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20 침략 =========================================================================
[시작됐습니다.]
혜연은 얼굴을 차갑게 굳혔다.
하늘에도, 땅에도 온통 악마들로 꽉 차있었다.
마계로부터 보내진 악마들의 수는 어마어마했다. 예전보다 계약자들의 수가 많아져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거였지, 만약 태상이 손을 써놓지 않았다면 정말 큰일 날 뻔 했다.
전투조와 길드원들이 모두 마계로 떠난 지금. 인간계를 지킬 사람은 그녀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녀의 선택이 인간계를 지키거나 악마들에게 짓밟히거나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어깨에 짊어져야 할 것이 워낙 무거운 것이고 혼자 짊어지기 힘든 일이다보니 그녀는 버릴 것과 버리지 않을 것을 선택해야 했다.
CMC의 발표가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CMC를 믿지 않고 비방하는 이들은 그 선택에서 제외되었다. CMC를 믿고 미리 대피소로 이동했던 이들은 살았으나 그렇지 않고 무시한 이들은 악마의 군대에 의해 짓밟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전 세계적으로 퍼져 있는 인구를 모두 그녀가 지켜낼 수 있진 않았다. 그러니 CMC의 말을 듣고 대비를 해온 사람들만 선택해서 지킨 것이다. 사실 그들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버거웠다.
미리 알려주고 대비하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을 듣지 않았으니 후회해도 소용없는 법이다. 인간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필사적인 방법으로 악마에게 저항했다.
악마들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당연하게도 피해는 없을 수가 없었다. 수십, 수백개의 건물들이 무너져 내렸다.
전 나라에 악마들이 풀렸던 지라 이젠 밖으로 나오는 것만으로도 큰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악마들의 침략에 가장 침착하게 대응한 곳은 아무래도 CMC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이 사실을 미리 사람들에게 알렸고, 오랫동안 이 침략을 대비해왔으니 말이다. 혜연이 모든 일들을 주관해야 했기에 어깨가 무거웠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침략한 악마들 중에 대악마가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들이 왔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제대로 반항조차 못하고 그들에게 무릎을 꿇어야 했을지도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태상이 마계로 움직인 덕분에 대악마는 인간계를 침략하는 것에 신경을 쓸 수가 없어 부하를 보낸 것이 분명했다.
자신이 마계로 가면 그들이 태상을 잡으러 마계를 떠나지 못할 것이라 짐작한 것이 옳았던 것이다. 만약 태상이 인간계에 계속 있었다면, 더 큰 피해가 일어났을 것이다.
대악마가 없는 이상, 혜연이 충분히 상황을 판단해서 그들에게 대항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동안 계약자들을 만들고, 그들의 힘을 기를 수 있도록 했던 게 헛수고가 아니도록 말이다.
물론 아무리 대비를 많이 했다고 해도, 결국 부상자와 사망자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사방에는 피를 흘리는 부상자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시체들이 즐비해졌다.
“아아악!!!”
“살, 살려....끄윽..!!”
혜연은 진형을 구축하고, 악마들과 경계선을 만들어 대치했다. 그렇게 준비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악마들과의 싸움에서 승기를 잡을 순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그들에게 밀린다는 것은 아니었다.
승리하지 못할 뿐인 거다.
악마들은 고작 인간들에게 이렇게 쩔쩔맨다는 것을 무척이나 분해했다. 인간들의 반항이 거세어 마치 천사와 악마가 오랜 시간동안 전쟁을 계속 해왔던 것처럼 시간을 끄니 그들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인 것이다.
인간들을 단순히 체스 말처럼 생각했던 그들의 뒤통수를 시원하게 쳐준 꼴이 됐다.
그렇게 두 종족은 소모성 싸움만 하며 뜻밖으로 선뜻 어느 쪽이 이길 것이라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하지만 헤연은 알고 있었다.
태상과 일행들이 마계에서 돌아오면 이 싸움을 멈출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대 악마가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태상 일행의 무사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계속 흐르고 흐르니 혜연은 초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능력으로는 현상유지가 전부였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태상이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그녀가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는 태상은 현재 마계에서 고군분투를 하고 있었다.
“왼쪽!”
캬아아아아!!!
날카로운 이빨을 쩌억 벌린 채 달려오는 악마의 목구멍에 칼을 박아 넣은 사로나가 외쳤다.
