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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228화 (228/251)

00228  침략  =========================================================================

평화협정.

당연하게도 그것은 악마들이 더 이상 인간계를 침략하지 않기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악마들이 인간계를 침략하지 않기로 한다면, 인간들은 무엇을 내어주어야 하나.

토다베스가 원하는 것은 당연하게도 천계의 심장이었다.

“본래 우리들은 그것을 갖길 원했다. 그것만 있으면 굳이 인간계까지 손을 쓸 이유가 없었어. 네가 가진 천계의 심장을 내게 준다면, 나는 악마들이 다시는 인간계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하겠다.”

웅성웅성

태상은 무척이나 황당하다는 듯 토다베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애초부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되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다른 이들도 그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분명 흔들리고 있었다. 태상이 천계의 심장을 파괴해버리고 말겠노라 말하던 것을 똑똑히 들었다. 어차피 파괴할 거 그냥 주면 어떨까 하는 안일한 생각이 그들의 머릿속을 사로  잡기 시작했고 말이다.

버리려고 했던 것을 주는 대가로 악마들과 더 이상 싸우지 않아도 된다는데,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는 조건이 아니겠는가.

토다베스는 여론이 몰리면 아무리 놈이라도 흔들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동안 나는 다수의 대악마들의 의견에 따라야 했다. 하지만 알다시피 이젠 그 대악마들이 없지. 덕분에.”

토다베스는 여론이 부러 몰리도록 계속해서 의도적인 말을 내뱉었다. 그들이 바라는 말들을 해주면서 말이다. 정말이지 그들에겐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었다. 그 유혹이 위험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넘어가고 싶지 않은 이들은 몇 없었다. 눈앞에 이익이 있는데, 나중을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그거 그냥 줘버리면 안 됩니까?”

“어차피 파괴한다고 하셨잖아요. 악마한테 그걸 넘겨주고, 저희들이 살 수 있는 거면 정말 좋은 거 아닐까?”

그리고 역시나 태상 일행은 그 유혹에 넘어가버렸다. 태상은 토다베스의 가증스러운 입을 꿰매 버리고 싶었지만,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지금 상황이 무척이나 웃기고 어이가 없어서 한숨을 깊게 쉬었다.

“다시 한 번 말한다. 난 악마와 그 무엇도 하지 않는다.”

정말 다들 모르는 건가? 내가 설명을 해줘야 아는 거야? 태상은 조금 불만스럽게 일행을 바라봤다. 하지만 일행들은 태상의 말에 실망을 금치 못하고 있었던 지라 그의 시선의 의미를 알지 못했다.

토다베스는 그것을 지적하면서 말했다.

“네 부하들이 많이 실망한 걸로 보이는데? 혼자의 독단으로 생길 많은 이들의 목숨 값을 어떻게 책임지려고 하는 거지? 난 제안했다시피 평화를 원한다. 악마라는 이유로 모두가 그대들의 적이라는 생각은 말아줬으면 좋겠군. 그건 좋지 않은 흑백논리야.”

토다베스는 자신의 작전이 실패한 이유를 태상과 그 부하들의 관계가 두터워서라는 것으로 짐작했다. 작전이 먹히지 않은 것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지금은 그걸 이용할 때였다.

다수의 의견이 모이면 태상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줄 수밖에 없을 거란 계산속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잘못 생각을 한 거였다.

만약 그들의 관계가 그랬다면, 토비는 진작 목이 달아나야 했다. 태상이 일방적으로 일행에게 자신의 의견을 통보했고, 그들은 태상을 거역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지금 토다베스가 하는 것은 소용이 없는 얘기라는 뜻이었다.

“그만! 더 이상 들어 줄 수가 없네. 그만 하자고. 그 쓸데없는 주둥이 그만 놀려. 듣고 싶지 않으니까.”

태상은 웅성거리며 토다베스의 말에 현혹되는 일행에게 무거운 음색으로 소리를 쳤다. 일행들 사이에서 들리던 목소리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침묵이 돌았다.

그들 모두 태상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토다베스는 그 모습을 보며 눈썹을 찌푸렸다.

태상이 마나건을 들어올렸다.

“난 천계의 심장을 파괴할 거다. 이걸로 네놈과 거래할 생각은 없다. 인간계와 싸우지 않겠다고? 조건이 천계의 심장이라고 했을 때부터 네놈의 시커먼 속이 다 보이더군. 아니 그리고 내가 왜 그런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하는 거야? 그쪽, 머리가 돌머린가?”

