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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207화 (207/251)

00207  사샤와 계약자  =========================================================================

그러니 여러모로 상황을 고려해봤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장거리 이동은 남겨두어야 하는 것이다.

보약(?)까지 먹여줬으니 값을 하길 바라며 태상이 몸을 움직일 준비를 했다.

“짐 다 챙겼어?”

“네. 준비 다 됐어요. 이제 가도 될 것 같아요.”

“좋아. 방향은 동쪽이지만, 조금 돌아갈 거다. 그러니까 잘 따라와.”

성희는 태상이 마나건으로 어마어마한 짓을 하는 걸 보긴 했으나, 왜 굳이 자신을 두고 뛰어가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보다 빠를 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근데, 정말 뛰어서 가실 생각이세요? 그냥 제가 움직이는 게 더 빠르....”

그녀는 말을 채 끝내지 못했다.

왜냐면 방금 전까지만 해도 태상이 그녀 바로 옆에 있었는데, 어느새 저 멀리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성희가 저도 모르게 엄마야! 소리 지르고 능력을 사용했다.

그때부터 성희는 정말 뼈 빠지게 열심히 움직여야 했다. 괜히 그런 보약을 먹인 게 아니었다. 일직선으로 가기로 했던 것을 악마들을 따돌리기 위해 멀찍이 돌아서 가야 했기에 이동해야 할 거리가 길어졌다.

자신이 자초한 일이니 불평을 할 수도 없었다.

“헉! 헉! 조, 조금만 처, 천천히 헉..! 헉...!”

아무리 단거리 능력이 딜레이 없이 사용 가능하다지만, 많이 쓰면 쓸수록 체력이 단다.

해서 그녀의 숨이 지금 저렇게 찬 것이고, 겨우겨우 태상의 옷자락을 잡아 채 살려달라는 듯 그에게 천천히 가달라고 애원하고 있는 것이었다.

태상은 주변에 악마들의 기척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 마셔.”

“후우...후우...후우...”

성희가 숨을 고르기 위해 가슴을 부여잡고 크게 심호흡 했다. 태상이 말한 물을 열심히 벌컥벌컥 마시니 좀 더 살 것 같았다. 이렇게 무식하게 이동을 할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이건제 생각 밖이에요! 이런 식으로 이동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구요. 좀 얘기해주시면 안 되는 거였어요?”

이동을 하면 까마득하게 저 멀리 가 있고, 또 겨우 따라잡았다 싶으면 저 멀리 가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거 뭐 신기루 잡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러니까 힘들 거라고 했잖아. 할 수 있겠다고 했었던 거 잊은 건 아니겠지?”

엄살 피우지 말라는 뜻이었다. 태상의 매정한 말에 성희는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계속 이런 식으로 이동할 거란 말씀이신 거죠?”

헉헉거리는 그녀와는 달리 태상은 쌩쌩했다. 이럴 거면 그냥 그가 자길 안아서 이동해주면 안 되나 싶은 못된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태상은 굳이 그녀가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데, 자신이 그런 개고생을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물 다 마셨으면 이동한다.”

"으앗!"

태상이 또 눈 깜빡이는 사이 사라졌다.

성희는 한숨을 푹 쉬고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가 손으로 입술을 때렸다.

‘그래, 이게 다 내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잖아. 누굴 탓하겠어. 약해지지 말자!’

성희가 이를 악물고 다시 능력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태상에 의해 스파르타식 훈련을 받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이렇게 능력을 빡세게 써본 적 없던 그녀다.

자연스럽게 그녀는 어떻게 하면 체력이 덜 떨어지게 능력을 쓸 수 있는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대로 계속 이동하다간 결국 탈진해서 쓰러질 게 분명했다.

처음에는 태상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차서 헉헉대던 그녀는, 그렇게 처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궁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후에 그녀가 말하기를, 이 순간이 바로 지금 자신을 이 자리에 있게 만든 시작점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

“인간계다~!”

사샤가 꺄르륵 웃으며 빙글 한 바퀴를 돌았다.

그가 찢고 나온 공간이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사샤는 주변을 쭉 둘러보았다.

"여기는 올 때마다 몰라보게 자주 바뀐다니까."

수명이 100년 아래인 인간들인지라 그런 걸까?

