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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219화 (219/251)

00219  침략  =========================================================================

[근데, 어쩌다가 레베카가 여기까지 온 거야? 반은 왜 몰랐고.]

반이 레베카를 챙기고 있을 무렵, 태상은 문득 궁금증이 돌아 물었다. 여기까지 들키지 않고 온 것도 이상했고, 레베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반이 혜연의 전화로 들었다는 것도 이상했다.

[그건.....!]

태상이 알기로는 반이 24시간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반 모르게 이곳까지 올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그가 물으니 갑자기 반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의 시선이 태상에게 향하는 것으로 보아 저번에 그가 했던 말 때문에 오늘 일이 벌어진 듯싶었다.

고민의 당사자인 레베카를 앞에 놓고 고민을 할 순 없는 노릇이니 다른 사람에게 그녀를 잠시 맡겼고, 그로인해 감시가 소홀해진 게 틀림없었다.

[주의하도록 해. 레베카를 혼자두지 말라고.]

너 때문이잖아! 너!

괜한 소리를 해서 반을 혼란스럽게 만들어 놓고, 저렇게 말하면 어떡한단 말인가! 반은 조금 억울해졌지만 그러겠다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레베카가 모든 것을 다 알게 되었을 때, 미치지 않은 것이 용했다. 그러니 이렇게 돌발행동을 하는 것을 크게 나무랄 순 없었다. 그러니 더욱 그녀의 근처에서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한 것이고 말이다.

[실례가 많았다.]

반이 그렇게 말하며 레베카를 조심스럽게 데려갔다. 저렇게 애지중지하는데, 도대체 왜 자기 마음을 아직까지 확신하지 못하는지 모를 일이었다.

정말 단순히 나이차이 때문에 꺼려하는 건가?

태상이 고민스러워하며 침묵하는데, 갑자기 그의 귀를 잡아당기는 손길이 있었다. 아프게 당긴다고 당기고 있긴 했지만, 태상의 몸이 워낙 일반인 범주를 벗어난지라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그가 태연하게 시선을 돌리자 송이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왜 아 소리 한 번을 안 해?”

“안 아프니까.”

태상이 자신의 귀를 잡아당기고 있는 송이의 손목을 낚아 채 자신의 품속으로 당겼다. 그러자 순식간에 송이의 몸이 그의 무릎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혀졌다. 태상이 그녀의 입술을 노크도 없이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송이가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태상은 그녀의 턱을 잡아 채 그럴 수 없게 만들었다.

‘나 아직 있는데....’

혜연이 속으로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방을 나섰다.

잠시 후, 후끈한 키스타임은 끝났지만 태상의 손은 여전히 그녀의 옷 속으로 들어가 그녀를 건드리고 있었다. 송이는 옷에서 손 빼라며 그를 나무랐지만, 고집불통인 태상의 행동을 막을 수는 없엇다.

그러던 태상이 계속해서 아무런 말도 않고 그냥 자신에게 안겨 있는 송이에게 물었다.

“왜 묻질 않아?”

“뭘?”

송이가 모르는 척 되물었다.

“알면서 시치미는....레베카에 대해서 말이야.”

“개인적인 일이 아닌 것 같아서.....”

그녀를 데리러 온 이들도 그렇고, 혜연과 태상의 얼굴에 깃들어 있는 수심을 봤을 때도 그렇고 단순한 개인적인 일은 아닌 듯 했다. 해서 송이는 그에게 굳이 물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분이 나쁜 것은 나쁜 것이었던 지라 태상의 귀를 잡아당긴 거였는데 그가 진한 키스를 한 덕분에 그 화도 흐지부지 되어버렸다.

“일단 그 광경을 보고도 레베카 머리를 잡지 않아준 건 고마워.”

“천만에.”

잡을 뻔 했지만, 최대한 참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고자 노력했던 송이였다. 그리고 더욱이 레베카라는 여자가 너무나도 가련해보였던 것도 한몫했고 말이다.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으나 부디 그녀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어올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엇다. 물론 그녀를 기쁘게 하는 것이 태상이면 무척 곤란하겠지만 말이다.

“밥 먹자.”

송이가 그의 무릎 위에서 내려와 문 옆에 놓여 있는 도시락을 가지고 왔다. 태상은 그제야 그녀가 깜짝 이벤트로 온 것임을 기억해 내고, 말했다.

