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5 침략 =========================================================================
쾅!!
사샤가 짜증이 난다는 듯 테이블을 주먹으로 쳤다.
그러자 순식간에 두 갈래로 테이블이 쪼개졌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그를 비난하지 않았다. 그가 화를 내는 것을 충분히 이해를 했기 때문이다.
“.....”
토다베스는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가 말을 잃은 것은 당연하게도 그의 계획이 제대로 먹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거지? 또 같잖은 계획이니 뭐니 들먹이면서 날 막을 건가?”
사샤가 으르렁거리며 물었다. 토다베스는 침을 삼키며 말했다.
“아직 다른 계획을 실행해도 충분한....!”
사샤가 여전히 계획을 들먹이는 토다베스의 말을 끊었다.
“계획! 계획! 그놈의 계획!!!”
“........”
“지금까지 성질 죽여 가면서 네놈 말을 따랐다! 그런데 지금까지 얻은 게 뭐지? 도리어 저놈들의 같잖은 동료애만 높여준 꼴이 됐잖아! 한 명도 죽질 않았다고!”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분명 먹힐 수였는데....아무래도 변수가 있었겠지.”
그리고 그 변수는 천계의 심장일 것이다.
토다베스는 자신의 계획이 먹히지 않았다는 것에 크게 자존심이 상해있는 상태였다.
“이제 내 말 들을 거지? 네 계획이 실패했으니 내 계획대로 움직이자고!”
사샤가 그렇게 한다면 실수를 봐주겠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토다베스는 그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게 계획이라고 할 수 있나? 무식하게 군대를 이끌고 그놈들에게 쳐들어 가는 게?”
토다베스는 사샤의 그런 무식한 의견을 계획이라고 할 수 없다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럼 또 무슨 다른 방법이 있다는 건가? 애초부터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굴 필요가 없었다고! 그냥 우리 둘이 힘만 합쳤어도 저놈들은 벌써 죽고 나가떨어졌을 거다. 네가 겁에 질려서 이따위 같잖은 수만 쓰지 않았어도 말이야!”
사샤가 정말 답답해서 죽겠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른 방법을 좀 더 강구해보는 게 좋겠다.”
토다베스가 물러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샤는 그의 말속에서 뭔가를 깨닫고 말했다.
“이제보니 네놈은 애초부터 나와 힘을 합칠 생각이 없었구나?”
“.......”
“뭘 꾸미고 있는 거지?”
사샤의 신형이 순식간에 움직여 토다베스의 멱살을 잡아챘다.
“말해! 뭔가 꾸미고 있는 거지?! 그렇지 않고서야 네놈이 이렇게 우길 이유가 없어!”
평소 놈의 속이 시커멓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불쾌한 놈일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었다. 해서 사샤는 자꾸만 우기는 토다베스의 모습을 보며 깨달은 것이다. 놈이 애초부터 그와 손을 잡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말은 그렇게 해도 토다베스의 눈동자는 차갑게 번쩍이고 있었다. 사샤와 토다베스의 주변에 살기가 넘실거렸다. 만약 근처에 애꿎은 악마들이 있었다면 그들의 기운만으로도 숨이 막혀 움찔움찔 몸을 떨었을 것이다.
“그래, 빌어먹을! 나도 네까짓 놈이랑은 더 이상 못 해먹어!”
사샤가 놈의 멱살을 더럽다는 듯 놔버렸다.
토다베스는 그를 바라만 볼 뿐 어떠한 변명의 말도 하지 않았다. 저게 바로 침묵의 긍정이라는 것일 것이다.
그도 자존심이 있지, 자기랑 동맹 맺고 싶은 생각 없는 놈한테 더 이상 구걸하고 싶지 않았다.
“빌어먹을 새끼! 어디 혼자서 얼마나 잘해먹는지 한 번 보지! 알아서 한 번 잘 막아 보라고.”
사샤가 거친 욕설을 뱉으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토다베스는 사샤가 사라지자 큭큭...하고 음산한 웃음을 토해냈다.