그녀의 외침에 일행이 전부 왼쪽으로 방향을 꺾었다.
“전방에 A등급 악마 한 명이요!”
이번엔 아이라가 모두에게 외쳤다.
그리고 그녀의 말대로 왼쪽으로 꺽은 그들의 눈앞에 거대한 나무형태의 악마가 날카로운 가지를 그들에게 뻗어 내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탕!
그때, 태상이 놈의 심장을 향해 마나건을 쐈다.
퍼엉!
악마에게 정확히 명중한 탄환은 곧이어 2차 폭발을 일으켰고, 불에 약한 놈의 몸이 순식간에 화르륵 불에 타기 시작했다.
일행은 발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을 사방으로 공격해오는 악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달리던 아이라의 몸에 갑자기 소름이 돋아났다. 몸에서 이런 반응이 일어나는 것은 불길한 징조였다. 아이라가 눈을 크게 뜨고 주변을 살피면서 말했다.
“오빠!”
단순히 그를 부르는 것이었지만, 태상은 그녀의 말을 찰떡같이 알아듣고 감각을 넓게 펼쳐 보았다. 그러자 남쪽에서 군대가 몰려오고 있음이 느껴졌다.
수는 워낙 많아 정확히 셀 수 없었지만, 만나면 꽤나 골치가 아플 듯 했다. 태상이 마나건을 은색으로 바꾸고 말했다.
“이동 준비해!”
성희가 그의 말에 네! 하고 큰 목소리로 외쳤다.
달리던 일행들이 멈추고, 순식간에 둥그런 모양의 대형이 갖춰졌다. 그들의 행동은 무척이나 순식간에 일어났는데, 한 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대형이 갖춰지자 악마들은 도망을 멈춘 그들을 죽이기 위해 사방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태상 일행도 가만히 있는 건 아니었다. 원거리 능력자들이 사방에서 악마들을 계속 죽이고 있었고, 태상의 마나건도 어느새 남쪽을 향해 겨눠지고 있었다.
거하게 한 방 먹이고 이동할 생각이었다.
“지금이요!!”
성희가 소리쳤다.
그녀의 말에 태상이 마나건의 방아쇠를 눌렀고, 그의 마나건에서 주변을 번쩍이는 불빛을 토해냄과 동시에 일행 전체의 모습이 사라졌다.
콰아아아아앙!!!!
캬아악!
아아아악!!
남쪽에서 몰려오던 악마 군대의 인원 절반이 순식간에 죽어나갔다. 칼질 한 번도 못해보고 말이다. 가장 화가 나는 것이 있다면, 복수를 하고 싶어도 모두 다 다른 곳으로 도망을 쳐버려서 상대할 수가 없어졌다는 점이었다.
“이 건방진 계약자 놈들이!!!!!!!! 크아아!!!!”
한 악마가 동료들의 죽음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분노를 토해냈다.
하지만 그의 울분에 찬 목소리는 허공을 메아리쳐 사라지고, 정작 그 분노를 받아야 할 대상에겐 전해지지 못했다.
그들은 악마들에게 들키지 않을 장소인 베이스 캠프로 이동이 되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수고하셨어요.”
“그래, 수고 많았다. 다쳤어?”
“조금요.”
태상이 수고했다며 인사를 하는 종구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말과는 달리 그의 허벅지에 피가 많이 묻어 있었고, 조금 아픈 듯 인상을 찌푸리며 쩔뚝거리는 것으로 보아 제법 깊게 다친 모양이었다.
“치료 받아라.”
“네, 형.”
종구는 어느새 태상을 형이라도 부르고 있었다. 워낙 많은 생사고락을 넘기다 보니 그들의 사이가 급격히 좁아진 것이다. 태상이 너무 대단한 사람인지라 다가가기 힘들어하던 그들이었는데, 이젠 그런 거리감이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그건 태상이 의도한 상황이기도 했는데, 서로 마음이 찰떡같이 맞아야 전투하는 데에 도움이 됐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그를 사장님으로 부르는 이들은 없었다.
태상보다 나이가 낮은 이들은 문제가 없었지만, 나이가 높은 이들은 부르는 것이 무척 곤란했는데 그들은 곧 자기네들끼리 사장아 라고 부르기로 했는지 대부분 그렇게 부르고 있었다.