천계의 심장을 달라는 것은 절대 평화협정의 조건이 될 수 없었다. 태상은 대악마들 사이에서 가장 머리가 좋아 사령관이 되었던 토다베스에게 돌머리라는 모욕을 서슴치 않았다.

“허어....이렇게 진심을 몰라줘서야. 서운한데.”

태상에게 모욕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토다베스는 끝까지 연기를 멈추지 않았다. 일행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태상은 그런 일행의 동요를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빼곤 이곳에서 지금 상황을 제대로 보는 이가 없는 모양이었다.

“가증스러운 짓 좀 그만하고, 서로 할 거 하자고.”

“내 말을 왜 이렇게 곡해해서 듣는 거지? 설마 내게 천계의 심장을 주기 싫어서 이러는 건가? 그것에 담긴 힘에 탐욕을 느끼고 있는 거 아니냔 말이다.”

토다베스는 계속해서 거짓말을 했다. 자신이 천계의 심장을 갖는 것은 정당하다고, 그가 주지 않는 것은 이기심 때문이라고 일행들이 믿도록 말이다.

어서 넘어와라, 어리석은 인간들이여!

유혹적이지 않은가? 그대들이 더 이상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말이야.

토다베스의 힘이 아무도 모르게 천천히 그들의 머릿속을 지배하려 하기 시작했다. 태상의 말 한 마디에 입을 꾹 다물 줄은 생각지 못했다. 지금 이 상황은 그에게 유리하지 못했다.

토다베스는 그들의 머릿속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말대로 되면, 펼쳐질 평화로운 세계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유혹적일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제안이었다. 그들의 머릿속에 토다베스는 선으로, 태상은 이기적인 악으로 여기도록 만들었다. 그의 힘이 스멀스멀 움직여 일행들의 머릿속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네놈이 천계의 심장을 갖고 고작 그딴 거나 하겠다고? 웃기지도 않는 소릴 하는 군. 그보다 제안을 할 거면 빤히 보이는 거짓말 말고 다른 걸 해봐. 혹시 레베카를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든지 그런 걸로 말이야.”

안타깝게도 토다베스는 레베카가 누군지 몰랐고, 사샤와 관련 된 일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도 없었다.

“레베카? 그게 뭔지 모르겠지만, 그대가 원하는 것이 따로 있는 건가?”

“사샤라는 놈이 계약자로 만들었지. 덕분에 레베카는 계속 새끼악마를 낳아야 하는 저주에 걸렸어. 그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나?”

태상은 기왕 장단을 맞춰줄 거, 포기했던 레베카의 일에 대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물었다. 토다베스는 고작 그딴 걸 지금 이 중요한 대화에 끼게 하는 그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그건 나의 힘을 떠난 문제인 것 같군. 그런 건 사샤와 얘길 했어야지.”

“쳇!”

토다베스는 아무래도 못 하는 듯싶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 그의 말을 듣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태상이 마나건을 놈에게 겨눴다. 그러면서 말을 이어 했다.

“그럼 됐어. 너랑 거래하지 않는다. 이게 내 대답이야. 그럼 이제 싸우자고?”

“잠깐만요!”

그때, 태상의 말을 막는 이가 나타났다.

“왜 이 거래를 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지? 사장, 이 문제는 독단으로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야. 우리들 의견은 묻지도 않고 혼자서 결정하는 건 아니라고 봐. 우리 의견도 들어줘!”

“맞아요. 천계의 심장, 어차피 파괴하려고 한다면서요. 그냥 줘버리고 깔끔하게 일 끝내자고요. 설마 진짜 저 악마가 한 말처럼 천계의 심장을 주기 싫어서 거절하는 거 아닙니까?”

일행의 말은 태상의 화를 돋우는 소리였다. 그가 진심으로 천계의 심장을 이용할 생각이 있었다면 벌써 손을 썼을 것이다. 그건 태상이 취할 이유가 없는 힘이었다. 이건 세상을 혼란하게 만들지,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지 않는다.

토다베스는 그걸 알고 있었고, 그가 탐욕스럽지 않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왜 힘을 탐하지 않는가.

토다베스는 그런 태상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계나 천계나 힘은 남들보다 위로 올라가게 만들어준다.

탐욕을 쫓는 것은 당연한데, 그는 그렇게 하질 않는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토다베스는 그를 조정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까다로운 놈들은 몇 되질 않는다.