“어리석고 멍청한 놈들....하긴, 그러니 인간 놈들한테 당했겠지.”
토다베스는 혀를 차며 참아 왔던 기운을 퍼트렸다.
그동안 숨겨왔던 그의 기운이 주변에 퍼지자 그의 기척을 느낀 악마들이 절로 무릎을 꿇고 그에게 경외를 표했다.
토다베스는 자신의 손을 움켜쥐었다.
“어차피 죽였을 놈들을 미리 죽여줘서 편하긴 하다만, 슬슬 거슬려 지기 시작하는 군.”
토다베스의 어깨에 매달려 있는 망토가 휘날렸다.
사실 그에겐 애초부터 다른 계획이 있었다.
그는 천계의 심장을 대악마들과 나눌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모르지만, 애초부터 대악마들보다 가장 강한 힘을 지닌 것이 바로 토다베스였다. 그는 그동안 자신의 힘을 그들에게 철저하게 숨겼다.
그의 능력이 머리밖에 없다 생각이 될 정도로 숨죽였다.
그리고 그건 모두 나중을 위한 수였다.
대악마놈들을 처리하고 진정한 마계의 주인이 되기 위한 ‘계획’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 놈이 튀어나와서 그의 모든 계획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천계의 심장을 그의 손아귀에 넣지 못한 것이 가장 처음에 생긴 계획의 균열이었다.
천계의 심장을 얻으면 그는 대악마를 차례로 죽일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힘까지 흡수해서 그가 진정한 차원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이가 나타나 자신의 것이 되어야 했을 천계의 심장을 가져갔다.
토다베스는 그것이 무척이나 불쾌했지만, 참고 또 참았다. 그에겐 인내의 시간이 길었기에 참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니 괜찮았다.
오히려 대악마를 한 명씩 죽여주니 편하기도 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인간을 죽이는 것은 그가 작은 수만 써도 충분할 거라 생각했었다. 해서 걱정하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엔 오직 사샤를 죽일 수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악마를 죽였던 것이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인간주제에 그의 수를 읽고 피해버렸다.
그놈이 한 짓은 아닐 것이다.
천계의 심장이 그의 수작을 느끼고 인간을 움직인 게 분명했다.
토다베스는 자신의 최대 적을 사샤에서 천계의 심장으로 바꾸어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놈이 3명분의 마계의 심장을 섭취했을 테니, 한껏 날뛰고 있을 게 분명했다.
물론 그래봤자 실체도 가지지 못할 녀석이지만 말이다.
놈도 자신을 보면 주인이 누구인지 금방 알게 될 거란 생각이었다.
“슬슬 놈을 처리해야 할 시간인데.....”
사샤의 몫인 마계의 심장까지 천계의 심장에 먹히게 둘 순 없었다. 사샤의 것은 자신이 취해야 했다. 그에겐 아직 힘이 더 필요했다.
그의 계획은 이랬다.
건방지게 마계를 돌아다니는 인간들을 스스로 자멸하게 만들고, 사샤와 함께 천계의 심장을 가지러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간놈의 손에 있는 천계의 심장을 가진 후 사샤를 죽이면 끝나는 아주 간단하고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시작도 하기 전에 일이 또 다시 삐끗했다. 그건 토다베스를 아주 불쾌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아무래도 그냥 두고 볼 순 없겠군.”
아마 사샤는 욱한 마음에 인간들을 죽이러 갔을 것이다. 인간이 당하는 것도 문제였고, 사샤가 당하는 것도 그것대로 문제였다.
사샤의 손에 천계의 심장이 들어가게 내버려 둘 수 없고, 그렇다고 천계의 심장이 마계의 심장을 4개나 흡수하게 둘 수도 없었다. 그렇게 돼버리면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갖게 될 테니 말이다.
토다베스는 굉장히 이성적으로 계획을 짜는 걸 좋아했다. 충동적인 것은 야만적이라고 생각했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음을 내보이며 순식간에 있던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가 향한 곳은 사샤가 향한 곳과 같았다.
**
콰아아앙!!