사샤는 오히려 그렇게 짧게 살기에 더욱 불 태울 수 있다는 것을 모르는 어리석은 인간들을 비웃곤 했다.

죽지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축복으로 여기는 인간들이 너무 웃겼다. 사샤는 인간들 무리에 순조롭게 섞이기 위해 잠시 몸을 변형시켜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악마의 몸을 하고 있는 것이 훨씬 편하지만, 인간들 속으로 끼어들긴 좀 곤란한 모습이었다.

순식간에 그의 몸이 악마에서 180도 다른 인간 여성으로 바뀌었다. 그것도 아주 아름다운 금발 미녀의 모습으로 말이다.

“아참, 그러고 보니 내 계약자 죽었지? 온 김에 새로 만들어볼까?”

더 이상 악마들이 계약자를 만들지 않지만, 본래 계약자라는 존재의 첫 시작을 사샤가 생각해낸 것이었다.

분명 자신의 힘으로 계약자에게 불로불사의 권한을 주었고, 그 대가로 새끼 악마들을 평생 낳도록 하는 ‘일’을 주었었다.

사샤의 말을 듣고, 절망에 빠진 얼굴을 하던 자신의 계약자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그는 깔깔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 그래도 제법 잘 버티면서 오랜 세월동안 얌전하게 자신의 명을 따라 악마들을 잘 생산해 내던 ‘여왕’이었기에 별 걱정하지 않았는데, 어느 날 안타깝게도 죽었음을 맞이 하게 된 듯 했다.

여왕이 그와의 계약을 무효로 만들기 위해 수많은 세월을 노력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샤는 일부러 여왕을 만나주지 않았다.

다른 누군가를 또 만들어서 여왕직을 시키는 게 귀찮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수를 썼는지 몰라도 죽어버렸다고 해서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 그 슬픔이 인간들이 하는 순수한 슬픔이 아니라는 것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사샤가 슬펐던 것은 다시 여왕을 만들어야 한다는 귀찮음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인간계에 왔으니 지금 여왕을 구하면 좋겠다 싶었다.

“어머, 난 어쩜 이렇게 똑똑한가 몰라. 후후후!”

그가 앙증맞은 자신의 입술을 손바닥으로 가리며 꺄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얼굴이 주먹으로 다 가려질 만큼 작고, 입술은 아무 것도 바르지 않았음에도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으며, 눈동자는 고양이 상이었다. 몸매는 말 할 것 없이, 움직일 때마다 예사롭지 않은 움직임을 보여주는 가슴과 잘록한 허리 그리고 탐스러운 허벅지가 시선을 절로 끌어당겼다.

한 번 그의 얼굴을 눈에 담는다면, 쉬이 떨쳐내기 힘들 미인이었다.

“누.가.누.가.제.일.불.행.할.까.요.알.아.맞.춰.보.세.요!”

사샤의 입술이 호선을 그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를 깊숙이 들여다 본 이가 있다면 절대 단순한 생각만 하고 있을 순 없었을 것이다. 몸이 절로 덜덜 떨리게 될 것이고, 오줌보가 터지거나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을 수도 있었다.

그들은 그의 눈동자를 통해 대악마 사샤의 일면을 어렴풋이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위험하고 끔찍한 존재인지 알 수 있는 눈동자를 바라보기에는 시선을 끄는 것들이 많았다.

얼굴, 가슴, 허리, 엉덩이, 허벅지 등등...

그의 겉모습은 인간들이 가장 매력적으로 느끼는 요소들을 완벽하게 지니고 있었다. 누구나 바라는 몸매, 누구나 갖길 원하는 얼굴. 아름답고 밝은 금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의 아름다움에 빠지고 말 것이 분명했다.

사샤가 탐스러운 엉덩이를 씰룩씰룩 흔들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몸이 바뀐 사샤의 몸에는 팬티가 보일 것 같이 짧은 미니스커트와, 가슴골이 훤히 보이는 나시 티가 입혀져 있었다.

사샤가 혀로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절망 자괴감 분노 고통 파괴의 감정을 진하게 갖고 있는 존재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지~! 없으면 인간계가 아니지! 감정이 무척 진한 걸 보니 험난한 인생을 산 인간인가보네?”

사샤가 두 팔로 자신의 몸을 끌어안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이참! 벌써부터 몸이 달아오르잖아.”

저런 구렁텅이 속에 사는 존재에게 더 깊은 절망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였다.