“내가 천계의 심장이 가진 힘을 탐내고 있다고?”

태상의 시선을 받은 일행이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다.

당장이라도 태상이 총을 쏠 것 같아서 나서긴 했지만 후폭풍이 무서운 모양이었다.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네놈이 탐욕스럽게 심장을 바라보니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네놈의 말은 작은 진실에 덕지덕지 거짓말을 섞어 놓고 있어. 천계의 심장이 가진 힘이 탐났다면 난 벌써 이 힘을 이용하고 있어야 하는 게 맞는 거 아닌가?”

“좋다, 그대가 천계의 심장을 주기 싫어 거절한다는 말은 철회하지. 하지만 나에겐 천계의 심장이 필요하다. 천계가 무너지는 바람에 마계의 균형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 무너진 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천계의 심장이 필요해. 그러니 인간계를 침략하지 않는 대가로 그게 필요한 거다.”

천계의 심장을 갖게 되면 천계를 무너진 그곳을 다시 일으키고, 마계와 합칠 생각이긴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천계의 심장을 이용하는 걸 끝내진 않을 것이다.

태상의 말대로 토다베스는 작은 진실에 거짓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었다. 이미 태상에겐 모두 까발려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뻔뻔하게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잘 생각해야 할 거다. 천계의 심장이 오른팔에 박혀 있으니 팔이 잘리기 싫어 그러는 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다. 네 오른팔은 내가 책임지고 훨씬 성능이 좋은 놈으로 달아줄 수 있으니까. 이렇게까지 배려해주겠다는데, 정말 거절할 생각인가? 단순히 내가 악마라는 이유로?”

토다베스는 지금 이 순간, 그의 일행이 다시 한 번 말을 해야 하는 때라고 생각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의 기운이 일행들의 머릿속을 더욱 깊게 파고들자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전 그의 말이 옳은 것 같습니다. 아무리 악마라지만, 저렇게까지 동맹을 제안하는데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나요? 우린 전쟁을 막기 위해 싸워왔고, 그가 제안하는 게 우리들이 바라는 거잖습니까.”

“맞아. 인간들도 좋은 인간이 있고, 나쁜 인간이 있듯이 악마들도 똑같을지도 몰라. 그가 좋은 악마일 수 있다고.”

그렇지!

토다베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대들의 일행도 저렇게 바라지 않나. 악마들이라고 마냥 파괴만 일삼진 않는다. 너의 어리석은 선택에 많은 이들이 피를 흘리게 될 거다. 무의미하게, 분명 피할 수 있는 일인데도 말이다. 희생 될 많은 이들의 목숨을 네놈이 책임질 수 있나?”

그럴 자격이 있어? 네놈이?

토다베스는 이 정도 되면 그가 넘어올 수밖에 없다 여겼다. 아니, 그가 넘어오지 않아도 다른 이들이 넘어왔으면 되는 일이었다.

영원한 아군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는 법이다.

믿었던 동료에게 배신당해 일그러질 놈의 얼굴을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일행들의 표정을 보니 거의 대부분 그의 말에 넘어 온 눈치였다.

“그냥 줍시다. 예?”

“맞아요 사장님. 저거 하나 주는 걸로 인간계가 평화롭게 되는 거잖아요. 우리들이 바라는 거라고요.”

“나도 찬성이야. 이 문제는 다수결로 해야 한다니까?”

웅성웅성

다수결로 하자고, 이런 문제는 태상 혼자서 결정해선 안 되는 문제라는 말이 사방에서 튀어나왔다. 태상 빼곤 모두가 같은 생각인 듯싶었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태상의 편을 드는 건 사로나, 아이라, 카살라 같은 길드원들 뿐이었다.

그들은 악마들이 얼마나 가증스러운 놈들인지 알고 있었기에 그랬다.

확고한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그들은 토다베스의 수작질에 당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흔들리고 있었던 다른 일행은 그러질 못했다.

레베카의 일을 봤을 때에도 사샤는 그녀에게 과거로 보내주겠다고 해놓고 최면같은 것을 걸어 꿈을 꾸게 만들었다. 결론적으로 봤을 때, 그는 레베카를 과거로 돌려보내주지도 않고 여왕으로 만든 거였다.

악마들의 말은 그만큼 믿어선 안 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머릿속에는 토다베스가 그들과 같은 악마라는 사실이 들어 있지 않았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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