그들이 마계로 온지 어느덧 일주일이 넘고, 12일이 넘어가고 있었다.
처음 계획했던 데로 카카로치를 죽이는 데 성공하긴 했지만, 남은 두 명의 대 악마들의 자취를 영 찾을 수가 없었다. 해서 그들은 인간계로 돌아가지 못하고 마계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
최대한 이 일을 인간계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해 마계에서 모든 일을 끝내려 하고 있는 태상이었다.
확실히 연습보다 실전이 전투조원들에게 도움이 됐는지, 그동안 인간계에서 연습을 하면서 실력을 늘렸던 것보다 지금 이곳에 와서 늘은 실력이 더 엄청났다. 전투는 힘들었지만, 점점 자신들의 손발이 맞는다는 것이 그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 희생이 없는 건 아니었다.
총 3명의 전투조원들을 잃어야 했고, 그 밖의 사람들이 자잘자잘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힐러들이 커버할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더욱이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게 가장 힘들었다.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악마들이 쏟아져 나오니 몸과 마음 둘 다 힘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계에 있을 가족들의 생사가 자신들에게 달렸음을 알고 있기에 마음을 단단하게 먹었다.
태상도 정신적으로 힘들어지면 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매번 전투조원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힘내라 말해주고 있었다.
말 뿐이었지만, 그래도 힘내라는 말에 기운을 내는 그들이었다.
남은 대악마는 단 두 명이었다.
바로 사샤와 토다베스라는 놈 말이다.
사샤라는 녀석과는 한 번 만나본 적이 있었지만, 토다베스는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다.
하지만 태상은 토다베스라는 놈이 어디에서 웅크리고 있는지는 알고 있었다. 해서 자취를 감춘 사샤는 일단 뒤로 물리고, 토다베스를 잡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과거에 전령사놈에게 토다베스라는 놈이 ‘동쪽을 다스리는 대악마’라고 그를 설명했기에 방향을 잡는 것이 쉬웠다.
놈이 자기네 집에 웅크리고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방향은 동쪽으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태상 일행은 이렇게 대악마를 죽이기 위해 숨통을 조여오고 있는데, 그들이라고 그렇게 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사샤와 토다베스는 태상 일행을 계속해서 압박하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직접적으로 나서질 않았다.
그들이 오해하고 있는 것 때문이었다.
바로 태상이 천계의 심장을 갖고 그 녀석에게 힘을 빌려 사용하고 있다는 착각 말이다.
더욱이 3명의 대악마를 잃은 그들이었다. 당연히 목숨이 가장 소중하기에, 그리고 토다베스의 신중함 때문에 태상에게 나서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다.
사샤는 팔짱을 끼고 얼굴을 와락 구겼다.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리라고 하는 거야?”
“저놈들의 동료를 모두 죽인 다음에 혼자 남았을 때 처치해야 한다.”
“언제부터 대악마 토다베스가 이렇게 겁쟁이가 된 걸까?”
사샤가 토다베스에게 도전적인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이제 우리 둘 밖에 남지 않았다. 이러다가 인간 놈들에게 당하고 싶은 건가?”
“인간 놈들한테 당하는 게 아니라 천계의 심장한테 당하는 거잖아! 저놈들이 어디로 움직이고 있는지는 네가 더 잘 알 텐데?”
“......”
토다베스 또한 저들이 자신이 다스리는 동쪽 땅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사샤가 답하지 않는 토다베스에게 말했다.
“답답하게 굴지 마! 우리가 먼저 손을 써야 된다고!”
사샤도 천계의 심장을 두려워하고 있긴 했다. 천계의 심장이 이미 5개로 쪼개진 마계의 심장중 3개를 흡수했다. 그러니 놈의 힘은 더욱 강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저놈들이 설치고 다니는 꼴을 가만히 보아 줄 순 없는 일이었다.
계속해서 악마들을 보내긴 했지만, 놈들은 점점 더 강해질 뿐 죽일 수가 없었다. 일반적인 악마들의 손으로는 저놈들을 해치울 수 없다는 뜻이었다. 즉 대악마인 사샤와 토다베스가 나서야 한다는 뜻이었다.
============================ 작품 후기 ============================
오랜만에 연참이네요. 재밌게 읽어주세요.
추천 한 번씩만 부탁드리겠습니다. ㅎㅎ
레베카가 오래 살아 남네요. 어서 처리해야겟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