“언제 이런 깜찍한 생각을 다 했어? 한 마디 말도 없이.”

“집에도 제대로 못 들어오고....더군다나 곧....거기로 가야 하잖아.”

송이가 말하는 곳은 바로 마계였다. 아무리 자신의 힘에 자신감이 있다 해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이 마계였다. 처음 그녀에게 모든 사실을 알렸을 때, 왜 그걸 네가 해야 하느냐며 화를 냈었다.

그냥 다른 사람을 시켜도 되는 거 아니냐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태상이 견뎌내야 하는 문제였다. 그가 나서지 않는다면, 일이 훨씬 힘들어질 거다.

해서 태상은 송이를 꾸준히 설득시켰고, 이젠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송이도 인정하고 있었다. 태상은 한껏 가라앉은 그녀의 목소리에 마음이 불편해졌다.

“걱정을 안 할 리가 없으니 걱정 하지 말라는 말은 안 할게. 근데 가뜩이나 머리 복잡한 나한테 너 걱정까지 하게 만들진 마라. 몸 잘 챙기고 있으라는 뜻이야. 내 걱정한다고 밥 안 먹고 그러지 말고. 평소처럼 잘 지내.”

“정말 내 걱정 하기는 하는 거야? 내 걱정을 하는 사람이 그런 곳에 가야 한다고 통보를 하니?”

송이의 목소리가 뾰족했다. 마계로 가는 얘기만 나오면 저렇게 되는지라 태상이 아 뜨거워라 하는 심정으로 송이의 손목을 잡아 자신의 무릎에 앉혔다

“왜 이래?”

송이가 싫다는 듯 앙탈을 부리자 태상이 그녀의 몸을 꽉 끌어안고 말했다.

“충전 좀 하게 가만히 있어봐.”

“충전을 하려면 밥을 먹어야지.”

“네가 충전기야.”

태상이 그녀를 꼭 안고 눈을 감았다.

이 여자를 위해서라도 자신은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태상이 그렇게 홀로 생각했다.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악마들이 인간계를 습격해 올 것임을, 곧 모든 이들이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알려지는 날은 태상이 마계로 이동하는 날이었다.

마계에서 인간계로 무사히 돌아온다면, 인간계는 훨씬 안전해질 것이다.

태상은 그것을 위해 지금까지 달려왔다. 모든 게 끝나면, 태상은 회사보단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을 살 생각이었다.

그간 너무 바쁘게 살았다. 아들이 얼마나 컸는지 제대로 곁에 있어주지도 못했고 말이다.

심지어 그 흔한 산책조차 못해봤으니 정말 나쁜 아빠 취급당해도 쌌다.

하지만 모든 일이 끝나면 달라지게 될 것이다. 애초부터 이런 막중한 일을 맡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그가 아니라면 할 사람이 없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이 빌어먹을 일만 끝내면 뒤도 안 돌아보고 회사 일에서 손 뗄 생각이었다.

태상은 자신의 할아버지인 강회장처럼 되고 싶었다. 이렇게 뼈 빠지게 돌아다니지 않아도 말 몇 마디로 회사 잘 굴러가게 하는 거 말이다. 그거 되게 날로 먹는 양아치 같은 생각 아니냐고 한다면, 인간계를 지켜내기 위해서 노력한 대가로 그것도 못 하냐고 주장 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사들인 악마의 심장은 소모성이기에 악마가 사라지게 되면 값이 뛰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악마가 나타나지 않아서 힘이 필요 없어 진다해도 심장의 가치는 높았다. 그걸 이용할 수 있는 건 단순히 힘을 늘리고, 새로운 계약자를 만드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무궁무진한 힘을 가진 것이 바로 악마의 심장이었으니 말이다.

“무사히 잘 다녀올게.”

“될 수 있으면 빨리 돌아와. 이렇게 바쁘게 돌아다니면 나중에 태우가 아빠 얼굴 못 알아 볼걸?”

그냥 솔직하게 집에 좀 더 있어주면 좋겠다고 해도 될 텐데, 괜히 태우 얘기를 하는 송이였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말도 나쁘지 않아 태상이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우에게나 송이에게나 곁에 있어 주지 못해 미안한 건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

언제나 CMC의 발표는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리고 이번에 있었던 기자회견 또한 만만치 않게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CMC 발표는 그다지 밝은 내용이 아니었기에, 전체적으로 침울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이 발표한 내용이 꽤나 절망적이었기 때문이다.