거대한 폭발 소리가 주변을 어지럽혔다.
태상은 싸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있는 그들을 노려봤다. 그러다가 돌연 씨익 웃으며 말했다.
“꽁꽁 숨어 있기에 도망치기 바쁜 줄 알았는데, 무슨 일로 행차를 다 하셨을까?”
사샤가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있을 성격이 아니었다. 그는 팔짱을 끼며 요염한 눈빛으로 태상에게 말했다.
“어머, 그렇게까지 날 보고 싶어 할 줄은 몰랐네.”
“엄청 보고 싶었지. 그동안 애타게 찾고 있었으니까. 특히 네놈한테는 볼 일이 아주 많았지.”
사샤가 악마들을 끌고 온 것은, 일행이 준비를 마치고 움직이기 시작하려 할 때쯤이었다.
이곳이 동쪽 땅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한동안 한 곳에 정착하여 악마들을 심문하고 다녔었다. 토다베스가 있는 곳을 알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샤가 제 발로 찾아 와주니 고맙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왕 올 거면 친구를 데려오지 그랬어? 하도 꽁꽁 숨어서 찾아 다니기 귀찮았다고.”
태상의 말에 사샤가 돌연 표정을 와락 구기며 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음흉한 놈이랑 한 패로 얘기하지 마라! 불쾌하니까!”
태상은 그의 말에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대악마끼리 사이가 별로 안 좋은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태상이 바로세를 죽일 때, 그를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었다.
“친구끼리 사이좋게 지내야지.”
태상이 아이에게 타이르듯이 말하자 주변에 있던 일행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대악마의 앞이라서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너무 긴장감 없이 말을 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든 태상을 가만히 두고 볼 사샤가 아니었다.
'천계의 심장이 준 힘 갖고 한껏 도취해 있군.'
대악마인 자신을 이렇게까지 깔보고 만만하게 여기는 놈은 그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는 태상의 약점이 분명할 천계의 심장에 대한 얘기를 꺼내기로 마음 먹었다. 놈이 믿는 것은 천계의 심장이 분명했으니까 말이다.
“천계의 심장이 언제까지나 널 지켜 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군. 네놈의 오만을 꺾어주겠다. 내 밑에 엎드려 발을 핥아주게 해주지!”
사샤는 분명 태상에게서 반응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태상은 자꾸만 그가 자신에게 천계의 심장 얘기를 하는 것이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었다.
“왜 자꾸 이놈 얘기를 꺼내는 건지 모르겠네.”
태상이 알 수가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자 사샤가 어림없다는 듯 말했다.
“네놈의 힘이 모두 천계의 심장에게 얻어낸 것을 모를 줄 알았나? 기생충처럼 천계의 심장에 들러붙어서 힘을 구걸하는 주제에 오만이 심하구나.”
“그러니까, 왜 그런 오해를 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고. 왜 내 힘을 엉뚱하게 이 녀석한테 받은 거라고 생각을 하는 거지?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그럼 네놈의 힘이 천계의 심장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뜻이냐? 거짓말 할 생각이라면....!”
태상이 사샤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그게 정답이야.”
“풋....푸하하하!! 꺄하하하! 인간, 네놈의 수준을 알 것도 같구나. 같잖은 거짓말을 듣고 있기엔 시간이 아깝네.”
사샤가 배를 붙잡고 깔깔 웃었다.
아니 그러니까 진짠데, 왜 믿질 못하는 거야?
태상은 조금 억울해졌으나 뭔 상관이냐 싶어 그냥 입을 다물었다.
그는 마나건을 꺼내들어 사샤에게 겨눴다. 그의 일행들도 이미 전투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
“너도 알겠지만 난 너한테 받아 낼 게 있다.”
“받아 낼 거? 아~ 혹시 내 계약자 얘기하는 거야?”
사샤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고민하다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맞아, 레베카와 한 계약을 파기시켜서 그 끔찍한 저주를 벗겨내게 만들 거다.”
사샤는 태상의 말에 잠시 팔짱을 끼고 흐음...하고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