게 시간 끌지 않고 벌써 결론이 났을지도 몰랐다. 태상이 무척 짜증났다는 듯 삐딱하게 서서 말했다.

“머리 쓰는 걸 좋아하는 모양인데, 미안하지만 나도 한 머리 하는 사람이야.”

“......”

태상이 쯧쯧거리며 혀를 찼다.

태상의 말에 모든 일행의 정신에서 그의 힘이 튕겨져 나왔다. 그는 자신이 태상에게 졌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그의 의도대로 움직여주는 이는 없었다.

“...확실히 만만치 않은 놈이긴 하구나.”

토다베스는 놈을 잘못 생각해도 한참 잘못 생각했다.

“그래도 나름 자비를 주려고 했건만....”

태상이 천계의 심장을 주고 거래를 했다면, 인간들을 모두 죽이지 않고 노예화 시키는 것으로 끝내려 했다. 애초부터 그의 계획은 인간들을 노예로 부릴 생각이었기에 문제는 없었다.

그에겐 천계의 심장을 흡수할 시간이 필요했고, 인간들은 살 수 있는 시간을 더 벌었으니 나쁘지 않는 거래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모든 게 저 인간 한 놈 때문에 엉망이 된 것이다.

토다베스는 계획이 틀어지는 것을 무척이나 싫어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저 건방진 인간 때문에 엉망이 됐다. 그는 놈을 죽이지 않으면 영영 자신의 계획대로 일을 진행할 수 없게 될 것을 깨달았다.

“애초부터 네놈을 죽였어야 했었어. 그게 나의 실수였다.”

토다베스가 진심을 내뱉으며 주변에 살기를 흩뿌렸다.

“역시 거짓말이었네.”

사로나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당연히 거짓말이지. 인간 놈들은 노예로 족하니까. 평화협정? 큭큭, 어리석은 인간들이 거의 다 넘어왔는데, 저놈 때문에 아쉽게 됐구나.”

“뭐?! 저런 나쁜...!!!”

“개자식..!! 역시 악마들을 믿으면 안 되는 거였어!”

그의 말에 잠깐 현혹됐던 일행이 분통을 터트렸다. 악마가 얼마나 가증스러운 놈들인지 새삼 깨달은 것이다.

잠깐 미쳤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유혹적이었어도 그렇지, 악마의 말을 믿을 생각을 하다니....!

그놈들이 누구인가.

얼마나 증오스러운 놈들인가!

토다베스의 기운이 모두 사라지자 그들은 혼란을 감추지 못했다. 태상은 일행에게 말했다.

“저놈이 수작질 부린 거니까, 혼란은 접어둬.”

제대로 된 정신이 붙어 있는 상황에서 그랬다면 태상은 크게 화가 났을 것이다. 흔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토다베스가 진심으로 그런 제안을 했다면 태상은 받아 줬을 지도 모른다.

토다베스를 죽인다 해도 남은 악마 잔당들을 상대하려면 어쩔 수 없이 죽는 사람이 나오게 될 것이다.

그러니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협정을 맺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태상은 악마를 믿지 않았다. 천계의 심장을 가지려 하는 놈이 진심으로 그에게 평화협정을 제안한 게 아니라는 걸 태상은 확실하게 알았다.

토다베스가 몸을 뒤로 뺐다.

더 이상 말로써 놈들을 건드릴 수 없으니 작전상 후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 사샤가 당하기 전에 인간들을 함께 해치워 일을 해결하고 난 후, 그를 죽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가 짐작한 것보다 훨씬 빨리 사샤가 당해버렸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태상에게 그런 제안을 했던 거였다.

그런데 일이 틀어져 버렸다. 토다베스는 지금은 자신이 뒤로 물러나야 할 때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힘이 생각보다 너무 강했다.

토다베스의 수상한 몸놀림에 태상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설마 꽁무니를 빼는 건가?”

태상의 물음에 토다베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지금보단 나중을 기약하는 게 서로에게 더 나을 것 같군.”

“난 그거에 동의하지 않는데 어쩌지?”

태상이 말을 끝내마자 땅을 박차고 뛰었다. 그의 신형이 빠르게 토다베스를 향해 쏘아졌다.

토다베스는 태상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는데도 씨익 웃음을 지었다.

“설마 내가 위험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이곳에 진짜 왔을 거라 생각하는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태상의 손이 토다베스의 몸을 잡으려는 순간이었다.

“다음 만남은 인간계에서 보지.”

토다베스의 몸이 있는데도, 태상의 손은 허공을 움켜쥐었다. 토다베스의 몸이 흐릿해지며 흔적을 찾을 수 없어졌다. 그의 목소리가 허공으로 퍼져 사라졌다. 그리고 그의 몸도 함께 말이다.

태상은 그가 애초부터 피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기에 피하지 않은 거였다.

“실체가 아니었군.”

태상이 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놈은 처음부터 이곳에 있었던 게 아니었던 것이다. 영악하게도 놈은 자신의 모습을 한 환상을 보내 우리들을 감쪽같이 속였던 것이다.

하필이면 그걸 몰랐다니.....

이제 다 끝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도망을 가버렸으니, 앞으로 놈을 잡으려면 고생을 더 해야 할 듯 했다.

토다베스라는 놈은 지금까지 상대했던 악마들과는 달리 머리를 쓸 줄 아는 놈이었다. 그러니 그에게 인간계에서 보자는 소리를 한 것일 거다. 그는 태상이 가장 꺼려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마계에서 모든 일을 해결하려 했는데, 놈 때문에 태상의 계획이 엉망이 될 듯 싶었다.

그는 아직도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일행에게 말했다.

“인간계로 돌아간다.”

토다베스가 인간계에서 만나자고 했으니 그곳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러니 태상도 그를 막기 위해선 인간계로 돌아가는 게 맞았다.

“드디어...돌아가는 건가.”

일행들은 일을 제대로 다 끝마치지 못하고 인간계로 돌아간다는 것에 찜찜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간다는 것 자체는 좋은지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이내 태상이 일행을 바라보며 말하자 표정을 굳혔다.

“다들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놈이 머릿속을 조정할 수 있는 건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태상은 사로나, 아이라 같은 이들은 능력이 통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다른 일행들은 악마의 말에 현혹되어 흔들렸고, 그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당한 자와 당하지 않은 자들의 차이일 것이다.

그러니 즉, 그들에게 머릿속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또 다시 놈의 수작에 당해서 민폐를 끼치는 건 곤란합니다.”

““......””

다들 태상의 지적에 할 말을 잃고 고개를 숙였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숙연해져 버린 것이다. 잠시 침묵하던 그들 중에서 유독 심하게 반응을 하며 악마와 동맹을 맺자 했던 이들이 나와 태상에게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죄송합니다.”

“저희들 때문에 일을 망칠 뻔했네요. 멍청했어요. 저 놈들이 어떤 놈인데....”

아마 이번 일 때문에서라도 그들은 더 이상 태상의 말에 반발을 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토다베스의 능력 때문에 그런 거라 해도 이런 일은 확실하게 해야 했다.

“좋아요, 그럼 세 번의 실수는 없는 걸로 합시다. 우린 벌써 놈한테 두 번이나 당했습니다. 이제 당한 걸 갚아 주자고요.”

그럴 시간이 왔다. 그리고 일을 끝내려면 그렇게 해야 하고 말이다.

“성희야.”

“네.”

“준비해.”

“네!”

그녀의 능력이 필요한 때가 왔다. 인간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토다베스가 그곳을 위험하게 만들기 전에 막아야 했다. 그리고 그것이 태상 일행의 사명이었고 말이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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