악마가 인간계를 침략하러 오고 있다. 우리들은 그걸 막기 위해 정예를 선발했고, 마계로 향했다. 마계에서 악마들의 군주인 대악마를 없애고 돌아오겠다. 부디 그들의 성공을 기원하고, 기다려 달라. 그리고 또한 모두 악마의 침략에 대비하라.

그것이 CMC의 발표 내용이었다.

“말도 안 돼. CMC에서 장사 하려고 수작부리는 걸 거야.”

그들은 끔찍한 과거가 있었다. 갑자기 악마가 나타났고, 계약자라는 존재들이 나타났을 때 말이다. 그런데 또 다시 그와 같은 일을 겪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부정적인 생각만 들었다.

“어차피 장사 잘 되는데, 굳이 들통 날 거짓말을 해서 무리수를 둘 이유는 없지 않나?”

사람들은 그들의 발표가 거짓일 것이다, 아니다 진짜다를 놓고 만날 때마다 입을 놀렸다. 악마들이 정말 침략한다면 지구가 멸망하게 될 것이 자명한 일이었기에 모두의 관심이 그리로 쏠릴 수밖에 없었다.

“난 진짜라고 봐.”

“지구가 멸망할 거라고 예언한 사람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았냐? 분명 거짓말일 거야.”

“그럼 마계로 간 건 어떻게 설명 할래?”

“갔다고만 했지 진짜 확인한 건 없잖아!”

그렇게 말은 안 믿는다 했지만, 사람들은 각자 스스로 조금씩 대비를 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CMC에서 굳이 이런 일로 거짓을 할 이유가 없었다. 마트에는 과하게 음식을 사가는 사람들이 늘었고, 계약자들의 힘을 늘려주는 CMC 제품의 판매량이 3배는 늘어났다.

CMC에서는 악마의 침략을 대비해서 대피소가 마련되어 있음을 알려주었다. 전 세계에 고루 분포되어 있으며, CMC가 나라와 협정을 맺어 만든 공간이었다. 미리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어 혹시 모를 일에 대비를 한 것이다.

CMC의 말을 믿는 사람들이 대피소로 미리 이동을 했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자신의 집에 따로 대피를 할 만한 공간을 만들어두었다.

“도대체 언제 악마가 침략을 할 건지 알려주질 않는 겁니까? CMC는 근거 없는 두루뭉술한 소문으로 사람들한테 피해를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CMC에 모든 원망을 돌렸고, 사람들이 점차 악마가 침략할 거라는 말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장사속이 분명하다며 말이다. 혜연은 그러거나 말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이런저런 혼란이 일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인간계는 예상 가능한 범주의 혼란만 있었다.

그러나.....

“저, 저게 뭐야??”

누구도 특별한 날이 아니라고 믿었던 어떤 날.

쿵!

쿵!

쿵!

거대하고 웅장한 북소리가 하늘을 울렸다. 그리고 분명 허공이었던 공간이 길쭉하게 세로로 찢어지고, 그 속에서 몸을 부들부들 떨게 만드는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크워어어어어!!

캬아아아아!!!

뿌우우우우-

멀쩡하던 이들의 심장을 부들부들 떨리게 만드는 소리였고, 앞으로 일어날 끔찍한 일들을 예견해주는 소리이기도 했다.

보통 작은 크기로 찢어져서 한 명의 악마를 토해내곤 했는데, 이번에는 확실히 달랐다. 찢어진 공간의 크기가 일반 남성 키의 몇 배는 되어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이 점점 입을 벌리듯 쩌억 벌어지더니, 안쪽에서 들리던 소리가 점차 뚜렷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괴, 괴물이다!!”

"멍청아! 저건 괴물이 아니라 악마잖아!!"

그들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설마 이게 CMC에서 말했던 침략인 건가 하는 불길한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을 파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늦어버렸다.

“도망쳐야 돼!!!”

도망치기엔 너무 늦었다. 대비를 했어야 하는 시간에 의심을 했고, 그 결과는 결국 목숨으로 치러야 했다.

끄아아아악!

꺄아아악!

콰아앙!

쾅!!!

인간계를 혼란에 빠트린, 악마들의 침략이 기어코 시작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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