그가 얼마나 끔찍하고 위험한 것을 떠올리며 재미있어 하는지 모르고, 지나가는 인간들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다.

그들이 가장 끔찍해 하는 악마가 그 몸 안에 도사리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또각또각 걷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어느 순간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하게 사라졌다. 분명 그를 바라보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존재했거늘, 누구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사샤는 걷고 있던 곳에서 조금 먼 곳에 위치한 고풍스런 분위기를 풍기는 전원주택 집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붉은색으로 위협적인 살기를 드러내며 반짝이고 있었는데, 그의 목표가 집 안에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너라면 내게 재미를 줄 수 있겠구나.”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그는 씨익 의미심장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몸이 순식간에 대문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갔다. 너무나도 쉽게 말이다. 잠긴 현관문 같은 것은 그를 절대 막을 수 없었다.

넓은 집과는 달리, 안에는 기척이 몇 개 느껴지지 않았다. 집을 청소하고 있는 인간 몇 명과 그가 선택한 인간뿐인 것이다. 사샤는 덕분에 편하게 움직일 수 있겠다 싶어 당당한 걸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실례지만 누구시죠?”

굳이 사샤는 몸을 숨기는 짓을 하지 않았기에 당연하게도 청소를 하는 여자와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보자마자 저도 모르게 몸매에 시선이 가는 화려한 여자의 등장에 어리둥절해 묻자, 사샤가 태연하게 말했다.

“보다시피 손님입니다만?”

“그럴 리가....손님이 오신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는데요.”

사샤는 혼란스러워하는 그녀에게 웃으며 말했다.

“정말 없어요? 내가 그럼 왜 여기에 있죠? 난 손님인데?”

“.....”

하지만 정말로 지금 이 시간에 손님이 방문할 리가 없었다. 고용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것은 그것을 확신하기 때문이었다.

지금 이 저택에는 주인이 없었다. 그러니 손님이 올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집주인이 집에 없는데, 손님이 온다는 건 말이 되질 않았다. 당연히 이상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이다.

“회장님을 만나러 오신 게 맞으신가요? 하지만 지금 회장님께선 여기 안 계시는데요.”

“제가 왜 회장님이라는 분을 만나러 온 거라고 짐작하시는 거죠? 난 저 방에 있는 인간을 만나러 온 거에요.”

사샤가 한 방을 가리켰다.

고용인은 그녀의 손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가 말도 안 된다는 듯 곧장 반박했다.

“아가씨를 만나러 오신 거라고요? 회장님께 허락은 받고 오신 건가요?”

“아뇨, 내가 왜 인간한테 허락이라는 걸 받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사샤의 태평한 말에 고용인은 뭔가 잘못 됐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 모양이었다. 그녀가 무언가 수를 쓰려고 하자 사샤는 쯧쯧 혀를 찼다.

“오~ 부디 그러지 말길 바라요. 난 당신이 그러지 않는 게 좀 더 평화로운 방법이 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아가씨 방 앞에 수상한 사람이 있습니다. 즉시 와주세요.”

하지만 이미 그녀는 무전기를 들어 올린 후였다. 사샤가 정말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포옥 쉬었다.

“아이 정말.....”

사샤의 몸이 순식간에 고용인의 앞으로 움직였다.

고용인은 너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곧 그녀의 얼굴에 사샤의 손바닥이 올려지고, 우드드득!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얼굴이 함몰되어 바닥으로 털썩 쓰러졌다.

“그러지 말라고 할 때 하지 말면 얼마나 좋아?”

마치 커다란 바위에 뭉개진 것마냥 그녀의 얼굴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우그러진 것이다.

사샤가 손에 묻은 피를 혀로 핥았다. 오랜만에 맛보는 인간의 피는 예전과 한치 다름이 없었다.

시시하게.

사샤가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움직였다. 그녀는 ‘아가씨’가 있는 방의 문고리를 망설임 없이 열었다.

끼이익-

문이 희미하게 소리를 내며 열리고, 방 안은 불이 켜져 있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하지만 어둠이 사샤의 행동을 막을 수는 없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어디 있니 나의 아기고양이?

야옹~

사샤가 키득키득 웃었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한 편만 준비했습니다 ㅜㅜ

나가시기 전에 추천 한 번만 부탁드리겠습니다 (넙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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